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지는 천을 구기고 펼치는 동작으로 우연히 생성된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점점 좁아지는 작업실 때문에 선택한 작업 방식 덕분에 변화무쌍한 물감의 결을 만나게 됐죠. 작가는 그림에 어떤 흐름과 체류가 맺힐 때까지 물감을 더하고, 천을 움직이며 완성 시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접을 수 있는 작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면 창고든 지하실이든 가리지 않고 전시장이 되죠. 자신의 전부였던 작품이 어디로 갈지, 나중에는 없어지지 않을지 걱정하기도 하지만 괜찮아요.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동력이 과감한 작업을 지속하게 하니까요. 움직임으로 예측할 수 없는 송민지의 담대함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OLM› 디테일, 2025, 캔버스에 유화, 277×366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회화 작업을 하는 송민지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면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이어오다 보니 지금까지 작업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울시 중랑구에 있는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쓰는 공간인데, 둘 다 작업량이 많다 보니 짐도 많아요. 원래 넓은 공간이 아니어서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작업실이 지금의 제 작업 방식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좁은 곳에서 큰 작업을 하기 위해 천을 접거나 구기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거든요.
‹OLM›, 2025, 캔버스에 유화, 277×366cm
‹OLM› 디테일, 2025, 캔버스에 유화, 277×366cm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평소 제가 경험하는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책, 영화, 음악,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며 지내고, 다른 사람이 만든 작업을 즐기고 살펴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이나 파생된 결과를 찾아보면서 ‘만약 내가 만든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반대로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을 볼 때도 또 다른 감동을 받습니다.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질서를 마주하며, 이 큰 세계 안에서 내가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이들 경험이 작업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뭔가를 접할 때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소화하려고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은 멀리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제 손에 쥐여진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실에서 천을 펼치고 물감을 오일과 섞는 작업으로 시작합니다. 천에 물감을 더하고, 천을 움직이며 형태와 색, 표면을 만들어 갑니다. 물감은 제 움직임과 중력,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다가 멈추면서 작업이 마무리됩니다. 끝날 때까지 저 역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요. 오일이 휘발되며 균열이 생기고 수축하기도 하고, 오일과 안료가 분리되면서 새로운 형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가 의도하는 부분과 작업 자체에서 만들어 내는 부분이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OLM›, 2025, 캔버스에 유화, 248×150cm
‹OLM› 디테일, 2025, 캔버스에 유화, 248×150cm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옮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업은 제작 과정에서 화면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없다는 조건에서 출발했습니다. 천을 구기고 접어 물감을 이동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도 제작이 가능했어요. 다만 전체를 확인하려면 작업을 펼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죠. 그래서 작업을 옮기는 방식 자체가 작업의 일부가 되었고, 작업이 놓일 공간을 찾고 펼쳐 보는 과정까지 하나의 작업이 되었습니다. 작업실 통로와 계단에 놓여 있던 작업을 지하 공간으로 옮겨 펼쳐 보며 비로소 전체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OLM›, 2025, 캔버스에 유화, 277×230cm
‹OLM› 디테일, 2025, 캔버스에 유화, 277×230cm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관객이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전에는 작업 자체에 몰두하느라 관객이 제 전시를 어떻게 보게 될지를 고민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옮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낯선 공간에 작업을 펼쳐 보는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관객이 되는 감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전시장이 아니라 창고로 쓰이던 지하 공간에서 발표했습니다. 정보가 많지 않은 낯선 공간에서 작업을 마주할 때 관객이 보다 자유롭고 낯선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관객이 작업뿐 아니라 공간에도 관심을 가졌고, 둘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작업처럼 봐주셨습니다.
«OLM Project», 2025
«OLM Project», 2025
«OLM Project», 2025
«OLM Project», 2025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만족하는 부분과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옮 프로젝트›는 이전 전시에서 느낀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전시장이 갖는 화이트 큐브 조건이 제 작업에 적합한 환경인지, 작업과 공간의 관계와 거리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질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전시를 이어오면서도 작업이 잘 보이게 될 환경을 충분히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공간을 찾는 과정도 작업의 일부로 보았어요. 작업과 공간이 나란히 놓이고 서로 대응하기를 바랐고, 그 점에서는 일정 부분 만족을 느꼈습니다. 아쉬운 점을 언어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작업을 이어가며 구체화할 것 같습니다.
«OLM Project», 2025
«OLM Project», 2025
«OLM Project», 2025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출근하는 날과 작업하는 날을 나누고, 매일 해야 할 일을 처리합니다. 하루 중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을 꼭 보내려고 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속한 세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부분에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24년 갤러리 상히읗에서 열린 개인전 «파크(Park)»에서는 회화의 조건으로 여겨지는 캔버스 틀을 활용한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틀을 물리적 구조로 사용해 육면체 형태를 드러내기도 하고, 스트레치된 부분과 바깥 부분의 차이에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또 시야를 조절하는 장치로 활용하면서 크기와 비율이 다른 여러 틀에 고정하고 떼어내기를 반복해 화면을 확장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Park›, 2024, 캔버스에 유화, 145.5×147cm
‹Park›, 2024, 캔버스에 유화, 130.3×193.9cm
‹Park› 디테일, 2024, 캔버스에 유화, 130×90cm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작업이 아닌 다른 일에 몰두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업만큼 어렵지만 재미있는 일을 찾기는 힘들어서 결국 다시 작업으로 돌아오게 돼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짐입니다. 얼마 전 구글 드라이브를 확보하기 위해 결제했는데요, 작업실 월세를 내듯이 데이터가 있을 자리에도 값을 지불하는 셈이죠. 내가 만든 것들이 쓰레기가 될지, 자산이 될지 모르는 상태가 흥미로워요. 어느 날은 작업실의 작업 모두 버려야 할 쓰레기처럼 보이거든요. 한때 전부 같던 것들이 모두 없어질 수 있다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는 틈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생겨요. 이런 불확실성이 더욱 과감한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기도 합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사실 창작을 잘하기 위해서는 돈, 시간, 공간, 사람, 운, 체력, 지구력, 추진력, 판단력, 통찰력 등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 모든 걸 갖추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다 갖추지 않았더라도 지속하는 태도가 중요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Park», 상히읗, 2024
«Park», 상히읗, 2024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작업의 양만큼 실행하고 있어요.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오히려 좋아하는 일이 더 분명해지고 단단해진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를 잊어도 괜찮으니 제 작업은 기억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작업이 기억될 수 있게 노력해야겠네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Artist
송민지(@min_paper)는 서울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최근 ‹옮 프로젝트›를 발표했으며 개인전으로는 «WELL»(인터럼, 2024)과 «Park»(상히읗, 2024)를 열었고, «원더스퀘어»(뮤지엄 헤드, 2025), «언두 이펙트»(하이트 컬렉션, 2024)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