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Essay

종묘사직을 위하여

Writer: 박경은
[Essay]종묘사직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종묘가 심상치 않습니다.  개발 논쟁의 중심에서, 이곳은 갑자기 아주 오래된 질문을 꺼내 들었어요. 수백 년 전의 제례가 지금도 이어지는 전 세계의 유일한 장소. 그런데 일상의 발걸음은 종묘보다 서순라길과 을지로의 ‘공간’에 더 익숙하죠. 그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간극은 이 오래된 장소와 지금의 도시가 얼마나 다른 리듬으로 버텨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조선의 왕조차 밟지 못했던 길, 신로(神路)가 여전히 남아 있는 종묘. 영화 <사도>와 <킹덤> 속에서는 익숙한 장면이지만, 서울의 풍경에서는 때때로 영화의 배경처럼 멀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K-콘텐츠가 끊임없이 호출하는 세계관의 원류 같은 이 장소가 그렇게 오래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낯설게 다가옵니다.  지금, 종묘는 어떤 풍경으로 기억될까요. 박경은 기자가 건네는 질문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ssay]종묘사직_2

종묘 영녕전에서 치러진 종묘제례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그리고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관람객 수로 세계 5위권에 이른다는 초현실적인 소식을 얼마전 접하며 무척이나 벅차올랐다. 하지만 한켠에선 실감이 안나는 것도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이던 1970년대에 태어나 온갖 우여곡절을 보고 겪으며 선진국 시대를 살고 있는 나같은 세대는 아마 비슷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광화문에서 한복을 입고 걷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경복궁 생과방과 창덕궁 달빛기행 같은 체험 프로그램은 매번 빠르게 매진되고, ‘궁케팅’이라는 말도 흔하게 들린다. 갓과 철릭같은 전통 복식까지 자연스럽게 ‘스타일’의 일부가 될 만큼, K컬처의 흐름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런 변화의 한편에서, 뜻밖의 장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종묘다. 이름만으로도 그 무게감이 느껴지는 장소, 종묘(宗廟).

[Essay]종묘사직_3

해질녁 종묘 정전 풍경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에서 왕이 죽으면 육신은 왕릉에 묻혔고 그 혼은 종묘에 모셔 제사를 지냈다. 쉽게 말하면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인 셈인데, 종묘는 단순한 사당이 아니다. 500년 왕조 조선이라는 국가의 통치철학과 정신이 고스란히 저장된 곳이다. 혹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첫 장면을 기억하는지.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을 멀찍이서 잡아낸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얀 눈이 덮인 정전의 위엄있는 모습. 왜 이 영화는 종묘 정전의 모습으로 시작했을까. 역대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종묘에 단 2명의 왕이 빠져 있다. 짐작하다시피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영화 <광해>의 트레일러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종묘는 익숙한 듯도 하지만 다소 멀게도 느껴진다. 화려하고 우아한, 혹은 친근한 궁궐과 비교했을 때 다소 딱딱하고 엄숙하다. 발길을 사로잡는 포토존도 없다. 아마도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가 주는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종묘를 제대로 느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두어 차례 간 적은 있었지만 그저 도심 속에서 고즈넉한 녹지를 거닐며 산책했던 기억밖엔 없었다. 괜히 송구한 마음에 제대로 한번 보자 싶었다.

평일 오후의 종묘 앞 광장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해설자의 인솔에 따라 단체로 입장을 해야하므로 20분 가량을 기다렸다. 어림잡아 40명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부터 평범한 직장인, 데이트하는 듯한 커플까지. 의외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 옆에서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네”하며 들으라고 혼잣말을 하자 그 여성은 “그러네요.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요”하며 알은체를 했다. 66년 평생을 서울에 살았는데, 요즘 하도 뉴스에 많이 나와 마음먹고 처음으로 구경을 왔다는,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털어놨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니 입구부터 넓적한 돌이 깔린 길이 곧게 뻗어 있다. 삼도라고 불리는 3줄의 돌길. 가운데가 살짝 높았고 양쪽은 좀 낮다. 자세히 보니 길 바닥도 울퉁불퉁하다. 산책로라고 하기엔 심오한 뜻이 서려있는 듯한 돌길이다. 가운데의 높은 길은 신로(神路), 즉 조상신들이 지나는 길이며 왼쪽은 왕이 다니던 ‘어로’, 오른쪽은 왕세자가 걷던 ‘세자로’다. 신로는 그 시절 왕조차도 걸을 수 없던 길이었던지라 지금도 이 길 위엔 ‘보행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이 길은 종묘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이 정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Essay]종묘사직_6

