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감각의극장_1_오프닝](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1_%EC%98%A4%ED%94%84%EB%8B%9D.jpg)
Review
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의 ‘무엇’을 이야기합니다.
![[Review]감각의극장_2_인트로](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2_%EC%9D%B8%ED%8A%B8%EB%A1%9C.jpg)
2025 ACC 포커스 .«료지 이케다» 전시 포스터
수치화된 세계가 만들어 낸 감각의 극장: «료지 이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복합전시관에 들어서면 마치 거대한 전자 교향곡의 서곡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2015년 ACC 개관 당시 흑백 바코드와 전자음으로 관객의 신체를 진동시켰던 료지 이케다가 10년 만에 다시 찾아와 빛과 소리, 데이터를 엮어 만든 압도적인 몰입형 예술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ACC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며 개최한 이번 전시는 이케다가 ‘데이터의 작곡가’로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데 아우르며 보여주는 특별한 무대이다. 뉴욕의 모마, 런던의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유수 기관에서 작품이 소개되어 온 이케다는 음악과 미술,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30여 년간 탐구해 온 데이터의 미학과 감각의 한계를 최첨단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한층 정교하게 구현한 장으로, 관람객에게 한 층 더 멋진 빛과 데이터의 장관을 선사한다.
![[Review]감각의극장_3](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3-scaled.jpg)
‹data-verse 1/2/3›, 2019-2020,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Review]감각의극장_4](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4-scaled.jpg)
‹data-verse 1/2/3›, 2019-2020,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료지 이케다는 원래 전자음악 작곡가로 출발해 시각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경계를 허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일본 기후현 출생(1966년)인 그는 1990년대 백색 소음과 미니멀 전자음향을 실험하며 인간 청각의 한계를 탐구하지 시작했고, 일본의 전위예술 그룹 덤 타입Dumb Type과 협업하며 다매체 경험을 쌓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데이터를 예술의 중심 소재로 삼아 DNA 염기서열(Base Sequence) 같은 미시 세계부터 우주 관측 정보 같은 거시 세계까지 과학적 데이터를 미적 재료로 활용하는 방향을 모색한다. 이케다는 데이터를 정보 개념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미적 재료로 여겨 왔는데, 0과 1의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데이터 속에 특별한 아름다움이 잠재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빛과 소리, 수학적 알고리즘을 종합해 인간 지각의 경계를 밀어붙이는 그의 작품은 전 세계 관람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고, 그를 사운드아트와 오디오비주얼아트의 선구자로 자리매김시켰다.
이케다와 ACC의 인연은 각별하다. ACC가 처음 문을 연 2015년 그는 기관의 첫 융복합 창·제작 프로젝트 작가로 초청되어 일상의 텍스트와 이미지, 소리 데이터를 흑백 바코드 패턴과 전자음으로 변환한 대형 설치 작품 ‹test pattern [nº8]›을 선보인 바 있다. 투사되는 빛과 16대의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전자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던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디지털 정보의 압도적 힘과 인간 인지의 한계를 몸소 체감시키는 몰입 환경을 구현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더 정교해진 알고리즘과 확장된 데이터 스펙트럼, 향상된 기술적 정밀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작품을 들고 ACC에 돌아왔다.

