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스튜디오 ‘프론트도어front-door’는 요즘 그래픽 디자인 신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이죠. ‘정문’이라고 해석되는 이름이 사실 공동 창업자 강민정과 민경문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문을 열고 들어오면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고 해요. 여러 서점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와닿을 때 찾아 모은 책에서 영감을 얻을 정도로 편집 디자인에 진심으로 매료되었답니다. 프론트도어는 자신만의 방법론이 뚜렷해요. 시각을 달리하고, 이질적인 단어를 나열하는 행위를 ‘디자인 시 짓기’라고 부르는데요. 창작 과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입니다. 요즈음은 원칙을 내려놓고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며 예상치 못한 작업이 탄생할 때 만족감이 충족되는 편이죠. 아는 만큼만 보는 것보다, 모르는 만큼 더 보려고 노력하는 그들은 의외로 항상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합니다. 슬럼프가 일상이 되고 나니, 과정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고 해요. 고유명사처럼 기억되는 스튜디오를 꿈꾸는 프론트도어의 이야기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디자인 스튜디오 ‘프론트도어front-door’를 운영하는 강민정, 민경문입니다. 같은 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각자 에이전시에서 오래 일했어요. 그러다 좀 더 주도적으로 디자인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 프론트도어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9년 차가 됐네요. 스튜디오 이름은 강민정의 ‘정’과 민경문의 ‘문’을 합쳐서 만들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면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죠.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강민정: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배치하고 재배열하며 구성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타이포그래피 소모임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타이포그래피를 접하게 됐는데요. 글자와 이미지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편집 디자인에 깊은 매력을 느꼈어요. 그 결과, 자연스럽게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네요.
민경문: 저는 원래 회화를 공부하던 중 디자인을 접하게 됐어요. 회화보다 디자인이 더 추상적이면서도 확장성이 넓은 영역이라고 느낀 것 같아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고요. 그러다 다시 입시를 준비해 새로운 학교에 들어갔는데요. 그곳에서 워크룸 이경수 실장님의 작업을 접하면서 편집 디자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프론트도어를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맡은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고, 후회 없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제가 ‘소리’라면 단순히 청각적 요소에만 머물지 않고, 경험으로서의 소리, 음파로서의 소리, 번역된 소리 등 여러 관점으로 찾아보려고 해요. 이렇게 시각을 달리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디자인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어진 과제 자체가 의미적으로 깊이 있는 접근이 어렵다면, 고전적(보수적), 동시대적(현대적), 미래적(진보적) 이렇게 나눠서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보기도 해요. 이런 과정 역시 앞서 말한 접근법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또 다른 방법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질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는 거예요. 주로 동사나 형용사처럼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를 선택하는데요. 예를 들어, ‘차가움’과 ‘뜨거움’, ‘편안함’과 ‘불안정함’처럼 서로 반대되거나 유사한 개념을 조합해 디자인의 방향성을 잡아갑니다. 흔한 아이디어 발상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프로젝트마다 감정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아요. 저희는 이 과정을 ‘디자인 시 짓기’라고 부르는데요. 창작 과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에요.
최근에 마무리한 프로젝트 중 국립중앙박물관의 ‘선사고대관 리뉴얼’을 먼저 꼽고 싶어요. 박물관 입장에서는 20년 만에 진행한 리뉴얼 프로젝트인데요. 저희는 아이덴티티 그래픽 디자인과 전시 환경을 위한 프로토타입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유물 캡션부터 설명 패널의 정보 디자인까지, 새롭게 단장하는 선사고대관의 인상을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미술 잡지 «월간미술»의 리뉴얼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23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아이덴티티와 매거진 디자인을 리뉴얼했어요. 이번 아이덴티티는 미술의 전위성과 한글의 추상적 특성을 깊이 탐구한 결과물입니다. 넓게 구성한 초성 디자인은 «월간미술»이 지향하는 미래적 가치를 담고 있고, 제호를 넘어 브랜드로서 확장해 나가려는 비전을 반영했어요. 매거진 디자인은 기존 «월간미술»의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진화를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작업했어요. 미술 공간처럼 직관적이고 현대적인 디자인 구조를 적용해, 지속가능성을 더욱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월간미술» 아이덴티티 및 매거진 디자인 리뉴얼, 2024
저희는 프론트도어라는 이름의 출판사도 운영 중인데요. 가장 최근 작업은 윤정미 작가의 사진 책 『박제된 색들』입니다. 윤정미 작가의 다양한 시리즈를 ‘색’이라는 개념으로 묶어 구성했어요. 11가지 프로젝트가 각기 다른 테마 색을 가지고 있고, 8가지 별색을 활용해 각 프로젝트의 성격을 더욱 강조했죠. 인쇄 기법 또한 다양하게 적용하며 제작 과정에서도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추구했습니다.
윤정미 사진 책 『박제된 색들 Framed in Colors』, 2024
최근 작업을 진행하며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희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돌이켜 보면, 2년 전까지만 해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경직된 상태에서 디자인에 임했던 것 같아요. 그런 환경에서는 늘 아쉬운 부분이 남곤 했고요. 요즘은 외부 기준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작업하면서 느낀 만족스러운 부분 혹은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자기 비판적인 상황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스스로 만족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은 덜한 것 같아요. 오히려 자신에 대한 원칙을 내려놓고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작업 형태가 탄생하곤 하는데요. 그런 부분이 근래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입니다.
저희는 오전 8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10시까지 시간을 보냅니다. 오랜 시간 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시간을 일하는 데 쏟는 건 아니에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며 여유를 가지기도 합니다. 시간에 쫓겨 일을 처리하다 보면 실수도 많아지고 마음도 급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여유롭게 가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해요. 집에 돌아오면 서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해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휴식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 내내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올해는 쉼과 일을 균형 있게 조절하며 오랫동안 즐겁게 작업하는 컨디션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슬럼프, 즉 과정을 극복하기 위해 오늘도 일해야 하는 현실이 문제라면, 그게 바로 문제인 것 같아요.
평소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작업을 해오면서 중요하다고 느낀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언어에 집중하기 언어는 지표와 같아요. 언어에는 지향점과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자신이 사용하는 말과 말투, 그 의미까지 모두 작업에 반영됩니다.
2. 관찰하고 분석하기 무언가를 보고 좋다고 느낄 때 대부분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기 쉬워요. 순간의 감정적 반응이라고 치부해서 그런 듯한데요. 이를 차근차근 분석하면 예상보다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작업에 대한 이유와 명분을 제시해 줬던 것 같아요.
3. 리뷰하고 수정하기 결과물이 나오면 꼼꼼히 살피며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리뷰하는 걸 빼먹지 않습니다. 저희가 가진 장점을 강화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리스트를 만들어서 다음 작업에 참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