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Visual Portfolio

포개어 둔 두 시간

Writer: 윤정의
[VP]윤정의(0709)_1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완성된 조각이 다시 바닥에 떨어지고, 그 깨진 단면 위로 새 유약이 덧씌워지는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어떤 창작자는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 과거의 흔적을 부단히 지우지만, 윤정의는 언제나 두 개의 시간을 포개어 놓습니다. 예측했던 균열의 선과 실제로 생긴 자국이 나란히 놓인 조각처럼, 그의 작업은 ‘이미 일어난 것’과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을 한 표면 위에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죠. 손으로 흙을 붙이고 긋고 덧붙이고 다시 깎기를 반복합니다.

그 물리적 반복 안에서 모델의 신체는 전체이자 부분으로, 안쪽이자 바깥쪽으로 거듭 나뉘어요. 조각 하나에 서로 다른 시간을 중첩해 온 그는 이제 여러 시즌을 오르내리는 TV 시리즈처럼 오랜 시간 지속된 대상이 그 긴 시간 속에서 어떤 패턴과 구조를 그려 내는지 유심히 귀를 기울이는 중이에요. 집요함과 탐구력으로 쌓아 올린 윤정의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VP]윤정의(0709)_2

‹부서진 팔›,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64 × 33 × 29cm, 사진 고정균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윤정의입니다. 인체를 매개로 조각을 만드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조각으로 인체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은 대학교 3학년 때였어요. 그 당시 스스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묻고, ‘인체’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VP]윤정의(0709)_4

‹뒤집힌 상반신›,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30 × 66 × 61cm, 사진 고정균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몇 년째 관악구 봉천동에서 작업실을 쓰고 있는데요, 관악구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길가에는 크고 작은 쓰레기가 넘쳐나서 가끔 카오스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질서가 마구 뒤엉켜 있는, 매 순간이 새로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제 작업 공간도 관악구를 닮아가도록 꾸리는 중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사람의 몸을 보며 가장 큰 영감을 얻습니다.

[VP]윤정의(0709)_5

«분열», PCO, 2025, 사진 고정균

[VP]윤정의(0709)_6

«분열», PCO, 2025, 사진 고정균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흙으로 구조를 세우고, 인체 형태를 만든 뒤 굽고, 유약을 발라 여러 번 소성해 조각을 완성합니다. 큰 틀로 보면 작업을 구상하고, 모델과 포즈를 조율하고, 흙을 조색하고, 유약을 계량하고, 조각을 옮기고, 공간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요. 조금 더 디테일하게 본다면 흙을 쌓고, 붙이고, 자르고, 긋고, 깎고, 덧붙이고, 떼어내고, 다시 깎는 행위가 반복됩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년 11월에 연 개인전 «분열»에 전시했던 작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분열»에서 저는 모델의 신체를 조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인식하는 여러 분절 지점을 하나의 조각에 겹친 상태로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몸 전체와 부분, 인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 내부 구조와 외부 형태, 여러 차례의 소성을 거쳐 유약이 표면에 얹히는 과정 등을 조각 하나에 담고자 했어요.

[VP]윤정의(0709)_7

‹부서진 두상›,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29 × 23 × 28cm, 사진 고정균

[VP]윤정의(0709)_8

‹부서진 다리›,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24.5 × 61.5 × 16.5cm, 사진 고정균

[VP]윤정의(0709)_9

‹부서진 하반신›,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33 × 28 × 31cm, 사진 고정균

‹부서진 조각›은 완성된 조각을 부수고 다시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업입니다. 우선 조각의 형태를 완성하고 깨트렸을 때 부서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부분에 선을 그었어요. 그리고 조각을 실제로 바닥에 떨어뜨려 부수고, 깨진 단면을 다른 색으로 칠한 뒤 최대한 원래의 형태로 복구했습니다. 그렇게 실제로 일어난 미래와 미래를 예측한 과거의 자국, 그 두 가지 질서가 공존하는 조각 위에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며 유약을 덧칠해 조각을 완성했어요.

