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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나방, 벌레, 내장이 혐오스러운가요?

Writer: 박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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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박웅규 작가는 보통 ‘혐오스럽다’라고 여기는 대상을 작업의 소재로 삼아요. 나방, 돈벌레, 동물의 내장이 대표적인데요. 흥미로운 건 그의 작업을 볼 때 단순히 불쾌한 감정만 들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묘한 균형미와 조형감이 느껴지면서, 대상으로부터 짐짓 엄숙함마저 느껴지곤 하죠. ‘대상을 부정적으로 대할지, 긍정적으로 대할지는 나에게 달려있다’고 말하는 박웅규 작가. 양가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대상에 집중하고, 자신만의 조형 질서를 구축해나가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동양화 재료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박웅규입니다. 늘 혼자 작업실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친한 동네 형을 따라 만화를 그리던 기억이 나네요. 매일 만화책에 미농지를 대고 베껴 그리곤 했어요. 학교에 들어가서도 수업 시간이면 늘 연습장을 펴 놓고 그림을 그렸죠. 그런데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미술학원에 덜컥 다니기 시작한 것도, 야간자율학습이 하기 싫어서였거든요. (웃음) 친구들은 공부할 시간에, 좋아하는 그림을 맘껏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죠. 그때는 석고상 그리는 것마저도 정말 즐거웠어요. 그렇게 미대에 진학했고, 이후에는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며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것 같아요.

‹Dummy No.91›, 2022, 종이에 먹, 92 x 64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집 근처에 작업실을 두고 있어요. 저는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데, 이 근처에서 월세로 작업실을 구해 계속 옮겨 다닌 지 6~7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워낙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주로 밤에 생활하다 보니 집에서 먼 곳에 작업실을 두기 어렵더라고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일상에서 저를 사로잡는 것들을 그리려 해요. 대부분 제가 혐오하거나 무서워하는 것들인데요. 작업을 통해 두려워하는 대상을 이해하려 애쓰거나, 제 나름의 정의를 내리려 시도합니다.

«귀불», 아트스페이스 보안1, 2022 © 권오열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대상을 마주쳤을 때, 혐오스럽고 무섭다는 기분에서 끝나지 않고 잔상으로 남는 경우가 있어요. 부정적인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감각을 오랫동안 곱씹어 봅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진 무언가를 제 방식대로 조형화하려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할 때 조금은 강박적으로 하려 애쓰는데요. 제 내면에서 비롯된 부정성을 다스리는 태도로 알맞다고 생각했어요.

‹Dummy No.85›, 2022, 종이에 먹, 180 x 87.5cm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은 ‘Dummy’라는 제목으로 이어져 오고 있어요. 주로 1년 단위의 개별적인 연작들로 구성되어 있고, 연작마다 고유의 소재와 연관되는 질서가 존재합니다.

2021년에는 나방과 돈벌레를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세 가지 관점으로 그려냈어요. 어느 늦은 여름밤, 나방 무리를 마주했던 경험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었거든요. 저는 벌레를 굉장히 무서워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요. 작업에서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닌, 대상에서 오는 복잡한 감각을 조형화하고 싶었어요.

«트랜스포지션», 아트선재센터, 2021 © 양이언

2022년엔 불화를 소재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저는 박물관에 전시된 매우 오래된 불화를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낡고 헤지고 뭉개진 표면과, 그럼에도 여전히 엄숙해 보이는 보살의 모습이 이루는 조화로움이 제가 작업에서 보여주고 싶은 바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전 불화에서 인상 깊었던 대상을 총 6가지의 질서로 재구성했어요. 작업을 하며 흥미로웠던 지점은, 박물관의 불화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벌레를 떠올렸다는 거예요. 반대로 어두운 밤에 벌레를 보면서는 불화를 마주했던 감각을 떠올렸고요.

올해 5월에는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소의 내장을 우상화하는 작업을 10점으로 구성했어요. 늘 내장 음식에 거부감이 심했거든요. 이 작업은 올 상반기에 마무리 지었고, 지금은 또 다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Dummy No.92›, 2023, 종이에 먹, 92 x 64cm

‹Dummy No.95›, 2023, 종이에 먹, 92 x 64cm

‹Dummy No.97›, 2023, 종이에 먹, 92 x 64cm

«의례를 위한 창자», 아라리오 갤러리, 2023 © 아라리오 갤러리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단단한 형태에 더러운 질감을 부여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구현하려 노력합니다. 그동안 진행해 온 여러 질서의 연작들은 모두 이 명제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해요. 그래서 제 작업의 소재가 되는 대상들은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요. 그것이 벌레든 내장이든,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저에게 달렸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엇을 보았든 마음의 동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요. 동요를 일으킨 대상들은, 어떠한 감각을 유발하는 텅 빈 유령에 불과하다고 봐요. 저는 이러한 대상을 조형적으로 파헤치고, 제가 주체가 되어 다시 규정짓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만들어 낸 아이들이 독립적인 개체로 거듭나길 바라요. 작품의 제목들을 전부 ‘Dummy’로 지은 이유이기도 해요.

