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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영원한 신의 것을 훔쳤다

Writer: 원정백화점
header, 원정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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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원정백화점은 디지털 미디어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독특한 작업을 합니다. 특히 신체 감각에 주목하며 ‘불온한 판타지’를 스크린과 육체로 끌어들이는 데 집중하는데요. 환상과 릴스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금세 소멸하는 것을 붙잡는 방법론으로 영원한 존재인 신의 것을 훔쳐 온다고 해요. 그래서 작품들은 서양 중세 종교화에서 자주 보이는 삼면화의 특성을 차용하고, 성경 구절을 사운드의 일부로 쓰고, 지극히 육체적인 체액과 혈흔, 염증을 신적 존재와 결부시키면서 불온한 천사와 조각난 천사와 대립하는 본능적인 몸에 대해 상상한답니다. 이때 인공지능으로 생성해 스크린에 나타나는 몸의 존재와 물리적인 공간에서 퍼포머가 실연하는 몸의 존재가 서로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공존하는 상태가 무척 흥미롭답니다. ‘불온한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환상, 이미지, 욕망, 현실, 신체 감각을 탐험하는 이 신비한 창작자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01, 원정백화점, 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퍼포먼스, 2022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원정백화점입니다. 서비스하거나 환상을 좇는 일을 합니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불온한 판타지를 몸과 스크린으로 끌어들입니다. 현재는 온라인과 온라인 밖에서의 신체 감각에 주목하고 있어요.

02, 원정백화점, 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퍼포먼스, 2022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8년 ‹영적삶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어서 체험행사를 진행한 게 원정백화점의 첫 활동이었어요. 이벤트 형식에 맞춰 일회성으로 ‘원정백화점’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사용했는데요. 그러면서 한동안 기존의 종교적 고민에 대한 작업이 아니라 백화점으로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현재는 그 시기와 생각과 작업이 다르지만 이름은 계속 쓰고 있습니다. ‹영적삶게임›이 종교적 고민에 대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마지막 작업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종교적인 것에서 훔쳐 오고 있어요. 환상과 릴스처럼 금세 소멸하는 것을 붙잡기 위해서 영원한 신의 것을 훔쳐서 작업합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아, 불과 얼마 전에 작업 공간을 이사했어요. 지금은 컴퓨터와 의상 정도만 구비한 상태이고, 거의 비어 있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너무 진부한 질문인가요. (웃음)

걸으면서 떠올린 생각,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그렸던 그림들, 썼다가 고민한 메모들, 유튜브에서 본 뮤직비디오, 블로그로 훔쳐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일기, 학교와 학원과 극단과 교회에서 배운 것들, 실패하고 있는 운동, 인공지능에 의존해 만든 이미지, 최신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아요.

03, 원정백화점, 하팃구리

‹하팃구리HEARTIGURI›, 2020 2022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드로잉과 메모에서 출발할 때가 가장 많아요. 창작자와 실연자로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실행 과정에서 작업 내부에 어떤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따라갔다가 벗어났다가 하는 과정이 존재해요. 예컨대 ‹ઈ스킨케어신화ઉ›라는 작업에서는 ‘신의 것을 훔치는 여자’라는 캐릭터를 생각하며 만들어 나갔죠. 그렇게 크게 붙잡을 수 있는 선을 하나 만들어두고, 그다음으로는 과정 중에 몸을 움직이며 변화에 적응해 나갑니다.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ઈ스킨케어신화ઉ›(2022-2023)는 디지털 자아를 위한 현재 진행형 신화입니다. 소셜미디어에 E-girl의 모습으로 셀피를 올리면서 시작한 작업인데요. 서양 중세 종교화에서 보이는 삼면화(triptych) 같은 구조로 스크린을 설치하고 중앙에는 셀피가, 좌우로는 천사와 괴물 형상의 버추얼 이미지가 나옵니다. 작년부터 몇몇 공간에서 설치와 퍼포먼스 등 형태를 변형하면서 실연해 오고 있어요. 스크린 아래에서는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소리와 클래식, 비트가 교차하는 사운드에 맞춰 춤을 추죠. 스크린 속 인물이 카메라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데 반해, 그 아래에서 춤추는 인물은 신체 내부로 감각을 집중합니다.

