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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보는 재미가 있는 사람

Writer: 포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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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홍세인 작가는 서울에서 포푸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묘한 색감과 러프한 텍스처가 매력적인 리소 인쇄(Risograph)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앗 포푸리 작업인가?’ 느낌이 확 오는 일러스트레이션은 보고 또 봐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의 작업은 모두 글에서 시작해요. 이야기를 짓고, 이를 시각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그림이 말을 거는 느낌이 들어요. 홍세인 작가는 무엇을 만들지 꾸준히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구체화해서 결과물로 내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요.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이 저절로 지속되도록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보는 재미가 있는 창작을 꿈꾸는 홍세인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서울시립미술관 워크숍 ‹바운더리: 소리 기억 만지기› 포스터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포푸리popurri’를 운영하는 홍세인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리소 인쇄(Risograph)를 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 2학년 때쯤 한창 인쇄 방법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요. 광택이 없는 인쇄법을 찾다가 리소 인쇄를 알게 됐어요. 당시 유럽에서 리소 인쇄를 시각 매체에 꽤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여행에서 접한 리소 인쇄물, 진, 소규모 프레스 등이 굉장히 새롭고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4학년이 되고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개인 작업을 직접 리소 인쇄하면 좋을 것 같아서 중고 리소 인쇄기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디지털 인쇄기와 뭐 얼마나 다르겠어?’ 막연한 자신감으로 무작정 시작했죠. (웃음) 어려움도 많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쭉 포푸리라는 이름으로 스튜디오를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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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LOR MIXER vol.1.5.›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2018년부터 지금의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어요. 6호선 망원역과 가깝고 사람들이 항상 북적이는 거리에 있는 작업실이에요. 창문을 열면 요즘 무슨 노래가 유행하는지 바로 알 수 있어요. 혼자 사용하기에는 조금 큰 편이라, 안쪽 방은 다른 작업자분들과 쉐어하고 있습니다. 페어에서 구입했거나 직접 인쇄한 리소 책이 작업실에 굉장히 많은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작은 도서관 같은 공간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서 뭔가 생각나면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개인 작업과 커미션 작업을 하는 과정이 조금 다른데요. 공통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모두 ‘글’에서 시작한다는 점이에요. 짧든 길든 길이와는 상관없이 이야기를 짓고, 그 이야기가 시각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립니다. 개인 작업은 보통 이야기를 짓고 그림으로 나오기까지 꽤 텀이 있는데요. 메모장에 묵혀둔 짤막한 이야기를 골라서 하나의 주제로 엮어요. 보통 여러 페이지의 책 형태로 완성하기 때문에 물성에 대한 부분도 생각하게 되죠. 한 손에 잡히는 아주 작은 사이즈부터 포스터처럼 벽에 걸어둘 수 있는 큰 사이즈까지 책의 크기와 모양을 고민해요. 리소 인쇄로 진행하는 작업은 분판이 수월하도록 사용하는 색상과 레이어 분리 등을 미리 계획하고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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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소 컬러차트 ‹24 Risograph Colors›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올해 초에 PRNT에서 작은 개인전을 했어요. 몇 년간 작업한 캘린더를 모아서 전시했죠. 날짜가 적혀있지만 달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어서 저는 그림책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2019년부터 캘린더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스티커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작은 칸이 연속되는 달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조금씩 변하는 사물(예를 들어, 점점 썩어가는 사과)을 그리려고 했는데, 한 달에 해당하는 30개 칸에 흐르는 시간의 길이를 아주 길게 늘이고 그동안 기록한 이야기를 넣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메모장에 적어두는 이야기는 보통 갑자기 떠올라서 급하게 적은 거라 시작과 끝이 모호해요. 기승전결 중 ‘기승’ 정도만 존재하는, 짧은 상상에 가까운 게 많아서 30개로 제한된 칸에 넣기에 적당하죠. 이렇게 2년 동안 달력 형태로 캘린더를 만들었고, 그 후로는 메모지처럼 한 장씩 뜯어낼 수 있는 일력, 요일 막대를 바꿔 끼우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만년 달력도 제작했습니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 달에 한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계속 유지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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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ess 21st Century Calendar»(2024, PRNT) 포스터