‹Dummy No.63 80›, 2021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현재 진행하는 작업을 모두 끝내야 되돌아볼 여유가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다른 생각 없이 미친 듯이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대체로 전에 완성한 작업을 돌아보면 많이 아쉽더라고요. 당시에는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엉망으로 보이더군요. 언제쯤 스스로 완전히 만족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그만둬서, 지금은 정말 그림만 그리는 백수예요. 집과 작업실을 반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는 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대부분 혼자 있어요. 점심쯤 느지막이 일어나 직업실로 향하고, 작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몇 시간 게임하고 잠드는 게 일상이에요. 남들이 보기엔 무미건조하고 외로워 보일 수 있지만, 제가 늘 바라던 일상의 모습이라 만족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보통 현재 진행 중인 작업, 그리고 다음에 진행할 작업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동안 다양한 소재를 다뤄왔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대상이 아무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제 작업을 설명할 때, ‘부정성에 대한 태도를 조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는데요. 지금까지의 작업을 되돌아보면 이것들이 점점 진화하고, 탈피하는 과정을 거쳐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지금까지는 제 외부에서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지금 당장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작업으로 도출되는 이미지의 조건에 조금 더 엄격한 질서를 세우고 싶어요. 제 나름의 회화적 질서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작품에 더 이상 ‘Dummy’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거든요. 우선 올해 남아있는 일정과 계획된 작업을 마치고, 스스로 다짐했던 연작 108점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 이후에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처럼 연작이 계속될 수도 있고요. 틈만 나면 머릿속으로 작업의 방법론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Dummy No.81›, 2021, 삼베에 안료, 53 x 35cm

‹Dummy No.83›, 2022, 종이에 먹, 144 x 66cm

‹Dummy No.87›, 2022, 비단에 안료, 142.5 x 55cm

‹Dummy No.83›, 2022, 종이에 먹, 144 x 66cm

‹Dummy No.87›, 2022, 비단에 안료, 142.5 x 55cm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작업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삶의 태도인 것 같아요. 워낙 작업을 하며 보내는 삶이 지배적이고, 삶에서 유일한 일이어서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이렇다 할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아서요. 보통 연작마다 새로운 소재와 질서로 작업을 이어가기 때문에, 매번 기분이 새로 리프레쉬되곤 해요. 그리고 긴가민가한 작업은 처음부터 시작하려 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하는 중간중간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하던 작업을 엎고 다시 시작하는 편입니다. 그림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저를 괴롭히더라고요. 슬럼프를 극복하는 저만의 방법을 굳이 하나 꼽자면, 작업을 마무리하고 한 두 달 정도 방구석에 처박혀서 먹고 자고 게임만 하는 거예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 이렇게 엉망으로 살다가 나는 폐인이 될 거야’라는 불안감과 자기혐오에 빠져 다시 붓을 잡게 되더라고요.

‹십우도 The Ten Oxherding Pictures›, 2023, 종이에 안료, 35 x 35cm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언제나 생계유지가 제일 큰 걱정이죠… 어릴 때는 막연히 이 나이쯤 되면 뭐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 막막해요. 그런데 제가 선택한 삶인데 누굴 탓하겠어요. 어쩔 수 없죠. 지금 준비 중인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거창한 철학은 없습니다.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라면 ‘집요함’인 것 같아요. 꼭 그려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대상이 있더라고요. 저를 동요하게 한 대상을 끈질기게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 대상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작업을 시작하지 못합니다. 제가 혐오하는 대상이든 매력적으로 여기는 대상이든, 그 대상을 이해하고 집요하게 생각해 작품으로 그려내야만 비로소 그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일민미술관, 2022 © 일민미술관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감히 제가 다른 분에게 조언할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저 역시 조언이 절실한 사람인걸요. 다만 제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 보면, 창작자의 삶은 늘 외로운 것 같아요. 저야 천성이 외로움을 즐기는(?) 타입이라, 지금의 삶이 적성에 잘 맞는데요. 그렇지 않은 분이라면, 어느 정도 현실을 외면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아마 대부분 창작자의 경우, 작업 생활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는 안락한 생활을 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엉덩이가 무겁고 적당히 미련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언제 어디서든, 늘 성실히, 묵묵하게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기억해요. 종교가 없어 기도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요. 다른 건 좀 포기해도 괜찮으니, 지금처럼 이렇게 쭉 그림 그리며 살고 싶다고요. 다행히 아직 소원대로 살고 있네요. 여전히 그림 그리는 게 설레고 재밌어요. 아직도 그리고 싶은 게 많고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지금처럼 그림 그리며 살고 싶어요.

«귀불», 아트스페이스 보안1, 2022 © 권오열

Artist

박웅규는 양가성을 유발하는 특정한 조형 코드에 관해 집중하고, 정–부정의 조형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작업을 통해 그것을 새로운 환영으로 구현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2016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의 입주를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최근 개인전 «의례를 위한 창자»(2023, 아라리오 갤러리)와 «귀불»(2022, 아트스페이스 보안1)을 개최했다. 그 외에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2022, 일민미술관), «트랜스포지션»(2021, 아트선재센터), «현시적 전경»(2021, 단원미술관)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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