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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버려진 풍경을 그러모아

Writer: 나나와 펠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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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버려진 것은 늘 말이 없죠. 그런데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때가 있어요. 나나와 펠릭스는 바로 그 침묵을 풍경처럼 수집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버려진 액자를 모읍니다. 수백 점의 액자에는 삶의 소중한 장면을 기록한 사진이 그대로 끼워져 있거나 두 사람이 액자를 모으며 포착한 낯선 밤거리의 모습이 대신 담겨 있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남겨진 기억이 하나의 거대한 산처럼 쌓여갑니다. 최근 두 사람의 시선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돈된 세계가 자아내는 침묵을 향해 있어요. 경고 스티커, 안전 영상, 음성 안내를 통해 끊임없이 위험을 설명하는 사회가 역경을 이겨 낼 힘을 오히려 앗아가는 역설을 탐구합니다. 허용된 것만 용인되는 환경이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진보와 안전을 핑계 삼은 통제 아래 무엇이 지워지고 있는지를 두 사람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예리한 풍경화가의 눈으로 버려진 것을 들여다보는 나나와 펠릭스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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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meinen Sammuttaa Valot (Last One Out Shut Off The Lights)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이 불을 끈다_01›, 2024, 폐기된 가스배관, 조명, 37 × 30 × 117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나나와 펠릭스: 저희는 2013년부터 같이 작업해 온 아티스트 듀오 나나와 펠릭스입니다. 실은 올해 4월부터 부산을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드로잉, 사진, 조형,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하고 있어요. 스스로를 풍경화가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거의 목적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이건 뭐지? 저건 뭐지?’하며 기웃거리고 서성이다가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마주할 때면, 그게 이미지가 됐든 사물이 됐든 혹은 느낌이 됐든 거기서 작은 조각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조각에서 공간적, 풍경화적인 설치로 탈바꿈하는 작품 혹은 전시를 만듭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펠릭스: 가장 큰 이유는 나나를 만나서입니다. 우리가 만나기 전엔 저는 사진에 좀 더 열중하고 있었는데요, 실은 좀 싫증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어요.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제 작업을 확장하지 못했을 것이고 한국에 정착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우리 둘 다 탐험하고 계속 배우고 논쟁하는 걸 좋아하고, 또 권위주의를 엄청나게 혐오한다는 공통점이 아마 현재의 우리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지해 주신 모든 분도 이 이유에 포함됩니다.


 

나나: 펠릭스랑 작업을 시작한 건 제 인생에서 시각예술 작가가 되기 위한 세 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미대 졸업 직후인 2000년대 중후반이었고, 두 번째 시도는 2011년에 헬싱키에서 사진을 공부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노력해 온 단 한 가지는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었고, 펠릭스랑 함께하면서는 저희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어요. 현재의 우리는 스스로 결정해서 왔다기보다는 그냥 삶이 허락해 줘서 창작자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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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가 Stream Line›, 2024, 7채널 영상, 무한 반복, 가변 설치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펠릭스: 현재 우리는 작업실과 작업실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서울 작업실은 연장할 수 없는 계약이 10월 말에 끝이 나고, 올해 12월까지 부산 원도심에 있는 한성1918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나: 지금까지 영상, 사운드, 드로잉, 목공, 회화, 사진, 조형, 조명, 아티스트 북, 자수, 서예 등등 정말 다양한 작업을 해왔어요. 그래서 현재 작업실엔 5개의 책상과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보관하는 여러 개의 수납장, 라면 박스 한 20개 정도의 서적, 그리고 음악 감상과 사운드 작업을 위한 질 좋은 스피커 등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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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와 펠릭스 프로필, 2023, 사진 이재안 Ⓒ jaea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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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와 펠릭스의 작업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펠릭스: 영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작업을 만든다는 건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존재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건 사실 영감을 받는 순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이해할 수 없는 특정 문제에 대한 반응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행히도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차고 넘쳐서 부족한 적이 없습니다.


