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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목욕탕을 만드는 사연

Writer: 선리
선리Su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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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선리 작가는 목욕탕을 만듭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면대, 타일 욕조, 대야, 수건걸이 등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실제 빼다 박은 듯 실감 나게 구현하고 거기에 흐물거리는 살과 발을 표현해요. 꽤나 그로테스크하지만, 의도를 알면 바로 공감이 가요. 유학생 시절 기숙사 화장실 문을 꼭 닫은 채 뜨거운 물로 오랜 시간 목욕하며 아픈 몸을 치료하던 작가에게 목욕탕은 회복의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현실에 구현한 목욕탕 속 각종 기물에 녹아내리는 살색 형상은 곧 긴장을 내려놓고 생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자기 자신이자 치유의 메타포랍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이 뚜렷해지길 바라는 선리 작가. 그가 지닌 부드럽고 유연한 가능성이 궁금하다면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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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Sauna(Basin)›, 2022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회복의 목욕 공간을 설치미술로 표현하는 선리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말 어릴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서 그런지, 저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미술 작업을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가 아니라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는데요.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늘 그래왔듯, 저는 제가 경험하고 고민하는 것을 작업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사람이란 사실을요. 그런 깨달음 이후, 제가 하는 모든 일과 여기서 얻은 경험은 작업을 위한 밑바탕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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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arine, Drawing›,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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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arine Project 2›, 2015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재작년까지 작업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다가, 작년 초 처음으로 집 근처에 개인 작업실을 구했어요. 원래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가 있던 자리예요. 외관을 따로 손보지 않아서인지 가끔 진짜 부동산 업소인 줄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 계세요. (웃음) 공간은 그리 크지 않지만 1층이라서 문을 열어놓고 작업하기 좋답니다. 무거운 입체 작업을 하는 제게 특히나 적합하죠. 하지만 점점 작업이 쌓여가고, 작업 크기도 점점 커지는 터라 곧 작업실을 옮겨야할 것 같아요. 지금은 작업실 문 크기를 염두하며 작품을 만들 수 밖에 없거든요. 작품 최대 가로 크기 = 작업실 문 폭이에요. 하하.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강한 영감을 받아요. 상황을 극복하는 제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며 발견하는 감정과 이야기가 작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힘들고 괴로운 일이 닥칠 때면, ‘또 새로운 작업이 나올 수 있겠구나!’ 위안을 얻기도 해요. 웃프게 들리겠지만요. (웃음) 그리고 저는 거주하던 환경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요. 특히 화장실 등의 목욕 공간에서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Melting Point (Glasgow)›부터 ‹G3 6QT›까지의 작업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유학할 때 머물던 기숙사의 화장실을 재구성한 결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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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ting Point(Glassgow)›,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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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3 6QT›, 2021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틈틈이 메모하고 드로잉으로 남겨요. 작업의 큰 주제가 정해지면 책, 영화, 다큐멘터리, 전시 등 다양한 범위를 넘나드는 리서치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특히 텍스트에 기반한 리서치 작업을 마지막까지 이어가는 편이에요. 작업에 주로 쓰이는 레진은 경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하루 작업량을 맞추기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서 작업 제작 방식을 정한 뒤에는 시작부터 완성까지 스케줄을 단계별로 계획적으로 세워두고, 이에 맞춰 움직이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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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ting Point(Seoul)›, 2020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난해 4월, 신한카드에서 주최한 ‘더프리뷰 성수’의 스포트라이트 작가로 선정되어 선보였던 ‹Crying Bath›와 ‹Tiny Sauna› 시리즈를 소개해 드릴게요.

