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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 of Seoul

피스오브서울: 한로로 ‹이상비행›

Writer: 김윤하

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피스오브서울Piece of Seoul’은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님이 최근 새롭게 발매한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은 피스를 꼽고, 해당 뮤지션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피스오브서울에서 피스는 조각(piece)이면서 동시에 평화(peace)를 뜻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의 조각과 여기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평화를 뮤지션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세요. 세 번째 피스는 돌려 말하지 않는 진심으로 데뷔 때부터 동 세대 청춘의 공감을 이끈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첫 EP 앨범 ‹이상비행›입니다.

속수무책. 한로로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 내 마음에 처음 떠오른 표현이었다. 그날 무대에서 한로로가 부른 노래는 ‘입춘’이었다. 단정하게 잘 만든 곡이라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조금 투박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던, 투박함이 진심과 무척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첫 싱글을 내고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여자아이가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스탠드 마이크에 매달리다시피 한 자세로 자기 안의 모든 걸 쏟아내고 있었다. 설익었지만 저건 분명, 진심이었다. 한로로는 결국 경연대회의 예선을 통과했고 일 년에 여섯 팀만 올라갈 수 있는 결선 무대까지 진출했다. EBS ‘헬로루키’였다. 그 뒤로도 한로로는 승승장구했다. ‘2022 올해의 헬로루키’ 결선 진출, 네이버 ‘온스테이지’ 출연,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노미네이트. 데뷔한 해 주목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 앨범 하나 내지 않은 신예에 너무 과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들 사이, 한로로의 첫 EP ‹이상비행›이 드디어 세상에 떨어졌다. 지난해 3월 데뷔 싱글 ‘입춘’ 발표 이후 1년 5개월 만에 선보이는 첫 앨범에는 그동안 사람들이 들어왔고 말해 온 한로로가 압축되어 담겨 있었다. ‘해초’나 ‘자처’처럼 공연에서 이미 자주 들려준 곡도 있고, 촌스러울 정도로 진실한, 특유의 음악 맛이 앨범 곳곳에 배어있는 점도 여전했다. 한로로의 이전 작업과 비교해 다른 부분이라면 여섯 곡을 묶은 ‘앨범’ 형태로 발매되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뿐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발표한 지난 싱글들이 한로로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색깔을 잡아가기 위한 예행연습 같은 구석이 있었다면, 이번엔 본격적인 실전이었다. “제대로 보여줄 기회에 대충 하고 싶지 않았다”는 한로로의 말처럼 앨범은 이륙에서 착륙까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음악가의 여정을 차분히, 그러나 힘차게 따라간다. 여섯 곡이 흐르는 동안 한로로의 돌려 말하지 않는 펀치 라인이 곳곳에서 터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실한 건 투박하다. 그리고 투박함은 의외로 힘이 세다.

한로로 EP ‹이상비행› 커버

드디어 첫 EP가 나왔어요. 발매한 지 딱 일주일 정도 지났네요. 지난 일주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내기 전에는 ‘이제 시작이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이 들어 줬으면 좋겠다!’ 딱 이 정도였어요. 앞서 기대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으려고 했어요. 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스스로 쭉 해 왔던 것 같아요. 내고 나니까 제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분이 들어 주셨고, 더 좋아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노력을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해요.

데뷔 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앨범 단위 결과물이에요. 앨범을 내기까지 꽤 신중하게 고민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내도 되겠다’고 결심한 구체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싱글과는 다르게 앨범에는 더 확실하고 깊은 메시지를 담아내려 노력했어요. 끊기지 않는 메시지의 흐름, 기승전결이라 해야 할까요? 그걸 완성하기 전까지는 앨범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서 ‘음~’ 이렇게 소리 내는 것처럼, 수록곡을 모두 듣고 나서 깨달음이 남는 앨범이 되길 원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이는 제 첫 작품이니까요. 시간에 쫓겨 대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앨범에는 총 여섯 곡의 노래가 담겨 있어요. 최종 후보에는 몇 곡이 올랐나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절 분량의 데모곡이 다양하게 있었어요. 이번 앨범에 싣지 못해 아쉬운 곡도 분명 존재했지만, 저는 이번 앨범이 대중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와 완벽히 부합하는 곡들로만 구성하고 싶었어요. ‹이상비행›은 지금의 여섯 곡이 아니면 안 됐어요. 이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이상비행’이라는 제목을 가진 한 편의 영화 느낌을 내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한로로가 각본, 주연, 감독한 영화 ‹이상비행›의 시놉시스는 어떨까요?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오직 본인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처음으로 용기를 낸다. 그 용기 덕분에 닿게 된 이상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이상을 잔뜩 누리다 현실로 돌아가야만 하는 주인공은 품에 따뜻한 사랑을 가득 안은 채 착륙한다. 그는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제 행복하다.’