 

나나: 걸어 다니는 것과 취해있는 것은 우리의 고민을 덜어 주기도 하고 다음에 새로운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하나의 특정한 지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요. 말하고 나니, 솔직히 우리가 관심을 두는 부분은 처음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고 단지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언어)만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나나: 다른 분들이 예상하시는 것과 반대로 작업 과정을 설명하는 일은 굉장히 간단해요. 보통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각자의 느낌과 생각 표현 및 아이디어 제안 → 토론과 논쟁 → 연구와 계획 → 더 많은 논쟁 → 글쓰기와 만들기 → 또 논쟁 → 더 많은 연구와 다시 쓰기 → 다시 만들기 → 또 토론과 논쟁 → 다시 만들기 → 만들기 → 만들기와 글쓰기


 

펠릭스: 여기서 첫 번째 단계를 조금 더 설명해 보자면, 처음엔 보통 저와 나나 둘 모두를 계속 짜증 나게 하거나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거나, 견딜 수 없어서 그 정체를 파악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요. 근데 이게 처음부터 정의를 깔끔하게 내릴 수 없는, 그냥 진짜 이상하다는 느낌일 뿐이라서 우리는 그게 뭔지, 왜 이런 건지 파악하기 위해 논의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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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d Circuit 폐쇄 회로_Version 2›, 2025, 3채널 영상, 무한 반복(9mins),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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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lace For Everything and Everything In Its Place_Interior_East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다_ 내부_동쪽›, 2025, 종이에 잉크, 78.8 × 54.5 cm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나나와 펠릭스: 지금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서울사진축제 «컴백홈»에 ‹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제목의 사진 설치 작품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2016년부터 쭉이어 온 작업이고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작품은 길거리에 버려진 액자들을 수집하여 그 수가 계속 늘어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현재 발견된 액자를 460점 넘게 가지고 있는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는 350점 정도를 하나의 설치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숨 막히는 속도로 변화하는 풍경의 잔재를 다루는데, 오늘만 해도 새로운 것이 내일은 무용지물이 되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유일한 가치는 진보 혹은 발전이 되어 버린 현상을 관조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버려진 것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어요. 수집된 액자 중 20%는 원본이 있는 상태에서 폐기된 액자인데, 특히 웨딩사진, 가족사진, 아기 돌사진, 졸업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비어 있는 채로 버려진 나머지 액자는 둘이서 밤에 수도권 전역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으로 채워집니다. 우리가 찍은 사진은 끊임없는 진보의 이면, 임시로 해결된 상태의 무한한 지속, 사라질 운명의 풍경을 통해, 처음부터 영구적으로 지속할 의도조차 없는 땜질과 보수의 조각 모음을 보여줍니다. 사진 전반은 이러한 작은 일상적인 도시의 생존 행위를 묘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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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Camera, Cigarette, Whiskey, and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2016-진행중, 발견한 액자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인화 설치, 총 450점,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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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Camera, Cigarette, Whiskey, and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2016-진행중, 발견한 액자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인화 설치, 총 450점,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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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Camera, Cigarette, Whiskey, and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2016-진행중, 발견한 액자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인화 설치, 총 450점, 가변 크기