04, 원정백화점, 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2022

05, 원정백화점, 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퍼포먼스, 2023

06, 원정백화, _ઈ스킨케어신화ઉ

‹ઈ스킨케어신화ઉ› 퍼포먼스, 2023

‹ઈ스킨케어신화ઉ›가 스크린에 매끈한 피부처럼 붙어있는 상태라면, ‹탈락한 피부와 디지털 체액 편지›(2023)는 피부 내부에서 떨어지는 체액과 혈흔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설치물과 비디오, 퍼포머 등 작업의 구성 요소를 배치할 때 피부, 체액, 혈흔, 염증이 한데 모인 하나의 몸을 생성한다고 상상하며 구성했어요. 스크린에서는 몸이 마치 매끈한 피부처럼 시각적인 요소로 존재한다면, 공간에 현존하는 실제 몸은 촉각적이고 청각적인 상태에 가깝습니다. 디지털 세계의 이미지와 현실 공간의 신체가 대립항이 아니라, 뼈와 살처럼 함께 있는 느낌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07, 원정백화점, 탈락한-피부와-온라인-체액-편지

‹탈락한 피부와 온라인 체액 편지›, 2022

‹Pure Hymn›(2023)은 ‹ઈ스킨케어신화ઉ›의 찬송가로 신의 자리에 생긴 염증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체액의 사운드와 인공지능 사운드로 구성해 순수한 힘에 대한 찬양을 담았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신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하지 않고 그저 염증이 생긴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생명이 잉태하는 장소로 신화적 장소인 자궁은 염증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물리적인 몸으로 존재합니다. 가장 환영받는 자리에 환영받지 못하는 물질이 생기고, 염증 걸린 불온한 천사들이 서로 의존하며 비행합니다.

08, 원정백화점, pure-hymn

‹Pure Hymn› MV 스틸 이미지, 2023

온라인에서 음악 앨범 및 뮤직비디오로 유통하는 ‹Pure Hymn›은 ‹염증을 위한 구유›(2024)에서 건물의 일부, 병풍 또는 벽지처럼 연하게 스크리닝 돼요. 바닥 중심에 위치한 구유에서는 계속해서 인공지능 제너레이팅을 통해 염증으로 변하는 천사의 몸이 등장하고, 둘러싼 공간과 기둥에는 조각난 천사의 몸으로 만든 금줄을 매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염증을 맞이하러 온 두 몸이 등장하면서 퍼포먼스 ‹워워워십Worworworship›(2024)을 진행해요. 몸들의 괴물적이고 본능적인 에너지와 소리에 집중해 구성한 퍼포먼스입니다.

09, 원정백화점, Worworworship

‹워워워십Worworworship› 퍼포먼스, 2024

10, 원정백화점, Worworworship

‹워워워십Worworworship› 퍼포먼스, 2024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디지털 자아는 자기 몸에 새로운 것을 붙이거나 삭제하면서 변신할 수 있는 자아인데요. 변신에 대한 욕망은 현실과 연결되어 육체와 밀착한다고 느껴요. 디지털 자아로 만날 수 있는 판타지적 이미지를 신체와 연결하려는 충동과 욕망에 대해서 생각한답니다. 스크린 안에서의 몸과 스크린 밖에서의 몸을 구성할 때,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를 구축하고, 각 캐릭터가 반대편에서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공존할 수 있도록 집중하기도 해요. 앞서 말한 ‹ઈ스킨케어신화ઉ›처럼요. 스크린 속 인물의 애교스러운 행동과 온몸의 에너지를 다 쓰는 듯한 공간 속 인물의 움직임을 함께 배치하고 싶은 면도 있고요. 이런 흐름은 ‹Pure Hymn›, 이와 엮이는 ‹워워워십›에서도 이어집니다. 스크리닝 되는 미디어의 몸들은 몽환적인 필터 속 이미지와 함께 존재하고, 퍼포먼스에 출현하는 몸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면서 신체적인 에너지에 집중해 움직입니다.

11, 원정백화점, Worworworship

‹워워워십Worworworship› 퍼포먼스, 2024

해당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 과정 중에 발생하는 충동적인 생각들, 미리 기획한 범위 밖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들여와서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크게 정해진 루틴 없이 진행하는 작업에 따라 일정이 들쑥날쑥해요. 작업을 만들고, 작업을 위한 연습에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편이에요.

