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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Gacha! 더차일드후드홈 김대현이 뽑은 것

Editor: 방현식
, Photographer: 박도현

Gacha!

흥미로운 인물에게 랜덤 질문을 던집니다

비애티튜드가 새로운 섹션을 시작합니다. 바로 ‘가챠!Gacha!’인데요. 가챠는 일본말 가챠가챠(がちゃがちゃ)의 준말입니다. 작은 기계에서 나는 시끄러운 금속음을 말하는 가챠는 랜덤하게 캡슐을 뽑는 게임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요. 저희는 이 가챠 시스템을 인터뷰에 적용했어요. 궁금한 질문을 마구 그러모은 후 인터뷰 현장에서 무작위로 뽑아 대화를 청합니다. 보통의 인터뷰와는 분명 다른 맛이 나겠죠?

비애티튜드의 호기로운 모험에 올라탄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편집숍 ‘더차일드후드홈THE CHILDHOOD HOME’을 운영하는 김대현 대표입니다. 패션 브랜드에서 세일즈, 바잉, MD 업무 등을 맡으며 11년간 일한 그는 2022년 1월 용리단길에 자신만의 편집숍을 시작했어요. 스트리트 브랜드 제품부터 라이프 스타일 제품까지, 다채로운 제품으로 채운 편집숍은 언제나 만석! 다른 매장에서는 쉬이 찾아보기 어려운, 개성 넘치는 국내 브랜드의 제품도 만나 볼 수 있어 입소문을 탔죠.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뽀빠이Popeye»에서 서울의 다채로움을 다룬 2023년 7월 호에 더차일드후드홈을 소개하면서 더욱 주목받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김대현 대표는 왜 홍대나 압구정이 아닌 신용산에 편집숍을 낸 걸까요? 편집숍 이름을 ‘더차일드후드홈’이라 지은 이유는 또 뭐고요? 궁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예측불허 가챠 대화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 편집숍 공간이 예뻐서 사진 찍으러만 오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때 기분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고 가시는 분들의 수에 비해, 인스타그램에 편집숍 계정이 태그된 게시물 수는 적은 느낌이어서요. 더차일드후드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시면 어떨까… 하는 게 요즘의 바람입니다. (웃음)

일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뽀빠이 Popeye» 2023년 7월호에 소개된 더차일드후드홈

┗ 더차일드후드홈이 «뽀빠이»에 소개된 뒤에 외국 손님도 많이 찾아올 것 같은데요. 외국 손님과 한국 손님의 차이가 있나요?

아무래도 외국 분들은 매장 제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저희가 외국에 있는 숍을 구경할 때 궁금한 매장은 더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잖아요. 같은 이유로 외국 손님들의 체류 시간이 더 긴 것 같아요.

┗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으세요?

최근에 스웨덴에서 온 남자 두 분이 기억에 남아요. 두 분 다 스타일이 좋아서 패션 업계에 계시는 분인가 보다 하고 어림짐작했는데, 예상이 맞았더라고요. 어떻게 찾아오셨냐고 여쭤보니 역시 «뽀빠이»를 보고 오신 분들이었어요. 스웨덴 분이, 일본 잡지를 보고, 한국 매장에 놀러 왔다는 사실이 재밌어서 기억에 남아요.

┗ 역시 손님들의 패션을 보시는군요. 저는 편집숍을 방문할 때마다 한편으론 걱정하기도 했었거든요. 사장님이 내 패션을 평가하는 건 아닐지… (웃음)

손님분들의 스타일을 자세히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스타일이 좋으신 분들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웃음)

┗ 스타일이 좋은 손님이 있으면 먼저 말도 걸고 그러세요?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아요. 매장이 넓지 않아서, 제가 먼저 말을 걸면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종종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손님이 들어오시면 가볍게 인사 정도만 하고 카운터에 있어요. 업무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SNS 게시물을 관리하곤 하죠. 중간중간 손님들을 살피면서, 혹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있다 하면 그제야 말을 걸곤 해요. 예를 들어 행어에서 옷을 꺼내 들고 다니시는 분이 있다면, 새 상품 혹은 필요하신 사이즈가 있는지 여쭙는 정도에요.

◑ 더차일드후드홈은 용리단길에 있는데요. 왜 여기로 오셨나요?

