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철 작가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판화로 내러티브를 가진 아트북을 만듭니다. 지난 2015년부터 ‘로빈에그파이Robineggpie’라는 활동명으로 여러 권의 책과 국내외 아트북페어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높여왔어요. 그의 작업을 꿰뚫는 세계관을 책으로만 담는 게 부족해서 몇 년 전부터는 평면 회화, 디자이너 토이,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매체로 실험 중이랍니다. 그는 주변을 관찰하며 의심스럽고 수상한 걸 포착하는 일을 즐깁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상상과 이미지, 완성되지 않은 문장과 개념이 카테고리화를 거치며 정제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업으로 구현됩니다. 올해 집중한 ‘Yoink’ 프로젝트만 하더라도 판화, 굿즈, 사진집, 일러스트레이션 진이라는 네 가지 매체로 다층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어요. 그는 모든 것에 당장 답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지혜롭게 계획하고 정진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는데요. 이런 충실함과 진지함은 창작에 대한 마음의 불꽃을 지키는 거름이 됩니다. 특히 기다림의 시간을 이해하고, 소년 만화처럼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동료의 존재를 귀히 여기면서요. 언젠가 ‹심슨 가족› ‹네모바지 스폰지밥›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처럼 누구나 알고 즐길 만한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긴 여정을 겸허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신동철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Yoink bag›, 2024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판화로 내러티브를 가진 아트북을 만드는 신동철입니다. 2015년부터 ‘로빈에그파이Robineggpie’라는 활동명으로 총 7권의 책을 만들었고, 국내 아트북페어와 해외 아트북페어에 각각 7번, 11번 참여했습니다. 제 책은 주인공 ‘33’의 모험을 그리고 있어요. 에피소드를 정리해 보면 ‘탄생’, ‘꿈’, ‘선택’, ‘믿음, ‘죄’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만든 에피소드로 세계관을 만들려니 책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서, 지난 2021년부터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평면 회화, 디자이너 토이,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매체로 실험 중입니다. 작업 외에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에서 권민호 스승과 함께 ‘빛나는 몽상’이라는 일러스트레이션 스튜디오를 진행하고 있어요.
‘웁서울 2024’에 출품한 각종 책과 아트 토이, 2024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제는 ‘서울아트북페어’이라고도 부르는 ‘언리미티드 에디션(UE)’을 구경한 게 제 첫 아트북페어 방문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구매한 책이 윤예지 작가님의 『땅콩나라 오이제국』(로그프레스, 2014)인데요.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와 그림을 가진 아트북을 저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졸업 전시 때 이강백의 희곡 「셋」(1972)을 기반으로 96페이지 분량의 리소 아트북을 만들었죠. 아트북 만들기에 재미를 느끼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이듬해 UE에는 부스로 참가하기도 했고요.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대안 공간과 소규모 갤러리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아서 대학교를 갓 졸업한 디자인과 학생이 자신의 드로잉이나 회화를 전시할 방법이 막막했어요. 나만의 전시장을 챙겨 다니며 제 그림을 좋아하는 관객을 직접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아트북을 만들게 된 또 하나의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실은 서울 충무로 시장 골목에 있어요. 처음 오신다면 쉽게 찾기 어려운 의외의 공간이랍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기 위해 을지로 근방 월세 매물을 15곳 이상 보다가 가장 마지막에 운 좋게 찾게 됐어요. 11평 정도로 혼자 쓰기 넉넉해요. 재료와 공구에 대한 궁금증과 욕심 때문에 가지고 있는 짐이 많고, 실크스크린을 찍은 종이를 말릴 곳도 필요해서 이런 공간을 구했습니다. 에어브러시나 사포질, 실리콘 몰드 작업처럼 먼지나 냄새가 나는 작업을 위해 창문이 많고 환기가 편한 곳을 찾느라 고생했죠. 비교적 층고도 높은 편이라 최근에는 대형 드로잉 작업도 시도 중입니다.
