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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빛을 오래 보는 사람: 방혜자

Writer: 마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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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입자›, 2018, 석판화, 60 × 43 cm, 방혜자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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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빛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빛의 화가’로 불리는 고(故) 방혜자는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마주한 반짝임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60여 년간 빛을 그렸습니다. 한지와 천연안료가 품어내는 물질 내면의 묵직한 진동을 화폭 위로 길어 올렸죠. 그에게 빛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미세한 생명부터 광활한 우주까지 만물을 연결하는 호흡이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는 이런 그의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 «방혜자 —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찰나의 반짝임만을 좇는 대신 빛이 머물다 간 자리를 평생토록 빚어낸 거장의 삶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청주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앞서 큐레이터 마동은이 안내하는 방혜자의 예술적 생애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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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탄생›, 2019, 스테인드글라스, 270 × 140 × 3.5 cm, 영은미술관 소장

빛은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남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 빛은 하루의 날씨를 알려 주는 단순한 신호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창문 너머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오후의 기분이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조건일 뿐이다. 그러나 방혜자에게 빛은 그렇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어느 개울가에서 마주한 최초의 경이였고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작가의 삶을 이끌어 간 가장 오래된 질문이었다. 물 위에서 흔들리던 햇살, 풀잎 사이로 번지던 투명한 반짝임, 출렁이는 수면 위에서 잠시도 같은 형태로 머물지 않던 빛의 조각은 한 소녀의 마음속에 이상하리만큼 깊이 새겨졌다. 어린 시절 그녀가 품었던 “이 빛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미적 호기심을 넘어 훗날 작가로서의 삶과 예술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운명적 문장이 되었다. 1987년 프랑스 라디오 대담 방송 아고라에서의 인터뷰에서 방혜자가 한 말을 잠시 상기해 본다.

“제가 여덟 살쯤이었을 때, 어느 날 개울가에 앉아 물 위에 햇빛이 찰랑이는 것을 보고 있었어요. 풀들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고, 출러이는 물 위로 햇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저런 빛을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인상이 아주 강하게 남았고,

그것이 빛을 그리는 씨앗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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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땅›, 2011, 종이에 천연안료, ø 17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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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빛에서 태어난다›, 2019, 닥지에 천연안료, 180 × 119.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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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혜자 작가 프로필

1937년 경기도 능동에서 태어난 방혜자는 일곱 남매 중 둘째로 자랐다. 유년 시절의 방혜자는 조용하고 사색적이었지만 그 조용함은 소심함과는 다른 내면의 감성이 깊어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교사였던 아버지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어머니가 만들어 낸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방혜자에게 음악과 문학, 그림과 손작업은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였다. 방혜자의 부모는 버려진 흉가를 사들여 꽃이 만발한 집으로 가꾸고 그 속에서 자녀를 꽃처럼 자연스럽게 키웠다. 아버지의 풍금 소리에 맞추어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고 어머니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되던 집에서 어린 혜자는 예술을 ‘배운다’기보다 ‘자연스러운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항상 자녀에게 “재산은 없어도 세계를 배워야 한다.”라고 강조했고 이는 방혜자의 삶을 오래도록 이끄는 이정표가 되었다. 당시 아버지의 말은 가난을 견디라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조건을 넘어 더 넓은 세계를 자기 안에 들이라는 권유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방혜자는 해방 이후 한글 교육을 받은 첫 세대였기에 문자와 언어에 대한 감수성 또한 남달랐다. 외사촌 오빠였던 시인 김돈식의 영향 아래 국문학과 불문학을 가까이했고, 위고Victor Hugo, 모파상Guy de Maupassant, 랭보Arthur Rimbaud,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카뮈Albert Camus 같은 프랑스 문학을 읽으며 아직 가 보지 않은 파리를 마음속에서 먼저 경험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으나 언어와 이미지, 문학과 빛 사이에서 천천히 자기 세계를 찾아가며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때문에 방혜자의 작품을 물질적인 색과 재료의 차원에서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그림에는 언제나 시적 사고가 있었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색과 질감, 빛의 진동으로 옮기려는 문학적 충동이 함께 흐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혜자는 회화 작업뿐 아니라 시집과 수필, 동화 등을 쓰며 글과 그림을 함께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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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혜자 그림, 『새벽』, 알렉상드르 기유모즈 옮김, 2013, 도반

