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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흔들림이 이끄는 곳으로

Writer: 이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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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미디어에 소비의 문법이 작용하는 이유는 매끄럽고 빠르기 때문이겠죠. 이건 자본주의에도 통용되는 논리일 것 같은데요, 이희단의 작업은 어딘가 흐리고 깨진 이미지, 의도적으로 흐트러진 것 위에서 출발합니다. 싱글 채널, 멀티 채널, 다른 물성의 오브제나 사운드가 섞여 있고 부딪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하죠. 물성에 집중하는 작품이 늘어나면서 마련한 임시 작업실도 어딘가 이희단의 작업과 닮았어요. 큰 삽과 부러진 샹들리에가 공존하는 어둑한 창고에서 이미지를 분리하고 ‘훼손’하며 그 불완전함에서 시작한 ‘폐허’는 그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걸즈’와 상충하죠. 이 교란은 조형의 토대가 되어 독특한 조각으로 뻗어나갑니다. 흔들리고 부딪히며 변주하는 이희단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meE v.2›, 2025, 퍼포먼스 기록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0분 3초, 가변 크기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영상 매체와 밀당하여 얻어 낸 것으로 작업하는 이희단입니다. 저는 지배적 미디어가 각종 시청각 이미지를 소비의 문법으로 고착하고 전형으로 만드는 방식에 주목하며, 그 구조 및 기술을 역이용하여 대상을 온전히 포착할 수 없는 상태로 이행시키려 합니다. 깨진 정서와 신체, 형상, 분위기 등이 서로 기생·자생하며 대안적인 힘을 구축하는 폐허 만들기를 선호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의 선형적 형식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기보다 현실의 시간과 만나 일그러질 수 있는 것, 이를테면 동기화되지 않은 멀티 채널, 상호적으로 설치된 여러 싱글 채널, 타 물성 및 사운드 등과 연계·확장되는 플레이를 추구합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현재까지 영상 편집은 거주지에서 노트북 한 대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물성 작업의 비율이 늘어나서 창고에 작업 공간을 일시적으로 마련하여 진행하고 있어요. 천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고, 큰 삽과 부러진 샹들리에를 비롯한 잡동사니가 많은 어둑한 곳입니다.

‹Wreckers›, 2026,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7분, 스틸컷

‹나의 죽여주는 조작자(The Gold Operator)›, 2024,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7분 35초, 스틸컷

‹girls’ void.›, 2024, CR철판에 UV 인쇄, 635 × 1182 × 7.8 cm (좌측 상단: 홍우인, ‹새들›, 2025)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걸즈(girls)”에게서 영감을 얻어요. 이때, “걸즈”라는 표현은 생물학적 여성성을 웃돌거나 미달하는 존재를 포괄합니다. 이들은 클리셰와 장식, 각종 하위문화 콘텐츠, 충돌과 폭력, 디지털 슬롭(slop) 등의 모습으로 출현하기도 합니다. 그 밖에는 국내/외 사회 이슈나 여러 집단의 정서적 간극도 제 작업의 바탕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어요. 확실한 특색을 지닌 장소 양식과 폐허, 저의 마음 상태와 사랑 유무에도 분위기적으로 큰 영향을 받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영상 작업을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우선 마음에 드는 제목을 정하는 일이 중요해요. 그 과정이 오래 걸리진 않지만 정말 중요합니다. 제목이 작업의 내용을 포함해 모든 것을 선험적으로 결정하는 기폭제가 되거든요. 이후 하고 싶은 작업의 개념을 정리하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주기적으로 그것을 돌아보고 보완하기도 합니다. 꼭 들어갔으면 하는 내용은 따로 적어 둡니다(물론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부분은 얼마 없을 때도 있습니다). 단순한 호오(好惡)를 초과하는 일을, 호오를 뚜렷하게 느낀 순간과 섞어 재료를 구성합니다. 매체나 형식을 구분 지어 말하는 방식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영상 외의 매체가 개입되는 순간부터는 정교한 사고 과정을 거치지는 않네요.

‹Wreckers›, 2026,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7분

‹Wreckers›, 2026,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7분, 사진 이의록(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 초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의 «두산아트랩 전시 2026»에서 선보인 신작 영상 ‹Wreckers›와 조각 ‹Junky Dates›에서는 ‘여성의 신체’와 ‘자동차’라는 자본주의의 대표 격인 두 이미지가 소비의 임계점을 넘은 이후에도 자극적으로 유통되고 훼손되는 구조를 다루었는데요. 그때 영상으로 제시한 한 갈래의 정동을 다변화하고, 해당 세계관의 레이어를 쌓아 가는 과정 자체에 방점을 찍을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8월 팩션에서 진행될 개인전에서 총 네 가지 버전의 영상 변주로 이에 도전하려 합니다.