‹data-verse 1/2/3›, 2019-2020, 사진 o-un
이케다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숭고(sublime)’, 그중에서도 첨단기술과 정보화시대에 새롭게 대두된 ‘디지털 숭고’ 이다. 전통적으로 예술에서 ‘숭고미’는 인간 이성이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장엄함이나 무한함 앞에서 느끼는 경외와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가리켰다. 하지만 현대에는 자연 못지않게 방대하고 정교한 기술과 데이터 체계가 등장했고, 프랑스 철학자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가 말한 바와 같이 거대한 정보 구조와 기술의 규모가 불러일으키는 표현 불가능성 또한 숭고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디지털 세계의 무한성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을 직시하게 되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지각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존재 방식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케다의 예술은 이 현대적 숭고 개념을 감각의 영역으로 확장한 특별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ACC 전시의 작품은 방대한 데이터의 흐름과 복잡한 알고리즘 구조를 오롯이 감각으로만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관람객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규모와 정보의 홍수 앞에 선 자신의 인지적 한계를 몸소 느끼게 만든다. 눈부시게 빠른 빛의 패턴, 귀를 울리는 고주파 사운드, 한꺼번에 쏟아지는 수만 개의 데이터 포인트는 인간의 상상력과 이해력을 초과하는 차원을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하며 경외와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지만, 이는 막연한 혼란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물론 이런 해석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정작 이케다 본인은 자신의 작품에 특정 의미를 부여하거나 친절히 설명해 주는 일을 극도로 자제한다. 그는 “전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했다면, 차라리 글로 써서 전달했을 것”이라며, 작품은 관람객 각자가 자신만의 의미로 발견하는 통로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콘서트장에서 음악을 들을 때 연주자의 의도를 일일이 묻지 않듯 그의 작품도 질문하지 말고 그저 순수하게 즐겨 달라는 의미리라. 어떤 이에게는 이케다의 작품이 현대 문명의 경고로 읽힐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아름다운 우주의 찬양으로 느껴질 수 있다. 정답은 없다. 작품과 관객의 만남을 통해 매번 새롭게 그 의미가 생성될 뿐이다.
그렇다면 어두운 전시장에 조심스럽게 한발 디뎌 보자. 신작 4점을 포함해 총 7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어둡고 좁은 통로 천장에 눈부신 흰빛 패턴이 마치 급류처럼 끝없이 흘러가는 광경을 시작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안내한다.
![[Review]감각의극장_6](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6-scaled.jpg)
‹data.flux [nº2]›, 2025,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Review]감각의극장_7](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7-scaled.jpg)
‹data.flux [nº2]›, 2025,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신작 ‹data.flux [n˚2]›(2025)는 인간 DNA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생성된 기하학적 패턴의 영상이다. 10m 길이의 LED 스크린을 통해 쉼 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는 시작부터 관람객의 감각을 압도하고, 관람객은 본능적으로 그 흐름을 쫓아가려 하지만 곧 도달 불가능한 한계에 부딪히는 자신을 인지하게 된다. 마치 현대인이 매일 접하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느끼는 막막함을 형상화한 듯 말이다. 발밑 바닥까지 진동시키는 전자음이 동반된 이 눈부신 데이터 폭포는 이번 전시의 서곡이자 관람객에게 ‘이곳에서는 익숙한 인과적 서사나 친절한 해설 없이 감각 자체에 몸을 내맡겨야 한다’고 암시하는 초대장처럼 다가온다. 통로를 지나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갑작스럽게 발밑에서부터 쿵쿵 울리는 저음과 함께 시각이 확장된다. 어둠 속에 펼쳐진 10×10m 규모의 거대한 스크린 바닥에 선명한 검은 원 하나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주위를 둘러싼 강렬한 흰빛이 순간순간 번쩍인다.

‹critical mass›, 2025, 사진 o-un

‹critical mass›, 2025, 사진 o-un
![[Review]감각의극장_10](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10.png)
‹critical mass›, 2025,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 작품은 이케다의 또 다른 신작 ‹critical mass›(2025)로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 한번 들어가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밝음과 어둠의 극단적 대비와 울림이 강한 사운드를 통해 우주의 절대적 경계를 시각화한 것이다. 화면 중앙의 검은 원은 마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입구처럼 보이고, 주변의 격렬한 백색 섬광과 전자음은 정보 과부화 시대에 우리가 겪는 이해의 한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실제로 작품 앞에 서면, 몸이 떨릴 정도의 저음과 눈을 희미하게 할 만큼의 섬광이 관람객을 에워싸 극단적인 감각의 한계점으로 몰아가는데, 혹시라도 빛에 민감하거나 큰 소리에 취약한 사람이라면 이 지점에서 잠시 눈을 감거나 귀마개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바닥의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면, 얼핏 평범해 보이는 빛나는 라이트박스나 패널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그 표면에 빼곡히 인쇄된 숫자 행렬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이케다가 이번에 처음 공개한 ‹the sleeping beauty› 시리즈이다. 스테인리스 패널, 천, 아크릴, 라이트박스 등 다양한 재질 위에 언뜻 추상적으로 보이는 바코드 무늬와 숫자를 담은 이 연작은 사실 끝없이 이어지는 무리수의 숫자를 시각화한 것이다.