‘용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지인들이랑 술 한잔하러 자주 왔었어요. 서울의 중간이라 모이기 좋잖아요. 성수에서 모이자니 홍대에 사는 친구들이 멀고, 홍대에서 모이자니 성수에 사는 친구들이 먼데 여기는 딱 중간 지점이니까요. 그런데 모일 때마다 아쉬운 게, 이 근방에 볼거리가 많이 없더라고요. 밥 먹고, 커피 한잔한 뒤에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편집숍을 차리기로 한 게 퇴사하기 1~2년 전 즈음인데요. 그때부터 삼각지와 신용산 쪽을 눈여겨보며 자리를 찾았어요.

┗ 이전에는 어디 계셨어요?

편집숍 에이랜드ALAND에서 운영하는 프랑스 브랜드 아페쎄A.P.C.의 바이어 겸 해외 브랜드 바잉 업무를 5년 동안 맡았었어요. 이후에는 국내 브랜드들을 전개하는 레이어LAYER로 옮겨 MD로 6년간 일했습니다. 도합 11년 정도 직장에 있었네요.

┗ 요즘 패션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패션 MD를 꿈꾸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패션 MD가 정확히 어떤 업무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회사 규모나 방향성에 따라 MD 업무는 다를 것 같아요. 레이어에 입사했을 당시에, 때마침 회사가 커지는 시점이라 여러 업무를 맡아서 했던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MD가 ‘모든 걸 다한다’의 약자라고 하잖아요. (웃음) 그때는 정말 영업부터 기획 업무, 협업, 해외 업무까지 맡아서 했어요. 그래도 당시를 돌아보면, 여러 업무를 맡아서 했던 게 지금의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 더차일드후드홈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패션 업계에 계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자기 걸 하고 싶은 갈망이 있을 거예요. 그게 브랜드든, 편집숍이든 간에요. 저도 둘 중에 고민했었는데요. 브랜드를 혼자 운영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매 시즌 컬렉션도 준비해야 하고, 생산 비용도 혼자 짊어지기가 만만치 않은 걸 아니까요. 그래서 편집숍을 택했어요. 편집숍을 운영하면서 중간중간 PB 상품을 출시한다면, 브랜드 운영과 편집숍 운영의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공간을 꼭 열고 싶었고요.

┗ 오프라인 공간은 왜요?

브랜드가 어떠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공간이 가장 효율적인 것 같아요. 해외의 유명한 편집숍을 방문해 보면, 공간에 들어갔을 때 오감으로 전해지는 브랜드의 취향이라는 게 있거든요. 

┗ 그럼 더차일드후드홈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으셨어요?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연령과 성별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들어와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죠. 더차일드후드홈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유와도 연결될 것 같은데요. 더차일드후드홈은 직역하면 ‘어린 시절의 집’이에요.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생각해 보면, 제가 좋아하는 물건만 놓여 있지 않잖아요. 부모님이 좋아하는 물건은 찬장에, 형이나 누나가 좋아하는 물건은 티비 위에 놓여있죠. 각자 다른 취향을 담은 물건들이지만, 같은 공간 안에 편안하게 어우러져 있잖아요. 그래서 더차일드후드홈도 스트리트 브랜드 의류부터 리빙 제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어우러져 있어요.

┗ 그것도 궁금했어요. 매장에 들여오는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이요.

매장에서 소개했을 때, 브랜드와 매장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요. 잠재력이 있는 브랜드를 찾는 편이에요.

┗ 대표적으로 하나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최근에 ‘맨프롬이스트Manfromeast’라는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어요. 맨프롬이스트는 3D 프린트를 이용해 피겨, 키링 등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인데요.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입점 제안을 드렸어요. 3D 프린터를 활용하니 아무래도 가격 면에서 다른 피규어에 비해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죠. 피규어 시장이 넓은 일본에서도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브랜드는 많지 않아서, 해외 시장에 소개하기에도 좋다고 생각했고요.

Manfromeast x The Childhood Home 협업 컬렉션 © 더차일드후드홈 인스타그램

┗ 한국의 신진 브랜드를 해외에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으신 거군요.

지금은 해외 브랜드를 수입하는 것보다는, 한국 브랜드를 소개하는 게 시대적으로도 맞지 않나 생각해요. 한국 브랜드에 대한 해외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었고요. 무엇보다 해외 브랜드만 편집숍에 있다면, 해외 분들에게는 올 이유가 없잖아요. 동시에 한국 브랜드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몫하고요.

◑ 옷장에 티셔츠는 몇 장 있으세요?

글쎄요… 최근에 많이 버렸어요. 이제 한 40~50여 장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요새는 쇼핑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재고 또는 선물 받은 티셔츠를 입곤 해요. 쇼핑 욕구도 예전만큼은 아니어서요.

