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아트페어에 관심 많으신가요?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만들어낸 올가을 서울의 아트 신은 화제 만발이었는데요.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 아트페어, ‘아트 부산’이 10년 넘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아트부산이 얼마 전 새로운 페어를 서울에 론칭했어요. 지난 11월 1일부터 5일간 성수동 일대에서 열린 ‘디파인 서울DEFINE SEOUL 2023’입니다. 컬렉터블 디자인과 예술품을 함께 다루면서, 지루한 컨벤션센터를 벗어나 성수동 곳곳에 자리한 여러 전시장을 산책하는 콘셉트는 여러모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디파인 서울에 대한 깊이 있는 리뷰와 생동감 있는 현장 사진, 더불어 페어를 지휘한 정석호 아트부산 이사의 인터뷰까지! 비애티튜드만의 시선으로 디파인 서울을 기록하고, 살펴보고, 그 의미를 복기했습니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특별한 콘텐츠를 지금 바로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좋은 경험은 쉬이 휘발되지 않는다. 서서히 사라지며 존재감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함께 겪은 사람에게는 대화의 주제로, 모르는 사람에게는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그리고 모두에게는 다시 한번 경험하길 원하는 아쉬움으로. 지난 11월 1일 성수동 일대에서 열린 ‘디파인 서울DEFINE SEOUL 2023’은 이에 대한 좋은 예인 것 같다. 행사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디파인 서울 이야기가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가보셨어요?”라는 확인과 “참 좋았더라” 같은 상찬부터, 자기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과 아쉬웠던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콕 집어 말하거나,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모든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아직 어떠한 정보도 없는 내년 디파인 서울에 대한 기대감이다. 무엇보다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대화 도중 자연스럽게 레퍼런스로 튀어나오는 경우였다. “아, 그렇죠. 얼마 전 열렸던 디파인 서울처럼 말이에요.” 같은.
듣는 이가 당연히 알 것처럼 각종 대화에서 호명되는 디파인 서울은 놀랍게도 올해 처음 열린 행사다. 게다가 글로벌 오거나이저가 기획한 해외 행사의 서울 버전도 아니다. 온전히 로컬에서 기획한 오리지널이다. 요 몇 년간 서울에서 열린 흥미로운 문화 행사 중 가장 파급력이 컸던 예시로 ‘프리즈 서울’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때 ‘드디어’라는 표현이 참으로 많이 등장했다. 많은 사람이 존재를 인지하던 해외 유명 아트 페어가 서울에서 열리는 사건에 대한 감회와 신기함이 복잡하게 얽힌 반응이었다. 흥미롭게도, 디파인 서울에 대해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 또한 ‘드디어’였다. 어쩌면 디파인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과 행사의 정체성은 감탄사에 가까운 이 짧은 단어 하나에 집약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듯싶다. 과연 디파인 서울이 어땠길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걸까.
디파인 서울은 ㈜아트부산에서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페어 브랜드다. ㈜아트부산은 아트 불모지라 여겨지던 비서울지역, 그중에서도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을 중심으로 2012년 아트페어를 시작한 이래 매년 쉬지 않고 5월이면 행사를 지속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여느 아트페어에 뒤지지 않는 국제적인 구성에다, 부산이 지닌 로컬리티에 기반을 두고 아트, 럭셔리, 휴양을 함께 즐기는 콘셉트가 컬렉터 사이에 반향을 일으키며, ‘아트부산’이란 아트페어는 어느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아트페어 중 하나로 그 존재감을 공고히 다지고 있다. 이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 10여 년 동안 끌어온 기획과 운영 노하우를 활용해 서울에 도전장을 내민 게 바로 디파인 서울이다.