[VP]윤정의(0709)_10

좌: ‹두 다리›,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49 × 50 × 52cm, 사진 고정균

우: ‹뒤집힌 두상›,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31 × 24.5 × 31.5cm, 사진 고정균

‹뒤집힌 두상›은 모델에게 얼굴을 거꾸로 둔 상태로 자세를 취해 달라고 요청해 만든 조각입니다. 두상을 뒤집어서 제작하는 순간, 똑바로 선 얼굴과 뒤집힌 얼굴 모두를 바라보며 작업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VP]윤정의(0709)_11

‹기울어진 흉상›,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49.5 × 49.5 × 48cm, 사진 고정균

[VP]윤정의(0709)_12

‹기울어진 흉상›,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49.5 × 49.5 × 48cm, 사진 고정균

‹기울어진 흉상›은 2024년에 만든 ‹누운 흉상›과 이어지는 작업입니다. ‹누운 흉상›을 제작할 때, 저는 모델에게 옆으로 누운 조각이 된 자신을 상상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기울어진 흉상›에서는 ‹누운 흉상›과 같은 포즈와 방식으로 조각을 만들되, 이번에는 바닥을 함께 만들고 그 바닥을 지지대로 삼아 조각을 옆으로 세웠습니다. ‹누운 흉상›이 조각이 되려고 하는 사람의 상상과 어긋나는 인체를 조각의 형태로 표현했다면, ‹기울어진 흉상›은 ‘조각이 된 인체’를 만든 조각을 현실의 조건 속에서 실제 몸처럼 움직여 다시 세워 보려고 시도한 작품입니다. 

[VP]윤정의(0709)_13

‹분열 드로잉(손 조각하기)›, 2025, 종이에 수채화, 과슈, 19.5 × 28cm, 사진 고정균

[VP]윤정의(0709)_14

‹분열 드로잉(손)›, 2025, 종이에 수채화, 26 × 20.7cm, 사진 고정균

‹분열 드로잉›은 전시의 시작점이 된 드로잉 연작입니다. 왼손잡이인 제가 오른손을 움직이며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작품의 제작 방식이에요. 모델의 손을 만지며 그리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오른손의 동작을 따라가거나 저항하기도 하며, 무언가를 만진다고 상상하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중 ‹분열 드로잉(손 조각하기)›는 제 오른손을 조각하는 것처럼 포즈를 취하면서 동시에 그려지는 형태를 조각하듯 만지는 움직임을 반복하며 완성한 드로잉입니다.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항상 조각을 만드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합니다.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최근 들어 작업을 하고, 전시를 열고 닫는 과정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함께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다른 사람과 함께한 순간을 돌아볼 때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고요.

[VP]윤정의(0709)_15

‹쿼터 토르소›, 2025, 소성한 점토, 유약, 50 × 30 × 22cm, 사진 고정균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작업할 때 항상 음악을 틀어 놓습니다. 그게 제가 일상을 보내는 주된 방식이에요. 음악이 언제나 작업과 함께 투 트랙 혹은 쓰리 트랙으로 뻗어 나가면서 앞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뒤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연속된 창작물이 시간이 흐르며 어떤 패턴과 구조를 만드는지 생각하고, 현실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상상하는 일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여러 시즌으로 이어지는 TV 시리즈가 어떤 양상을 그리며 올라가고 내려가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VP]윤정의(0709)_16

«분열», PCO, 2025, 사진 고정균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조각을 만들다 보면 삶 속의 사람과 작업 과정이 꽤 닮아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 둘이 얼마나 다른지 더 큰 의미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하려고 했으나 못했던 것을 정리하고 있으면 다시금 동력이 돌아오곤 합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건강을 유지하며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VP]윤정의(0709)_17

‹누운 흉상›, 2024, 소성한 점토, 유약, 43 × 40 × 31cm,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홍철기), 제공 창원문화재단•2024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가까운 사람들과 토론해 보면 제가 늘 중시하는 태도와 철학은 ‘집요함’과 ‘탐구력’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종종 보는 미드의 대사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네가 하고 있는 고민은 네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을 내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이다.”

[VP]윤정의(0709)_18

‹뒤집어진 다리›, 2024, 소성한 점토, 유약, 17 × 59 × 28cm,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홍철기), 제공 창원문화재단•2024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VP]윤정의(0709)_19

‹여분의 공간이 있는 손›, 2024, 소성한 점토, 유약, 20 × 13 × 11cm,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홍철기), 제공 창원문화재단•2024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꾸준히 즐겁게 작업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하나의 시간으로 수렴하지 않고, 느리고 빠른 시간이 곳곳에 살아 있는 미래’입니다.

[VP]윤정의(0709)_20

Artist

윤정의(@yunjeongui)는 인체를 매개로 두 눈과 양손의 감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분열적 조형 방법론을 탐구 중인 조각가다. 조각이 되는 인체와 인체가 되는 조각의 어긋남 속에서 드러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개인전 «분열»(PCO, 2025)과 «모델»(GCS, 2022)을 열었고, 2인전 «플랫폼 2»(인터럼, 2023~2024), «조소의 즐거움»(청년예술청, 2022)을 개최했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아트선재센터, 2026),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2025~2026), «큰 사과가 소리없이»(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2024) 등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