누군가의 무심한 눈길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종종 예상치 못한 풍경이 맺히곤 하죠. 최준영의 작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겨울 횟집 수족관에서 헐떡이는 대방어, 발가락이 잘린 비둘기, 무인 가게 벽에 경고용으로 붙어 있는 CCTV 캡처. 한 번쯤 눈길이 머물다 그냥 지나쳤을 대상들이 무심코 그의 눈을 찌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눈을 찌른 것들을 곧바로 캔버스로 옮기지 않고, 일부러 일주일쯤 뒤 붓을 들어 그 감각을 건져 올립니다. 그러다 보니 화면 위의 선과 색은 기묘하게 한쪽으로 기울고 벌어지며 원래의 풍경과 어긋납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 틈을 서둘러 메우려 하지 않아요. 삐뚤고 못생긴 것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감 가는 면을 발견하는 최준영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어린 시절 낙서를 많이 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때는 취미로만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고2 겨울방학에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뽕’에 차서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디자인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게 돈 벌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학원에서 회화로 입시를 보는 게 대학 가기 더 수월하다고 회화반으로 배정했고, 그쪽으로 입시를 봐서 운 좋게 붙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는 재밌었습니다. 그렇지만 졸업이 다가올 때까지 별 확신이 없었어요. 때마침 작업실을 같이 쓰자는 제의가 몇 번 있었고, 그 덕분에 확신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친구와 같이 작업실을 보러 다니곤 했는데, 막바지에 전부 무산됐어요.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이상 작업실 찾기를 이대로 끝내긴 아쉽다 싶어 혼자 쓸 작업실을 구해서 1년 정도 작업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 가게 옆에 공간이 생겨 그곳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원래 1층에서 이발소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2019년 말에 갑자기 상가 주인이 가게를 3~4개월 내로 비워 달라는 요청을 해서 아버지는 이발소를 2층 상가로 옮기셨어요. 이때 사용할 상가와 함께 근처 상가를 구매했는데, 그곳이 지금 제 작업 공간이 되었습니다. 햇빛이 잘 들고요, 종종 아버지께서 놀러 나오십니다.
작업실 입구는 전면 유리라서 내부가 훤히 보입니다. 그래서 이발소 가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구경해요. 가끔 부끄럽지만 전부 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너무 답답할 테니까요. 위층에는 피아노 학원이 있는데, 아이들이 피아노 치는 소리가 아주 듣기 좋습니다.
최준영 작가의 작업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영감 대신 소재라는 표현이 저에게 더 적절합니다. 저는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좋아하는데, ‹드레노어 전쟁군주: 스랄의 정의›라는 유튜브 영상이 있거든요? 거기서 스랄이라는 오크와 가로쉬라는 오크가 서로 대결합니다. 가로쉬가 스랄을 던지며 “넌 진정한 전사의 힘이 없다”라고 비난하자, 스랄은 “내 힘은 세상 모든 곳에 있지”라고 답하죠. 그러고 힘으로 몰아치던 가로쉬를 4원소 기반 정령의 힘으로 압도해요.
저도 그래요. 제 소재는 풍경 모든 곳에 있죠. 아저씨, 비둘기, 수족관, CCTV, 화단, 지하철, 벌레⋯ 7원소쯤 되네요. 이들 원소는 서로 영향을 끼치며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확장합니다. 잘린 나무 마디가 비둘기의 잘린 발가락이 되거나 무단횡단하는 아저씨의 발목을 절단하는 것으로 계속 뻗어갑니다. 그래서 종종 스랄 흉내를 내며 혼자 거들먹거려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보고, 기억하고, 다시 되살립니다.
차례로 설명하면 먼저 ‘봅니다’. 볼 때는 제가 눈으로 쫓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제 눈을 찌르기도 합니다. 작업실 가는 길에 횟집이 있는데, 한번은 겨울에 대방어가 수족관에서 헐떡이는 모습이 눈을 찔렀고 그 뒤로 수족관에 있는 생선을 눈으로 쫓게 됐죠.
그런 다음 ‘기억합니다’. 억지로 기억하진 않아요. 매번 본 것을 바로 그리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한 일주일 정도 숙성했다가 그립니다. 좀 잊힐 만할 때 그 기억을 붙잡으려고 열심히 드로잉하는 거죠. 여러 번 선을 긋고 그 사이를 물감으로 채웁니다. 이때는 규칙이 있다기보다 임기응변식으로 많이 해요. 가장 많이 남은 색으로 채우거나 편한 재료로 선을 긋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되는 대로 그리다 보면 더는 못 그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옵니다. 그때 그냥 포기합니다. 그러고 나중에 만족하죠. 이런 과정은 목격한 순간의 정서와 감각을 되살리는 데 목표를 둡니다. 다만 완벽하게는 아니고 어딘가 삐뚤어진 채로, 마치 좀비처럼 되살리는 것처럼요.