신동철 작가의 작업실 모습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모험 놀이’라는 걸 자주 했어요. 골목이나 좁은 길, 처음 가보는 길만 일부러 골라서 등하교했죠. 매일 루트가 바뀌고, 길에서 신비로운 물건―대부분 막대기였지만―을 줍고 약간의 장애물이 있어야 성공적인 모험이었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성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주변을 관찰하며 의심스럽고 수상한 걸 포착하는 일을 좋아해요. 올해 만드는 아트북은 서울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간판 속 돼지 캐릭터의 사진집입니다. 서울에 오래 살수록 도시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수상한 걸 포착하는 감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최근 몇 년간 해외 아트북페어에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해요. 해외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지만, 해외 아트북페어는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가 한 공간에 모였을 때 뿜어내는 힘이 특히 압도적이에요.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컨템퍼러리 아트, 건축 등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창작자의 시선과 주제를 담은 아트북을 읽고, 수집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엄청난 영감을 얻을 수 있죠.
해외 아트북페어에서 신동철 작가의 작업을 구경하는 관람객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창작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 취향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아트북을 만들지만 저는 아카이빙북을 애호하고 수집하는 일을 즐겨요. 최근에는 미국의 큐레이터 겸 개념 예술가인 로즈 살라네Rose Salane의 『Slugs』(2022)라는 책을 샀어요. 뉴욕 버스에 탑승할 때 쓰인 위조 동전을 카테고리별로 구분한 책이에요. 바티아 수터Batia suter의 책 『Parallel Encyclopedia』(2007)도 좋아하는데요. 그가 수집한 수많은 이미지를 재구성해 자기만의 고유한 시각 백과사전을 구축했죠. 이런 취향 때문인지, 저는 그림이나 낙서로 만든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카테고리화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머릿속을 떠도는 황당한 상상과 이미지, 완성되지 않은 문장과 개념이 이런 과정을 거쳐 정제되어 작업으로 탄생해요.
‹The World›, 2021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하나의 개념과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층적인 구조와 복합적인 매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시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여러 관점에서 접근해야 깊이 있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Yoink’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소재는 ‘간판 속 돼지’인데요.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서 여러 매체로 층위를 나누어 작업 중이에요. 복제되는 판화, 상품성을 가진 굿즈(가방), 현실을 기록한 사진집, 허구의 이야기를 다룬 일러스트레이션 진zine, 이렇게 네 가지 매체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세계관 속 돼지 캐릭터가 엄지를 치켜들고 웃고 있는 ‹96점짜리 미소›가 있습니다. 지난 7월 열린 판화 단체전 «I print, I unprint, I reprint»에서 선보인 작품인데요. 미소 짓는 돼지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복제한 후, 총 96장을 이어 붙여 설치 작업으로 풀어냈어요. 각 돼지 귀에는 1~95까지 동물용 귀표가 붙어있는데요.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실크스크린 작업처럼 이미지를 반복하며 차이를 만들면서 100점까지 줄 세우는 강박증적인 사회의 일면을 표현한 작업입니다.
‹96점짜리 미소›, «I print, I unprint, I reprint»,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024
두 번째로는 서울 거리에서 발견한 간판 속 미소 짓는 돼지―혹은 닭이나 소―를 찍은 130장의 이미지를 리소그라프 사진집으로 풀어낸 『Yoink』(2024)입니다. 전체 프로젝트의 메인 격으로, 리소그라프 인쇄에 전문성을 갖춘 스튜디오 포푸리와 함께 작업했어요. 스페셜 에디션 형식으로 100권만 찍었는데요. 얼마 전에 끝난 ‘UE 16’에 참여했고, 대만 타이베이, 일본 도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트북페어에도 들고 갈 예정입니다.
‘Yoink’ 프로젝트 관련 스케치들
그다음으로는 자신을 상품화하는 돼지의 미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굿즈로 연계해 가방을 만들었어요. 이 작업은 중국 선양(沈阳)에 위치한 ‘Kaleidoscope Store’(@kaleidoscopestore__official)와 중국 디자이너 ritty(@hallorittyliu)와 협업했습니다. 농장에 살던 돼지가 레스토랑의 피자 맛에 반해 간판의 홍보 담당자로 일하게 되는 8컷 만화를 그렸는데요. 가방에 달린 8장의 태그에 만화를 인쇄하여 페이지를 넘겨볼 수 있습니다. ‘Yoink’의 네 번째 조각인 일러스트레이션 진은 8컷 만화 형식을 빌려 판화와 드로잉으로 내러티브를 풀어낸 작업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올해에는 진으로 제작하고, 내년에는 개인전과 더불어 볼륨이 큰 개정증보판으로 완성할 계획입니다.