종묘의 돌길. 왼쪽부터 어로, 신로, 세자로

[Essay]종묘사직_7

종묘를 걷고 있는 시민들

이런저런 건물을 구경하다 정전 뜰로 들어선 순간 컥 하고 숨이 멎는 듯했다. 장중함에 굴복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화려한 곡선이나 아름다운 장식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단순한 건축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흘러나오는 절대적 위엄이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절제와 비례만으로 이런 긴장감을 뿜어내는 건물과 공간을 본 적이 있던가. 다들 말을 멈춘 채 한동안 정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하늘을 올려다 봤다. 높고 푸른 하늘, 그 아래 울창하게 둘러선 숲과 나무를 눈으로 훑다 다시 정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마 조선시대의 왕들과 대소신료들은 이 공간에서 종묘사직의 지엄한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했으리라. 우리가 수많은 사극에서 신하들이 왕에게 “종묘사직을 위하여…”하고 간언하던 대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공간은 나라의 근간이자 정체성의 상징이다.

[Essay]종묘사직_8

종묘 정전 전경 사진. 국가유산포털

500년간 조선의 왕들은 이곳에서 역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것이 종묘제례다. 지금도 1년에 2차례씩 원형 그대로를 재현해 치르고 있다. 이때 연주되는 종묘졔례악은 음악과 무용이 결합된 종합 예술이다. 종묘는 1995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전세계에 왕실과 궁궐은 널렸고 각각의 상징적 이벤트를 보유하고 있겠지만 수백년간 이어진 왕실 제례를 현재에도 그 공간에서 그 원형대로 재현하고 있는 현장은 종묘가 유일하다.

[Essay]종묘사직_9

종묘제례,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포털

“내 너를 기억할것이다, 비켜라” 사도와 킹덤의 촬영지 [종묘], 국가유산청 유튜브

[Essay]종묘사직_11

필자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해질녁 종묘 정전 모습

이런저런 관념적인 설명을 붙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K사극’ 유니버스에 세계인들도 익숙해진 시대. 한마디로 종묘는 ‘K사극’ 서사의 뿌리이자 세계관의 근원이다. 조선왕조의 역사와 철학, 문화, 건축이 한데 모여 시간의 감각을 총체적으로 체현하는 공간이다. 우리가 사극으로 보는 그 콘텐츠를 품은 실존의 무대다. 종묘의 공기와 건축물, 둘러싼 나무와 숲, 그 위를 덮은 하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까지. 이 모든 공간과 풍경이 포함된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을 빠져나오자 저 멀리 세운상가가 보인다. 1시간 남짓한 시간여행이 마무리됐다.

[Essay]종묘사직_12

종묘 영녕전 전경

[Essay]종묘사직_13

종묘 입구 연못 가운데 심겨진 나무

[Essay]종묘사직_14

종묘 앞 세운상가

[Essay]종묘사직_15

종묘 입구에 나 있는 삼도. 가운데 신로 위엔 보행을 자제해달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종묘 주변 개발을 놓고 논란이 계속된다. 문제는 개발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본질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옛날 건물을 보존하자는, 문화유산을 지키자는 감성적 접근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떤 뿌리를 가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도시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미래를 살아갈 후대에게 우리가 전해줘야 할 것은 무엇일까.

[Essay]종묘사직_16

종묘 정전, 출처. 셀수스협동조합 한국저작권위원회

Writer

박경은은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다. 탐식(貪食)과 잡식(雜識)을 지향하며 수십년째 써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집필 노동자로 늙어가고 싶다. 책 <성스러운 한끼>를 썼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