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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이렇게 된 이상 혼종으로 간다

Writer: 서성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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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서성협 작가는 과거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그를 작가로 만든 계기는 다름 아닌 ‘현타’였어요. 창작자로서 나름대로 땀 흘리고 있지만 단 1mm라도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현실에 디자이너로서 쌓은 커리어를 과감히 버리고 작가로 전향해 새출발한 지 5년여가 흘렀습니다. 신진 작가의 마음으로 열심히 또 열심히 생각하고 상상하고 제작하고 발표하는 삶이지만, 슬럼프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아찔한 건 매한가지. 사실 그의 왕성한 작업에 위기가 찾아온 건 다둥이 아빠라는 현실이랍니다. 작업과 육아, 생계까지 모두 잘 꾸려나가는 방법이 절실하지만, 일단 그에겐 자신이 믿는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죠. 작은 일이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던히 작업을 지속하는 인내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는 위상학적 방법론에서 파생한 감각을 위상감각이라 정의하고 여러 작업을 발표했는데요. 최근에는 순종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순종화 과정에서 제거된 다양한 가능성을 복원해 이를 다시 섞인 상태로 재현하고 변용하며 혼종의 정체성, 혼종의 공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한국 사회가 그와 가족에게 끼치는 영향과 에너지를 관찰하며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혼합하며 혼종의 가능성을 찾는 거죠. 다양성과 실험성을 몸소 보여주는 서성협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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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감각 Ver.1›, 2020. 사진:김진호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시각예술가 서성협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 또한 나름대로 창작의 영역에서 땀 흘리고 있는데, 내게는 단 1mm조차 누군가―클라이언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구나…’ 그 이후, 작가로 전향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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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 – Take. 3›, 2021. 거문고 작곡 & 연주: 박다울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10년째 사용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가구 브랜드 쇼룸이었고, 이후 디자인 스튜디오 사무실로 쓰다가, 지금은 개인 스튜디오로 운영 중입니다. 1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이라 평소에는 스튜디오 앞 도로까지 나와서 작업하는 날이 많습니다. 몇 년째 길바닥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동네 분들은 여전히 신기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주로 일상에서 얻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 본 것, 주변의 것이 작품에 담깁니다. 최근에는 작품에 필요한 도구나 재료를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에서 구입하곤 하는데요. 그 와중에 신기한 하드웨어나 장식품을 마주하면 ‘이걸 어디에 써볼까?’ 상상하며 새로운 조형적 영감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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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 TINC,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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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 TINC, 2022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어느 날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요. 매체와 관련한 아이디어일 때도, 진중한 개념일 때도 있어요. 그런 생각을 짧은 글로 옮겨 두었다가 스케치를 통해 구체화해서 그려 놓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만들기 시작해요.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해 발표한 신작 위주로 소개하는 게 좋겠네요. 먼저 ‹껍데기의 기념비›는 ‹기념비› 연작의 일부입니다. 올해 공개한 신작에서는 방파제를 라탄과 가죽이라는 가볍고 유연한 재료로 만들었어요. 라탄과 가죽은 각자의 물성은 독특하지만, 모두 표면의 경계를 형성하는 껍데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요. ‹껍데기의 기념비›에서는 라탄과 가죽을 활용해 내부가 빈 테트라포드를 제작했습니다. 이전 작품과 조형적인 연결성을 유지하면서도, 껍데기라는 경계 공간과 재료의 특성을 시각적으로 탐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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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의 기념비 #01-03›, 2024. 사진: 조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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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01›, 2022

‹free-form frame›은 ‹도판› 연작의 도상을 우레탄폼을 활용해 변주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물성보다는 해당 재료를 사용하는 맥락과 공간이 재료를 선택하는 데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는데요. 우레탄폼은 부재 사이의 틈을 메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건축 자재입니다. 밖으로 삐져나온 부분을 매끈하게 자르고 다른 마감재로 덮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죠. ‹free-form frame›은 이렇게 숨어 있던 우레탄폼을 겉으로 드러냈어요. 이번 신작에서 라탄과 우레탄폼을 재료로 처음 활용한 것처럼, 이어지는 작업에서도 재료 물성에 관한 연구를 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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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form frame: 위장›,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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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form frame: 위장›, 2024

