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크래피’함을 노리는 디자이너 크래피룸은 독특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소품을 제작합니다. 누군가 디자인에 관해 태클을 걸면 “엥, 내가 애초에 ‘형편없는 디자이너’라고 했잖아”라고 해버릴 수 있도록 크래피한 디자이너임을 자처했다고 합니다. B(A)SHOP에도 입점한 이 크래피한 디자이너들의 힙한 그래픽 디자인 상품들을 확인해보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크래피룸CRAPPYROOM’은 크래피 디자이너Crappy Designer 호지와 나해가 전개하는 브랜드입니다. 기획·시각적으로 어딘가 뒤틀리거나 모자란 것에 매력을 느끼며, 틀을 깨는 접근법과 실험적인 그래픽을 시도해요. 기본적으로 패션 브랜드 바운더리 안에 있지만 다양한 매체와 제품군으로 확장할 예정입니다. 크래피룸은 현재 브랜드로 운영하지만, 추후 디자인 스튜디오 활동도 하려고 해요.
혜성처럼 등장한 브랜드인데요. 크래피룸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크래피룸은 제작자가 가진 자기 모순적 특성에서 시작한 브랜드예요. 완벽주의자이지만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깨부수며 대충 살고 싶고, 창작 활동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증오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면을 드러내는 브랜드를 만들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마냥 긍정적이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고 블랙 유머를 즐기는 저희 성향이 솔직하게 묻어나는 작업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크래피룸이라고 브랜드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크래피crappy는 ‘형편없는’이란 뜻인데요. 완벽한 것을 만들지 않는(못하는) 것에 대한 선제적인 핑계를 담고 있죠. 누가 디자인에 관해 태클을 걸면 “엥, 내가 애초에 ‘형편없는 디자이너’라고 했잖아”라고 해버릴 수 있는 거예요. 어이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발칙한 사고로 시작하니까 나사 빠진 것을 만들고 이상한 아이디어를 내도 충분히 괜찮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어느 정도 브랜드의 기본 콘셉트를 구상했을 무렵인 2021년 5월, 정식으로 크래피룸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작업실을 구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흥망에 대한 고민 없이 불도저처럼 무작정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작업실을 구하고서도 몇 달간 각자의 외주 프로젝트를 하느라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끝에 가서 놀라운 급발진을 거듭해 론칭을 할 수 있었어요. 재미있는 일화라고 보기엔 고통에 가깝긴 하네요. (웃음)
머리 뚜껑이 열리는 할아버지,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아저씨, 흘러내리는 듯한 할아버지 등 굉장히 신기한 이미지가 많습니다. 메인 아트워크로 이런 이미지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마음 내키는 대로 괴상한 것을 만드는 ‘형편없는 디자이너’는 어떤 인물일까, 생각해보니 막연하게 괴팍한 노인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연륜이 쌓인 만큼 실력은 충분하지만, 오히려 반항적으로 실험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인물을 생각했죠. 즉 할아버지 모델은 크래피룸 디자이너의 아바타이자 이상향입니다. 사실 노인 이미지가 메인 아트워크로 보이도록 의도해서 사용한 건 아니었는데요. 사람들의 인상에는 노인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은 것 같아요. ‘힙한 브랜드’와 ‘할아버지’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재미있게 다가갔나 봐요. 메인 영상의 주인공인 말을 탄 아저씨는 극심한 거북목에 푸석푸석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이 인물은 영혼 없이 일에만 골몰하는 현대인, 그와 동시에 제작자 스스로를 형상화했습니다.
‹스크린 세이버›라는 작업이 굉장히 재미있던데요.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크린세이버›는 시즌 메인 영상의 주인공이 뇌를 잃어버린 채 말에 끌려 끝없이 걷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시즌 메인 영상의 쿠키 영상인 셈인데요. 저희는 이런 이야기의 영상이 불특정 다수의 모니터에서, 일터에서 재생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뇌가 집에 가버린 노동자들(저희와 고객들)이 멍 때리고 볼 때 이 작업이 완성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무물’이나 이벤트를 기획하는 등 소통 방식이 재미있어요. SNS로 소통할 때 중시하는 부분이 궁금해요.