┗ 쇼핑 욕구가 활활 타올랐을 때는 한 달에 얼마 정도 쓰셨어요?

얼마를 정해서 썼던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당시 지출에 옷이 차지하는 부분이 꽤 컸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패션 회사를 다니다보니까요. 요새는 예전처럼 옷을 많이 사 입지는 않지만, 굳이 쇼핑을 한다면 브랜드보다는 핏을 따져보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빈티지 제품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 같고요. 새것이 아니다 보니 특유의 핏이나 유니크함이 옷에 담겨있어, 가끔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구매하곤 해요.

┗ 빈티지 쇼핑은 어디서 하세요?

찾아서 쇼핑을 하는 정도는 아닌데요. 빈티지 제품이나 아카이브 제품을 판매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많더라고요. 우연히 계정을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제품이 있으면 사이트에 들어가 살펴보고 구매를 고려하는 편이에요.

◑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체력 관리… 해야죠. 이제 진짜 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예전에는 퇴근 후에 탁구도 했었는데, 바빠서 자주 못 가게 되네요. 땀 흘리면서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 쉴 때는 주로 뭐 하면서 시간 보내세요?

생각해 보면, 일주일에 쉬는 날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리로는 계속 다음 일을 구상해야 하거든요. SNS 관리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집에 있을 때면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최대한 푹 쉬려고 해요. 매장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간단한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요.

┗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인상 깊게 본 작품 있으세요?

어제 밤에 ‹블랙미러Black Mirror› 시즌 6를 다 봤어요. 최근에 본 영화 중에는 미셸 공드리, 레오스 카락스, 봉준호 세 감독이 각자 도쿄를 배경으로 만든 세 편의 단편 영화 ‹도쿄Tokyo›가 기억에 남아요. 보기에는 조금 꺼림직하지만 실험적인 형식을 가진 예술 영화도 좋아하고요. 평소 생각하지 못한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면 안 쓰던 뇌의 영역을 깨우는 느낌이랄까요. 영화뿐 아니라 소설책, 진Zine, 아트북도 마찬가지로 평소 생각하지 못할법한 스토리를 가진 콘텐츠를 좋아해요. 보다 보면 ‘이런 소스를 그래픽으로 풀어볼까?’, 혹은 ‘이런 전개로 팝업을 기획해 볼까?’ 각종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굳이 영감을 찾겠다고 노력하지 않아도요.

◑ 대표님은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

글쎄요… 너무 일찍 죽기는 싫고요. (웃음) 80~90대 정도가 좋지 않을까요?

┗ 그때까지 편집숍은 쭉 운영하고 싶으신 거죠?

더차일드후드홈은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한국을 보면, 식당은 대를 이어가면서 몇십 년을 버티는 곳들이 있지만 숍은 그런 경우가 없는 것 같아서요. 나중에 제가 맡지 않아도, 다른 사장님이 이어서 맡아주면 어떨까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는 지금 규모가 딱 좋거든요. 더 키우고 싶지도 않고요. 브랜드도 무턱대고 바잉하려 하지 않아요. 입점 브랜드가 많아지면 각각의 브랜드를 온전히 소개하기 어렵거든요. 위치도 여기가 딱 좋아요. 물론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겠지만요. (웃음)

┗ 매출은 예상했던 것만큼 나오시는 편인가요?

아직 돈을 벌어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지금은 투자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돈을 벌어도 새로운 PB 상품 개발에 돈을 써야 하고, 새로운 브랜드도 들여와야 하고, 광고비도 계속 내야 하니까요. 아마 내년까지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투자를 계속하면서, 더차일드후드홈만의 아카이브를 착실히 쌓아두려 해요. 단순히 판매하는 공간으로 남지 않고, 여러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팝업 기획도 꾸준히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기억에 남는 팝업 있으세요?

지난 7월에 열었던 로컬 진Zine 페어 ‘People & Print & Papers (PPP)’가 반응이 좋아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팝업은 편집숍 ‘포스티스poshthis’를 운영하는 옥근남 디자이너, ‘로우 스튜디오Raww Studio’의 이구노 포토그래퍼와 함께 기획했는데요. 국내에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 뮤지션,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창작자 27팀의 진을 한데 모았죠. 팝업은 주말 이틀 동안 진행했는데, 대략 500분 정도 와주셨어요. 저희도 기획하면서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놀랐어요. 그래서 이번 9월에 두 번째 행사를 열 예정입니다. 7월에도 새로운 팝업을 기획 중이에요. 아직 가제인데요, ‘신용산 – 신기한 용산 전자상가’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려 해요. 게임기와 관련된 제품을 모아서 판매할 계획입니다. 어릴 때 프라모델, 미니카, 그리고 게임을 구매하려 용산전자랜드에 자주 갔었거든요.

