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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최선이 아닌 최대의 노력

Writer: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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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이종원 작가는 스스로를 도파민형 인간이라고 말해요. 작업을 기획하고 제작할 때 머릿속에 채널이 열 개 정도는 켜진 상태로 아이디어가 통통 쏟아지는 스타일이랄까요. 주의가 산만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이리저리 튀기 때문에 오히려 엄격하게 거르는 과정을 가진답니다. 새벽과 밤에 나온 아이디어는 믿지 않고, 정말 좋다고 생각해도 사흘에 걸쳐 3번 정도는 의심하면서 스스로 납득하는 논리를 만드는 거죠.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더 많이 듣고 배우려고 노력하고요. 최선이 아닌 최대의 노력을 한다는 마음 때문에 전시 전날까지 신경 쓰느라 번아웃이 오는 편이지만, 작업 과정에서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답니다. 최대한도로 쏟아부으면 합리화할 기력도 없어지거든요. 관습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틈을 비집고 등장하는 창작자를 꿈꾸는 이종원 작가. 앞으로의 삶에 더 많은 북적거림을 집어넣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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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Series, 2025, PSL beam, 83 × 83 × 62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먼저 좋은 기회 감사합니다. 저는 만들고, 기획하는 일을 사랑하는 이종원입니다. 활동명은 ‘Weon Rhee’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매년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라는 국제 가구 박람회가 열립니다. 그중 만 35세 이하 영 디자이너를 선발하는 ‘살로네 사텔리테SaloneSatellite’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지난 2023년 살로네 사텔리테에 초대되고, ‘살로네 사텔리테 어워드’에서 ‘Special Mention’을 받으면서 창작자로서의 커리어가 천천히 열리게 된 것 같아요. 미대에 입학하고, 대학원도 다녔지만, 사실 창작자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크지 않았어요. 그러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어려운 일을 겪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창작 활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밀라노행 비행기를 더 비장한 각오로 탔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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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살로네 사텔리테 어워드SaloneSatellite Award’에서 ‘Special Mention’을 받은 ‹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Series, 2023, PSL b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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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Series, 2023, PSL b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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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Series, 2023, PSL beam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울 강동구 길동에서도 그린벨트에 인접한 조용한 상가 건물 지하 1층 공간을 임차해 쓰고 있어요. 작업실을 구한 건 1년이 채 안 됐지만, 작업량이 많아져서 꾸밀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복작복작한 느낌으로 사용 중입니다. ‘작업실은 당연히 서울에 있어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목공 작업을 할 수 있는 여러 조건에 맞춰 어렵사리 구한 공간이에요. 그래서인지 행정구역은 서울이지만, 도심으로의 접근성은 그다지 좋지 않네요. 그래도 그린벨트에 인접한 건물이라서 주변이 소란스럽지 않고, 가까운 곳에 전통 시장도 있어서, 바쁜 일정 중에도 안정감 있게 작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처음에는 물성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창작자로 스스로를 정의했어요. 그런데 제가 끌리는 물성마다 공유하는 특성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패러램(Parallel Strand Lumber)’ 같은 소재가 지닌 원시적인 형태의 조형과 텍스처에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원시적인 특징을 지닌 것들은 자연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요한 영감은 주로 자연에서 얻어요. 하지만 이를 받아들일 땐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을 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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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램을 이용한 작업 과정 © LOEWE FOUNDATION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일상생활에서도, 작업 과정에서도 주의력이 엄청 산만한 편이에요. 작업을 기획하고 제작할 때 머릿속에 채널이 열 개 정도는 켜진 상태랄까요. 직접적인 레퍼런스나 영감 없이도 기발한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장점이라, 아이디어에 대한 갈증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워낙 주의가 산만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이리저리 튀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엄격하게 거르는 과정을 거칩니다. 예를 들어, 새벽과 밤에 나온 아이디어는 믿지 않는 편이에요.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어도, 사흘에 걸쳐 3번 정도는 다시 생각해 보죠. 생각이나 기획에 관한 자료를 다방면에 걸쳐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논리를 만들어가요. 이런 과정은 작업을 포장하고 전시하기 전까지 치열하게 반복됩니다. 덕분에 매번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오히려 이런 적당한 스트레스와 엄격함이 저 자신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이제는 이런 과정에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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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Series 리서치 및 초기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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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Series 3D 아이데이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장 최근에 작업한 ‹I grow from within›, ‹We come from far away›은 제가 지닌 근본적인 부분에 접근하는 작업입니다. 제목이 문장으로 이루어진 만큼 내포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긴데요. 짧게 말씀드리자면, 저 자신이 가진 정체성에 대해 더 깊게 접근하려는 태도를 담은 작업이 ‹I grow from within›이고요. 정체성에 깊이 접근하며 깨닫게 된 콤플렉스나 열등감에 반응해 나온 작업이 ‹We come from far away›입니다. 가구를 매개로 개인적인 미적 취향을 반영하던 작업이 이제 오브제의 영역으로 확장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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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ome from far away #2›, 2024, Camphor wood, PSL beam, 20 × 25 × 3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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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ome from far away #3›, 2024, Camphor wood, PSL beam, 20 × 25 × 3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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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ome from far away›, 2024, Camphor wood, PSL b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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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ome from far away› 작업 과정