디파인 서울의 독특한 점은 그 구성에 있다. 아트에 초점을 맞춘 아트부산과는 다르게 디파인 서울은 디자인과 파인아트를 총체적으로 다룬다. 행사 이름부터 ‘디자인design’과 ‘파인아트fine art’에서 앞부분을 따와 조합한 결과로, 두 영역을 연결하고 나아가 예술을 대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define)’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여기서 ‘드디어’라는 반응이 나온 첫 번째 이유가 있다. 아트페어가 보편화된 서구권에서는 행사에서 다루는 작품의 범주가 다양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컨템포러리 회화, 조각, 설치 미술은 물론이고, 귀 따갑게 이름을 들은 미술사 속 거장의 작품이나 뮤지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유물을 선보이기도 하고, 세상에 딱 한 점 있는 현대 공예품이나 과거 정력적으로 활동한 유명 가구 디자이너의 빈티지 가구도 페어에 출현한다. 결국 컬렉터의 욕망을 자극하는 ‘컬렉터블스collectibles’가 복합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아트페어다. 이중 아트 퍼니처로 대표되는 ‘컬렉터블 디자인’과 예술품을 동시에 다루는 움직임은 이미 세계 최대 아트페어 스위스 ‘아트 바젤’과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의 특징이 됐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트페어’ 하면 컨템포러리 예술품에만 단선적으로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기에, 디자인과 파인아트를 동시에 다루는 디파인 서울을 보며, ‘드디어, 한국에도 컬렉터블 디자인이 페어에 출현하는구나!’ 감회에 젖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이런 특징은 부스(실제로는 공간이란 표현이 알맞은 장소)의 다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번 디파인 서울에는 국내외 20여 개 갤러리와 브랜드 그리고 디자인 스튜디오가 참여했는데, 이들이 취한 전략에 따라 부스의 콘셉트와 실제로 구현한 풍경이 무척 다채로웠다. 앤더슨씨, PBG, 미미화 컬렉션, 두아르트 스퀘이라, 빈트 갤러리,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공간 전체를 통합적으로 활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빈티지 가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앤더슨씨, 미미화 컬렉션, 빈트 갤러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공간을 마치 쇼룸처럼 꾸몄다. 조지 나카시마, 피에르 잔느레, 샬롯 페리앙, 장 프루베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거장들의 빈티지 에디션은 물론이고, 조지 넬슨, 찰스 & 레이 임스, 폴 헤닝센의 작업,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거장들의 작업을 믹스매치해 거실처럼 세팅한 모습에 감탄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않아 페어의 포토 스폿으로 등극했다. 특히 이 세 곳은 각자 소장한 아트 피스를 함께 배치하여 가구가 실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효과적으로 체험할 기회를 마련했다. 이에 비해 두아르트 스퀘이라와 화이트스톤 갤러리는 거꾸로 행동했다. 컨템포러리 예술을 다루는 갤러리답게 작품 위주로 디스플레이하면서 그 공간에 어울리는 빈티지 가구들을 설치해 화이트 큐브에 덩그러니 놓기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느낌을 추구한 것이다. PBG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만든 라이프스타일 기물을 전시하면서 아트 피스를 함께 선보이며 전시와 생활 공간 어딘가를 떠올리게 했다.
앤더슨씨
앤더슨씨
두아르트 스퀘이라
미미화 컬렉션 (좌), 빈트 갤러리 (우)
미미화 컬렉션 (상), 빈트 갤러리 (하)
화이트스톤 갤러리
PBG
PKM, 탕 컨템포러리 아트, 노발리스 아트 디자인, 갤러리 필리아, 에프레미디스 등 갤러리 활동으로 잘 알려진 곳들은 자기 근본에 맞게 작품에 집중하는 부스를 꾸몄는데, 이런 면에서 매우 독특한 경우는 국제갤러리였다. 국제갤러리는 근래에 자기 작품 세계를 새롭게 확장 중인 홍승혜 작가의 작품만으로 공간을 꾸몄다. 격자무늬가 특징인 플랫한 평면 조형 작업으로 유명한 그는 올해 초 열린 개인전에서 다양한 형태의 입체 작품을 통해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탐색하는 흥미로운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번 디파인 서울 부스에서는 아예 기능을 부여한 가구 시리즈를 만들었다. 벽면에는 그래픽과 입체 작품을, 바닥에는 가구 혹은 특정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물로 확장한 작품을 놓아 전시장 전체가 디파인 서울이 추구하는 콘셉트와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손색이 없었다. 초이앤초이 갤러리는 넓은 루프탑 공간에 이태수 작가의 초현실적인 바위 인스톨레이션 작업 두 점을 놓아 생동하는 성수동의 풍광까지 자연스럽게 작품의 일부로 편입하는 모험에 성공했다.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유니크한 대형 조명 여러 점을 선보인 지오파토 & 쿰스 또한 개인전을 방불케 하는 부스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탕 컨템포러리 아트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초이앤초이 갤러리