12, 원정백화점, 베드트레이닝

‹베드 트레이닝BED TRAINING› 퍼포먼스, 2023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낭만과 건강이요. 몽상적인 시간을 가지면서도 작업에 필요한 행정적인 업무까지 웬만큼 잘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고 싶네요.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아주 최근에는 정신적인 부분보다 육체적인 몸의 태도가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게 돼요. 저에게는 자아 폐쇄적인 성향과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자아를 버리고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성향이 공존하기 때문에, 한동안 여느 과정들이 고생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채 양다리 걸치듯 양쪽을 왔다 갔다 하는 상태가 작업에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해요.

13, 원정백화점, 가상공동설Virtual-Hollow

‹가상공동설Virtual Hollow› MV 스틸 이미지, 2023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저는 슬럼프가 육체적으로 발현되는 편이에요. ‹Pure Hymn›(2023)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특히 몸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갑자기 촬영 2주 전부터 당시 복용하던 약의 부작용이 상당했어요. 울렁증이 계속 생겼거든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일정을 처리했어요. 어지러울 때는 쉬었다가, 괜찮을 때 작업을 하는 등 결국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받아들이며 진행했는데요. 그때 ‘작업이 망한다는 건 어떤 걸까?’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한동안 다른 일을 비우고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만 했어요. 정서적으로 평온하지 못할 때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계속 써 내려갔고요. 그리고 수면을 좀 더 오래 취하는 법도 배웠어요.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마음먹기도 했고요. 어쨌거나 결국 다시 몰입할 수 있는 걸 찾았을 때, 그래도 평온해질 거라고 믿고 있답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앞서 말한 대로, 컨디션 관리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불온한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정도가 있습니다.

14, 원정백화점, pure-hymn

‹Pure Hymn›,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토요일마다 ‘서울야생마’라는 모임을 가져요. 작업하면서 만나거나 극단에서 같이 활동한 멤버 세 명이 함께 막춤을 추려고 모였다가 어느날 정식으로 이름을 짓게 되었죠. 퍼포먼스와 연극,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함께 하고 있어요. 모임에서는 체력 훈련, 감정 훈련, 읽기, 글쓰기, 움직임 만들기, 즉흥, 마임 같은 걸 해요. 기존 멤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함께 참여해서 연습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모임은 열려있어요. 저는 작업 과정에서 최대한 건강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기를 열망해요. ‘불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요. 혼자서는 어려울 때가 많은데, 모임에서는 건강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충실한 코스튬 플레이어 같은 느낌이면 좋을 것 같네요.

15, 원정백화점, 베드-트레이닝

‹베드 트레이닝BED TRAINING› 설치 전경, 2023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생각해 보면 저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터무니없이 막연한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아주 가깝고 일상적인 곳에서 롤모델의 부재를 느꼈고, 제 몸 하나조차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그려지지 않았어요. 최근에는 가까운 미래에 사람들이 어떻게 꾸밀지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 액세서리와 코스튬을 만들고 있답니다. ‘삭제된 세계’라는 제목으로 작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 모두 인공지능으로 생성할 수 있는 세계에서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제너레이터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작업이에요. 인공지능의 생성물은 기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어떤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고 인지되었는지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죠. 그래서 삭제된 세계의 작업자들은 그동안 덜 소비되고 인지된 물질을 인공지능으로 생성하는 과정을 거쳐 작업을 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의 그림 중 하나를 그려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16, 원정백화점, Costumes-for-Conceiving-Inflammation-in-Place-of-God

‹Costumes for Conceiving Inflammation in Place of God›, 2023

17, 원정백화점, Costumes-for-Conceiving-Inflammation-in-Place-of-God

‹Costumes for Conceiving Inflammation in Place of God›, 2023

Artist

원정백화점은 미디어 설치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환상성을 지닌 이미지에 대한 욕망과 해당 이미지가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한다. 최근 온라인과 온라인 밖에서의 신체 감각에 집중하고 있다. «THE CHAMBER»(2024, 캡션 서울), «끝에서 두 번째 세계»(2022, 하이트컬렉션), «올 투모로우즈 파티스»(2022, 아트스페이스3), «하팃구리 데뷔 쇼케이스»(2020, 아노브)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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