‹the sleeping beauty› 시리즈, 2025,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Review]감각의극장_12](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12-scaled.jpg)
‹the sleeping beauty› 시리즈, 2025,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작품 제목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케다는 여타 작품보다 다소 시적인 상상력을 이 연작에 불어넣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무리수는 수학적으로 늘 존재해 왔지만 인간이 그 방대한 숫자 세계를 체감하기는 어려웠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거대한 분량의 무리수를 눈앞에 펼쳐 보임으로써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공주가 눈을 뜬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다고 한다. 끝없이 나열된 숫자 행렬 앞에서 문득 무한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마주하는 묘한 전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연작은 이케다 특유의 차갑고 기술적인 이미지에 은근한 서정성을 더하며, 수학적 진리와 동화적 상상을 한데 아우르는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전시 공간의 중심에는 많은 사람이 하이라이트라고 입을 모으는 압권이 기다리고 있다. 2000년부터 진행된 장기 프로젝트로, 3개 스크린이 나란히 벽면을 채운 ‹data-verse 1/2/3› 3부작이 바로 그것이다. ACC 전시장 한쪽 벽을 따라 약 40m 길이로 이어진 3개 초대형 스크린에는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것부터 가장 미세한 것까지 이 세상을 구성하는 온갖 데이터 이미지가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Review]감각의극장_13](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13-scaled.jpg)
‹data-verse 1/2/3›, 2019-2020, Photo by David Stjernholm,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왼쪽 스크린에는 거대한 태양의 플레어 폭발 장면이 타오르고, 중앙에는 무수한 은하와 별로 이루어진 심우주의 구조가 펼쳐진다. 오른쪽 스크린에는 미시세계와 인간 문명의 흔적이 겹쳐 보이는데, 인간게놈지도 일부, 전 세계 도시를 연결한 네트워크지도, 전 지구적 재난과 기후 데이터 등이 눈부신 속도로 교차한다. 이들 시각 데이터는 모두 실제 기관에서 수집한 과학 정보로, 미항공우주국(NASA),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인간게놈프로젝트 등에서 얻은 우주 관측 자료와 유전자 서열 데이터, 전 세계의 다양한 환경·사회 통계가 총망라되어 있다. 거기에 3개 화면 속 영상과 완벽하게 동기화된 고주파 사운드가 공간을 메우면서 관람객은 마치 우주와 인간, 자연과 데이터가 교차하는 교향곡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케다는 이 장대한 3부작을 완성하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선과 점, 영상이 치밀한 계산에 따라 정확하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data-verse›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데이터로 구현한 우주라고 할 만하다.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거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만 같은 지도와 수치’가 쉼 없이 흘러가는데, 정작 그것을 해독하는 것은 전적으로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진다. 관람객 대부분은 칠흑 같은 전시장 한복판에서 화면에 빨려들 듯 넋을 읽고 서서 귓가를 맴도는 심오한 사운드와 함께 이 신비로운 장관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느새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데, 이케다가 의도한 바도 바로 그런 점일 것이다. 복잡한 과학 데이터를 지극히 감각적인 예술 경험으로 전환한 이 연작은 그야말로 이케다 작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많은 관람객이 입을 모아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시 마지막에 이르면 다시 어두운 방 안에서 날카로운 붉은 레이저 광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품 ‹exp #1›(2020)으로, 정밀하게 제어된 레이저가 만들어 내는 빛의 움직임을 공간의 차원으로 탐구하는 설치 작업이다.