그리고 2025년 12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선보인 개인전 «착오없는 시행»에서는 ‘안전’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업을 처음 선보였습니다. 8점의 드로잉 시리즈, 아티스트 북, 그리고 다채널 영상 작품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설치로 구성한 전시였는데, 이를 통해 자연환경과 통제된 환경의 관계에 대한 풍경을 풀어냈습니다. 우리가 지난 10여 년 동안 발전 혹은 진보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언어를 추적해 왔다면, 최근 전시는 그 진보가 도달한 또 하나의 형식, 즉 ‘안전’이란 이름으로 조직된 세계의 감각적 표면을 다루었어요. 특히 오늘날 세상이 ‘안전’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체계화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기술적 진보는 더 이상 단순한 발전의 언어가 아니라 위험을 제거하고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조직된 하나의 감각 체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비판 없이 수용되는 ‘기술적 진보’와 의심 없이 지향되는 ‘절대적 안전’의 패러다임이 자연과 인간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 전시는 저희가 새롭게 시작한 상위 프로젝트 ‹안전의 건축›의 첫 부분이기도 하고요. 올해 팩션에서 «청결함은 신성함에 버금간다 Renlighet Är En Dygd»라는 제목의 전시로 또 다른 측면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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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al Without Error 착오없는 시행», Muu Helsinki Contemporary Art Centre(핀란드 헬싱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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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lace For Everything and Everything In Its Place_Exterior_West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다_외부_서쪽›, 2025, 종이에 잉크, 78.8 × 54.5 cm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펠릭스: 실은 «착오없는 시행»이 헬싱키에서 11년 만에 한 개인전이어서 엄청 긴장했지만 감회가 정말 새로웠어요. 또 이 전시를 예술 관계자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가족이 모두 와서 볼 거라는 사실 때문에 전시를 만드는 데 있어서 굉장히 까다로웠어요. 우리는 항상 작업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만들되 너무 단순하진 않도록 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거든요. 대부분의 제 핀란드 친구들이 예술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우리 작품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한편, 저는 언제나 작업이 만족스럽기도 한 동시에 불만족스럽기도 합니다. 우리의 개별 작품은 어떤 면에서 봤을 때 완성된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대신 의도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어느 정도 풀어놓아 그다음 설치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설치가 완성되는 걸 볼 때면 자랑스럽고 행복한데요, 설치 완료가 되는 순간 다음에 좀 더 고쳐야 하는 것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나: 최근 헬싱키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드로잉 중 비상 대피로에서 영감 받아 만든 작품이 있는데, 그걸 좀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아직 우리가 원하는 걸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만든 작업 중 어떤 건 만드는 순간 ‘완성!’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업이 있고, 어떤 건 전시 때마다 계속 재제작 혹은 재배치해서 버전이 여러 개가 되는 것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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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지는 곳 Tending to Dusk›, 2025, 폐기된 가스배관 조명, 사운드, 4채널 영상 연동 설치(무한 반복),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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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포러리 수석 Contemporary Scholar’s Stone›, 2022-진행중, 발견된 오브제, 나무 좌대, 가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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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포러리 수석 (석계)_008 Contemporary Scholar’s Stone (Seokgye)_008›, 2022, 발견한 오브제, 미송 좌대, 17 × 16 × 13 cm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펠릭스: 작업 측면에서 보면 저는 늘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특히, 우리가 스스로를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며 또 왜 그렇게 조직하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와 나나는 오랫동안 ‘진보’라는 것에 대한 (어쩌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 집착이 만들어낸 풍경을 탐구해 왔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새롭고 반짝이는 것이 곧 더 낫다는 믿음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남겨진 잔해, 부산물, 즉 남겨진 것에 주목해 왔고요.


최근에는 이러한 관심이 조금 이동해서, 저희가 ‘안전의 건축(Architecture of Safety)’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풍경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우리 주변을 지배하고 있는, 투명하고 정돈된 건축 환경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 환경을 탐구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안전에 대한 집착’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사실 여기서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우리는 이미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환경 중 하나에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안전에 집착하는가?’ 하는 부분이에요.


 

