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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체험형 전시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어요. 특히 메타버스의 부상으로 가상 공간에서의 체험은 핫 이슈가 되었죠. 회사 이름을 아예 메타로 바꾼 마크 주커버그는 메타버스가 우리의 미래라고 말해요. 비단 메타버스가 아니더라도 현실 세계에 가상 요소를 결합해 더욱 풍부한 체험을 제공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죠. 과연 가상현실과 전시는 어떻게 얽히며 진화할까요? 저희의 소중한 필자 박재용 님이 친절하게 이런 현상에 대해 리포트를 보내왔답니다. 고민이 많으신 분에게 이번 아티클이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이제 미래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여러분이 VR 안경이나 헤드셋을 쓰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세요. (VR 속에 들어가면) 방금 있던 곳이 다시 펼쳐집니다. 여러분이 있던 곳의 일부를 (VR에서) 가상으로 다시 만든 공간이죠.”
– 마크 주커버그, 2021년 11월 28일 온라인에서 열린 ‘페이스북 커넥트 2021’ 행사 발표 중
회사 이름마저 ‘메타’로 바꾼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말처럼, 메타버스는 과연 우리의 미래의 모습일까? 가상 공간도 모자라서 심지어 현실을 ‘증강’시켜 현실보다 더 풍부한 체험을 하게 해준다는데, 과연 우리는 고글(증강현실 안경) 속 세상에서 어떤 경험을 원하는 걸까. 무엇보다 궁금한 건 이거다. 화면 속 세계에 미래를 걸기엔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오프라인 체험에 열광하고 있지 않은가.
2021년의 서울 사람들 (또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체험’에 목마른 듯하다. 이러한 체험의 대부분은 주로 성수동 인근의 규모가 큰 어느 공간에서 이뤄지고, 전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전시라는 말은 예술 창작자가 자신의 사유를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자리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멋져 보이는 것을 (그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제작하고 홍보하는데 필요한 예산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전시 혹은 체험을 제공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저 멋진 것을 만들어 공간 안에 두면 자연스럽게 ‘전시’라는 이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멋진 체험을 안겨준다면 굳이 예술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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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인들의 체험 사랑에는 짧지 않은 역사가 있다. 2004년경부터 쓰이기 시작한 ‘체험존’이라는 단어에서 이 같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신문에 공식적으로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이 단어는 그해 여름 롯데백화점 안양점에서 여름 고객들을 위해 만든 ‘더위 극복 체험존’이 시초다. 같은 해 8월 코엑스에서 열린 컴퓨터 기술 박람회에서는 LG전자가 여러 가지 ‘존’을 선보였고, 10월에 열린 서태지 컴퍼니의 “2004 마니아 페스티벌”에서는 ‘퍼포먼스 존’이, 같은 달 개관한 부여 인삼박물관에는 공식적으로 ‘체험존’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체험존’은 삼성, LG 등 한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대기업을 통해 ‘Experience Zone’으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그 영역을 확장 중이다.
동시대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입장에서, 나는 몇 년 전부터 미술 전시가 점점 ‘체험존’으로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이 가설은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이 한국어 서비스를 론칭한 2012년 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과 동시에 오랫동안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운영되던 대림미술관이 본격적으로 방향을 전환한 (그 시작은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라는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이었다) 2013년 즈음부터 미술 전시(장)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판단에서 비롯한다. ‘인증샷 스팟’ 만들기가 전시 기획자나 공간 디자이너들에게 고민거리가 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이다.
변화는 거침이 없었다. 2017년 8월에는 드디어 인스타그램 월간 사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미지 공유를 중심으로 하는 SNS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해시태그와 바이럴 마케팅의 바람도 거세졌다. 대체로 아름다운 작품이나 공간을 기대하곤 하던 과거의 미술 전시만으로는 멋진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는 ‘소스’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멋진 이미지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그걸 찍을 수 있는 공간의 공급은 부족한 상황. 게다가 미술 작가나 전시 기획 주체인 미술관, 비영리 전시 공간 등은 대개 자본의 힘이 부족한 법.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상황을 빠르게 인지한 소수의 기업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이른바 공간과 체험 마케팅. 이것을 너무나도 성공적으로 활용한 단 하나의 기업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하나의 기업을 떠올릴 것이다. 체험 마케팅을 넘어 스스로 예술가가 되기로 결정한 바로 그 회사. (물론 그런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마치 미술 전시장처럼 보이지만 동선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결제를 위한 공간이 있는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 중인 바로 그 회사 말이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전국의 ‘OO존’으로 번져나갔던 한국인의 체험 사랑을 좀 더 우아하고 예술적이며 심지어 아름답고 인스타그래머블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한 바로 그 회사. 물론 이 회사 한 곳만 ‘종종 예술가인 척하면서 미술 전시인 듯 보이는’ 공간 혹은 체험존을 만들기로 작정한 건 아니다. 요즈음 대부분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쇼룸은 외계를 컨셉으로 한 설치 작품 전시장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드는 공간을 선보이고, 스킨케어 브랜드 역시 새로 나온 제품의 핵심을 형상화한 설치물을 전시한다. 자동차 제조사도, OLED 모니터 생산 기업도 이 같은 전시를 연다.
