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보러 가는 일은 좋은 것을 눈에 담고 오는 일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세화미술관에서 열리는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은 조금 다릅니다. 관람객에게 직접 무언가를 하도록 권유하고, 예기치 않은 소리로 허를 찌르고,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세워두기도 하죠.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은 여섯 작가가 설계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관람객이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제안합니다. ‘놀이와 초대’, ‘신비함과 수집’이라는 두 갈래의 방식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왔던 보는 행위와 연결하는 방식을 낯설게 뒤흔드는 것이죠.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듣고, 어둠에 눈을 맞추는 일련의 경험이 어떻게 하나의 전시로 엮이는지를 전하는 박의령의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 세화미술관, 2026 ⓒ 세화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여섯 작가가 설계한 디지털 환경 속 관계 맺기의 두 갈래 연결 방식을 맞이하게 된다. 김예솔, 정만영, 이원우 작가는 ‘놀이와 초대’라는 개념으로 관람객이 직접 작품에 참여해 흔적을 남기고 작가의 지시를 수행하며 그 과정 안에서 도전과 좌절, 새로운 감각과 유머를 경험하도록 한다. 박혜인, 이진형, 부지현 작가는 ‘신비함과 수집’이라는 방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장면을 일순간에 신비롭게 뒤바꾸는 작품을 선보인다. 관람객이 지극히 평범한 것 앞에서 무장해제되어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하길 꾀한다.
백색의 풀장처럼 보이는 공간 중앙에 손잡이가 달린 동그라미가 놓여 있다. 김예솔 작가의 ‹선›이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바닥에 묻어 있는 흑연이 퍼져 나가며 흔적을 남긴다. 전시가 끝날 즈음에는 관객들의 힘으로 만든 발자취가 남을 것이다. 이어지는 작품 ‹피크›는 작가가 감상법을 지시하고 관람객이 수행한다. 꽤나 무거운 롤러로 쇠구슬을 옮기는 게 쉽지만은 않다. 작품에 동참해 어려움이나 실패를 느껴 보기도 하는 순간이다. ‹동그라미를 굴리는 방법›은 둘이 참여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준비된 의자에 마주보고 앉아 하얀 원형의 종이를 굴려 색을 입힌다. 공적인 영역에서 만남, 대화, 행위를 촉발해 미술관 가운데에 변화감과 생동성을 이끈다.
전시를 보러 가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좋은 것을 담고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김예솔 작가는 관객의 몸을 작품의 재료로 쓴다. 크리에이티브 그룹 ‘아워레이보(OUR LABOUR)’에 몸담았고 공간 디자인도 하는 만큼 관객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품 활동에 어색함이 없다. 사물과 놀이하는 행위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사물에 대입해 무거운 현실에 가볍고 귀여운 이야기를 부여한다.
움직이고 나면 소리다. 어지럽게 얽힌 관은 수도꼭지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그 수도꼭지다. 하나씩 돌려보면 각각 다른 소리가 새어 나온다. 물이 졸졸 흐르기도 하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갑자기 동물의 포효가 울리기도 한다. 전시 공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예기치 않은 사운드는 전시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간혹 난해하거나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 사운드 작업이 이곳에서만큼은 친절하다.
일상 속 놓치기 쉬운 자연의 소리를 전시장 안으로 불러온 정만영 작가는 사운드 설치미술가로,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감각을 섞어서 작품을 제작한다. 주로 도시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필드레코딩)하여 이를 편안하고 친근하게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소리 수도›와 ‹소리비›는 일상 속 놓치기 쉬운 자연의 소리를 주목하게 하는 힘을 선사한다.
참여를 유도하던 작품을 지나 한번 숨을 고른다. 천장으로 눈높이를 올리면 비정형의 유리 작품이 매달려 있다. 유리는 액체처럼 흐르다 물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지질적인 특성에 박혜인 작가는 자신의 숨을 불어넣었다. 블로잉 기법을 통해 유입된 작가의 숨은 산업적인 재료일 수 있는 유리를 예술적인 작품으로 완성한다. 이 과정은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습과 흡사하다. 구불거리며 빛을 발하는 ‹리퀴드 베일: 할로 패시지›는 생명체 같은 모습으로 전시장 한가운데를 신비롭게 지킨다.
