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지난 12월 3일 밤 10시 28분은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그때 친구와 노는 중이라 집에 갈 시간이 되어도 계속 뭉그적거리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군요. “지금 계엄령이 내렸어. 얼른 집에 와!” 저는 대체 무슨 소리냐면서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로 찾아보니 정말 비상계엄이 선포됐더군요. 택시 기사님도 모르는 눈치였어요. 집에 안전히 온 다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장면까지 유튜브 라이브로 계속 지켜보면서, 생애 처음으로 국가적 난리라는 것을 체감했답니다. «비애티튜드»에 ‘밈 원정대’를 연재하는 경수 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니, 온 국민이 똑같을 겁니다.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후 계속 습관적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있으니까요. 경수 님은 원래 로제의 ‘APT.’ 열풍에 대한 글을 쓰려다, 비상계엄으로 주제를 급선회했습니다. ‘6시간 계엄’을 풍자하는 밈을 다루려는 게 아니에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싹수가 보이던 윤석열의 밈적 사고에 대해 일종의 확신이 들었기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 밈, 음모론과 연계되는 방식에 대해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밈 전문가, 경수 님이 바라보는 윤석열의 밈적 사고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덧. 에세이 발행 예정일인 12월 12일 아침을 기습한 담화문에 대응해 결말부를 추가했습니다.
12.3 비상계엄은 한국 역사 교과서에 길이 남을 중대한 사안이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이고, 대한민국 민주화 이후로는 처음이다. 게다가 3시간 만에 실질적으로 저지당해 실패한 계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런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고생하는 사람은 한국사를 공부하는 입시생과 취업 준비생이다. 네티즌은 밈으로 유명한 공무원 한국사 1타 강사 전한길의 목소리를 빌려, 12.3 비상계엄령을 어떻게 암기해야 하는지 빠르게 정리해 두었다. 역시 ‘드립의 민족’이다.
“상상의 악은 낭만적이고 다채롭다. 실재하는 악은 음산하고 단조롭고 삭막하고 지루하다. 상상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재하는 선은 언제나 새롭고 경이롭고 도취시킨다.”
–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1, p. 97
수치스럽다.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어떤 형용사를 쓰더라도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하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 이후의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국회의원 수대로 105개의 형용사를 나열해도 턱없이 모자란다. 나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순간, 분노보다 충격이 앞섰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에 적힌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라는 문장을 실시간으로 접할 땐 어안이 벙벙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현장을 보는 와중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오르면서도 매 순간이 초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계엄이 해제된 후에는 일상이 빠르게 무너졌다. 분 단위로 쏟아지는 속보를 확인하느라 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6시간 계엄’의 무능함, 내란에 동조한 국회의원을 풍자하는 인터넷 밈을 보면서 편하게 웃기 힘들었다. 자다가도 계속 악몽을 꾸었고, 깨어나면 뉴스를 확인했다. 하룻밤 사이에 국민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사회가 45년 전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불안과 초조를 과연 하나의 감정으로, 형용사로 담을 수 있을까.
지난 11월 7일 열린 대국민 담화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영혼 없는 사과를 이어가더니 약속했던 무제한 질의를 파기하고 20분 만에 퇴장했다. 한숨만 푹푹 나왔다. 그래서 12월 3일 긴급 회견을 한다길래 별 기대도 안 했다. 또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내뱉거니 했다. 그러나 잠에 들려던 찰나, 카톡 알림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비상계엄이었다. 처음에는 개소리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초현실적이었다. 앞으로는 대통령 담화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 12월 12일 아침부터 또 다른 개소리를 들었다.
소셜미디어에 의견을 올리든, 네이버 뉴스에 댓글을 달든, 한국에서 정치적 의견을 당당히 밝히는 건 상당히 성가시고 피곤한 일이다. 정치적 의견이 다른 지인과 껄끄러운 사이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차단하기’를 당하는 건 흔하고, 소모적인 키보드 배틀도 빈번히 일어난다. 그다음에는 정체 모를 익명 계정들의 트집 잡기와 조롱성 악플 달기가 시작된다. 협박성 DM이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여성은 자칭 정치를 잘 안다는 깨시민 남성에게 맨스플레인을 당하기 십상이며, 스토킹 혹은 성희롱의 위험에 처한다. (마녀사냥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는 페미사냥이 이루어진다.) 한편 어떤 이에게는 “너는 왜 정치에 관심이 없냐?”라며 손가락질이 이어진다.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루어지는 동안, 차은우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화보가 올라오니 온갖 댓글 세례가 쏟아졌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속담이 있다. “내가 너보다 정치를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소셜미디어 속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할 때 올라오는 짜증이 참기 힘들 뿐이다.