‹Yoink bag›, 2024
최근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음식이 된 돼지가 미소를 지으며 자기 맛을 홍보하는 간판 속 모습은 마치 우화 같아요. 사회 각 분야가 점점 노동력이나 가치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더 경쟁적인 홍보나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느낌인데요. 아무리 경쟁적으로 미소 지어도 결국에는 간판 속 돼지가 얻을 것은 없잖아요. 이를 보며 진짜 미소와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요즘입니다.
‘Eat me if you can’를 위한 작업, 2024
요즘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최근 중국의 예술 플랫폼 ‘abC’(@abc_artbookinchina) 친구들과 함께 전병(煎饼) 축제의 브랜딩 ‘Eat me if you can’를 작업했는데요.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제가 그린 15컷 만화 이미지를 적재적소에 적용한 축제 부스와 티셔츠, 맥주잔, 코스터 등의 결과물이 정말 멋지고 놀라웠어요. 이미지로 공간을 채우는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하던 입장에서 좋은 해법을 제안해 준 친구들이 고마웠습니다. 슬픈 점 하나를 꼽자면 베이징에서 행사를 치른 터라 직접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평소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음식 먹는 걸 좋아하고, 작업 속 세계도 ‘피자 천국’, ‘치킨 지옥’과 같이 음식으로 이루어진 만큼 먹는 일에 진심이라 더욱더 아쉬웠던 것 같아요. 앞으로 음식점 브랜딩이나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많이 하면서 작업과 함께 미식을 탐닉하고 싶습니다.
‘Eat me if you can’를 위한 작업, 2024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직장인에 비해서는 늦게 출근하는 편이에요. 버스를 타고 10시에 충무로에 도착해 커피를 사서 작업실로 들어가요. 매일 개인 작업만 하면 더 좋겠지만, 먹고 살기 위해 외주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기획, 실크 스크린 등의 다양한 일을 합니다. 점심과 저녁은 주로 서브웨이에서 해결해요. 친구들이 ‘먹보’라고 부를 만큼 먹는 걸 좋아하는데, 음식 메뉴를 고민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이렇게 루틴을 정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매일 저녁 헬스장에서 운동할 시간이 있었지만, 최근 여러 프로젝트가 겹치면서 밤 11~12시 정도에 퇴근해요.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방해받지 않고 작업하기 위해서 약속이 없는 주말에도 작업실에 출근하곤 합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는 책 만들기를 가장 큰 목표로 삼아 이미지를 생산했어요. 드로잉이나 판화로 만든 이미지를 스캔해서 수정하고 컴퓨터에서 편집하며 순서를 정했기 때문에 이미지 자체의 완결성을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진행한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점차 현실 공간을 채워야만 하는 전시 기회가 많아지면서, 기존과는 다른 문법을 구사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조명 아래에서 ‘even’하게 보이기 위해 똑같은 검정 펜이라도 재료를 통일하거나, 설치 방식과 프레임을 고려한 여백을 계산하는 등의 설계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어요. 앞으로 입체와 설치 작업 등으로 매체를 점차 확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솔드아웃soldout’과 협업한 전시, 솔드아웃 목동, 2023
‘솔드아웃soldout’과 협업한 전시, 솔드아웃 목동, 2023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판화라는 매체를 좋아해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육체적인 노동과 시간을 들이고,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장으로 복제되고,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하고 이를 통제하는 과정이 주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중간중간 테스트(trial print)를 통해 보완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최선의 것을 찾는 ‘판화적인 사고방식’은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느껴요. 모든 것에 당장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작업하는 모든 책은 재쇄를 찍을 때 항상 새로운 판형과 인쇄 방식을 적용해요. 배(pear)에서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책 『Peardrop』의 2쇄 본은 2015년 찍은 초판과 비교했을 때 한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단단한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리소 인쇄로 제작한 『Pizza or Chicken?』이나 『Pizza Saver』도 2쇄부터는 크기를 줄이거나 표지에 실크스크린을 적용했답니다.