현실과 이상의 대립에 놓인 주인공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이상에 도달하여 후련해하는 주인공, 본인의 용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주인공을 통해 앨범을 듣는 분에게도 이상을 좇는 용기를 드리고 싶었어요.

앨범에 담긴 여섯 곡은 시놉시스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요?

‘이상비행’은 이상을 위한 이륙 직전을 나타내는 곡이고요. 이어지는 ‘해초’는 새로운 모험(처음으로 이상을 좇는 행위)의 진행 과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화해’는 이상에 거의 다다른 상태에서 세상(현실)을 내려다보며 ‘이 세상을 사랑하리라!’ 따뜻하게 다짐을 품는 곡이고요, ‘금붕어’는 앞선 과정을 한 번에 담으면서 끝내 이상에 성공적으로 도달한 행복함을 표현해 주는 곡이에요. ‘자처’는 지난번 싱글로 냈을 때의 분위기와 비교해 앨범 안에서 조금 다르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싱글로 냈을 때는 후회 가득한 상태로 ‘내가 다 자처한 일이지… 어쩌겠어’라는 느낌이었다면, EP 수록곡으로서 이 곡은 ‘제가 다 자처했습니다. 후회는 없어요’ 느낌이랄까요? 마지막 곡 ‘사랑하게 될 거야’는 이상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착륙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일은 다소 우울할 수 있는데요. 이를 고려해 EP의 마무리를 최대한 사랑스럽게 풀고 싶었어요.

앨범을 들으면서 ‘이상(理想)’을 ‘이상(異常)’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반항 같은 앨범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을 꿈꾸는 사람을 현실 모르는 철없는 몽상가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거든요. 이상도, 이성도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말이에요. 한로로가 품은 ‘이상(理想)’은 어떤 모양과 색깔을 띠고 있나요?

제 이상의 모양과 색깔은 마치 물과 같다고 생각해요. 물방울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 원형은 투명하고 동그랗겠죠. 그렇지만 가지각색의 물감에 따라 색이 변할 수 있고, 다양한 용기에 담겨 모양이 변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자꾸 궁금하고, 갈망하고, 마침내 이루어 낼 때 더 벅찬 거 아닐까, 싶어요.

그런 반항의 기운을 가장 강하게 느낀 곡은 ‘해초’였어요. 답답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화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불안하면서도 부푼 기대가 강렬한 록 사운드에 감싸여 휘몰아치기 때문에 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곡이 아닐지 싶었거든요.

이 곡은 각종 경연, 공연에서 빼놓지 않는 노래예요. 무대에서 꽤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드렸더니 록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해초’ 대체 언제 나오냐고 매번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전에 선보였던 무대와 최대한 유사하게 음원을 제작하려고 했어요. 보컬의 단단함을 잃고 싶지 않아서 화음 없이 녹음을 진행했던 기억도 나네요. 스스로 휘몰아치는 시원한 파도 위를 서핑하는, 다소 불안하지만 ‘알 게 뭐야? 가보자!’ 외치는 해초가 되는 것만 같아서 부를 때마다 벅차고 신나는 곡이에요.

공연장이나 SNS에서의 사람들 반응이 한로로의 음악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나요?

‘해초’와 ‘자처’를 제외하고는 공개되지 않은 곡이기 때문에, 공연에서의 직접적인 반응이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공연에서 사람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간주 구간이라든지, 위로되는 가사 등에 관해서 앨범을 만들 때 좀 더 신중하게 논의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로로의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은 록 사운드와 서정적인 가사가 취향일 테니까요! 그 취향을 제대로 간파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웃음)

‘화해’와 ‘금붕어’ 두 곡을 더블 타이틀로 택했어요. ‘화해’는 포근한 발라드풍이고, ‘금붕어’는 멜로디도 상당히 다이내믹하면서 동시에 한로로 특유의 얄개 같은 분위기가 잘 녹아난 곡인데요. 두 곡이 가진 각자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원래 타이틀곡은 ‘금붕어’ 하나였어요. 근데 ‘화해’ 마스터본을 들은 소속사 분들이 발매 몇 주 전에 ‘이건 더블 타이틀곡이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화해’를 워낙 아끼는지라 금방 찬성했고요. 아무래도 포근한 멜로디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한 가사 덕분이지 않나 싶어요. 이번 EP에서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용기와 사랑인데요. 용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금붕어’, 사랑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화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본인의 이상을 좇아 역동적으로 치솟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데, 가사나 사운드 면에서 ‘금붕어’가 그걸 잘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런 용기를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던 화자가 ‘이제는 그러지 말고 세상을 사랑해야지’ 반성하고 다짐하는 곡이 ‘화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화해’의 하이라이트에 ‘행복해요’라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수록곡 ‘자처’의 ‘그리워요’나 ‘입춘’의 ‘도와줘요’도 그렇고, 에두르거나 피하지 않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꽂히듯 말하는 게 한로로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지 생각해요. 가사를 쓸 때 이런 직설적인 감정 표현을 즐기는 편일까요?