저희는 크래피룸이 무언가를 보여주면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공유하는 상황을 기대해요. 그래서 콘텐츠가 밈과 비슷한 역할을 하도록 기획하는 편이에요. 재미있는 콘텐츠이면서 브랜드 정체성이 담겨있고,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운 크래피룸만의 ‘밈’을 확산하고 싶어요. 더불어 흥미로우면서도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소통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2021년 연말에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당첨 여부 안내 방식을 참가자 전원에게 럭키 메일을 돌리는 것으로 기획했어요. 크래피룸 특유의 얼빠지는 유머를 담은 짧은 영상을 보면 당첨 여부를 알 수 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참여자가 한 번 더 크래피룸만의 유쾌함을 느끼길 바랐어요. 실제 참여하신 분들이 해당 영상을 공유하고, SNS 계정에 올리기도 하셔서 저희가 원하는 소통방식으로 가는 것 같아서 흥미로워요.
앞으로 어떤 제품을 제작해보고 싶으세요?
만들고 싶은 제품이 정말 많아요. 의류 외에도 책, 가구, 디지털 작품(NFT 등), 주얼리 등 크래피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스토리를 담을 수 있다면 분야에 상관없이 다양한 형태로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다른 작가분과 컬래버레이션도 해보고 싶고요. 이상한 용도와 이상한 생김새의 실험적인 작품도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상품성을 떠나 그런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행위가 크래피룸이 추구하는 정체성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죠. 또 더 나아가서는 이런 작업으로 공간을 구성한 크래피 ’룸’을 꾸며보고 싶어요. 추후 브랜드가 아닌 디자인 스튜디오 크래피룸으로서 다른 기업 및 브랜드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목표도 있습니다.
크래피룸은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멋있는데 위트까지 있는 놈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스스로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스테레오타입이 있을까요?
평소에 우리끼리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요. 누가 좋은 아이디를 냈을 때 “와 너 진짜 천재다”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입니다. 이게 저희가 작업을 할 때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테레오타입인 것 같아요. ‘우리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 디자이너다’라는 스테레오타입을 가지고 싶어요. 그러나 저희는 크래피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형편없어도 된다는 편리한 스테레오타입 또한 만들어주고 싶어요.
크래피룸이 기대고 있는 동시대의 스테레오타입, 작업을 유효하게 만들어주는 시대적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양한 특징이 있겠지만, 한 가지를 얘기해보자면 젊은 세대에게 각박하고 치열한 시대라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기에 크래피룸이 보여주고 싶은 비뚤어진 유머와 형편없음이 더욱 용인될 수 있달까요. 열심히 살아도 잘 되기 어려운 상황이니까, 전형적이고 완벽한 것에 대한 반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크래피룸이 비정형적이고 완벽하지 않은 것을 보여줄 때 사람들이 대리만족하고, 그런 분들 덕분에 크래피룸이 굴러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크래피룸을 운영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어요?
마이너한 취향을 타깃으로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대중성은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운 과제로 다가왔어요. 남들이 봤을 때도 재미있는 걸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요. 또한 두 명의 인력으로 다양한 분야의 많은 업무를 짧은 시간에 해내야 하는 것도 힘들었죠. 디자인 영역 외에도 마케팅이나 행정 업무 등 브랜드 운영에 핵심적인 부분도 처음 겪어봐서 어려웠어요. 아직은 어려운 것투성이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크래피룸을 론칭하면서 두 종이 인형은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습니다. 버티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창작자 여러분! 다들 더 늦기 전에 운동을 시작하세요. 근육만이 살길입니다…
Artist
크래피룸은 기획·시각적으로 어딘가 뒤틀리거나 모자란 것에 매력을 느끼며, 실험적인 그래픽과 스토리를 담은 제품을 만든다. 그래픽 디자이너 권호지와 김나해가 2021년 11월 론칭했다.
@crappy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