방혜자 그림, 『새벽』, 알렉상드르 기유모즈 옮김, 2013, 도반

방혜자, 『빛으로부터 온 아기』, 2012, 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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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방혜자, 이인호, 이해인, 『대화』, 2007, 샘터

1961년 방혜자는 서울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파리행 비행기 표를 샀다. 오늘날에는 다소 낭만적인 예술가의 일화처럼 들릴 수 있지만 당시의 시대적 조건을 떠올려 보면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진 대담하고도 절실한 선택에 가까웠다. 6·25 전쟁과 4·19 혁명을 거친 직후의 한국 사회는 젊은 세대에게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이었고 많은 이들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던 시기였다. 방혜자에게 유학은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일을 넘어 자신의 삶과 감각을 다시 열어젖히기 위한 하나의 통로였다.

 

특히 파리는 그녀에게 낯선 도시이기 이전에 이미 문학과 예술을 통해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장소였다. 그렇기에 파리로의 이동은 삶의 환경을 바꾸는 동시에 감각과 정신의 지평을 넓혀가는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내면의 방향성은 학창 시절의 경험과도 이어져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야외 풍경화 수업에서 미술 교사 김창억은 “예술가는 손으로 그리는 재주보다 마음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는데 이 가르침은 이후 방혜자가 예술가로 살아가는 동안 오래도록 붙든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뛰어난 기교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본다.”라는 그 말만큼은 자신의 예술을 끝까지 지탱해 주는 문장처럼 받아들였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 방혜자는 정규 미술학교와 사설 아카데미를 오가며 프레스코, 이콘,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기법을 익혀 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 그녀는 재료와 화면이 지닌 물성과 표현 가능성을 깊이 탐색했고,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빛’을 어떤 물질과 표면 그리고 어떤 깊이와 투명도로 드러낼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녀에게 기술에 대한 배움은 곧 빛의 본질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탐구와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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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地心)›,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100 × 8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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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1965,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가죽 콜라주, 130 × 81 cm

도불(渡佛) 초기의 작업은 유화와 콜라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관심은 재료 자체의 물성과 감각으로 점차 확장되어 갔다. 방혜자는 한지와 닥지, 지점토, 무직천, 남프랑스 루시용 지방의 황토와 천연안료 등 다양한 재료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한지와 닥지 같은 재료는 그녀의 작업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재료는 빛을 화면 표면 위에 입히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화면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빛이 서서히 배어 나오도록 만드는 매개로 기능했다. 그 때문에 방혜자의 화면 속 빛은 눈앞에서 즉각적으로 반짝이는 빛이 아니라 물질 내부에 오래 스며들어 있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떠오르는 빛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관람객은 그녀의 작품 앞에서 이미지를 바라보는 경험을 넘어 화면 깊숙한 곳에서 아주 미세한 숨결과 진동이 천천히 퍼져 나오는 듯한 감각과 마주하게 되었다.

 

방혜자의 작업에서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는 1966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베르메르의 빛 속에서Dans la lumière de Vermeer»를 보았던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베르메르의 빛은 사물을 밝게 비추는 기능적 요소에 머물지 않고 존재를 고요하고 깊게 드러내는 힘처럼 다가왔다. 방혜자는 그 빛을 통해 자신이 평생 붙들어야 할 예술적 질문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향했던 방향은 인상주의 화가가 탐구했던 외부 세계의 빛과는 달랐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자연광의 변화 자체보다 인간 내면에서 발현되는 빛, 다시 말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조용히 울려 나오는 보이지 않는 빛이었다. 그렇게 방혜자의 회화는 외부 세계를 충실히 재현하는 차원을 지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기운과 진동을 화면 위에 드러내는 작업으로 이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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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휴스턴 브라운 갤러리 전시 리플렛(좌: 앞면, 우: 뒷면)

이 시기 방혜자는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피에르 쿠르티옹Pierre Courthion을 만나게 된다. 쿠르티옹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방혜자의 작업에서 남다른 가능성과 방향성을 발견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1967년 휴스턴 브라운 갤러리Galerie Houston Brown 전시 서문에서 방혜자의 초기 작품이 이전보다 한층 절제되고 정돈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두껍게 쌓인 물감 위에 가죽과 모래를 섞어 만들어 낸 질감이 인간의 흔적과 감각을 환기한다고 보았다. 그의 시선은 단순히 재료의 특이성에 머물지 않았다. 쿠르티옹은 이미 그 안에서 물질과 감각, 기억과 자연이 서로 얽혀 만들어 내는 방혜자 회화의 고유한 분위기를 읽어 내고 있었다.

