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Original
아티스트에게 직접 의뢰한 아트 워크를 소개합니다
처음 이번 커미션 워크를 의뢰받았을 때, ‘스테레오타입’이라는 테마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앞섰다. 창작을 하는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지속적인 물음과 조율의 과정이 아닌 ‘적절한 방향을 따라 처리할 수 있는’ 효율적이지 않은 의미라고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해보니 스테레오타입은 길이 정해져 있지만, 동시에 의문과 이슈도 함께 따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제를 통해 스테레오타입의 장점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서, 스테레오타입의 길에서 발생하는 여러 의문을 조율하며 견고한 길을 만드는 과정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스테레오타입에서 오는 의문과 조율점을 찾는 지름길을 작업의 콘셉트로 잡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출구와 입구가 있는 길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생각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주제를 표현하는 요소는 직관과 추상으로 분류하고, 직관은 스테레오타입으로 추상은 반反스테레오타입으로 상정했다.
작업을 할 때 주제를 해석하고 영감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작업에 대한 내용을 받아보고 떠오르는 것을 오직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에 기반한 이미지로 생각해내곤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방식은 클라이언트에게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며 맞춰가는 과정에서 재미가 있다. 만일 공감해준다면, 얻은 영감을 조합, 해체하면서 구체적으로 작업을 구현하며 즐거움이 배가된다. 평소 비용, 기간, 분량 등을 파악한 후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에 대해 우선순위를 배정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다. 그동안에는 고민하는 시간이 많고(물론 고민이라고 핑계 대는 시간 동안 다른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잠도 자지만!), 아이디어가 명확해지면 바로 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번 작업의 콘셉트는 내 선에서 스테레오타입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면서도, 직관적이지 않아 보이게 장난을 치는 쪽으로 발전시켰다. 즉, 가장 중요한 특징을 꼽아 보라면 ‘출구와 입구가 정해진 복잡한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스테레오타입에 의문과 질문을 던지다가 길을 잃어 표류하는 상태를 상징하는 점들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다.
과거에는 상업 작업과 개인 작업 간의 분배를 확실히 하면서 꾸준히 개인 작업을 진행했지만, 최근 개인 작업을 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상업 작업에서 최대한 개인의 관점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아쉽게도 대부분 시안 과정에서 조율되거나 사라져버리는 경향이 많다. 이번 작업의 경우 내가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커미션 워크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비애티튜드»와 작업하며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바를 제시할 수 있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창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해진 것에 얽매이지 않고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나의 장점을 찾아내고, 반영하고, 소통하는 관점과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앞으로 더 많은 파트너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본다.
Artist
신재호는 서울에서 활동하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기업과의 협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가끔 문화·예술기관 및 작가와 일한다. LG생활건강, 네이버, SM엔터테인먼트, 하이브 등과 일했다. «Around Seoul»(CCA Hubell Street Galleries, 2020), «타이포잔치 2019»(문화역284, 2019), «오픈 리센트 그래픽 디자인 2018»(공간41, 2018)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