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오엠(COM)은 김세중과 한주원이 결성한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상업, 사무, 전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공간과 가구를 디자인하면서 작가로서 여러 전시에도 참여하고 있죠. 언제나 감각적인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비결이 궁금했는데요. “오랜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작업의 단서를 그러모으는 게 답”이라는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답니다. ‘좋은 디자인을 제값에 만들어 내는 스튜디오’로 기억되고 싶은 씨오엠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2015년부터 일하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COM입니다. ‘씨오엠’이라고 불러주세요. 저희는 주로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요. 종종 가구인지 조각인지, 쓸모를 알다가도 모를 것으로 전시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4년 즈음 보광동과 이태원 등지에 다양한 디자인 계열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어요. 대학을 막 졸업했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경우가 많았는데요. 양혜규 스튜디오를 다니고 있던 김세중과 프리랜서로 그래픽이나 작은 전시 집기를 작업하던 한주원이 동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좋아하던 사람들과 엮이면서 전시 설치 쪽에 집중하다가 자연스레 지금의 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저희 사무실은 연남동에 있어요. 40평이 조금 넘는 공간입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점이 아쉽지만, 덕분에 낮에는 창밖이 잘 보여요. 사무실 가구는 대부분 직접 만들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검수 과정에서 불량 판정을 받은 가구를 하나둘 가져다 놨더니, 이젠 작업실이 흥미로운 재활용센터처럼 보이네요. (웃음)
작업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공간을 다루는 일을 한다고 공간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아요. 다른 장르의 작업에서 힌트를 얻을 때가 많죠. 그림이나 사진, 음악의 추상적인 분위기에서 목적지를 찾는 것처럼요. 창작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엉덩이를 붙이고 작업의 단서를 그러모아 스스로 조형에 납득되어 명쾌해지는 순간을 마주쳐야만 하죠. 어쩌면 이것도 영감이라 부를 수도 있겠네요.
매번 다른 사람, 다른 공간, 다른 예산, 그리고 다른 일정을 마주하기 때문에 창작 과정을 명확히 밝히는 일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만약 일정한 프로세스가 존재해 매번 다른 프로젝트에서 준수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면 무척 편리할 거예요. 하지만 저희 작업이 그런 종류의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부적으로 ‘지금의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까?’라는 미적 마지노선을 항상 신경 쓰고 있는데요. 이 허들을 넘는다면 어떤 과정을 거치든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작업 중 먼저 성수동에 오픈한 편집숍 ‘튠TUNE’을 소개하고 싶어요. ‘튠’이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음악적인 요소를 매장 파사드와 선반 등에 숨겨 두었습니다.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알루미늄 주물을 활용한 점이 눈에 띄는데요. 만드는 수고가 가득 들어간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럴 거면 아무래도 현장에서 자르고 붙이는 방법보다는 주물을 활용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알루미늄을 제외한 목재 요소는 모두 공방에서 만들었어요. 자세히 보면 어떤 스포츠의 대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패션 브랜드 ‘할로미늄HALOMINIUM’의 쇼룸도 작업했습니다. 브랜드 대표인 유미 씨의 바람과 씨오엠이 생각한 할루미늄의 인상을 반영한 공간이에요. 할로미늄의 옷에서 두드러지는 구조적 특징으로 면과 면을 느슨하게 여며주는 끈과 철물, 그리고 두 요소가 만들어 내는 틈을 꼽아 보았죠. 이를 공간에 적용해 동그라미와 네모 형태의 볼륨으로 공간 두 곳을 구획하고, 그 사이로 빛과 시선이 지나다닐 틈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유미 씨의 초성인 ‘ㅇ’와 ‘ㅁ’을 닮았다는 점이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웃음) 가구와 소집기에는 할로미늄에서 자주 사용하는 패턴을 활용해 마무리했답니다. 쇼룸이 들어선 통의동 건물 2층은 저희에게 뜻깊은 곳이에요. 독립서점으로 유명한 ‘더북소사이어티’가 오랜 기간 사용했는데, 저희가 책장을 의뢰받아 처음으로 가구를 납품한 공간입니다. 그때 만든 책장의 구조적 특징을 이번 쇼룸 선반에도 슬쩍 적용해 보았습니다.
무신사 스튜디오 신당점은 독특했던 첫인상이 기억에 남아요. 건축은 소와요 건축사 사무소가 맡고, 저희는 인테리어를 진행했는데요. 처음 옛 건물을 찾았을 때 낮은 층고 아래 미싱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는 풍경과 이미 오래전 퇴거한 당구장, 천장 마감재가 떨어진 채로 방치한 방들이 공존하고 있었거든요. 떨어진 천장 마감 사이로 건물의 컨디션을 살피면서 경량 구조가 지닌 특성을 활용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예산이 한정적이라 형태적으로 많은 시도를 하기보다 좀 더 쉬운 방법으로 공간의 인상을 또렷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어요. 경량 철골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삼아 천장이 지닌 어느 정도의 안락함을 만들면서 동시에 낮은 층고의 단점인 답답함을 해소하고 조명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의도했어요.