‹free-form frame: 포섭›,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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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경계;안과 밖›, 2024. 사진: 조준용

‹흡기와 배기›는 다년간 창작 방법론으로 삼은 위상학적 배경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흡기와 배기는 동력기관이 산소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기계적 행위인데요. 이 호흡의 메커니즘은 인간의 들숨과 날숨에 비유해 하모니카와 위상학적으로 연결할 수 있어요. 이처럼 생성의 메커니즘을 위상수학의 위상동형으로 상정하면, 이질적인 것 혹은 다른 위계에 있는 것을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이 열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범주나 위계의 사이와 경계 공간을 탐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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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기와 배기›, 2024. 사진: 고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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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 2024. 사진: 고정균

최근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지난 몇 년 동안 작업의 중심에는 혼종성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최근에는 이전에 다루던 혼종의 정체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혼종의 공간으로 주제를 확장했습니다. 혼종을 특정한 장소로 개념화하고, 그 소수성과 생성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죠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최근 작업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내년에는 머릿속과 영감을 채우는 시간을 가져야만 할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기보다, 작품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며 1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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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종예찬», 김희수 아트센터, 2023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얼마 전 둘째 아이가 태어났어요. 올해 전시가 유독 많아서 스튜디오와 집을 오가며 작업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일상이라는 단어가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가 작업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최근에는 아주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육아하시는 다른 작가님들은 어떤 루틴으로 작업하시는지 궁금하고, 노하우를 청해 듣고 싶네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한국 사회’와 더불어, 문화적 맥락에서 여태 말하던 ‘우리나라’가 무엇인지, 요즘 문득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지금까지 엄마 품처럼 따뜻하게 느꼈다면, 이제는 제 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처럼 다가옵니다. 저는 과연 ‘우리’ 안에 있는 걸까요, 아니면 밖에 있는 걸까요? 조만간 이 주제를 바탕으로 작품 하나를 시작하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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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욱-육, 버언-쩍›, 2024. 사진: 박수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아시다시피 저는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데요. 저는 다문화 가정의 일원입니다. 저와 가족이 사회로부터 받는 영향과 그 에너지를 유심히 관찰하는 태도가 그대로 주제 의식이 되어 작업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작가로 데뷔한 지 5년가량 됐어요. 소위 신진 작가군에 속하죠. 그래서인지 아직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처음 시작할 때처럼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보고, 열심히 창작하고 있어요. 하지만 ‘슬럼프’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아찔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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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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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03›, 2023

‹도판 #05›, 2023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다둥이 아빠가 작가로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작업과 육아 그리고 생계까지 모두 잘 꾸려가는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가능할까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보다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고, 작가로서의 ‘나’보다 ‘나의 작품’이 더 사랑받길 원하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던히 지속할 수 있는 인내력이 필요해 보여요. 언제나 좋을 수는 없으니, 외부 상황이 아니라 작업에 집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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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액자›, 2020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아직은 ‘어떤’보다 ‘기억되는’에 방점을 두고 작업하고 싶습니다. 어떤 인상이든 기억에 남았다면 이미 절반의 성공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입장에서 못다 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네요. 해외, 정확하게는 제 아내와 아이들의 나라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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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서성협(@seo_archives)에게 ‘위상학적’이란 서로 다른 매체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감각을 뒤섞는 방법이다. 이런 위성학적 방법론에서 파생되는 감각을 위상감각이라 정의하고 고유의 형식으로 정립 중이다. 최근에는 혼종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 매체와 형식의 혼합 방식을 찾고 있다.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말하는 순종의 개념, 즉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순종화되는 과정에서 제거된 다양한 가능성을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섞인 상태로 재현하고 변용해 순종이 만들어 온 서사, 즉 전통과 순종의 공동체에 대한 허구성을 조명한다. 개인전으로 «MIXED SUBLIME»(공간 형, 2023), «잡종예찬»(김희수아트센터, 2023), «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TINC, 2021), «위상감각»(얼터사이드, 2020)을 열었고, «전시후도록»(WESS, 2022), «미술관의 입구 : 생태통로»(경기도미술관, 2022), «ECHOLESS»(별관, 2022)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에 입주 작가로 참여했고, 같은 해 ‘퍼블릭아트 뉴히어로’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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