진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안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느낍니다. 누구를 위한 안전인지, 무엇으로부터의 안전인지에 관한 질문이 남아 있죠. 오히려 저는 우리가 끊임없이 두려움에 노출된 상태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데요, 두려움이 없다면 안전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경고받고, 지시받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안내받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만 해도 경고 스티커, 안전 영상, 음성 안내가 반복적으로 위험을 설명하죠. 점점 우리가 서로를 어린아이처럼 대하고 또 그렇게 대우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과도한 보호는 일종의 안전감을 줄 수 있지만, 그만큼 우리는 역경에 대한 회복력도 점점 잃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더 우려하는 부분은 ‘안전’이 만들어내는 자기실현적 예언과 그로 인해 가속되는 안전 조치의 반복적인 순환입니다. 완벽하게 공조 되고 위생적으로 관리되며 질서정연하게 조직된 환경은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벗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불관용을 동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벌레 하나에도 당황하고, 햇빛을 피하려 하며, 노숙자를 보면 두려워해요. 얼마 전에는 봄 햇살을 즐기려고 기차역 앞 벤치에 누워 있었는데 보안 요원에게 제지를 당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누워 있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마치 명시적으로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 모두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존재, 즉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간주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감시하고 또 감시받는 것이겠죠. 이러한 흥미와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요즘 저희가 가장 관심을 두어 작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나나: 펠릭스가 할 얘기를 다 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단거리 바다 수영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토탈 이머전(Total immersion)이라고, 생선처럼 몸을 세워서 수영하는 걸 좋아해요. 완전히 숙달한 게 아니라서 바다에서 장거리 수영에 도전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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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meinen Sammuttaa Valot (Last One Out Shut Off The Lights)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이 불을 끈다_03›, 2024, 폐기된 가스배관, 조명, 30 × 75 × 19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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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meinen Sammuttaa Valot (Last One Out Shut Off The Lights)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이 불을 끈다›, 2024, 폐기된 가스배관, 조명, 가변 크기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펠릭스: 저희의 삶이 곧 작업이고, 작업이 곧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작업 안에서는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분석적이면서도 열린 태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반면 개인적으로 저는 굉장히 직설적이라 때로는 단편적이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런 모습이 작업에 그대로 드러나는 일은 경계하려고 합니다. 저는 교조적이거나 어떤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려는, 훈계적인 작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제 작업이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스스로 계속 조정하려고 해요. 어쩌면 저희의 작업은 삶을 이해하고 소화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나나: 저는 펠릭스보다는 덜 극단적이에요, 몇 가지 빼고요. 저는 저 자신을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실수나 잘못을 잘 저지른다는 걸 알고 있어요. 감정의 기복도 굉장히 심하고요. 그래서 내가 맞다거나 내가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게 작업에서 풍경화를 보듯이 관조적인 태도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정말 우습고 같잖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떤 이에겐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게 삶과 작업이 갖는 유사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펠릭스: 이 질문은 마치 스포츠 선수에게 하는 질문처럼 들리네요. 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지속적인 ‘고성과자’로서 상태를 유지하는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슬럼프라는 것도 작업 과정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실패한 작업 역시 완성된 작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과정 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서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사실 저희가 떠올린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로 남아 있고, 시작했던 작업 중에서도 완성되지 못한 것들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완의 작업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파생되고, 그것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이 질문이 놓여 있는 맥락인 것 같아요. 우리는 끊임없이 더 높은 성과와 새로움을 요구받는 환경 속에 살고 있잖아요. 동시에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작가로서 계속해서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슬럼프를 겪을 수 있다’라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진짜로 경계해야 할 것은 슬럼프라기보다 번아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나나: 저는 슬럼프를 겪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정말 구린 작품을 만든 적은 많지만요. 그건 슬럼프 같은 게 아니고 그냥 구리고 별 의미 없고 멍청한 작업이었을 뿐이에요. 이와 달리 번아웃이 왔을 때 저는 시간 낭비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돼지처럼 먹고 퍼질러 누워서 영화나 TV 시리즈를 하루 종일 보는 거, 할 수 있으면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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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포러리 수석 (석계)_010 Contemporary Scholar’s Stone (Seokgye)_010›, 2022, 발견한 오브제, 마디카 좌대, 25 × 18 × 1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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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포러리 수석 (석계)_010 Contemporary Scholar’s Stone (Seokgye)_010›, 2022, 발견한 오브제, 마디카 좌대, 25 × 18 × 17 cm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나나: 아쉽게도 항상 돈 문제인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작가로서 이건 저희에게 늘 따라오는 문제이자 앞으로도 계속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작업 측면에서는 잘 풀리고 있어서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낼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멈출 수는 없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빚이 쌓이고 있습니다 :)


