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정상성’이라는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압박은 어쩌면 너무 오래되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죠. 정은형은 바로 그 당연함에 조각으로 물음을 던집니다. 종이 반창고로 봉합된 석고 덩어리로 만들어진 낯선 생명체는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연약함과 애처로움을 품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압박에 짓눌린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끈질긴 가능성을 드러내는 변이된 몸이 작업의 중심에 있죠. 완결된 형태로 머물기를 거부하는 이 피조물은 부서지고 꿰매어지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재구성합니다. 자신의 조각을 애정을 담아 매만져 온 작가는 이들을 일상의 공간으로 데려다 놓으며, 실험적인 순수미술과 공공조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합니다. 변이를 거듭하며 살아남은 낯선 몸의 강인함을 조각으로 기록해 온 정은형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변이된 신체를 바탕으로 한 조각과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의 기준을 되묻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상실감과 불안을 탐구합니다.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은 오히려 방향감각의 상실로 이어졌고, 작업은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발견하려는 고군분투의 과정이 되었어요. 이런 고민은 인간과 동식물의 신체가 뒤섞이고 변형된 형상으로 나타나죠.
제 작업 속 생명체는 시야가 가려진 채 비대해진 몸으로 주변을 더듬으며 느리게 움직입니다. 움츠러들고 주름진 몸, 단단한 뼈대 없이 구부러진 형상은 보이지 않는 압박에 짓눌린 듯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 안에서 잠재된 가능성을 드러내기도 하죠. 이 생명체는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맞춰지기를 반복하며, 완결된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전시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 남습니다.
부서진 몸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변이시키고, 주변과 충돌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제 작업의 중요한 태도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생 때 올림픽공원광장 앞에 닭꼬치를 판매하는 푸드트럭이 있었어요. 그 닭꼬치가 너무나 맛있어서 하루는 닭꼬치를 홍보하는 그림을 성분표와 함께 그려서 닭꼬치 아주머니께 드렸더니 아주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시면서 그림을 트럭 앞에 붙여 놓으셨어요. 그리고 닭꼬치 7개를 선물로 받았고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제 예술이 선물 같은 존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온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지금까지 제가 작업을 지속해 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제 작업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까지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절단면의 봄›, 2026, 절단된 나무 기둥, 부유목, 초경 석고, 밀가루, 비즈, 실, 클레이, 호두, 라텍스, 의료용 종이 반창고, 가변설치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업실을 떠올리면 만물상 트럭이 가장 먼저 생각나요. 겉으로는 두서없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규칙과 흐름이 존재합니다. 프랑스의 생물학자인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Étienne Geoffroy Saint-Hilaire가 “괴물은 무질서가 아니라 생물학적 연속성 속의 또 다른 형태의 질서”라고 한 이야기에 깊이 공감합니다. 작업실에 어지럽게 흩어진 사물 역시 서로 관계를 맺으며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 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공간을 무질서처럼 보이지만 고유한 구조를 지닌 ‘클러스터토피아Clustertopia’라고 부르고 싶어요. 정리정돈을 못한다는 걸 이런 식으로 포장해 봤습니다. (웃음)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가 만든 생명체는 때론 징그럽고 이상한 괴물처럼 보여요. 그러나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그 자체로 귀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자연(自然)의 얼굴’을 닮아 있어요. 그래서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낯설고 불편한 감정과 함께 쉽게 떼어낼 수 없는 동정심이 따라오죠. 연약해 보이고, 애처로워 보이며,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한 이들 몸은 부족함을 숨기지 않아요. 그 ‘숨김 없음’이 오히려 당당해 보이기도 하고요. 이처럼 길가를 걷다가 혹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다가 마주하는 자연의 얼굴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터트리고 조합하기(Miss Assemble)›, 2025, 혼합 매체(각목, 알루미늄 철판, 실리콘, 찰흙, 라텍스), 가변설치
제 작업은 ‘줍기’에서 시작해요. 마치 저장 강박이 있는 사람처럼 재미있는 형상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워 오거나 사진으로 남기는 편이에요. 여행을 가면 꼭 플리마켓에 들르는데요, 특히 누군가에게 버려진 채 먼지를 뒤집어쓴 사물에 자꾸 눈길이 가요. 학교를 다닐 때도 새 책보다 사람들이 꺼리는 상처난 교과서에 더 애착이 갔던 기억이 나는데, 어쩌면 그 안에서 제 모습을 발견한 까닭이겠죠.
시선을 사로잡는 사물이나 자연물이 있다면 1~2주 유예 기간을 가지고, 그 후에도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 있다면 작업실로 데려오는 편이에요. 주름지거나, 켜켜이 쌓여 있거나, 길게 늘어지거나, 마치 암덩어리처럼 비정형적인 형상에 특히 끌려요. 그런 것들은 완결된 형태라기보다 계속 변화하는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가끔은 어떤 사물이나 풍경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홀린 듯 작업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첫 번째로 ‹아비투스 2.0: 낯선 낙원(Habitus 2.0: Strange Eden)›을 소개하고 싶어요.