‹부스스한 선 휘어진 다리 어질러진 배경›, 2025, 캔버스에 아크릴, 긁어낸 아크릴 조각, 아크릴 펜, 오일 파스텔, 162.2 × 130.3cm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망쳤거나 대충 낙서한 드로잉을 자르고 이어 붙여 보고 있어요. 붓질별로 잘라 붙이거나 선을 따라 자르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되살리는 시도를 해 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체를 가져와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는 상상을 하며 옛날 드로잉을 도륙하는 것이죠.
회화의 경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매개로 한 장면을 그리려고 해요. 무인 가게에 경고용으로 인쇄해 붙여둔 CCTV 캡처와 다른 사람의 목격담, 헬스장 광고지처럼 타인의 선택이 가미된 장면을 탐구해 보고 있어요. 어떤 생각으로 왜 이런 모습을 선택했을지 고민하는 재미가 있어요. 이전에는 ‘대상을 보는 나’를 탐구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다른 사람의 심정을 추적해 보니까 탐정이 된 듯해서 좋군요.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전 못생긴 면이 보이는 게 좋아요, 정감이 가잖아요. 그래서 못생긴 걸 좋아합니다. 못생긴 그림 중 제일 잘 그린 그림을 그리는 일, 그게 제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걸 더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니, 근데 그 못생긴 면이 진짜로 아름답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는 아름다운 것을 그리는 겁니다. (웃음)
‹조각 모음 드로잉(앞면)›, 2026, 아크릴로 그린 드로잉을 자르고 붙임, 26.0 × 15.0cm
‹조각 모음 드로잉(뒷면)›, 2026, 아크릴로 그린 드로잉을 자르고 붙임, 26.0 × 15.0cm
‹선 따라 자르기 남기기(앞면)›, 2026, 연필로 그린 드로잉을 전시 리플렛과 붙여서 자름, 17.5 × 24.2cm
‹선 따라 자르기 남기기(뒷면)›, 2026, 연필로 그린 드로잉을 전시 리플렛과 붙여서 자름, 17.5 × 24.2cm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만족스럽고 불만족스러운 것을 명확히 정리하고 다른 사람의 감상과 비교했단 말이죠.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 객관화가 돼야 작가로서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요새 자주 마주하는 건 다른 사람의 전반적인 평가는 제 생각이랑 일치하더라도 각각의 작품에 관한 평가로 들어가면 진짜 생각하지도 못한 감상이 나온다는 점이에요. 제가 아주 불만족스러워했던 것을 어떤 사람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반대인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만족스러운 점이나 불만족스러운 점을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아니면 대부분 불만족스럽게 여기려고 합니다. 그러다 칭찬 들으면 ‘오예! 생각보다 잘하고 있잖아’ 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예요. 맛있는 생맥주를 마시기 위해 땡볕에서 아무것도 마시지 않는 심정으로 말이죠.
10시에 기상해 11~13시에 운동합니다. 13~15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작업실로 가서 15시 30분부터 22시까지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22~23시에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02~03시에 잠듭니다. 작업실에 있을 때는 ‹하스스톤 전장›이라는 게임을 하다 하루를 공칠 때도 있지만, 드로잉이 쉼 없이 나오는 날도 있어요.
가끔 산책도 해요. 종종 아버지 가게에 들어가서 우유를 빼앗아 옵니다. 그림 그리면서 여자친구와 통화합니다. 은퇴한 어머니, 가끔 만나는 동생과 수다를 떱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이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여유를 갖는 게 권력이다’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제 작업에서는 긍정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것 같은데요, 어쨌든 무언가를 눈에 담아 그려내려고 하니까요. 부정적이었다면 안 보고 안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는 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를 말하기엔 아직 제게 고점이 안 왔습니다, 하하! 오른 게 있어야 내려가는 게 있죠.
그래도 대충 우울한 건 1~2개월마다 일주일 정도 되는데, 적극적으로 극복하지는 않습니다. 매번 우울감에 휩쓸렸어요. 몇 년 휩쓸려 보니까 우울한 기간이 보통 일주일 안에 끝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걸 알 수 있었던 건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를 썼기 때문이에요. 기록을 안 했다면 일주일이 몇 달처럼 느껴지고 평생 이럴 듯하다는 감각을 느꼈을 테죠.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기록이 곧 극복 방법이네요.
너무 침울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한 날에는 운동이라도 해서 그 흐름을 끊기도 합니다. 최근엔 체력이 달려서 그것도 약효가 덜하긴 하네요.
최준영(@coejune_1)은 인천에 살고 서울을 오가며 활동한다. 주로 도시 풍경에서 포착한 ‘불쾌하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가려운 순간’을 그리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아저씨 비둘기 수족관 씨씨티비 화단 지하철 벌레»(PCO, 2025), «무수히 바라본 창»(프로젝트 스페이스 코스모스, 2024)을 열었고, 단체전으로는 «fins»(IMF 서울, 2025) 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