딱히 판단해 본 적은 없는 데 자주 쓰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좀 좋아하나 봐요. (웃음) 보통 제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의 공감 여부를 생각하면서 가사를 써 내려가요. 아무래도 감정은 둘러대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듣는 사람도, 표현하는 사람도 서로 힘들지 않으니까요.

처음 한로로의 음악을 들었을 때 굉장히 ‘직선적’이라고 느꼈던 이유도 어쩌면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잔재주 없이 딱 떨어지는 밴드 사운드도 그렇고요. 그리고 그런 느낌의 8할을 이끄는 건 역시 로로 님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창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로로의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직구 매력’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평소 목소리는 꽤 작고 소극적인데, 음악을 할 때만큼은 180도 변하는 것 같아요. 필사적으로 의도하진 않지만, 음악을 통해 제 이야기를 정말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제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야기하다 보니 제 직구 매력의 원천은 ‘현실 도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웃음)

요즘도 계속 보컬 레슨을 받는다고 들었어요. 보컬 선생님에게 들었던 최고의 칭찬과 따가웠던 지적을 꼽아본다면요?

최고의 칭찬은 ‘노래에 감정이 잘 담겼다’였어요. 지적은 제가 소속사 들어온 후 처음으로 진행한 레슨에서 들었던 말인데요. “너 가진 게 아무것도 없구나?”였습니다. 진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이라 당연한 말이었지만, 적잖이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그렇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서 더 열심히 연습할 수 있었어요. 진짜로 뭐 하나라도 가져보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부족한 점이 정말 많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달라졌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로로 님의 인터뷰를 읽다가 바네사 칼튼Vanessa Carlton의 ‘A thousand miles’를 좋아했다는 지점에서 무릎을 ‘탁’ 쳤어요. 그 곡이 지니고 있는 무한히 달려 나가는 자유와 청춘의 느낌이 로로 님의 음악에서도 분명히 느껴졌거든요.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데, 꽤 옛날 곡이잖아요. 어떻게 좋아하게 됐어요? 이외에도 로로 님 취향의 근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이 또 있을까요?

오 정말요?! 중학교 등교 시간에 우연히 들은 이후로 쭉 사랑하고 있어요. 이 노래를 들으며 걸을 때면 마음속 복잡한 게 훨훨 날아가는 벅참이 항상 느껴져요. 제가 곡을 만들 때 가사에 힘을 주는 것처럼, 좋아하는 곡의 가사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요. 분위기가 편한 듯 뭔가 벅차오르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곡을 좋아하죠. 코난 그레이Conan Gray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에요. 특히 ‘The story’가 정말 좋아요.

자우림의 김윤아 님이나 이소라 님을 아주 좋아한다고 알고 있어요. 특히 김윤아 님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혹시 이런 비교가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진 않나요?

오 전혀요! 오히려 정말 정말 감사하죠.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말을 간혹 듣는데, 제가 이런 호평을 들어도 되나 싶어요. 그만큼 누구나 닮고 싶은, 너무나도 멋있는 대선배님이시니까요. 경력을 계속 쌓으면서 저만의 무언가를 생성할 수 있을 텐데요. 앞으로 제1의 한로로가 되겠습니다!

취향과 추천곡을 보면 1990년대 곡이 많은데요. 로로 님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시절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서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게다가 지금의 재해석이 아닌 그 시절이 그대로 돌아오는 느낌이 드는데, 로로 님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기잖아요! 혹시 1990년대를 좋아하시나요? 어느 부분에서 좋으세요?

확실히 엄마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거실에 나와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셨어요.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 같은 것’ 등의 옛 가요였죠. 엄마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자연스레 마음에 스며들지 않았나 싶네요. (웃음) 더불어 제가 실제로 살아보지 못한 시기라서 1990년대가 좋기도 해요. 엄마와 아빠만 아는 그 시절의 낭만과 사랑을 상상하는 일 자체가 즐겁죠. 이런 즐거운 상상을 도와주는 매개가 제게는 1990년대 음악이에요.