이러한 해석은 1976년 갤러리 현대 개인전 서문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쿠르티옹은 방혜자의 작품이 대상을 재현하는 그림도 아니고 형식적 추상에 머무는 회화도 아니라고 보았다. 대신 그 안에는 서울과 경주에서 마주했던 땅의 감각, 갈색 산 아래 펼쳐진 논밭의 풍경, 냇물과 바위가 지닌 거칠고도 야생적인 기운이 깊게 스며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방혜자의 작업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추상이 아니라 자연의 가장 근원적인 감각과 생명성을 다시 화면 위로 길어 올린 회화라는 점을 정확히 짚어 낸 해석이었다. 실제로 방혜자의 화면은 자연 풍경을 직접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흙과 물, 바람과 빛의 감각을 강하게 불러일으켰고 관람객은 그 앞에서 특정 이미지를 읽기보다 자연의 깊은 기운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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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Centre Maydieu 전시 개막식(사진 왼쪽부터 피에르 쿠르티옹, 메이듀 센터장, 이자벨 루오, 방혜자)

방혜자의 작업 세계를 깊이 이해했던 또 다른 인물로는 스위스 출신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앙드레 소즈André Sauge가 있다. 그는 1970년 방혜자를 처음 만난 이후 여러 차례 그녀의 작업에 대한 글을 남겼으며 특히 한지의 물성과 빛의 관계를 매우 시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소즈는 방혜자가 한지를 통해 인간이 쉽게 파악하거나 붙잡을 수 없는 존재의 빛을 화면 위로 끌어 내려 한다고 보았고 그녀의 회화가 마치 빛이 숨 쉬는 장소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이 해석이 인상적인 이유는 실제로 방혜자의 화면이 빛을 재현한 이미지라기보다 빛이 생성되고 머물다가 다시 사라지는 하나의 공간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화면 곳곳에 남겨진 한지의 주름과 층위는 빛의 움직임을 붙잡으면서 동시에 빛이 지나간 흔적과 시간을 조용히 머금고 있는 표면처럼 느껴진다.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피에르 카반느Pierre Cabanne 역시 방혜자의 빛을 단순한 자연의 빛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빛을 예견적 권능에 의해 드러나는 빛의 분출이자 천체의 떨림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부터 들려오는 어떤 부름과 소리의 형태로 해석했다. 이러한 평론은 공통적으로 방혜자의 작업이 단순한 회화적 형식이나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정신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어 읽혀 왔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방혜자의 회화는 색과 형태의 아름다움을 넘어 쉽게 언어로 옮길 수 없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1968년부터 1976년까지 이어진 한국 체류 시기는 방혜자의 작업 세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프랑스인 알렉상드르 기예모Alexandre Guillemoz와 결혼한 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그녀는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그 사이 두 아이를 출산하면서도 작업의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육아와 생활이 중심이 되는 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꾸준히 개인전을 열고 벽화를 제작하며 자신의 회화를 이어 나갔다. 오히려 이 시기의 경험은 그녀를 한국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전통미술의 깊은 층위 안으로 더욱 가까이 이끌었다.

 

특히 방혜자는 경주에 자주 머물며 불국사와 석굴암, 오래된 석조 유물과 산세가 만들어 내는 한국적 풍경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녀가 주목한 것은 유적의 역사적 가치와 함께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흔적이었다. 오래된 돌과 흙, 사찰의 빛과 공기 속에는 인간과 자연, 시간과 정신이 오랜 세월 겹쳐지며 만들어 낸 고유한 감각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방혜자는 그 안에서 자신이 오래 탐구해 온 빛의 근원을 다시 발견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녀의 화면 속 빛이 보다 깊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변화하는 데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방혜자는 그 안에서 자신이 오래 탐구해 온 빛의 근원을 다시 발견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녀의 화면 속 빛이 보다 깊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변화하는 데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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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1974, 캔버스에 유화 물감, 천, 한지 콜라주, 91 × 65 cm