최근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솔직하게 담고자 했어요. 이전에는 가구를 매체로 제 미적 취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최근에는 이를 넘어 저와 세계가 소통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지닌 정신적인 부분에 관심이 큰데요. 제가 좋아하는 미감 또한 이런 원초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걸 최근 연구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겪는 게 크게 다가와서 제작을 끝내면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 모두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좌우명이 ‘최선이 아닌 최대를 하자’라서 그런지, 작업을 완성하면 개운함만 남는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 작업을 통해 얻은 만족스러운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요. 작년 일본에서의 레지던시 활동을 마무리 짓는 성과 보고전에서 한 관객과 정서적으로 아주 깊게 연결되는 경험을 했어요. 살로네 사텔리테에서 수상했을 때나, 공예가로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된 것과 비견할 만했답니다. 작업 활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도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게 최근에 느낀 만족스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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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베 재단 공예상 관련 브로슈어 이미지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회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작업 생각을 하면서 보내는 듯해요. 그래도 하루 중 작업에서 벗어난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요. 그런 순간에는 최대한 작업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합니다.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여러 번 먹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다음 작업을 위한 갈증을 채웁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작년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마루누마 예술의 숲(丸沼芸術の森)’에서 레지던시를 진행하면서, 맑은 공기와 청명한 밤하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정취를 느끼며 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좋은 작업실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구체적으로 주거 공간이 곧 작업실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단독 주택에 관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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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이타마현의 밤하늘, 2024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파민형 인간’이라서 늘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그래서 말하기보다는 더 많이 듣고,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태도는 재료를 선택하고, 작품을 구상하고, 마감에 이르기까지 과정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요. 제가 지닌 미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행위가 적어도 어떤 룰 안에서 이루어지면 좋겠거든요. 예를 들어, 압도적인 수준의 마감이 공예 및 디자인 쪽의 룰이라면, 이를 지키며 작업에 임하고 싶은 거죠. 저 자신을 컨트롤하면서 여러 분야에 존재하는 룰을 인식하고, 작업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보다는 번아웃이 심하게 옵니다. 마감에 대한 집착이 심한 편이고, 전시가 열리는 전날 밤까지 작업을 만지고 또 만지는 성향이에요. 더불어 작업 과정 전반에 걸쳐 제가 직접 관여하고 싶어서 일을 도와주는 친구가 있어도 결국 전부 제가 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이런 식으로 일을 해도 타고난 체력과 정신으로 커버할 수 있는데, 작업 후에는 번아웃이 일주일 정도 꼭 와요. 예전에는 이 시기에 완전히 늘어져서 폭식하고, 하루 종일 잠자곤 했는데요. 지금은 고향 집에 내려가거나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혼자 있는 경우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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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row from within› Series, 2024, PSL b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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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row from within› Series, 2024, PSL beam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고집스러운 태도를 하나둘씩 포기하는 부분입니다. 모든 걸 제가 직접 컨트롤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점점 프로젝트와 작업량이 늘어나면서 이게 불가능해지기 시작했어요. 모든 걸 전부 챙기고 싶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려면 곤란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에게 창작이란 제가 가진 부족함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를 작업으로 솔직히 드러낼 때 좋은 기회로 관객과 깊이 연결되는 경험도 하게 되었는데요. 이 순간 느꼈던 감정이란 ‘아, 이제 작업을 그만해도 되겠다’ 수준의 고양감이었어요. 더불어 다양한 것을 끊임없이 이해하려는 호기심도 있습니다.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결국 이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런 호불호를 정확히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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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Series, 2025, PSL beam, 83 × 83 × 62 cm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자신의 선택에 믿음을 갖고 최대한 노력을 다하면 좋지 않을까요? 저는 스스로의 선택에 늘 의심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이 아닌 최대의 노력을 투자했고요. 최선과 최대의 경계는 개인적으로 여전히 모호하지만, 정말 지긋지긋하게 하기 싫을 때가 최선 같고, 그 지긋지긋한 게 1주일 정도 유지되면 그 이상이 최대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만큼 스스로 합리화할 때가 잦은데요. 최대한도로 쏟아부으면 합리화할 기력도 없어져서,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ㅎㅎ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관습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틈을 비집고 등장하는 창작자. 도파민형 인간이라 그런지, 새로운 것만 보면 늘 표현하고 싶고,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가 샘솟아요.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보다 발랄하고 산뜻하게 다가오면 좋겠어요.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1년 중 절반 정도는 해외 활동으로 바빴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역마살이 끼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게 어려운 편이에요. 게다가 외국에서 일했던 모든 경험이 즐겁게 다가왔고요. 특히 각국의 대형마트, 로컬 시장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제 삶에 더 많은 북적거림을 집어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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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이종원Weon Rhee(@weonrhee)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창작자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가구 디자인을 수료했다. 2023년 이탈리아 밀라노 ‘살로네 사텔리테SaloneSatellite’에 참가해 ‘Special Mention’을 받았고, 2024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로 최종 선정돼 프랑스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같은 해, 일본 마루누마 아티스트 앤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루누마 예술의 숲(丸沼芸術の森)’에서 레지던시 활동을 마쳤다. «We come from far away»(마루야마 예술의 숲, 일본, 2024), «多綠多綠(Too much green)»(크래프트 온 더 힐, 2023)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런던 크래프트 위크, 프리즈 서울 을지로 나이트, 파리 디자인 위크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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