저는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변화하고 적응해 가며 살아남은 몸의 태도에 주목합니다. 예를 들면, ‹아비투스 2.0: 낯선 낙원(Habitus 2.0: Strange Eden)›은 내면의 성향habit과 삶의 환경habitat이 서로 맞물려 형성되는 관계를 하나의 생태계로 펼쳐 보이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 존재의 변이 가능성을 꿈꿔요. 파편화된 생명체의 신체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해 가는 동식물의 다양한 생존 전략을 담고 있어요. 각각의 신체 내부에는 자석이 심어져 있어 하나의 완결된 형태에 머무르는 대신 상황에 따라 붙고 떨어지며 끊임없이 자신을 재구성합니다. 이 변이 생명체의 군집은 모호한 경계를 견뎌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형태를 찾아가죠.
‹비정형 소망탑(Atypical Spire)›, 2026, 협업: 키리니지(김혜민), 제지 공장 폐기물 가방, 검정 리본, 철사, 의료용 밴드 테이프, 가변설치
‹비정형 소망탑(Atypical Spire)›, 2026, 협업: 키리니지(김혜민), 제지 공장 폐기물 가방, 검정 리본, 철사, 의료용 밴드 테이프, 가변설치
‹비정형 소망탑(Atypical Spire)›, 2026, 협업: 키리니지(김혜민), 제지 공장 폐기물 가방, 검정 리본, 철사, 의료용 밴드 테이프, 가변설치
두 번째로 ‹비정형 소망탑(Atypical Spire)›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찢어진 틈을 봉합하는 화려한 검정 리본에 처절함 속에서도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애처로움을 숨깁니다. 어딘가 흉측한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귀엽고 연약해 보여서 안쓰럽기까지 해요.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을 붙들어 매단 채 버티고 있죠. 하지만 이내 껍질을 벗어던지고 어딘가 이름 붙여지지 않은 곳으로 떠납니다.
‹비정형 소망탑(Atypical Spire)›은 을지로 제지 공장에서 종이를 버릴 때 사용하던 폐기물 가방의 틈을 리본으로 다시 묶어 다시 쓰는 모습에서 출발했어요. 조각난 살점은 의류 브랜드 키리니지의 도움을 받아 상처를 꿰매고 봉합한 듯한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낡고 찢긴 표면은 삶의 마모를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저는 그 틈을 리본으로 묶고 꿰매며 ‘버려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끝까지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로에 선 비정형 세포 조각은 체면과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처절함을 꾸밈으로 위장해요. 그런 위장의 흔적은 생존의 몸짓이 됩니다.
저는 이처럼 불확실성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몸의 태도를 조각적으로 드러내고 기록해요.
최근 작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예요. 앞서 이야기한 ‘자연(自然)’처럼 어떤 기준이나 사회적 잣대로 재단하기보다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특정한 경로를 따르지 않으면 실패하거나 비효율적인 삶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경직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조금 더 여유 있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가치와 속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삶은 덜 각박해지고 조금 더 풍요로운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두 번의 2인전을 통해 제 작업이 ‘회화 작업과 맺는 관계성 속에 놓이는 경험’을 했어요. 조각을 구현하는 일은 현실적·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회화 작업은 조각을 바라보는 폭을 훨씬 더 확장해 주어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각각 다른 공간에서 변모하는 조각의 형태 또한 인상적인 부분이었고요. 공간 특성에 맞게 조각의 설치 방식을 달리하는 점이 도전적이지만 재미있었어요.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라면 항상 작업의 스케일과 관련한 것인데요, 좀 더 크게 구현하고 싶은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작업의 크기를 작업실에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야생이상출몰구역», 다이브서울, 2026
«유예배양소(Suspension Incubator)», 공간 아래, 2026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평소에는 무서운 영화나 실제 살인 사건 이야기, 괴담 같은 것을 즐겨봐요. 그런 이야기가 인간의 내면이나 보이지 않는 감각을 건드린다고 느껴서인지 자꾸 끌리더라고요. 또 식물 중에서도 괴물 같은 형상을 띤 것이 꽤 있어서 식물원이나 숲, 산을 찾아다니며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가끔 시의 한 구절이나 어떤 장면이 떠오르면 그것이 휘발되지 않도록 붙잡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해요. 그럴 때는 일부러 다듬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로 마구 써 내려가는 편이에요. 아무런 관련 없어 보이는 일들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미래에 쓰일지도 모를 작업 재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크게 느낍니다.
요즘 관심을 가장 많이 두는 건 ‘제 작업을 어떻게 공공조각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에요. 더 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도록 함께 향유할 수 있는 형태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실험적인 순수미술을 하는 저와 공공조각 작업을 하는 제가 서로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간극을 조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공조각은 특정한 의미를 강하게 유도하기보다 각자의 해석을 열어놓은 상태로 작품이 존재하길 원합니다.