‹Crying Bath›는 일상 속 목욕 공간을 인체의 긴장감을 해소하는 회복의 공간으로 재구성한 작업이에요. 유학 시절, 지속적인 근육의 긴장으로 인한 염증성 질환을 경험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신체의 비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어요. 그중 하나는 당시 머물렀던 기숙사 화장실 문을 꼭 닫은 채 뜨거운 물로 오랜 시간 목욕을 하는 것이었는데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목욕’이라는 행위를 치유의 메타포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작품 속 발이 누구의 발을 본뜬 것이냐고 여쭤보는 분들이 많은데요. 바로 제 발입니다! (웃음) 저는 워낙 예민한 사람이라, 경험한 것에 대해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편이에요. 신체화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제 몸을 직접 본뜨는 ‘라이프 캐스팅Life Casting’ 기법을 활용했어요. 목욕 공간 안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형태로 회복의 상태를 희망하는 인체 형상을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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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ing Bath›,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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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ing Bath›,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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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ing Bath›,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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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ing Bath›, 2023

‹Tiny Sauna› 시리즈는 사우나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진행한 작업이에요. 사우나 프로젝트는 목욕탕을 직접 답사하며 관찰한 현장의 온기,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 등 공간을 가득 채우는 다양한 요소를 작업에 최대한 담아내려 노력한 프로젝트예요. 실제 욕조 크기의 작업을 제작하던 중, ‘어디든지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사우나는 없을까?’라는 아이디어가 큰 힘을 발휘했죠. 긴장감이 만연하는 일상에서 이완된 상태가 필요한 순간에 잠깐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좋겠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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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y Sauna – mint›,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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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y Sauna – opal›,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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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y Sauna – ultramarine›, 2023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회복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제 작품을 접한 분들이 각자의 회복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항상 모든 작업에 최선을 다하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항상 아쉬운 부분들이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작업을 만드는 방법을 항상 고민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평일 오전에는 미술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오전 9시 20분에 출근하면 점심쯤 수업이 끝나는데요. 그 이후로는 작업을 위한 재료를 사러 을지로에 가거나, 전시를 보거나,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등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작업실에 가요. 전시 직전이나 한창 바쁜 시기에는 수업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새벽 3~4시까지 작업실에 머무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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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Sauna(Bath)›,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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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y Sauna – ultramarine›, 2023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건강하게 작업을 지속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작업을 하면서 크고 작게 다치는 일이 많았거든요. 한번은 무거운 세면대 작업을 혼자 옮기다가 허리에 큰 무리가 가서 석 달 동안 제대로 걷지 못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 조금씩 허리가 나아지고 있는데요. 점점 커지고 무거워지는 작업을 감당하려면 체력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는 중입니다. 꾸준히 운동해야겠다고 다짐했으니, 이제 실천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웃음)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녹아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이 곧 저라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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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thing Series›, 2018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아직 작가로서 슬럼프가 올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가끔 며칠씩 작업이 풀리지 않고, 유독 힘든 날이 있어요. 그럴 때면 저는 과감하게 작업실에서 벗어나요. 푹 쉬면서 독서하거나, 여행하거나,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특히 요가와 명상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과 작업실 환경이 눈앞의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재작년 여름까지는 한 회사에서 VMD로 일하기도 했는데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좋은 컨디션의 작업실에서 더 오랫동안 작업에 집중할 날이 온다는 희망을 품고 있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끊임없이 시도하는 자세와 유연한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성실함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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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relieved(Stiff Should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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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relieved(Stiff Shoulder)›,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만 하더라도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어렵게 포기한 게 있거든요. 주변 어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현명하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라고 조언해 주시는데요. 그 말씀에 크게 동감해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이 뚜렷해지는, 부드러우면서 힘 있는 창작자로 남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제 주위를 잘 챙기면서, 끊임없이 작업하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재밌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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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relieved(Stiff Shoulder)›, 2023

Artist

선리는 서울을 기반으로 신체의 비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목욕 공간을 설치미술로 표현한다. 개인전으로 «Sow-nar»(2024, 인가희갤러리), «Blue Sauna: 블루 사우나»(2022, 빈칸 을지로), «Margaret MacDonald House, 89 Buccleuch St, Glasgow G3 6QT»(2021, Tya 갤러리)를 열었다. «The void – Odyssey»(2023, 키르 서울), «I am relieved: Restroom Project»(2023, 공간 일리), «더 프리뷰 성수 with 신한카드»(2023, 에스팩토리), «Playing Hide and Seek with Myself»(2020, 킵인 터치 서울) 외 서울, 글래스고, 런던 등에서 개최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고, Hera C.crew (2023)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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