People & Print & Papers (PPP) 로컬 진Zine 페어 현장

┗ 뭔가 어린 시절에도 대표님은 뚜렷한 취향을 갖고 계셨을 것 같아요. (웃음) 대표님께서 문화적으로 시야가 확 트인 사건이나 계기를 뽑아보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중학교 1학년 때 가서 군대 가기 전까지, 뉴욕에 한 7년 정도 있었는데요.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게 시야가 넓어진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은 아니어서, 기술을 배워야겠다 생각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별의별 알바를 다 했었어요. 비디오 렌탈샵에서도 일해보고, 식료품 가게, 신발 가게, 꽃집에서 꽃 배달도 해봤죠. 비디오 렌털숍에서 일할 때는 한창 인기였던 ‹야인시대›를 한인분들에게 대여해 드린 기억도 나네요. (웃음)

┗ 그러다가 패션 업계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신 건가요?

원래는 미용사가 되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통역을 하면서 미용 일을 배웠는데, 아르바이트였는데도 돈을 꽤 벌었어요. 주급에 팁을 더하니까 한 달에 200만 원 이상은 벌었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미용 일을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정반대더라고요.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에 쫓겨서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어요. 그래서 진로를 다시 고민하다가 패션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당시에도 옷 입는 건 좋아했거든요. 결심이 선 뒤에는 동대문에 가서, 아무 가게나 들어가 “무급으로 일할 테니, 공장 따라다니면서 일 좀 배울 수 없겠냐” 물어보고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 그때 대표님이 몇 살이었는데요?

스무 살에서 스물두 살? 군대 가기 전까지 동대문에서 일했어요. 전역 후에는 에이랜드의 세일즈팀에 입사했죠. 당시에 압구정 에이랜드에서 일했는데, 지하는 여성복이었고 2층은 남성복과 잡화였어요. 1층이 아페쎄였고요. 저는 2층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페쎄 매니저 형 밑의 자리가 계속 사람이 바뀌는 거예요. 제가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고, 그렇게 아페쎄 팀으로 옮겨 일을 시작하게 됐죠. 아페쎄 일을 하는 중에, 에이랜드 이사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사무직으로 팀을 다시 옮기게 됐고요. 아무래도 영어를 할 줄 알았던 게 플러스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 진짜 몸으로 부딪치면서 일을 시작하셨네요.

열정으로 가득 찼던 때였죠. (웃음)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레이어도 에이랜드에 있을 때 몇 번 협업하면서 알게 된 곳인데요. 협업 제품이 반응이 좋았고, 레이어 쪽 대표님과 MD분도 저를 좋게 봐주셔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주셨어요. 좋게 봐주신 분들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죠.

┗ 패션 업계에 오래 계셨던 만큼, 대표님께 자문을 구하러 오는 후배 혹은 동료 업계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특히 요즘 서울에 작은 규모의 편집숍들이 많이 생겨났잖아요.

많이 물어보긴 하는 것 같아요. 그분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혼자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어디서 피드백을 들을 수 없는데, 제가 MD로 오래 일했으니 일과 관련된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브랜드에서 나와 편집숍을 차리고 싶으신 분들도,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하시고요.

┗ 보통 그렇게 편집숍을 열겠다고 오시는 분들에게, 편집숍을 추천하는 편이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찾아오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하실 분들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제가 운영하면서 겪었던 현실적인 어려움 정도만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 편집숍 주변에 자주 가는 카페는 어디인가요?

바로 근처에 ‘당케Danke’라는 카페를 자주 가요.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데, 여기 카페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 에티오피아 원두를 좋아합니다. 업무 시작 전에 꼭 들러서 사 오는 것 같아요.

┗ 보통 하루 스케줄이 어떻게 되세요?

출근하면 가장 먼저 밥을 먹어요. 그리고 매장 청소 한번 하고, 온라인 주문이 들어온 물품을 배송하고, 새로 들어온 물건을 기준으로 매장 구성을 정비합니다. 오픈하고 나서는 컴퓨터로 온라인 사이트에 상품 등록을 하거나, 메일을 확인합니다. SNS용 이미지를 제작하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제품 제작을 위한 디자인이나 협업 작업, 미팅, 이벤트 준비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 퇴근 후에 술 한잔할 때는 주로 어디서 드세요? 편집숍 주변에 추천해 주실 만한 맛집 있을까요?