한편 당시 방혜자는 프랑스에서 일본문화원이 개관하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일본 문화는 체계적으로 소개되고 있었지만 한국의 문화유산과 미학을 프랑스어로 깊이 있게 설명하는 자료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느낀 그녀는 자신이 존경하던 미술평론가 피에르 쿠르티옹 부부를 직접 경주로 초청해 불국사와 석굴암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았고 훗날 세르클 다르Cercle d’Art 출판사에서 『Trésors de Corée: Bulguksa et Seokguram(한국의 문화유산, 불국사-석굴암)』이 출간되는 밑바탕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방혜자에게 이 시기의 한국 체류는 한국의 자연과 정신문화를 더욱 깊이 체화하고, 이를 세계와 연결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1976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방혜자는 파리에서 더 본격적인 작업 리듬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김창열 화백의 권유로 파리 베르나르댕가에 위치한 학교 다락방을 작업실로 사용하며 다시 제작에 몰두했고 1979년에는 파리 14구에 자신의 아틀리에를 마련하면서 한층 안정된 작업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매일 아침 명상과 수련으로 하루를 시작한 뒤 작업에 집중하는 생활 방식을 오랫동안 이어 갔다. 반복적으로 이어진 이러한 행위는 내면의 감각을 맑게 다듬고, 화면 안에 응축된 빛의 깊이를 형성해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방혜자의 작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각적 이미지 이상의 정신적 울림과 명상성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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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닥지, 먹, 천연 안료, 파스텔, 130 × 97 cm, 방혜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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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노래›, 1987, 한지에 배접, 캔버스에 채색, 아크릴릭 물감, 유화 물감, 116×81cm, 방혜자재단

이 시기 그녀의 활동 무대도 점차 넓어졌다. 방혜자는 파리 갤러리 자크 마솔Galerie Jacques Massol 개인전을 비롯해 뉴욕 한국화랑의 «파리의 한국작가 5인전», «유네스코 회관 회고전»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국제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동시에 바통 폴리 극단의 설립자인 시릴 디브Cyrille Dive의 요청으로 가면극학교에서 서예를 가르쳤고 이후에는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도 프랑스인에게 서예를 지도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에게 문자와 몸짓, 선과 호흡의 관계를 더욱 깊이 사유하게 만들었다. 방혜자에게 서예는 문자 교육의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시와 문자, 서예와 회화는 서로 분리된 장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리듬과 빛을 드러내기 위한 또 다른 감각의 언어였다.


1987년부터 한지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방혜자의 작업은 또 한 번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한지는 그녀에게 그저 그림을 그리는 바탕 재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구겨지고 접히며 안료를 머금고 다시 펼쳐지는 살아 있는 물질에 가까웠고, 동시에 빛이 스며들고 지나갈 수 있는 하나의 몸처럼 기능했다. 이 시기 이후 방혜자는 지점토와 닥지, 황토, 무직천 등 다양한 재료를 함께 사용하며 화면 구조 자체를 바꾸어 나갔다. 그렇게 그녀의 화면은 평평한 회화적 표면을 넘어 숨을 쉬듯 안쪽과 바깥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간으로 변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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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과 손을 잡고›, 1988, 캔버스, 한지에 유화 물감, 195 × 130 cm

특히 종이를 손으로 구기고 펼치는 과정에서 생겨난 우연한 주름은 화면 안에 예측할 수 없는 선과 깊이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천연안료가 앞면과 뒷면을 오가며 천천히 스며들자 빛은 표면 위에 칠해진 색처럼 보이기보다 화면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배어 나오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변화는 방혜자의 회화를 더욱 독특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방혜자의 작업에서 물성은 재료나 기법의 한계를 넘어 생명과 정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통로로 작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시기 이후 방혜자의 회화는 점차 대지의 감각에서 생명의 차원으로, 다시 생명에서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되어 갔다. 이러한 변화는 작품 제목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햇님 나들이›, ‹우주의 노래›, ‹은하수의 길› 같은 제목에서는 이미 우주적 상상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우주› 연작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한지의 주름 위에 반복적으로 쌓인 점묘적 붓질은 밤하늘에 흩어진 별처럼 화면 전 공간을 채워 나갔고, 그 결과 그녀의 회화는 더 이상 특정 장소의 풍경을 재현하는 작업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극도로 미세한 생명의 세계와 거대한 우주의 질서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동시에 숨 쉬는 공간으로 변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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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노래(宇宙頌)›, 1976, 캔버스에 유화 물감, 톱밥, 파피에 콜레, 99.8 × 1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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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님 나들이›, 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 한지 콜라주, 51 × 5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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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의 길›, 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 한지 콜라주, 100 × 81 cm