박혜인 작가는 유리의 물리적 특성과 함께 액체와 고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동성에 주목해 작품을 만들어왔다. 유리의 투명성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흔적은 새로운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좌) 이원우, ‹마운틴 캔디›,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슈퍼 미러, 스틸, 페인트, 실크스크린, 80 × 60 cm ⓒ 세화미술관
(우) 이원우, ‹허니 아임 홈›,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슈퍼 미러, 스틸, 페인트, 실크스크린, 160 × 120 cm ⓒ 세화미술관
이원우, ‹상냥한 왕자›, 2024, 알루미늄 주물, 솜사탕 기계, 210 × 73 × 93 cm ⓒ 세화미술관
향의 기억은 생각보다 짙고 오래 간다. 역동성과 청각, 시각의 호사를 누리고 나면 후각으로 자극이 오는 이원우 작가의 작품 ‹상냥한 왕자›를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알루미늄으로 주물한 동상과 때에 맞춰 등장하는 솜사탕 기계로 이루어진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2미터 크기의 거대한 동상은 상냥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렇다면 솜사탕 기계는 무엇을 의미할까? 작가는 행복이 고정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뜬구름처럼 잡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관람객에게 솜사탕을 나눠준다.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솜사탕을 받아 드는 순간 여러 기억이 스친다. 사소한 설탕 향기 한 스푼이 다시금 새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또한 ‘제비’와 ‘삼키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 영어 단어가 쓰인 회화 작품 ‹제비›, 다채로운 평면 조각 연작 ‹에어 워즈› 시리즈가 벽에 걸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이원우 작가는 이처럼 퍼포먼스, 조각, 회화, 사진, 영상, 텍스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영역을 가로지르는 멀티 아티스트다. 기존 논리가 실패하고 부서질 때 발생하는 유머와 아이러니를 포착한 작품은 허를 찌르는 웃음을 선사한다.
구상적인 작품들 사이에서 추상 회화는 발걸음을 진득하니 멈추게 한다. 이진형 작가는 다양한 이미지를 수집해 작업 재료로 활용한다. 수집한 이미지가 가진 분위기, 질감, 윤곽 등을 부분적으로 포착한 후 내용과 의미를 ‘소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화면을 재구성한다. 마치 빛이 훑고 지나간 후의 흔적이나 잔상처럼 남은 ‹무제› 시리즈는 관객에게 생략된 부분이 전하는 떨림, 완결되지 않은 서사를 상상하게 만드는 기회를 열어 둔다.
부지현 작가의 ‹빛의 축›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펼쳐진다. 캄캄한 바다에서 오징어를 유인하는 빛, 폐집어를 주요 매체로 사용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폐집어로 된 샹들리에가 빛을 뿜어낸다. 어둠에서 벗어난 시야 앞에는 사방의 거울로 무한히 비춰지는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1분 정도 가만히 서 빛의 움직임과 작게 들리는 촉촉한 빗소리를 듣는 시간은 잠시 차원을 이동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바다로부터 영향 받은 자전적 기억을 바탕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부지현 작가는 다른 전시에서 전시장 안으로 직접 물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물과 비슷한 투영의 장치로 거울을 사용한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의 축적된 경험과 기억이 연결되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세화미술관은 올해 기관 의제를 ‘관점 전환’으로 정한 후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조망하는 전시를 준비하였다.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과 함께 3층에서 열리는 «기억의 실루엣: 형태, 이미지, 관점»은 각각 다른 주제를 지닌 전시이지만 관람 방식과 인식 구조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전시를 관람한 후 새롭게 단장한 라운지에서 도심의 풍경을 바라볼 때 비로소 나의 시선의 어딘가가 바뀌었음을 느낄지도 모른다.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 세화미술관, 2026 ⓒ 세화미술관
전시와 관람 정보
-전시명: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
-기획: 선우지은 세화미술관 큐레이터
-전시 기간: 2026. 3. 26(목) ~ 6. 28(일)
-전시 장소: 세화미술관 1전시실(2층)
-참여작가: 김예솔, 박혜인, 부지현, 이원우, 이진형, 정만영
-출품작: 회화, 조각, 공간 설치, 사운드 설치 등 총 19점
-관람 요금: 성인 8,000원 (2개 전시 통합관람권)
*솜사탕 퍼포먼스 일정: 전시기간(3월 26일~6월 28일) 중 화요일, 일요일 오후 3:00~3:20(20분간) 진행 ※ 단, 4월 7일~4월 30일 한달간은 평일 점심시간 12:40(20분간)에도 반짝! 솜사탕 퍼포먼스를 추가로 진행
Museum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도심에 공공 미술작품을 설치하고 각종 문화예술지원사업에 힘써온 태광그룹 산하 세화예술문화재단이 2017년 기존에 운영해오던 일주&선화 갤러리를 세화미술관으로 확장 개관하였다. 광화문의 높은 빌딩숲과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훌륭한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열린 미술관을 지향한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고도 쉽게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재미있고 다채로운 예술을 소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Writer
박의령(@youryung)은 ‹나일론›,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하퍼스 바자›에서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사람을 만나고 장소를 둘러보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