홍콩에서 찍은 뮤직비디오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나 봐요. 홍콩영화가 한국의 청춘에게 인기를 끈 게 1990년대, 더 넓혀도 2000년대 초반이니까요. 홍콩을 로케이션 장소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촬영은 어땠어요?

‘정류장’부터 시작한 해외 로케이션은 소속사 분들이 제안하셨어요. ‘금붕어’ 뮤직비디오는 복잡한 현실에서 이상을 좇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잘 풀어내고 싶었는데요. 이런 복잡한 현실을 한눈에 보여주는 특별한 곳을 찾다 보니, 홍콩이 나왔던 것 같아요. 홍콩이라는 도시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실제로도 무척 잘 어울렸죠. 다만 저희가 홍콩에 간 게 6월이었어요. 홍콩 방문 시즌은 11월에서 4월이거든요. 날씨가 너무 덥고 습해서 숙소 밖에 나가기만 해도 땀이 주룩주룩 흘렀어요. 현지 사람은 자연스레 웃옷을 벗고 돌아다니더라고요. 하지만 홍콩 음식이 정말 맛있어서 힘든 기억이 싹 날아갔어요. 딤섬에서 에그타르트까지! 너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영상이 잘 나왔기 때문에, 지금 웃으면서 얘기하는 것 같아요. (웃음)

‹금붕어› MV 스틸컷

앨범을 관통하는 여러 감정과 사색을 거쳐 그토록 찾고 싶던 이상이 결국 사랑이라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재미있었어요. ‘화해’도 그렇고 앨범의 마지막 곡인 ‘사랑하게 될 거야’에서는 아예 제목에다 ‘사랑’과 강한 확신을 담은 ‘MUST’를 붙였잖아요. 한로로가 ‹이상비행›으로 이상(理想)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무조건적으로 보듬어 주는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저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미워하지만 않았으면 해요. 본인과 다른 이를 ‘틀렸다’고 막연하게 정의한 후 그 사람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끌어오는 일에 시간 쏟는 건 정말 쓸모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방법을 통해 본인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봐요. 아주 옛날부터 제 좌우명은 ‘사랑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하라’였어요. 지금도 변하지 않은 그 마음으로 ‹이상비행›이라는 앨범을 만들 수 있었어요.

집은 집주인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그에 알맞은 온도로 짓잖아요. 집주인이 아닌 사람이 울타리를 무작정 부수고 들어가면 무서운 도둑 취급을 받을 테도, 그렇게 부서진 울타리를 손보는 집주인의 마음을 고치는 건 하루 이틀 걸리는 일이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의 영역을 마구 헤집어 상처 주지 않는 것. ‘집을 신기하게 지었네요. 멋있어요.’라고 직접 말하지는 못해도, 울타리 너머로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는 것. 울타리를 부순 행위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마침내 집주인의 초대를 받는 것. 다름을 이해하며 서로의 영역에 서서히 스며드는 것. 그렇게 다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게 제 이상 같아요. 너무 낭만적인가요? 그렇지만 낭만적이기 때문에 이상이라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대 이상으로 힘차고 사랑스러운 대답이었어요. 저까지 힘이 나는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올해도 벌써 2/3가 지났어요. 남은 기간에 준비하는 계획이 있을까요?

일단 9월 23일, 24일 단독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후로도 각종 페스티벌에 얼굴을 비출 거예요. 그 이후의 발매 계획은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귀가 심심해질 때쯤 귀신처럼 등장할 참입니다. 그리고 음악 외의 다른 계획이라면, 지금 대학교 마지막 학기라서 슬슬 졸업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올해 안에 얼른 꼭 졸업 성공해서, 음악에 제 모든 힘을 쏟고 싶어요!

Artist

한로로(@hanr0r0)는 한국의 싱어송라이터다. 2022년 3월 발표한 첫 싱글 ‘입춘’이 동 세대의 큰 공감을 끌어내며 데뷔 직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거울’, ‘비틀비틀 짝짜꿍’, ‘당신의 밤은 나의 밤과 같습니까’, ‘정류장’ 등의 싱글을 꾸준히 발표하는 가운데 ‘2022 올해의 헬로루키’ 결선 진출, 2023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과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계속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2023년 8월, 데뷔 1년 5개월 만에 ‘금붕어’와 ‘화해’를 더블 타이틀로 내세운 첫 EP ‹이상비행›을 발표했다.

Writer

김윤하(@romanflare)는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일간지, 주간지, 라디오 등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고 있으며, 가끔은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한다.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에 스토리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현재 KBS2 ‹케이팝 메이트›, 지니뮤직 ‹케이팝 탐사대› 진행자이자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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