차은우는 «보그» 한국판 화보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는 이유로 댓글 테러를 당했다. 이 위중한 시국에 무관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마음은 사실 복잡하다. 비상계엄 이후 여러 지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살펴보았다. 글을 쓰거나 예술가로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밤마다 시위에 나가는 이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가 없어 마구 화를 분출하는 이도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나머지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에게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하지만 ‘내 삶은 나만이 주도할 수 있다’라는 그들의 꼿꼿한 심지에 마음이 달라졌다.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나가는 그들이 있기에, 이런 엉망진창 이후에도 사회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놈팽이 백수가 그들 대신 시위를 몇 번 나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나도 그런 성가심이 싫었다. 안 그래도 정신없고 바쁜 일상에서 쓸데없는 댓글을 상대하는 일은 얼마나 피곤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밈 원정대’에 굳이 윤석열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선 주자일 때부터 그의 언어가 빈곤하고 앙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비상계엄을 내릴 때 그가 사용한 언어를 살펴보면 정치적 밈의 소굴이나 다름없다. 12월 3일 밤 10시 23분경 시작한 긴급 브리핑에서의 비상계엄 담화문을 살펴보자. “입법 독재”, “예산 폭거”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행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 “범죄자 집단의 소굴”, “체제 전복”, “패악질”, “척결” 등 혐오와 적대의 언어로 가득하다. 의사를 “처단”한다는 계엄사령부 포고령도 마찬가지다. 비상계엄에 쓰인 언어는 서로를 적대시하고 가르는 인터넷 속 정치적 밈의 언어와 판박이다.
여기서 잠깐. 정치적 밈은 무엇일까? 지금껏 ‘밈 원정대’에서 말했듯, 인터넷 밈은 원본에서 잘라낸 소스를 기반으로 유저가 특정 규칙에 따라 합성하는 놀이다. 곧 정치적 밈은―말 그대로―정치적인 운동을 인터넷 밈의 틀에 담은 것이다.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 ‘개구리 페페(Pepe the Frog)’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월가 점령 시위의 구호인 ‘우리는 99%다’ 등은 인터넷 밈을 통해 퍼졌다고 알려졌고, 익명 커뮤니티 4chan에서 애용되던 개구리 페페는 도널드 트럼프와 폭스 뉴스Fox News의 입김을 타고 미국판 ‘일베’라 불리는 배타적 백인 민족주의, 대안 우파(alt-right)를 상징하는 밈이 되었다. 나중에는 혐오 표현으로 등록되며 캐릭터 원작자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밈 전쟁:개구리 페페 구하기›(2020)에서 확인하길 추천한다.)
월가 점령 시위에서 흔히 쓰인 짤이다. ‹세서미 스트리트›에 등장하는 손 인형 쿠키로 ‘1%가 99%를 움직인다’라는 사회적 불평등을 단번에 압축했다.
월가 점령 시위에서 흔히 쓰인 짤이다. ‹세서미 스트리트›에 등장하는 손 인형 쿠키로 ‘1%가 99%를 움직인다’라는 사회적 불평등을 단번에 압축했다.
개구리 페페는 4chan에서 루저 남성의 상징이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페페와 본인을 합성한 사진을 트위터에 공유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무척 영리한 정치적 밈 활용이다.
‹밈 전쟁: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정치적 밈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다큐멘터리다. 정보량이 한 권의 단행본에 필적할 정도이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 또한 훌륭하다. 중간중간 개구리 페페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며 여러 정치 세력에 이용당한 페페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연출도 탁월하다. 다만 인터넷 밈은 통제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인터넷 밈을 올바르게 쓸 수 있다는 영화 속 희망 섞인 기원은 현실을 시궁창이라고 판단하는 냉소주의자에게 비판점으로 다가간다.