흥미로운 점은 방혜자가 바라본 우주가 거대한 장관이나 신비로운 천체 이미지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녀에게 우주는 하나의 세포와 하나의 별, 인간의 몸과 먼 은하가 서로 닮아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하는 세계였다. 다시 말해 그녀의 우주는 크고 장엄한 세계를 묘사하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명적 감각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화면 속 별빛과 점은 우주 이미지를 넘어 생명과 에너지의 흐름 자체를 시각화한 흔적으로 읽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프랑스 천체물리학자 다비드 엘바즈David Elbaz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방혜자의 ‹우주› 연작을 보게 되었고, 허블망원경을 통해 관측된 우주 이미지와 그녀의 작품 사이에서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천체물리학자가 첨단 장비와 복잡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포착한 별과 은하의 생성, 팽창, 소멸 장면이 방혜자의 화면과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과학자들이 공개한 우주 이미지 가운데 상당수는 방혜자가 이미 유사한 형상의 작품을 제작한 이후에야 관측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엘바즈는 방혜자의 작업 안에서 과학적 발견과는 다른 방식의 직관적 우주 감각을 읽어 내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2009년 2월 13일 파리 피에르 마리 퀴리 대학Université Pierre-et-Marie-Curie에서 열린 «예술과 과학» 콘퍼런스에 함께 참여하여 “별과 빛, 직관적인 화가와 우주적 맥락”을 주제로 대담과 강연을 진행했다. 이 만남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회화와 우주 사진이 닮아 있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술가의 직관과 과학자의 탐구가 서로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 움직이면서도, 결국 동일한 세계의 구조와 질서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방혜자의 회화를 통해 오랫동안 감각과 직관을 통해 탐색해 온 우주의 이미지가, 과학의 언어를 통해서도 다시 확인되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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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빛›, 2002, 무직천에 천연채색, 230 × 22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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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빛›, 2001, 부직포에 유화 물감, 205 × 245 cm

방혜자의 작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생명에 대한 감각이 깊게 흐르고 있다. 그녀에게 빛은 차갑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존재가 내쉬는 숨결에 가까웠고, 끊임없이 생성되고 움직이며 서로를 연결하는 생명의 에너지였다. 그래서 그녀의 화면 속 작은 점과 입자는 빛과 생명의 흐름을 드러내는 중요한 흔적으로 자리한다. 그것은 때로는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고, 때로는 현미경 속 세포처럼 느껴지며, 어떤 순간에는 생명이 태어나기 직전의 미세한 떨림처럼 다가온다. 이러한 감각은 방혜자가 평생 탐구했던 빛의 세계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방혜자는 자신의 두 아이를 “빛으로 온 하늘의 선물”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녀가 생명을 얼마나 깊이 빛과 연결해 생각했는지를 잘 드러낸다. 방혜자의 작업에서 생명은 특정한 인물이나 동식물의 형태 등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대신 화면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호흡한다. 색과 색이 서로 스며들고, 선과 선이 만나며, 수많은 입자가 충돌하고 퍼져 나가면서 화면 안에는 끊임없이 생성과 순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객은 그녀의 회화를 바라볼 때 하나의 이미지를 읽는다기보다 살아 있는 에너지의 흐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ESSAY]빛을 오래 보는 사람 방해자_23