그래도 저는 이 상황을 하나의 자영업과 비슷하게 생각하려고 해요. 제 아버지께서는 50명에서 100명 정도의 직원이 있는 특수 팔레트 제작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업종 특성상 다양한 거래 관계 속에서 늘 여러 형태의 부채를 안고 계셨어요. 어떤 일도 초기 투자 없이 시작할 수 없고 빚 없이 운영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모든 일이란 각자의 일과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계 속에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세상이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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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문명의 이웃들», 목포문화예술회관, 2025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나나와 펠릭스: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한두 가지로 꼽는 것은 어렵지만,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의 태도 혹은 일종의 저항 방식은 두 가지 예를 통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강연에서 “지식인은 언제나 고독과 동조 사이에 서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가 이해하기로는, 사회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해버리면 더 이상 할 말이나 제안할 것이 없어지고, 반대로 대중의 인식에서 너무 멀어지게 되면 메시지가 전달되지 못한 채 개인적·지적 고립 상태에 머물게 된다는 의미예요. 결국 작가는 이 두 지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동조와 고독(loneliness and alignment) 각각은 편안하고 안전한 상태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결코 편안한 상태에 머물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을 캐나다의 철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관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작가를 사회가 꼭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다지 원하지는 않는 ‘불편한 존재’로 설명합니다. 매클루언에 따르면 작가는 반사회적이며,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 흐름을 그대로 따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존재입니다. “작가는 사회의 관장과 같은 존재로,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드러낸다.”라는 그의 표현처럼요. 저희는 이것이 작가가 지닌 하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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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가 Stream Line›, 2024, 7채널 영상, 가변 설치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펠릭스: 만약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면 팁은 필요 없습니다. 진정으로 본인의 일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아마 멈추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예술을 한다는 게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뭔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거든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펠릭스: 우리가 죽고 나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알 수도 없고 또 관심을 가질 수도 없게 되겠죠. 그래서 ‘기억되는 것’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그냥 개자식이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괜찮지만, 적어도 정직하게 살고 타인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나: 우리는 죽으면 먼지가 됩니다. 저는 세상에서 그게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칼 세이건Carl Sagan과 브라이언 콕스Brian Cox도 말했듯이, 우리는 “별의 자식”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먼지를 좋아해요.
모든 생명과 물질이 결국엔 먼지로 돌아간다는 건 굉장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먼지와 과학을 믿었던 사람으로 기억해 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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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ema Kolilta_för Lela (Landscape from Koli_for Lela) 꼴리산수자수병풍_렐라 헌정작›, 2023, 비단에 꼰사, 6폭 병풍, 245 × 17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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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kuna Itään (Window to the East) 동창 (東窓)›, 2023, 미송에 한지, 250 × 150 cm (각 150×50cm)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펠릭스 : 세상이 덜 탐욕스럽고, 덜 돈 중심적이며, 조금 더 느긋한 상태였으면 좋겠어요. 사실 어떤 구체적인 미래를 또렷하게 그리고 있는 건 아니지만, 서로에게 조금 더 느슨하게 덜 질투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화장은 조금 덜 하고 대신 플립플롭을 더 많이 신는 그런 분위기랄까요.

 

나나: 펠릭스가 세상의 모든 자가용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은 게 신기하네요. 정말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데,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문제가 많아질 것 같아서…

자연을 자꾸 정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45억 년 동안 자기가 잘 알아서 해온 자연인데, 30만 년 살아온 우리가 좀 이제 그만 파괴하고 자연에 맞춰서 살면 안 되나요?

[VP]나나와팰릭스_24

Artist

나나와 펠릭스(@nanaandfelix)는 2013년부터 활동해 온 한국-핀란드 국적의 아티스트 듀오이다. 지난 13년 동안 아티스트 듀오는 인간이 만든 문화적 풍경을 탐험하며 ‘발전’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작업 과정에서 비교와 차용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예술사에 잘 알려진 개념들과 작품, 전통문화와 대중문화, 기성품 및 폐기물 등을 수집, 해석, 재현하여 다양한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이에 따라 작품은 사진, 드로잉, 영상, 회화, 서예, 자수, 아티스트 북, 발견된 오브제, 조각, 기성품, 텍스트, 사운드, 조명 등의 다양한 매체로 구성되며, 작품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개에서 수십, 수백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두 작가 모두 핀란드의 알토대학원 예술사진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아티스트 듀오로서 작업을 시작한 후 국내외 유수 국공립기관에서 꾸준한 전시를 통해 예술 경력을 쌓아왔다. 최근의 주요 전시로는 서울사진축제 «컴백홈» (2026,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Trial Without Error» (2025, 무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헬싱키), «문명의 이웃들»(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건축의 장면들»(2024,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2024, 강원국제트리엔날레), «버릴 것 없는 전시»(2023, 전북특별자치도립미술관), «제3회 미따 컨템포러리아트 비엔날레»(2023, 요엔수미술관, 핀란드)가 있다. 듀오는 제6회 포스코미술관 신진작가상 대상(2021)을 수상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예술교류지원사업 기금(2023) 외 다양한 기금을 지원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