한편 국내에서는 일베를 중심으로 생성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독하는 정치적 밈 이후로, ‘MB’, ‘박그네’, ‘간철수’, ‘찢재명’, ‘문크예거’, ‘굥’, ‘김거니’ 등 인물에 대한 멸칭을 포함한 수많은 정치적 밈이 연달아 쏟아져나왔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한국의 정치적 밈은 확실히 유치한 면이 있다. 적을 가정하고, 그에게 우스꽝스러운 프레임을 씌우는 별명놀이가 본질이기 때문일까. 정치적 밈의 디자인을 살펴봐도, 옛날 풍자화나 선전물에 가까운 느낌이라 맨정신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이런 정치적 밈은 한술 더 떠서 정치적 이슈의 심각함을 제거하며 시민들이 함께 대화할 기회마저 박탈하기도 한다. (일베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희화화한 ‘민주화’를 ‘비추’ 버튼으로 사용하는 광경을 보라.) 결국 우스꽝스러움과 자극적인 표현이 논리적 언어를 대신하는 것이다. 현재 정치적 밈은 호불호와 좌우 진영을 넘어 정치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일 때부터 밈이 되기를 바란 듯하다. 2021년 8월 그는 뜬금없이 반려견 ‘토리’와 함께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사진을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당시 한참 유행하던 ‘남친 짤(남자친구를 가까이서 보는 듯한 구도로 찍은 사진과 함께 감상적인 멘트를 날리는 짤방)’의 구도를 따라 한 것이다. 댓글에는 “여러분 이사진을 짤로 쓰셔도 좋습니다”라는 멘트를 유쾌한 척 올렸다. 본인이 인터넷 밈이 될 수 있다는 만용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기들 잘 잤어?” 등의 느끼한 코멘트를 뻔뻔하게 다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당시 정세균 전 국무총리나 박용진 전 국회의원 등 여러 정치인은 틱톡을 찍거나 인터넷 밈을 적극 활용해 젊은 세대에게 자신을 어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보통 본인의 유쾌함을 어필하려고 했지, 본인이 인터넷 밈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윤석열 남친 짤은 당시에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정치적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시기에 저런 사진을 올리니 정치 고관심층이라면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일반 시민에게도 마찬가지다. 남친 짤, 인스타 갬성 글 등의 유행이 소셜미디어에서 끝나가던 참이었다. 그에게 유행을 잘 포착하는 기민함이 있지 않다는 증거라 할 만하다. 차라리 틱톡을 찍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귀여워 보인달까.
2022년 1월 7일 윤석열은 페이스북에 어떤 맥락과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글자 포스팅을 올렸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표현도 논란이지만, 결국은 꼴이 문제다. 배경색을 덧입힌 7글자짜리 포스팅은 캡처 후 인터넷 밈으로 돌아다니기에 수월하다. (이는 특정 글자 수를 넘겨야만 글자 크기가 작아지는 페이스북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조롱과 여성가족부 폐지는 오래전부터 남초 사이트의 정치적 밈이었다. 2010년대부터 여성가족부가 “죠리퐁을 금지했고, 곰돌이 푸에게 바지를 입혔으며 셧다운제를 실행했다”라는 인터넷 낭설에 근거해, 남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처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정책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대안을 제시하거나 폐지에 대한 구체적 맥락을 언급하곤 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달랐다. 그는 자극적 언어만 존재하고 맥락은 없는 정치적 밈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바라는 지지층은 이에 동조해 포스팅을 밈으로 퍼 나르기 시작했다. 해당 포스팅의 여파로 여성혐오 관련 댓글이 6.5% 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후로도 그는 연달아 “병사 봉급 월 200만원” 등의 공약을 아무런 맥락 없이 올리며 계속 노이즈를 일으키는 데 집중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2017년 대선에서도 정치적 쟁점이었다.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선 후보 등이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여성가족부를 마녀사냥하려는 이의 표심을 잡으려 한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형식적으로나마 국가양성평등위원회같은 이상한 대안을 만들기라도 했다.(물론 이마저 여성가족부가 맡아 진행하는 수많은 일을 외면하고, 여성가족부와 페미니즘에 대한 마녀사냥과 밈적인 사고에 편승한 셈이긴 하다. ‘이퀄리즘’이라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고, 학술적으로도 쓰이지 않는 단어를 정책으로 내세우다니. 꼴이 있다고 한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그러나 윤석열은 7글자만 딱 던지며 민심에 편승하는 인기 효과만 얻고 그 어떤 의견도 더하지 않았다. 꼴이라도 지니려는 노력조차 없는 무책임한 언사다.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은 한국 남성이 군대에 지닌 원한을 건드린 신의 한 수였다.