‹2024 Everyday Calendar: Long Long Linguine›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한 줄짜리 상상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일상의 상황에 가상의 사건을 덧붙인 증강현실 같은 것으로, 우리의 일상이 그렇듯 대개는 명확한 결말 없이 끝이 나고 달이 넘어가면 새로운 사건으로 전환된다.’ 최근 열었던 개인전 소개 글의 일부입니다. 캘린더뿐 아니라 제가 했던 대부분의 작업에서 보여주려던 이야기는 이런 형태를 띠고 있어요.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기보다는, 일상의 평범한 상황에 엉뚱한 사건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상상하는 일이 제게 익숙하고, 또 즐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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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아모레하트’ 디지털 아트워크

해당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을 하면서 점점 애정이 커지는 터라 보통 완성하면 객관성을 잃고 좋게만 보이네요. 오히려 시간이 지난 후 작업을 다시 봤을 때 고치고 싶고 아쉬운 부분이 생각나요.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바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요. 중간 정도로 바쁠 때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제일 먼저 저희 집 강아지 밀레와 망원동 작업실에 출근합니다. 그날 해야 할 인쇄를 확인하고 리소 인쇄를 진행해요. 이메일에 답장하다 보면 중간중간 인쇄물을 찾기 위해 손님들이 방문합니다. 인쇄 업무가 끝나면 그림 작업을 하는데요. 보통 집에서 집중이 더 잘돼서 집으로 돌아와요.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저녁을 먹고, 힘이 좀 남아있거나 기분이 날 땐 운동을 하러 가죠. 이렇게 생각해 보니 굉장히 단조롭네요. 실제로 집-단골 카페-작업실 정도만 오가고, 평일에는 마포구를 잘 벗어나지 않는 편이에요.

『밀레는 정말 의리 있는 강아지』, 2023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저 자신이나 주위 사람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하는데요. 궁금증이 많은 만큼, 관심사도 매우 자주 바뀌는 편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관심사가 다를 정도에요. 검색 내역을 확인해 보니, 방글라데시 여행, 앞접시, 비스크 육수 레시피가 오늘의 관심사였네요. 최근 3개월 이내로 가장 큰 관심거리는 아무래도 카메라… 새로 샀거든요. 그리고 영수증처럼 나오는 미니 프린터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도 지금까지 제일 오랫동안 관심을 둔 대상은 일러스트레이션과 리소 인쇄인 듯해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는 없었어요.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대체로 빨리 잊는 편입니다. 다만 작업 방식에 대한 생각은 가끔 해요. 그림에 움직임을 넣는다거나, 인쇄 매체가 아닌 다른 형태로 작업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에 새로운 걸 조금씩 섞어서 시도해 보고 싶어서요. 그림 자체에 대해서도 가끔 고민하는데, 유난히 표현하기 어렵거나 피하고 싶은 소재와 모양이 있어요. 커미션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원하는 것만 그릴 수는 없으니 그런 것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질 수 있도록 랜덤하게 나오는 주제를 연습하는 책을 만드는 중입니다.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눈 키워드를 무작위로 섞어서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카테고리 1: 튤립, 바나나, 공’, ‘카테고리 2: 굴리다, 불다, 뛴다’, ‘카테고리 3: 작게, 크게, 빠르게’처럼 여러 가지 키워드를 카테고리별로 정하고 랜덤하게 섞어서 ‘튤립을 굴리는 모습을 작게 그리기’라는 단어를 만들고 그림으로 어떻게든 표현하는 거랍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관람 예절 애니메이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미술관 사용설명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감상과 대화를 위한 질문 카드›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일상 속 걱정은 어느 정도 제 상상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실에서 진짜 부딪히는 것들은 (다행이라 해야 할지) 보통 어떻게든 지나가서, 문제까지는 아니었던 게 대부분이었어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무엇을 만들지 꾸준히 생각하는 것,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구체화하여 결과물로 내보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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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SF 몸 짓기› 포스터

(우)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50주년 캘린더’ 일러스트레이션

(상) 서울시립미술관 워크숍 ‹SF 몸 짓기› 포스터

(히)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50주년 캘린더’ 일러스트레이션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각자 살아온 방식이 달라서 노하우라고 말할 게 딱히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지속되지 않을까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보는 재미가 있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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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사물’ 책갈피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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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사물 2’ 책갈피 세트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주위 사람들과 재미있게 잘 살고 싶어요.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리소 인쇄물 도서관이자 아카이빙 룸 같은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조금은 구체적인 미래도 그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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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veryday Calendar: Long Long Linguine›

Artist

홍세인은 서울에서 ‘포푸리popurri’를 운영하며 일러스트레이션 기반의 그래픽 디자인 작업과 리소 인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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