두 번째 ‘드디어’는 장소성에 있다. 수많은 페어가 열리는 장소의 디폴트 값은 거대한 컨벤션 센터다. 행사를 기획하는 주체는 행사 규모에 맞는 크기의 공간을 알아보고, 가벽을 세워 조각낸 부분을 참여자에게 할당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흰색 부스의 연속된 풍경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정해진 동선에 따라 행사를 둘러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실내를 반복적으로 돌아다닐 때 느끼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는 이에겐 지루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대형 컨벤션 센터에는 아예 전시장 외에 도보로 이동하는 중앙로, 상점, 정원, 광장 등을 차곡차곡 조성해 놓기도 하고, 행사 규모가 큰 경우 도시의 일정 지역이나 전체를 활용하며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도시 곳곳에서 1000개가 넘는 팝업이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나, 도시를 아예 전시장으로 쓰는 카셀 도쿠멘타 등이 대표적이다. 천편일률적인 부스 지옥에서 벗어나 바깥 공기를 쐬며 장소성을 확장하고, 더 나아가 행사가 열리는 로컬과 관계를 맺는 경우는 서구권에서 보편적이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일단 자유롭게 돌아다닐 지역이 애매하고, 해당 로컬 커뮤니티와 엮이는 일까지 기획하기엔 역량이 부족한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런데 디파인 서울은 현재 한국, 특히 서울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역으로 떠오른 성수동을 배경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건물 세 곳에서 페어를 나누어 진행했다. 2호선 성수역을 기준으로 아래 지역에 위치한 5층 건물인 앤디스와 길 건너 지역에 분산된 레이어 27과 레이어 41을 잇는 트라이앵글을 만들어 냈는데, 영역 내부에 위치한 TTRS에서는 연계 전시를 진행하고, 그 바깥에 있는 오우드 2호점에서는 ‘디파인 토크’를 진행하며 성수동 지역 일부를 자연스럽게 페어의 배경으로 가져왔다. 덕분에 페어가 열리는 기간 동안 디파인 서울 에코백을 메고 리플렛을 펼쳐 길을 찾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컨벤션 센터 안에서 뱅글뱅글 도는 게 아니라 거리를 돌아다니며 점과 점을 잇듯 여러 건물에 들러 행사를 경험하는 여정은 분명 한국에 없던 페어의 형태다. ‘드디어, 컨벤션 센터를 빠져나오는구나’라는 희열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F&B 시설이 열악하기로 유명한 아트페어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엄청난 숫자의 로컬 F&B 업장, 골목마다 존재하는 다양한 상점, 더불어 성수의 로컬 커뮤니티와 맺은 연대 등 산책과 쇼핑을 결합한 로컬 체험은 디파인 서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는 일등 공신이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첫 회를 끝낸 디파인 서울은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디어’가 하나 더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디파인 서울이 예상외로 얻은 성취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바로 구매 연결성의 확충이다. 기존 아트페어에서 불가능했던 전방위적 사고팔기의 가능성을 거의 모든 부스에서 확인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빈티지 가구를 주력으로 삼는 곳이 공간을 꾸미면서 다양한 소품과 아트 피스를 공수했는데, 여기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계속 판매 여부를 물어봤다. 예술품을 선보이는 곳도 마찬가지로 공간에 놓은 각종 빈티지 가구에 대한 문의가 계속됐다. 그래서 디자인과 예술을 복합적으로 엮은 부스에서는 “이건 파는 건가요?”라는 질문이 계속 오갔다. 이런 모습이 의미심장한 까닭은 평소 아트페어라면 아주 소수의 작가만 전략적으로 노출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부스가 갤러리의 인상을 대표하는 상황에서 부스의 결을 애매하게 만드는 행동은 최대한 지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디자인과 예술을 캐주얼한 공간에서 통합적으로 다루는 디파인 서울은 제약이 거의 없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다루든, 어떤 컬렉터블 디자인을 다루든 퀄리티와 방향성만 확실하다면 많은 이의 호응을 이끌 수 있다. 예술적인 생활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물건들의 존재가 서로 시너지를 이루어 소장 욕구를 자극하고, 가격대와 성격이 천차만별인 기물들을 자연스럽게 함께 배치할 수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페어에서 모든 전시품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구매가능한 상태로 보여주는 경우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구경하다가도 마음에 꼭 드는 무언가를 조우하면 가격에 대해 부담 없이 물어볼 수 있는 접근성 또한 기존 아트페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연해졌다. 더불어 갤러리 입장에서는 디파인 서울 기간에 성수동 한복판에서 위탁 판매를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 또한 고무적이다. ‘드디어, 아트페어에서 다양한 물건을 마주하는 연결성이 마련되는 걸까?’ 괜스레 기대하게 만든다.