어쩌다가 정치적 밈은 한국 정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을까. 인터넷 밈은 가성비 중심의 시대에서 탄생한 놀이다. 딱 꼬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감정을 절묘한 사진 하나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런데 밈이 정치의 영역으로 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어떤 사안을 두고 정치적 토론을 거치는 일은 너무도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든다. 셀 수 없이 복잡한 맥락과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인데, 과로와 빨리빨리의 나라 한국에서는 정책을 숙고할 만한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다. 대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길 바란다. 동시에 이는 내가 정치적인 말을 했을 경우에 짊어져야 할 불편함과 책임을 덜어주기도 한다. 문화 연구자 김내훈은 이를 두고 “사유의 외주화”라고 정의한다. 여기서부터 주객전도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드러내는 언어로 밈을 선택하였지만, 나중에는 도파민이 마구 터져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이나 자극적인 캐치프레이즈에만 몰두하게 된다. ‘밈적인 사고’의 탄생이다.
정치적 밈은 자기 혼자만 쓰면 차라리 다행이다. 문제는 이를 보고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태생적으로 매우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를 만든다는 데 있다. 정치적 밈은 자극적이다. 자극은 나날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정치적 밈의 특성상, 상대방(적)을 더 자극적인 언어로 비방하는 욕구에 몰두하게 된다. 비방을 통해 적을 이겼다는 우월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상대를 ‘바보’라고 부를 때와 ‘악마’라고 부를 때의 무게감은 다르다. 상대를 보수나 진보라 부를 때와 수구꼴통이나 빨갱이로 부를 때의 무게감 또한 다르다. 결국 자극적인 언어에는 혐오가 담길 수밖에 없다. 인터넷 밈을 빌리면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의 판이 펼쳐지는 셈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제제나 자정 작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깡짤’은 짤툰이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TV 요리 프로그램 보고 요리 도전하는 만화›에서 비롯됐다.주로 디시인사이드 야갤(국내야구갤러리) 등에서 정치인을 모욕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보기에 거북한 게 사실이고, 딱히 좋아하지 않는 짤이다. 이처럼 정치적 밈은 비위가 상한다. 사실 모든 대통령에게는 깡짤이 있다. 상대방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목적으로 활용된다.
‘깡 짤’은 짤툰이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TV 요리 프로그램 보고 요리 도전하는 만화›에서 비롯됐다.주로 디시인사이드 야갤(국내야구갤러리) 등에서 정치인을 모욕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보기에 거북한 게 사실이고, 딱히 좋아하지 않는 짤이다. 이처럼 정치적 밈은 비위가 상한다. 사실 모든 대통령에게는 깡 짤이 있다. 상대방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목적으로 활용된다.
이재명을 둘러싼 짤방은 그야말로 그를 악마의 재림처럼 그려낸다. 과연 이런 짤이 효과가 있는 걸까? 2022년 대선 당시에는 인스타그램에 커플 관련 글이 올라올 때마다 ‘차라리 찢재명 찍는다’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지금은 ‘락스를 마신다’로 바뀌었다) 정치적 밈은 이처럼 일상적 영역에까지 파고들 수 있다.
정치적 밈이 아군과 적군, 진보와 보수를 가르고 상대를 비난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쓰인다면,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관련한 밈은 경우가 조금 다르다. 그가 공공의 적으로 올라섰기도 했거니와, 특정 정당이 아니라 한 개인의 우스꽝스러움을 풍자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계엄을 오래 준비했다는 문건이 터지기 전에는 영화 ‹서울의 봄›과 엮여 3시간 만에 끝난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의 허술함을 집중적으로 풍자했다.
정치적 밈이 아군과 적군, 진보와 보수를 가르고 상대를 비난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쓰인다면,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관련한 밈은 경우가 조금 다르다. 그가 공공의 적으로 올라섰기도 했거니와, 특정 정당이 아니라 한 개인의 우스꽝스러움을 풍자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계엄을 오래 준비했다는 문건이 터지기 전에는 영화 ‹서울의 봄›과 엮여 3시간 만에 끝난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의 허술함을 집중적으로 풍자했다.