『Peardrop』 초판(2015)과 재쇄(2023)
(좌) 『Pizza or chicken』 초판(2022)과 재쇄(2023) | (우) 『Pizza Saver』를 읽는 관객
(상) 『Pizza or chicken』 초판(2022)과 재쇄(2023)
(하) 『Pizza Saver』를 읽는 관객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올해 초 대학원을 졸업한 후 일거리도 많지 않고 작업적으로도 고민이 많은 시기를 마주했어요. 무료한 시간을 육체적으로 이기기 위해 매일 조금씩 운동을 했는데요. 운동이랑 거리가 멀었던 지라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조금이나마 체력과 인내심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때 쌓은 체력이 요새처럼 바쁜 시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어릴 적부터 정해진 트랙과 시점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퇴사한 이후에는 그런 압박이 점차 불안으로 바뀔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불안이란 녀석은 누군가 직접적으로 내보이는 잔소리나 시선이 아니라 제 내부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전시, 아트북페어, 외주, 강연 등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하는 일의 효용을 체감하며 점차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이런 활동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임하며 불안이란 녀석에게 연료 혹은 먹이를 주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Pizza Saver», 갤러리 워터마크, 2022
«Pizza Saver», 갤러리 워터마크, 2022
«Pizza Saver» 전시를 위한 케이터링, 2022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을 느껴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다른 작가나 가르치는 학생들의 전시에 갈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 아쉽습니다. 아직 개인 작업과 일, 그리고 삶의 균형을 잡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럴수록 조금 더 지혜롭게 계획하고 정진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는 귀납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서, 머리보다는 몸으로 경험하고 생각하는 걸 선호해요. 『Pizza or Chicken?』에서 저녁 메뉴로 피자와 치킨을 고민하던 주인공은 우유부단한 제 과거와 많이 닮아 있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직접 해봐야 어떤 게 좋은지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몸소 실천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Pizza or Chicken』의 디자이너 토이 시리즈, 2024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성취하는 창작자는 정말 소수이고,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디자인이나 기획 등의 일을 항상 병행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좋은 해법을 알려드릴 수 없지만, 마음의 불꽃을 지키는 두 가지 팁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다림의 시간’인데요. 저는 직장에 다니던 7년 동안 작업을 병행한 적도 있으면서, 반대로 작업을 게을리하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림과 책과 재료를 버린 적도 있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마음속에 허전함이 들었고,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퇴사를 결심했어요. 경제적인 여건이나 마음 때문에 당장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재개할 수도 있다고 봐요. 창작에는 데드라인이나 나이 제한이 없으니까요. 기다림 속에서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시간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되는 경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하나는 ‘동료’입니다. 창작자에게는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에 동료들이 큰 힘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마치 소년 만화처럼요. 첫 아트북페어에 함께 팀을 이뤄 참여한 친구들, 혼자서는 만들지 못할 멋진 책들을 디자인해 준 친구, 제게 먼저 전시를 제안한 기획자들, 서점 주인, 해외 창작자, 여러 독자를 만나면서 지금까지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이들이 주는 에너지와 새로운 관점, 기회, 응원 등을 통해 창작을 지속하려는 제 마음이 더 커지고 단단해져요.
‘웁서울 2024’에 출품한 각종 책과 아트 토이, 2024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좋은 작업으로 기억되는 것과 함께, 항상 새로운 시도를 했던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가까운 목표로는 좋아하는 작업을 하며 발생한 수익으로 제 삶과 창작 활동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업의 방향성을 이야기해 보자면, ‘Yoink’ 프로젝트처럼 다층적인 매체로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싶어요. 이런 생각은 올해 초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제 책 속 캐릭터들을 디자이너 토이(아트 토이)로 만드는 논문을 쓰면서 확실해졌죠. 평면 작업 속 캐릭터가 물성을 가지는 상황에 저도 흥미로웠고, 관객 반응도 좋았거든요.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는 이렇게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현실 세계의 공간으로 계속 확장하는 거예요. 언젠가 누구나 알고 즐길 만한 세계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심슨 가족› ‹네모바지 스폰지밥›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처럼 말이죠!
Artist
신동철(@robineggpie)은 일러스트레이션과 판화로 구성된 아트북을 제작한다. 2015년부터 국내외 다양한 아트북페어에 참여 중이다. ‘피자 천국, 치킨 지옥’이라는 세계관을 여행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파생된 이미지와 오브제를 «Dice Man»(왓아티스트두, 2021), «Pizza Saver»(갤러리 워터마크, 2022) 같은 개인전과 «PRPT: Vault Service»(LES601, 2024), «I print, I unprint, I reprint»(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024) 등의 그룹전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