점심으로 먹기에는 ‘북천돈가스’, ‘정성손칼국수’가 좋아요. 물론 낮술 하기에도 좋고요. (웃음) 저녁에 자주 가는 곳이라면, ‘삼각정’을 추천할게요. 특수부위전문점인데요. 특히 모소리 부위랑 내장탕이 맛있어요. ‘제주옥’도 정말 자주 갔어요. 제주도 음식 전문점인데 비빔국수랑 몸국을 시켜놓고 술 먹으면 딱 좋습니다. 더차일드후드홈에서 함께 팝업을 기획한 태국 로컬 아티스트를 데려가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또 다른 태국 친구들에게도 추천해 주었는데, 가서 먹어보고 좋아하더라고요.

┗ 대표님 ‘인싸’시군요 태국 아티스트와 팝업 기획도 하시고⋯

아뇨, 인싸는 아니고요. (웃음) 10년 넘게 같은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여러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생긴 인연이 많아요. 업계 분위기가 바뀐 것도 한몫하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브랜드끼리, 혹은 편집숍끼리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였는데요.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같이 잘 되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저희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 신용산 근처에 작업실이 있는 브랜드, 혹은 편집숍의 제품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시유하다siyuada’라는 세라믹 브랜드는 바로 근처에 쇼룸이 있어요. 매장에 방문한 손님 중에 시유하다의 제품이 궁금한 분들은, 근처에 쇼룸이 있으니 한번 들러보시라고 말씀드리곤 해요. 리빙 편집숍 ‘샵 페블스Shop Pebbles’의 여러 제품들도 판매하고 있는데요. 샵 페블스는 후암동 근처에 매장이 있어요. 그래서 샵 페블스 제품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샵 페블스 매장에도 들러보시라고 추천합니다. 그 외에도 슈즈 브랜드 ‘이소IYSO’도 삼각지에 쇼룸이 있어서 저희 매장에서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 대표님의 인생에서 ‘행운이었다’고 말할만한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지금의 아내를 만난 일이 아닐까요. 이제 결혼 6년 차인데, 아내는 제 인생을 여러모로 바꿔준 사람이에요. 연애를 막 시작할 때 제가 반지하에 살았었는데요. 아내가 제게 “그냥 지금부터 자기 집에서 같이 살면서 돈을 아끼고, 결혼 자금을 모으자”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정말 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그때까지만 해도 비혼주의자였거든요. (웃음) 덕분에 아내랑 한참 토론도 했는데요. 같이 살다 보니 심적으로도 안정되고, 아내 덕분에 돈도 모여서 좋더라고요. 지금 편집숍을 차리게 된 것도, 아내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 만약 대표님이 영화에 출연한다면, 맡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이왕이면 평범한 역할보다는 강렬하게 기억되는 악역을 맡고 싶어요. 제가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의 열혈 팬인데요. 드라마에서 치킨집 사장 역할로 나오는 구스타보 프링Gustavo Fring 역할이 멋진 것 같아요. 개인적인 시련도 있으면서, 외부적으로는 위압감 있는… 인상적인 악역이라 기억에 남아요.

◑ 인생에서 잠깐 돌아가 그때의 감정을 느끼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집에 온 가족이 모여 밥 먹었던 때로 한번은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보니까 살면서, 가족 전체가 같은 밥상에 앉아 밥 먹었던 순간이 별로 없더라고요. 제가 형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제가 컸을 땐 형들이 기숙사에 들어간 후였어요. 그래서 다섯 식구가 모여 밥 먹는 장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 미국에서 살던 때를 말씀하시는 거죠?

아뇨. 미국에서 살기 전에요. 이건 저도 편집숍을 차리고 난 뒤에 알게 된 건데요. 제가 예전에 살던 집이 편집숍이 위치한 신용산 근처더라고요. 편집숍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용문시장이 있어요.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까, 장 보러 나가시던 어머니를 따라 용문시장에 자주 갔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때 시장에 100원을 넣으면 움직이는 말 모양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어머니를 졸라 실컷 타던 것도 생생하고요. 시장 안에 있는 신발 가게에서 번쩍번쩍 불이 나는 신발을 샀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기억을 더듬다 보니까 소름이 돋더라고요. 어린 시절에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Creator

김대현은 신용산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 편집 매장 ‘더차일드후드홈THE CHILDHOOD HOME’의 운영자다. 여러 국내외 브랜드를 소개하며 다채로운 팝업을 병행 중이다.

Editor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현재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다. 렌즈 기반의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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