윤석열이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이를 비판하는 짤은 비상계엄 전까지만 해도 정치적 밈에 가까웠다. 알코올 중독자라 비난하며 국정 운영을 제대로 못 한다고 말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행보가 초현실적인 경지에 이르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비상계엄도 술김에 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계엄령을 술김에 한 것이 아니냐는 조롱도 잇따랐다. 알고 보니 작디작은 행운에 힘입어 비상계엄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차츰 드러나면서, 이 짤의 호소력 또한 줄어들었다.
전부터 윤석열과 부인 김건희 여사의 부정행위는 정치계에서 심판의 대상으로 불려 왔다. 부인의 잘못을 덮으려고 비상계엄을 터뜨린 게 아니냐는 음모론적 의심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정치적 밈에 혐오감이 깊어질수록 정밀함은 사라져 간다. “입법 독재”, “예산 폭거”,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행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 “범죄자 집단의 소굴”, “체제 전복”, “패악질”, “척결” 등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담화문 속 언어만 보더라도 구체적인 대상과 행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어렵다. 이런 언어에 물들다 보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적받아도, “지금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민주당보다 더하면 더할 것”이라며 적에게 탓을 돌리고 그 책임을 무마하려는 반응까지 나오는 것이다.
이에 병행되는 현상은 바로 정치적 음모론이다. 적을 악마라 생각했는데 진짜로 악마로 부를 만한 정도가 아닐 때 특히 그러하다. 적이 악마가 아니면 본인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므로, 적이 악마일 수 있는 온갖 가짜 근거를 동원하게 된다. 사죄하고 나가는 것보다 본인이 만든 가상 세계에 머무르는 게 편하니까.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능을 연구하는 조너선 갓셜Jonathan Gottschall은 저서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원제: The Story Paradox)에서 이런 음모론(conspiracy theory)을 음모담(conspiracy story)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음모는 무한히 이어지는 이야기일 뿐이지, 어떤 체계적인 이론을 더할 만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음모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온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적과 홀로 싸운다는 영웅적 망상에 빠뜨린다. 영웅적 망상 속에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치적 음모와 이어진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이를 잘 설명한 영화가 올해 개봉한 안국진 감독의 ‹댓글부대›다. 국가정보원 댓글부대 개입 사건을 소재로 다룬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이 영화는 음모론이 “1%의 진실과 99%의 거짓”이라는 대사를 두 번 반복하며, 음모론에 속지 않을 수 있냐고 관객을 시험한다. 그 사례로 영화 초반부에 2016년 촛불 시위의 기원을 1992년 PC통신 유료화 반대 시위로 보고, 그 중심에 운영자 ‘앙마’가 있다고 말한다. 2016년 촛불 시위 때의 영상과 거짓 제작된 영상을 교차하며 이 모든 ‘썰’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1992년 시위와 2016년 촛불 시위는 모두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 두 시위를 이끈 앙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둘을 잇고,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1992년부터 2023년까지의 이야기를 제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라고 자막을 띄운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인 임상진(손석구 분)은 엔딩에서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전직 기자가 직접 쓴 취재썰”이라는 게시물로 갈무리한다. 이윽고 엔딩 크레딧에는 “이 영화는 허구다”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흩뜨리는 혼란을 통해 감독은 영화 자체를 음모론으로 보이게 한다.
계급 문제를 블랙 코미디 문법으로 그려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주목받은 안국진 감독이 소설가 장강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진실과 거짓을 계속 흩뜨리는 전개와 모호한 결말 등 대중의 취향을 전면으로 비껴나가 흥행에 실패한 아쉬운 경우다. 개인적으로 올해 과소평가된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댓글부대›는 원작 소설과 달리 음모론에 몰입하는 사회부 기자 임상진의 역할이 눈에 띈다. 기자가 정의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저널리즘 영화와는 달리, 그는 진실을 알아내 특종을 터뜨리고 말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있다. 본인 기사가 우연히 터진 연예인 기사에 묻히고, 사실 확인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그는 1%의 물증과 99%의 심증으로 거대 기업 만전이 해당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때 만전을 위한 댓글 부대로 일했다는 ‘찻탓캇’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임상진은 만전이 모든 사건의 배후라는 심증 아래 취재를 계속하며 어느덧 세상의 악과 싸우고 있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힌다. 이후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르겠다는 절망감을 느낀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전직 기자가 직접 쓴 취재썰’이라는 음모론을 퍼뜨린다. 인터넷에 썰을 푸는 행위가 그가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어서다. 우리 사회에 ‘문재인이 금괴 200t을 숨겼다’, ‘닥터 드레와 이희호 여사가 결혼했다’ 등의 황당무계한 낭설이 나오는 이유를 여기서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이 모르는 진실을 바로 나만 알고 있다는 나르시시즘의 발현이다. 자신만의 진실로 세상과 싸우고 혼란을 막으려는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을 중심으로 모든 정보를 왜곡한다. 오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뇌를 막아 더 이상의 배움을 멈추고, 나아가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지키는 데 유리한 정보만 선별적으로 취득한다.