토마스 파크
노발리스 아트 디자인
지오파토 & 쿰스
지난 11월 1일부터 5일까지 총 5일간 열린 디파인 서울 2023 행사가 성료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방문 인원은 6000여명. 갤러리마다 여러 거래가 성사되고, 많은 브랜드에서 주최 측에 협업 제안을 했다는 보도 자료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 최소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할 때 장소와 동선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매우 난처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겠군. 부스를 구성하는 갤러리 역량에 따라 아트 피스와 디자인 피스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컬렉팅 입문 장소로 자리 잡을 수 있겠군. 성수동이라는 로컬리티를 살린다면 MZ세대의 아트 마켓 유입과 더불어,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의 저변이 넓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정부 및 지자체와의 유기적인 협력이 꼭 필요하겠군.’
아직 첫 회라서 내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부디 앞으로 더욱더 유의미한 성취를 거두길 바란다. 혹시 아는가. 생각지 못한 또 다른 성장을 통해 ‘드디어’ 엄숙한 아트페어에 대한 편견이 사르륵 녹아들지, ‘드디어’ 예술과 디자인이 우리 삶에 더욱 가깝게 스며들지, 그리고 ‘드디어’ 뻔하지 않은 방법으로 일상이 풍요로워질지 말이다.
Interview
정석호 아트부산 이사
‘디파인 서울 2023’ 성료를 축하드립니다. 업의 특성상 종료 직후 페어의 성과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데요. 한 달이 지난 지금, 내부적인 평가는 어떤가요?
첫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된 콘셉트와 방향성을 선보이며 미술계 안팎에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선한 페어”라는 평을 받은 게 가장 큰 성과입니다. “디파인 서울이 국내 아트신에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아트뿐 아니라 디자인과 공예까지 접목한 콘텐츠를 성수를 거점으로 소개한 건 신의 한 수였다.”라는 피드백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어요. 특히 페어와 성수를 함께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는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비록 사전 정보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많은 작품이 페어와 애프터 세일 때 판매되었고요. 디자인을 함께 소개한 덕분에 현장 판매나 B2C 이외에 B2B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구매 상담과 견적 요청이 밀려와 B2B2C 플랫폼으로의 확장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의미가 깊습니다.
본업인 아트페어가 아니라 디자인+아트 페어를 새롭게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요. 디파인 서울의 탄생 배경에 대해 공유해 주시겠어요?
디자인은 예전부터 지켜보고 고민해 왔던 분야였어요. 우리나라에는 좋은 디자인 콘텐츠와 작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자신을 노출할 수 있는 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아트부산 행사를 하반기로 연기했던 2020년에는 디자인 섹션을 별도로 소개했었어요.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서 ‘아트부산 &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죠. 이후 아트부산은 현대미술에 집중하고, 디자인은 좀 더 제대로 준비해서 선보이기로 했는데요. 한국에서도 컬렉터블 디자인 마켓과 수요가 점차 늘어난다는 판단이 서면서 디자인과 아트를 아우르는 신규 페어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아트부산의 홈그라운드는 부산인데요. 연고 없는 서울, 그중에 성수동을 첫 번째 디파인 서울의 무대로 낙점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희가 이름 때문에 부산에 국한된 기업과 행사라고 오해를 많이 받는데요. 특정 도시나 지역성에 대한 제한 없이 확장을 위한 방향성의 첫 단계에서 선택한 곳이 서울이었어요. 이미 존재하는 많은 행사와 모든 측면에서 다른 행사를 선보이고 싶었고요. 서울 곳곳을 다니며 리서치했는데 성수동 지역이 가진 매력과 역사, 현재, 그리고 잠재력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미 완성된 장소가 아니라, 저희 행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성수 이상의 지역은 없다고 판단했어요.