![[Review]감각의극장_14](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14.jpg)
‹exp #1›, 2021, Photo by Jack Hems,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바닥에 붉은 빛으로 그려지는 격자무늬와 곡선 궤적은 마치 3차원 공간에 보이지 않는 방을 드러내는 와이어프레임 같기도 하고, 순수한 수학적 세계를 빛으로 구현한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레이저 불빛이 그려내는 가상의 공간을 관객은 눈으로 쫓으며, 독특한 빛과 공간의 관계를 체험하게 된다. 이케다는 빛과 소리, 수학적 질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고, 무형의 개념을 체험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데 탁월한데, ‹exp #1›에서도 이 같은 특질이 잘 드러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레이저의 패턴은 공간 자체를 하나의 움직이는 조각으로 변모시키고, 관람객은 그 한가운데서 미지의 차원을 탐사하는 탐험자가 된다. 이는 곧 이케다 예술의 핵심 중 하나인 수학적 아름다움의 체험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 7점은 각각 고유한 매력과 주제를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심포니처럼 어우러지도록 배치되어 있다. 이케다는 자신을 비주얼아티스트가 아니라 ‘뮤지션’으로 여긴다고 할 만큼 전시 공간을 작곡하듯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는 새로운 전시를 준비할 때면 늘 현장 공간을 충분히 느끼고 파악한 뒤 그 공간에 어울리는 요소를 채워 나간다고 한다. 이번 ACC 전시 역시 ‘공간에서 받은 영감을 하나의 작곡으로 표현’한 것으로, 작품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시장에서는 교향곡의 악장처럼 서로 긴밀히 호흡하도록 연출되었다. 가령 관객이 ‹data.flux›의 통로를 지나 ‹critical mass›, ‹the sleeping beauty› 시리즈를 차례로 접하고 ‹data-verse›의 파노라마로 빠져들었다가 ‹exp #1›의 여운으로 마무리되는 동선은 음악으로 치면 ‘빠른 악장-느린 악장-클라이맥스-코다’의 구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작품 간의 리듬과 대비가 돋보이는 구성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전시를 하나의 거대한 감각의 서사로 경험할 수 있다.

‹point of no return›, 2018, 사진 o-un

‹point of no return›, 2018, 사진 o-un
료지 이케다 작품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예술과 과학의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작품 해석의 열쇠는 관객 각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케다는 작품의 학술적 분석이나 철학적 의미 부여를 일부러 피하며, 관객이 주체적으로 느끼고 판단하길 바란다. 그래서 이번 ACC 전시장에도 작품 캡션이나 설명문은 거의 보이지 않는데, 이는 ‘작품이 스스로 말을 하게 두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관람객 관점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곧 작품 자체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눈앞에 번쩍이는 빛과 귀를 때리는 소리에 압도당한 관객은 그것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그 느낌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점차 머리로만 예술을 소비하는 우리에게 이케다가 선사하는 일종의 해방감인지도 모른다. 설명 없이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이듯, 그의 작품은 어떤 논리를 거치지 않고 감각과 직관에 호소함으로써 우리 내면의 순수한 예술적 경험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의 관객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누군가는 거대한 데이터 우주 앞에서 인간 존재의 미약함을 느꼈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복잡한 세상이 사실은 아름다운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이는 그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굉장했다고 웃어보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틀린 것은 아니다. 이케다의 작품 해석에 정해진 답은 없으며, 관객이 본 것이 곧 정답이니 말이다.