안국진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수많은 밈을 조사하며 연출부와 함께 온갖 밈을 자체 제작했다. 다만 정치적 밈이 대부분이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밈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어쩌면 ‹댓글부대›는 정치적 밈의 세계가 일상적 밈의 세계를 압도한다는 음모론자의 태도를 자신도 모르게 표방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문재인 금괴 200t 썰은 그 유래가 깊다. 1999년 일제가 보물을 숨겨둔 곳을 안다며 2억을 투자받아 땅을 팠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사기죄로 징역형을 받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괴를 숨겼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변질돼 문재인 전 대통령이 금괴 200t을 숨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금괴 200t의 소유자라면 굳이 힘들게 대통령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문재인 금괴 200t 썰은 그 유래가 깊다. 1999년 일제가 보물을 숨겨둔 곳을 안다며 2억을 투자받아 땅을 팠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사기죄로 징역형을 받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괴를 숨겼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변질돼 문재인 전 대통령이 금괴 200t을 숨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금괴 200t의 소유자라면 굳이 힘들게 대통령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음모론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닥터 드레와 이희호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을 연결하는 상상력의 근원이 놀랍다. 그 시작은 일베였다. 2017년 1월 1일 한 일베 회원은 이희호 여사를 조롱하려는 목적으로 닥터 드레와 이희호 여사가 결혼한다는 루머를 뿌렸다. 이를 본 70대 노인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세탁하려는 목적으로 이희호 여사가 닥터 드레와 결혼했다는 허위 사실을 퍼뜨리며 결국 뉴스에까지 퍼졌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에 반사하는 사람을 “범죄자의 소굴”로 몰아세우고 세상을 음모론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세계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과 나르시시즘, 원한, 영웅으로 거듭나고 싶은 억하심정이 깃들어 있다. 계엄군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보낸 행동에는 4.10 부정선거 음모론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는데, 부정선거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면 세상을 이긴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는 담화와 비상계엄이 경고성 조치라는 발언을 분석해 보면, 중심에 있는 것은 결국 비상계엄이라는 사건보다, 세상에 맞서는 권위적인 ‘윤석열’ 그 자신이다. 스스로 밈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에서부터 이미 그는 문제적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수많은 속보가 지나갔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즉흥적으로 벌인 ‘구국의 결단’이 아니라, 밈적 사고와 이와 연계된 음모론에 깊게 빠진 결과라는 상황이 명확해졌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을 다시 쓰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원한에 기반한 마음에 홀리지 않고, 헛된 정보를 차단한 채 자신의 정치적인 지향을 숙고하는 여유를 갖는 태도로 밈적인 사고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이 지극히 낙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은 아닐까? 과연 음모론을 자기 계발로 이길 수 있을까? 이제는 음모론자를 논리와 팩트로 선도하자는 생각에 이유 모를 거부감까지 생긴다. 적과 나 사이에 우위를 두는 정치적 밈의 공식을 반복하는 듯해서다.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려면 최소한 타인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이제는 이를 위한 사회적 움직임 또한 수반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길게 정치와 관련된 글을 썼지만, 나는 여전히 정치를 잘 모른다. 나부터 시작하겠다.
덧.
에세이가 발행되는 12월 12일 아침, 윤석열은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내용을 확인하고 지금까지 쓴 글이 헛수고라는 생각 때문에 절망감이 들었다. 혹시 내란 수괴 재판에서 정신 감정을 받아 망상 장애로 감형을 받으려는 속셈인가, 음모론적인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다. 인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낙관주의자 입장에서, 곧 죽어도 갱생이 불가능한 인간이 있다는 사례를 목도한 기분이다. 그는 자신만의 메타버스에 사는 게 분명하다. 당장 촛불을, 응원봉을, 아니면 뭐라도 들어야겠다. 그와 그를 감싸는 이익 집단을 그들의 메타버스에 영영 가두어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동명의 단행본으로 발행됐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