일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며 그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형태에 더 가깝죠. 하지만 고어Gore하고 괴물적인 형상에 관한 관심 역시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요. 다만 제 관심이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될 때 둥글게 다듬어져 그 성질이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있어요.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 가장 큰 고민입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실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돌봄에 소질이 있고 또 그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애인복지관이나 병원에서 미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경다양성 작가의 작업을 보면 고정된 개념이나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자주 발견하게 돼요.
이런 돌봄의 태도는 작업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어요. 저는 늘 “제가 조각을 돌보듯, 조각도 저를 돌본다”는 마음으로 작업해 왔으며, 조각을 단순히 관리하거나 완성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려 해요. 의류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이 말했듯 돌봄은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조각을 일방적으로 돌보는 것보다 작업으로부터 다시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상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돌보는 것과 돌봄을 받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태도, 그게 제가 삶과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사실 슬럼프를 잘 극복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절망적인 상태에 놓이면 끝까지 바닥을 찍어야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힘이 생겨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상처를 대충 봉합하려 하면 오히려 더 덧나서 오래 아물지 않아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든 시기가 곧 작업적으로는 오히려 황금기가 됩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형태를 찾으려는 것처럼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밀려나와요.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의 구체적인 형상을 찾으면서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괜찮아져 있더라고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최근 들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는 ‘나이에 맞는 역할이나 사회적 기대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이에요. 그 감각을 마주할 때면 자신을 자꾸 낙오자처럼 인식해 자괴감이 들거든요. 빨리 결과물을 내려고 하는 의욕만 앞서게 됩니다. 저는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한 것처럼 사회가 덧씌운 살점을 하나씩 도려내고 싶지만, 30년을 넘게 붙여온 살점을 떨쳐내기가 그리 쉽지 않아요. 당장 답을 내리기 어렵고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기에 그 어딘가 불편한 간극에 머무르며 계속 저를 관찰하고 있어요.
계속 배우는 태도가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답이라는 확신을 가지기보다는 새로운 것과 접점을 통해 갱신되는 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배움을 통해 배우지 않는 것, 그런 태도가 예술가로서 순수함을 지켜주는 방식에 가깝다고 느껴요. 그와 동시에 외부를 받아들이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뿌리를 쉽게 바꾸지 않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표가 너무 크고 막연하게 느껴질 때는 당장 눈앞에서 실현할 수 있는 작은 단계들로 나누어 보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씩 쌓여가는 과정이 오히려 더 오래 지속되거든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면 좋아했던 일도 점점 부담이 되고 결국은 꾸며내게 되어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순간이 생겨요. 그래서 결과를 증명하는 것 대신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쪽에 더 무게를 두려고 해요. 모든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내기보다 조금은 남겨두는 편을 택합니다. 아주 미약하더라도 다음으로 이어갈 수 있는 숨이 남아 있는 상태, 그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재를 살지 못하는 자(무거운 머리)(One who cannot live in the Present(Heavy Head))›, 2025, (사운드 협업: 이선철),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2분
«조각난 길 위에서 (On the Broken Roads)», www 스페이스, 2024
‹현재를 살지 못하는 자(One who cannot live in the Present)›, 2023, 혼합 매체(스티로폼, 폴리우레탄 폼, 석고 붕대, 합판, 시멘트, 천, 라텍스), 160 × 270 × 100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현재를 선물하는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를 살지 못하는 자(One who cannot live in the Present)›라는 시리즈 작업을 이어오면서 과거와 미래에 매몰되어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상태를 계속 다뤄 왔어요. 제 작업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그 상태를 다시 환기하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를 구성하고 있다고 믿어온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부수고, 다시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지금’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만들어진다면, 제 작업은 ‘현재present’를 마주하게 하는 ‘선물present’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궁극적으로는 관객이 여행하듯 작업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를 국내에서 기획하고 싶어요. 비엔날레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처럼 사람들이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한반도 조각 탐방 프로젝트’를 구현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예술이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하여 지방 활성화에도 기여하고자 해요. 한국의 지방 소멸 문제가 대두되는 지금, 예술이 지역 사회를 연결하고 재생 계기를 제공하는 강력한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어요.
Artist
정은형(@eunhyungchung03)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각가이자 퍼포머이다.
작가이자 교육자, 기획자로 활동하며, 조각과 퍼포먼스 외에도 괴담 서사, 시, 영상 등 다양한 범주의 예술 형태로 작업적 실험을 이어 나가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이립(異立)» (서울대학교 우석갤러리, 2024)을 열었고, 기획전으로는 «Home Still Home» (오시선, 2026)에서 기획자 겸 작가로 참여했다. 대표적인 그룹전으로는 «유예배양소» (2인전, 공간 아래, 2026), «야생이상출몰구역» (2인전, 다이브서울, 2026),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열린송현녹지광장, 아워갤러리, 2025), «조각 운동회» (파워플랜트, 2025), «스위트 아포칼립스 호텔» (2인전, 금천예술공장, 202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