‹빛의 숨결›, 2002, 석판화, 50 × 42 cm

그리고 이 오랜 작업의 여정 뒤에는 비교적 잘 드러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중요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방혜자의 남동생인 방훈 예술감독이다. 캐나다에 거주하던 그는 누나의 전시가 열리는 곳이라면 한국이든 프랑스든 미국이든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다. 방훈 감독은 항상 전시 공간을 직접 확인하고 작품 목록을 정리했으며, 작품 상태를 점검하고 출납과 이동을 관리하는 일까지 세심하게 맡아 왔다. 여기에 더해 홍보와 개막식 준비 같은 실무적인 일까지 도맡으며 방혜자의 작업이 안정적으로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곁을 지켜 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 모든 일이 업무 지원의 범위를 넘었다는 데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면서도 방훈 감독은 누나의 예술 세계를 깊이 존중했고, 그 세계가 온전히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내어 주었다. 우리는 종종 예술가의 삶을 고독한 천재성과 창작의 신화로 기억하지만, 실제로 하나의 예술 세계가 오랜 시간 지속되기 위해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돌봄과 관리, 기록과 신뢰가 반드시 필요하다. 방혜자가 평생 동안 ‘빛’이라는 하나의 질문에 흔들림 없이 집중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그 빛이 세상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길을 닦아 온 방훈 감독의 헌신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ESSAY]빛을 오래 보는 사람 방해자_24

‹빛의 눈›, 2005, 펠트위에 천연안료, 500 × 204 cm

찰나의 이미지가 쉼 없이 교차하는 시대에 방혜자의 작품은 응축된 시간과 침묵의 깊이를 환기한다. 그녀의 작품은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의 주름과 입자가 보이고, 조금 물러서면 안쪽에서 번져 나오는 빛의 호흡이 느껴진다. 다시 바라보면 처음 보이지 않던 색이 떠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화면은 이전과는 다른 깊이를 드러낸다. 그래서 방혜자의 그림 앞에 선다는 것은 그저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을 천천히 늦추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가 평생 붙잡았던 것은 빛 자체라기보다 어쩌면 빛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였는지 모른다.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끝까지 바라보는 사람이 드물 뿐이다. 방혜자는 그 드문 사람 중 하나였고, 그녀의 작품은 우리가 너무 빨리 지나쳐 버린 세계의 미세한 떨림을 다시 보게 만든다.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것이 어떻게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지, 그리고 한 사람이 평생 그것을 따라가며 어떤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일. 방혜자의 삶과 예술은 바로 그 질문 앞에 오래 머무는 법을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가르쳐 준다.

이제 그 ‘빛’을 직접 마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9월 27일까지 방혜자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화면 위에 번지는 색과 질감, 그 사이에서 미묘하게 떨리는 빛의 결은 사진이나 글로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의 숨결이 보이고, 다시 한 걸음 물러서면 그 안쪽에서 퍼져 나오는 빛의 깊이가 드러난다. 그 미묘한 거리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은 날, 잠시 걸음을 늦추고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빛 앞에 서 있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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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精氣)›, 1969,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가죽 콜라주, 131 × 194 cm

Artist

방혜자(1937~2022)는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 재불 화가로, ‘빛의 화가’로 알려진 작가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ENSBA에서 수학했다. 

1960~1970년대에는 마티에르 중심의 회화를 실험하며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업을 전개했고, 이후 한지와 천연안료를 통해 ‘빛’을 탐구하는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하였다. 

1980년대 이후 ‘우주’와 ‘생명’으로 주제를 확장하며 공간적 작업으로 발전시켰고, 2018년에는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참여했다. 

60여 년간 활동하며 물질적 재료를 통해 비물질적 ‘빛’을 탐구한 독창적인 작업을 남겼으며, 2022년 작고하였다. 

전시와 관람 정보

-전시명: «방혜자 —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전시 기간: 2026. 4. 24(금)~9. 27(일)

-전시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5층, 기획전시실(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정기 해설: 매일 오후 2시-관람 시간: 10:00~18:00(화~일)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Writer

마동은(Ma Dong Eun)은 2005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현대미술 전시기획과 미술 비평 작업,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다원예술 기획을 꾸준히 이어 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구미술관 등 공공미술 기관에서 다양한 전시기획과 예술 행정을 맡았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융복합 미술과 다매체성 중심의 다원예술에도 관심이 깊다. 현재 서울의 한 사립미술관에서 부관장으로 재직하며 동시대 미술과 기술, 공간, 관람 경험의 관계를 탐구하는 전시와 미술관 운영에 집중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공학과 감각적 연출을 접목해 보다 확장된 현대미술의 경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관의 스마트화’를 화두로 디지털 기술이 예술 창작과 장르 간 협업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