저희가 얼마 전에 오픈한 전시에 작가로 참여했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입니다. 과천관을 주제 삼아 신작을 만들어야 해서 건축의 시작 과정과 이후의 회고 자료를 살펴봤는데, 국가적 규모의 결의와 염원을 건물에 담으려 했던 당시 사람들의 바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특히나 과천관의 형태적 특징이 건축가의 사적인 경험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인지한 순간 흥미롭고도 아찔한 감정을 느꼈답니다. 국가적인 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켰지만, 결국 개인의 경험이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했으니까요. 오랜 세월을 보낸 만큼 이제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는 과천관은 과거의 원대한 목적보다 개개인의 추억과 애착이 건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에요. 40년 동안 한자리에서 같은 옷을 차려입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여서 쓸쓸함마저 감도는데요. 이런 감상이 미술과 건축의 속도 차이인지, 기저에 깔린 건축가의 의도 때문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객관적 지표를 활용하기보다 경험과 기억에 기대어 과천관의 요소를 수집해 그 결과를 ‘미술관 조각 모음’으로 묶어서 작업으로 선보였어요.
저희가 최근 진행한 거의 모든 프로젝트는 디자인 결정권을 가진 클라이언트와 함께 진행했어요. 이런 점이 작업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만족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죠. 불만족한 부분이라면 앞서 말한 상황과 반대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겪는 난처한 상황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감정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열 받은 상태에서 좋은 디자인이 나온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휴일은 평일에 소비된 감정을 온전히 채워 넣는 시간으로 활용합니다. 물성 없는 무언가를 감상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피지컬이 있는 매체를 선호해요. 음악을 들을 때도 앨범 재킷을 펼쳐볼 수 있는 음반을 꺼내는 식이죠. 소셜 미디어나 웹에 떠돌아다니는 저 멀리의 무언가보다, 일상에서 만지고 들을 수 있는 대상이 저희에게 영향을 준다고 믿어요. 그런데 감정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근미래엔 디자인과 관련한 대부분의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살아남은 소수의 스튜디오는 장인이 되어 수제 디자인을 팔지도 모르겠어요. 일종의 공예가처럼요.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스튜디오를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운영하는 법.
삶을 대하는 태도는 스튜디오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유머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로 살게 된 이상, 디자인이 진지한 얼굴로 논해야 하는 종류의 일이 아니길 바라요.
슬럼프라면 장기간 누적된 피로가 퍼포먼스 저하로 이어지는 현상을 뜻하겠죠? 그런데 슬럼프가 반드시 낮은 품질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 속 행간을 해석하는 능력이 상실되고 기억력이 저하되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에 가깝겠죠. 여러 번 길을 잃고 헤매는 고장난 나침반처럼요. 그래서 미리미리 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쉴 때는 어느 때보다 철저한 계획과 의지, 상황 파악 능력, 그리고 매력적인 신규 프로젝트를 거절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스튜디오에서 업무용 프로그램을 여러 개 사용하고 있는데요. 회사마다 서로 다른 요금제를 운영하다 보니 통합적인 관리가 절실해요.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현재 여러 요금제들이 얽힌 실타래처럼 꼬여버렸답니다. 아이디도 비밀번호도 제각각에 결제일도 모두 달라 도무지 정리할 엄두가 나질 않네요.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남도 설득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자기기만을 한다면 그 작업은 끝장이에요. 남들이 잘하는 걸 우리가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건 별로인 것보다 더 별로고요. 불필요하게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일부러 못생기게 만들 이유도 없어요. 게으른 디자인 태도를 최소한의 디자인이라고 착각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멋진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좋고, 아름다운 것보다는 이상하고 웃긴 것이 좋아요. 커머셜한 장르를 다루는 입장에서 앞서 말한 바가 요원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지만 그래도 최대한 시도해 보려 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지치지 않는 체력과 샘솟는 욕심으로 젊음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걸 불태우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야 해요. 다만 이런 시간이 쌓인 후엔 고민하는 시간이 줄고 판단이 빨라지는 단계를 반드시 밟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소진하는 일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땔감이 떨어지면 주변 사람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또 사과해야 하는 일과 싸워야 하는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사리 분별도 필요합니다. 불안을 다루는 방법과 작업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마음도 잊지 마세요.
2025년이면 창립 10주년을 맞이해요. 이상적인 미래는 그때 생각해 보려 합니다. 현재는 일단 눈앞에 있는 것을 열심히 해야죠. 10주년을 맞이했을 때 조금 더 성숙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Artist
씨오엠(COM)은 국민대학교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김세중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한 한주원이 2015년 결성한 디자인 스튜디오다. 상업 공간부터 사무 공간까지 다양한 성격의 공간과 가구를 디자인하고 있다. 공간 작업으로는 성수동 TUNE(2023), 무신사 스튜디오 신당(2023), 맹그로브 동대문(2022), HYBE 사옥 대수선 및 인테리어 (2021,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와 협업), 인왕산 대충유원지(2019), JTBC PLAY 가구 설계(2020), THISISNEVERTHAT 사옥 가구 설계(2020), 아모레성수 가구 설계(2019) 등이 있다. 단체전 «젊은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23), «New Wave Ⅱ: 디자인, 공공에 대한 생각»(금호미술관, 2018), 개인전 «The Last Resort»(취미가, 2021) 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