![[Review]감각의극장_17](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17-scaled.jpeg)
‹data.gram [n˚8]›, 2025,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Review]감각의극장_18](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0%90%EA%B0%81%EC%9D%98%EA%B7%B9%EC%9E%A5_18-scaled.jpeg)
‹data.gram [n˚8]›, 2025,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마지막으로, 이 전시를 찾을 관람객을 위해 몇 가지 관람 팁과 주의사항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길 바란다. 전시장 내에는 의자가 거의 없고, 작품 몰입에 시간이 필요하므로 여유롭게 둘러보는 편이 좋다. 둘째, 감각 자극에 민감한 사람은 유의하기 바란다. 밝은 플래시나 강한 패턴의 빛, 큰 전자음이 반복되므로 광과민성 경향이 있거나 임신부, 노약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현장에도 ‘빛에 민감한 분들은 주의’라는 안내가 있으므로 필요하면 잠시 고개를 돌리거나 귀를 막는 등 스스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관람하길 바란다. 이케다 작품은 이해하려 하기보다 느끼고 즐길 때 더 풍부하게 다가온다. 함께 간 일행과 작품을 놓고 토론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관람 중이라면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온전히 작품과 자기 내면에 집중해 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혼잡한 시간대를 피하기 위해 가능하면 평일이나 이른 시간대를 노려보길 제안한다. 어두운 전시공간에서는 다른 관람객의 휴대전화 불빛이나 대화 소리도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비교적 한산한 때에 방문하면 한층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빛과 소리, 데이터가 직조해 낸 이번 전시는 흔히 볼 수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와 차원이 다른 총체적 감각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ACC 개관 10주년을 화려하게 장식한 료지 이케다의 이 데이터 교향곡은 12월 28일까지 이어지므로 아직 관람하지 못했다면 놓치지 말고 체험해 보길 권한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라는 물음에 하나의 체험적 응답이 이곳 광주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data-verse 1/2/3›, 2019-2020, 사진 o-un
Ryoji Ikeda
료지 이케다(Ryoji Ikeda, 1966-)는 일본 기후현에서 태어나 활동해 온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전자음악 작곡가이다. 그는 1990년대 도쿄의 실험적 클럽 문화와 공연 현장에서 음악가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다매체 그룹 덤 타입(Dumb Type)과 협업하며 영상과 퍼포먼스, 사운드가 결합된 실험적 예술을 선보였다. 이케다는 소리와 빛, 수학적 구조, 데이터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재료로 삼아 숫자와 알고리즘이 시각적, 청각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대표 프로젝트인 <datamatics>와 ‹test pattern› 시리즈는 모든 정보를 0과 1의 패턴으로 환원하고, 거대한 영상·사운드 공간으로 구축해 관람객을 몰입시키는 효과가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독일 ZKM,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 등 주요 기관에서 소개되었으며, 공연과 설치, 영상, 음향이 결합된 형식으로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케다의 작업은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데이터가 감각으로 변하는 순간’을 드러내고, 현대 기술 환경에서 감각과 인지의 한계를 경험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와 관람 정보
– 전시명: 2025 ACC 포커스 «료지 이케다»
– 기획: 이애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 전시 기간: 2025. 7. 10(목) ~ 12. 28(일)
– 전시 장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관, 4관(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38)
– 정기 해설: 11:00, 14:00, 15:00, 16:00, 17:00(수요일과 토요일에는 18:00, 19:00 추가 운영)
– 관람 시간: 10:00~18:00(화~일), 10:00~20:00(수, 토)
– 관람 요금: 무료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Writer
마동은(Ma Dong-eun)은 2005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현대미술 전시기획과 미술 비평 작업,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다원예술 기획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재단, 대구미술관 등 공공미술기관에서 다양한 전시 기획과 예술 행정을 맡았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융복합 미술과 다매체성 중심의 다원예술에도 관심이 깊다. 현재 대학에서 현대미술과 미술경영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며, 새로운 시각의 ‘현대미술 읽기’를 제안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관의 스마트화’를 화두로 디지털 기술이 예술 창작과 장르 간 협업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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