꽤 예전부터 준비했지만 2024~2025년에 본격적으로 진행한 여성-이미지 해체 프로젝트 ‹emeE›는 신체의 관능을 부각하는 포즈나 춤 같은 움직임을 3D 스캐너로 매핑해서, 역설적으로 그 움직임으로 인해 형체 스캐닝이 저해되는 과정을 차례대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일그러진 이미지-데이터를 철판에 전사해 재조합했고, 그 불완전함을 새로운 조형의 토대로 삼는 조각 시리즈를 병행했어요.

‹Junky Dates›, 2026, 갈바륨 철판에 UV 인쇄, 소음기, 트렁크 쇼바, 고장난 블랙박스, 깨진 핸드폰과 셀카봉,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9분 7초, 가변 설치, 사진 이의록(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Junky Dates›, 2026, 갈바륨 철판에 UV 인쇄, 소음기, 트렁크 쇼바, 고장난 블랙박스, 깨진 핸드폰과 셀카봉,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9분 7초, 가변 설치, 사진 이의록(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Junky Dates›, 2026, 갈바륨 철판에 UV 인쇄, 소음기, 트렁크 쇼바, 고장난 블랙박스, 깨진 핸드폰과 셀카봉,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9분 7초, 가변 설치, 사진 이의록(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Junky Dates›, 2026, 갈바륨 철판에 UV 인쇄, 소음기, 트렁크 쇼바, 고장난 블랙박스, 깨진 핸드폰과 셀카봉,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9분 7초, 가변 설치, 사진 이의록(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올 초 신작들은 딱 마음속으로 목표한 지점만큼 실현되어 만족스러웠습니다. 불만족스러운 점은 곧이어 그 합을 스스로 깨트리고 싶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해 많은 시행착오와 사서 고생하는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걱정과 스트레스입니다.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일이나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최대한 침대에 붙어 있으려 합니다. 자주 아프고 인터넷을 엄청 많이 봅니다. 거의 항상 노래를 듣고 있는데 요즘은 모든 곡이 질립니다. 심심할 때마다 각종 솔리테어 게임을 통해 ‘에고부스트’를 얻곤 하지만, 1년 반이 지나도록 깨지 못한 체스닷컴 레이팅 1600 봇과의 대결에서 다시 ‘에고부스트’를 잃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익명의 인간과는 대결하지 않지만, 요즘은 대결해 볼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emeE v.2›, 2025, 퍼포먼스 기록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0분 3초, 스틸컷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전쟁과 같은 참담한 상황과 제 개인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 작업 속 ‘캐릭터’에게 가혹하다는 평을 주변에서 종종 받는데요. 스스로 정서적으로 몰아붙이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작업에서 잘 드러나네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그럼에도 조금씩 작업을 계속 진행해 보려 노력합니다. 책이나 잘 만든 콘텐츠를 보는 것도 생각 정리에 도움이 돼요.

‹vertebrae›, 2025, HR철판에 UV 인쇄, 35.3×121×15cm

‹vertebrae›, 2025, HR철판에 UV 인쇄, 35.3×121×15cm

‹에우리디케›+‹언더그라운드 MMCMXCIX I›, 2024, 싱글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9분 58초, 스틸컷

‹흐르는 지대(Les lieux qui coulent)›, 2023, 동기화되지 않은 2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2분 10초+, 스틸컷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지구력이 사실 제일 중요한데, 이는 체력이나 여건과도 관련된 문제라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죠. 그래도 작업에서 옳다고 믿는 것을 꾸준히 검토하고 가꾸어 나가는 태도가 바람직해 보여서,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료와 대화하고 작업에 집중하고 그 외의 가치에도 시간을 쏟으며 버티다 보면, 대부분 그전보다는 더 나은 지점에 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질투 질투의 벽(jealous jealous wall)», LDK, 2024

«질투 질투의 벽(jealous jealous wall)», LDK, 2024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저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인데, 수면의 질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세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상적이었던 과거의 모습과 포개지는 어느 순간순간들입니다.

Artist

이희단(@bijouxdemelusine)은 서울에 거주하며 서사와 매체가 충돌하는 지점을 영상 기반의 다매체로 탐구한다. 주변적 대상이 이미지 전형으로 전락하는 현상의 굴절과 스스로를 때리는 방식으로 가동하는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다. «두산아트랩 전시 2026»(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2026), «EXCAVATORS(발굴자들)»(LDK.DT, 2025), «처절함에 대하여»(씨알콜렉티브, 2024)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솔로 스크리닝 «질투 질투의 벽»(LDK, 2024)과 개인전 «Forget Your Flesh»(가삼로지을, 2021), «등대로x기폭제»(공간 형, 2019)를 진행했고 «Proxy is my Lover»(팩션, 2026)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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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섬네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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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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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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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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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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