이들은 큰 공간을 빌려 제품을 멋지게 디스플레이 한 뒤 전시라고 말하기도 하고, 실제로 예술가들을 불러 전시를 꾸리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엔 전시의 주인공이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조차 헷갈린다. 예술 작품을 어느 공간에 배치한다고 해서 그것을 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전시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지만, 사실은 체험존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도 아니면, 애초에 전시라는 단어 자체를 너무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없고, 전시라는 것이 원래 예술 작품만 보여주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까?
물론 전시라는 단어에는 이미 꽤 많은 오해가 쌓여 있다. 사전적 정의만 따지자면, 전시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어떤 물체 따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제품이든 작품이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놓아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전시장이 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로서의 전시’는 대체로 예술과 연관된다. 혹은 우리가 그동안 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서의 ‘전시’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이 놓인 전시에서 우리는 왜 알 수 없는 아우라를 느끼곤 하는 걸까? 결국은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아니라면, 미술 전시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작품은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본주의적 현실과 한 발짝 정도 떨어진 위치에 놓인 것들이다. 때로 눈 앞에 놓인 작품이 연약하고 곧 부서질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작품이 어느 미술관의 소장품이 된다면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보존되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미래로 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은연중에 느낀다. 그런 가능성을 조금씩 품은 작품들이 모여 있는 것이 미술 전시이고,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 이 짧은 글에서 살펴보고자 했던 그런 종류의 전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짚어보자.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체험-전시들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생각은 과연 무엇인지. 혹은 그런 전시-체험이 우리에게 생각을 안겨주는 대신 어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드는 건 아닌지. 그도 아니라면 그런 전시, 체험, 혹은 체험존이 우리에게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어떤 생각이라기 보다 즉각적인 반응은 아닌지. 그런 반응을 통해 우리가 반사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은 무엇인지. 그게 우리가 정말로 바라는 바인지. 혹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와 관계 없이 즐거운 체험을 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지. 즐거움보다는 골치 아픈 생각거리를 안겨주곤 하는 미술 전시와 비교했을 때, 시청각적인 자극과 카드 결제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체험-전시는 대체 무엇이 다른지.
메모처럼 쓴 짧은 글을 마무리하며, 마크 주커버그의 메타버스 발표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자회사인 오큘러스에서 만든 고글을 끼고 양손에 콘트롤러를 하나씩 들고서 눈 앞에 보이는 공간을 그대로 복사한 가상 공간에서 ‘증강된 체험’을 한다. 그의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가야 할 미래라고 설득하는 데 1시간 17분을 쓴 셈이다. 오프라인에서의 현생을 영위하는 것도 버거운 입장에서는 가상 공간에서 ‘증강된’ 현생을 하나 더 사는 게 그리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다른 문제다. 마치 전시라는 단어가 맥거핀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정말 중요한 건 전시-체험이든, 체험-전시든, 체험존이든, 메타버스든, 그것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사유할 여지가 있는지 여부일테다. 누군가에겐 전시를 관람한다고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결국은 제품 구매를 위한 마케팅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일 수 있고, 마케팅 목적으로 전시의 아우라를 빌려 만들어둔 공간을 경험하는 와중에도 충실한 소비자로서의 예상된 반응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뒤죽박죽 2021년에 대한 성찰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 화면으로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전시장에서든 전시인 척하는 체험존에서든 사유의 시간을 보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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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을 운영하며, 공간 ‘영콤마영(@0_comma_0)’에서 문제해결가solutions architect를 맡고 있다. 전시기획자로 일하기도 하며, 다양한 글과 말을 번역, 통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