디자인과 예술을 함께 다루다 보면 애매모호함으로 귀결될 수 있는데요. 페어를 준비할 때 주최 측에서 가장 중시한 점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말하면 균형감인 것 같아요. 디자인과 아트 중 한 쪽에 쏠리지 않도록 노력했고, 해외의 좋은 콘텐츠 못지않게 한국과 아시아의 콘텐츠를 소개하려고 노력했으니까요. 저희 페어의 방향성에 맞추어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갤러리와 디자인 스튜디오를 선별하고 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 덕분에 각기 다른 공간과 콘셉트에서 비롯한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많이 생겼습니다. 국제갤러리만 하더라도 기존 아트페어의 부스 구성과는 달리 앤디스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홍승혜 작가님의 디자인 작업을 솔로 부스 형태로 선보여 많은 주목을 받았죠. 제네바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갤러리 필리아는 디파인 서울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는데요. 카 스튜디오Kar Studio의 신작을 최초로 선보이면서 갤러리 신라와 협업해 아키오 이가라시Akio Igarashi의 회화 시리즈를 함께 배치해 밸런스를 잘 맞췄답니다.
갤러리 필리아
국제갤러리
컬렉터블 디자인하면 전설적인 가구 디자이너의 빈티지 에디션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범주는 훨씬 넓은데요. 동시대 디자인 작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룰 의향이 있으신가요?
세상에는 훌륭한 빈티지 디자인 작품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요즘 국내 갤러리나 브랜드에서 많이 소개하고 있어서 이번 페어에서는 개인의 취향을 더 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구성했는데요. 하지만 새롭게 소개되었으면 하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유치하는 일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오파토 & 쿰스의 경우, 현장에서 소개한 조명 다섯 점이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서 구매 문의 및 상담을 넘어 유럽 유수의 디자인 갤러리, 스튜디오, 대사관에서 미팅 요청과 행사 문의를 받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지역의 디자인 콘텐츠를 다루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활동에도 일조하고 싶습니다.
지오파토 & 쿰스
노발리스 아트 디자인
개인적으로 특히 흥미로웠던 부스 몇 곳을 꼽아주신다면요?
디파인 서울의 특징을 고려해 맞춤형 부스를 구성한 곳에 자연스레 눈길이 가더군요. 앞서 언급한 국제갤러리에서 꾸민 홍승혜 작가님의 솔로 부스는 갤러리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구성이었고, 높은 층고와 낮은 충고 공간을 다르게 활용해 하나의 단독 전시처럼 연출한 지오파토 & 쿰스, 한국 첫 진출에 맞춰 전속작가의 신작을 최초로 공개한 갤러리 필리아, 그리고 초이앤초이 갤러리가 앤디스 옥상에 설치하며 올해 디파인 서울의 아이콘이 된 이태수 작가님의 장소 특정적 작업 또한 기억에 남습니다. 해당 작품은 애프터세일을 통해 판매됐다는 희소식까지 들었어요!
초이앤초이 갤러리
벌써 내년 준비를 시작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이사님이 바라는 ‘디파인 서울 2024’ 모습이 궁금합니다.
올해는 아트페어뿐 아니라 쇼케이스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었어요. 디파인 서울의 아이덴티티와 방향성을 설명하고 앞으로 유치하고 싶은 많은 갤러리, 기관, 기업에 저희 행사의 필요성과 매력을 명확히 알리는 중요한 자리였죠. 감사하게도 많은 곳에서 관심을 가지고 문의를 해주셔서 지금도 계속 미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년 행사는 올해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로 진행하려고 해요. 거점 지역을 즐기는 요소들을 늘리고 해외 기관-컬렉터 그룹과의 교류도 강화해 디파인 서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작가들이 더 많은 주목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vent
디파인 서울 2023
기간: 2023. 11. 01 – 2023. 11. 05
Place
레이어 27: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11가길 26
레이어 41: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9길 41
앤디스: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6길 36
TTRS (연계 전시):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9길 12
오우드 2호점 (디파인 토크):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24길 36
Write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다. 2021년부터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와 함께 만드는 «기아 디자인 매거진» 콘텐츠를 총괄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매거진 편집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