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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예쁨을 넘어서서 콘셉트를 추구한 패션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

Writer: 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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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작가 박찬용이 들려주는 브랜드 이야기! 『요즘 브랜드』의 저자이기도 한 박찬용이 브랜드 리포트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브랜드는 바로 패션 브랜드 마르탱 마르지엘라!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MM에서 오늘날 MM6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돌아봤어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브랜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1989년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컬렉션 20주년이 되던 해, 마르탱은 자신의 이름이 걸려 있는 자기 브랜드를 떠납니다. 마르탱이 떠난 후 마르탱이 없는 메종 마르지엘라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마르탱 마르지엘라로부터 출발한 메종 마르지엘라에는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없다. 오늘날 MM6로 불리는 어느 패션 브랜드의 역사를 요약하면 저런 결론이 나온다. 브랜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패션 브랜드 사례를 말하기 쉽다. BI 등 시각디자인 요소가 있는 동시에 옷이나 인테리어 등 손에 잡히는 제품디자인 요소가 있고, 이들이 모여 잘 작동하면 고부가가치(=높은 마진율)라는 현대 사회의 성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사례는 그중에서도 남달리 상징적이다.

MM6와 독일군 스니커즈와 목 뒤에 집힌 흰색 스티치 네 줄은 알아도 인간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몇 년생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르지엘라는 1957년생 벨기에인이다. 한스 짐머와 오사마 빈 라덴과 노사연과 동갑이다(4월생이니 닭띠다). 그는 일곱 살 때부터 디자이너가 되길 원했던 강한 비전을 지닌 사나이였다. 앤트워프왕립패션학교를 졸업하고 20대부터 가장 가장 잘 나가던 브랜드 장 폴 고티에에서 일하다가, 1989년 서른두 살의 나이에 본인의 이름을 딴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MM를 만들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인 히스 오운 워즈’ 공식 예고편

2020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마르탱 마르지엘라: 인 히즈 오운 워즈»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처럼 마르지엘라 본인이 자기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말한다. 그 영화에 마르지엘라 콘셉트의 뿌리가 드러난다. 그의 뿌리는 단순했다. ‘반대.’ 당시 패션 브랜드의 쇼룸이 콘크리트에 검은 가구였기에, 그는 반대로 온통 흰색으로 칠했다. 또 당시 유행하던 장 폴 고티에풍의 화려한 디자인 대신에, 꼼 데 가르송을 만든 레이 카와쿠보풍의 수수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마르탱은 일본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일본 전통 신발의 앞모양을 서양 구두에 결합시켰다. 그게 아직도 백화점에 전시되어 있는 타비 슈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1989년 데뷔 쇼

뿌리보다 더 중요한 건 선진성이다. 초기 MMM은 근본부터 달랐다. 컬렉션을 이끄는 동력 자체가 달랐으니까. 보통 패션 디자인 컬렉션은 근본적으로 예쁨을, 매 시즌 다른 예쁨을 추구한다. 반면 마르지엘라는 예쁨을 넘어선 콘셉트를 추구했다. 군용 양말을 해체해 니트를 만들었다. 이런 것도 패션이 되나, 싶은 시도를 계속했다. 헌 옷을 고쳐서 컬렉션 피스로 내보냈다. 실루엣이 아닌 콘셉트를 추구한다는 건 외형이 아닌 맥락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이는 한정판이나 공정 무역이나 컬래버레이션 등 피곤할 정도로 맥락 범벅이 된 오늘날의 패션 월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의 그는 분명히 다른 디자이너와 다른 단위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시대보다 앞선다면 매출은 뒤처지기 쉽다. MMM도 그랬다. 시장에 우호적이지도 않고, 사장님이 어디 얼굴 비추면서 한 벌이라도 더 팔려고 하지도 않고, 옷이 시각적으로 예쁘지도 않으니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놀랍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 재능이 있는 건 확실했으니 투자자도 금방 따랐다. 바로 디젤을 이끄는 렌조 로소였다. 마르지엘라의 투자자가 디젤이라니, 우래옥을 엽기떡볶이가 인수하는 느낌이다. 투자금을 받으면서 마르지엘라의 고고한 아틀리에에 ‘브랜드 매니지먼트’나 ‘마케팅 디파트먼트’같은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울러 인터넷 시대가 패션과 맞물리자 57년생 닭띠 마르지엘라는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컬렉션 20주년이 되던 해에 자신의 이름이 걸려 있는 자기 브랜드를 떠났다.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MMM의 2009년 쇼

마르탱이 떠난 후 MMM은 ‘마르탱’을 뺀 메종 마르지엘라(MM)가 된다. 마르탱이 없는 메종 마르지엘라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우연과 비결이 있다. 첫째는 마르탱이 남긴 것이 콘셉트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선배 디자이너들처럼 자신만의 패턴이나 실루엣으로 승부하던 쿠튀리에르가 아니었다. 그가 주창한 건 콘셉트였으니, 마르지엘라는 패션 함수를 짜두고 간 셈이었다. 남은 후학들은 마르탱의 유산을 참고하며 재해석하면 된다. 바흐의 음악을 끊임없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처럼. 마르탱은 ‘MM 콘셉트’라는 악보를 남기고 떠난 것이었다.

사장님이 투자금 받아왔다가 일하기 힘들다고 떠난다면 그 사장님 보고 들어온 직원에겐 악몽 같은 일이다. 그러나 마르탱 본인의 성격이 브랜드에게는 좋게 작용했다. MMM은 마르탱 본인이 망친 적 없이 하다 말았기 때문에 순조롭게 계속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회사 입장에선 다른 사람을 대표로 세워도 상관이 없었다. 하다 말아서 계속되고 얼굴이 없어서 영속성이 생긴다니 인생은 심오하다.

육스 그룹에서 만든 마르탱 마르지엘라 단편 영화 ‘아티스트는 자리 비움(The artist is absent)’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우로 지미 추가 있다. 지미 추는 말레이시아 페낭 출신의 구두 디자이너다. 지금의 ‘지미 추. Co. Ltd’는 지미 추라는 이름을 가진 고급 구두 브랜드일 뿐이고 주인은 몇 번씩이나 바뀌었다.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와 그 브랜드로 벌어지는 사업은 각자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됐다. 그나마 메종 마르지엘라는 여전히 디젤 그룹 소유다.

이제는 모든 브랜드가 마르지엘라처럼 한다. 브랜드의 뿌리와 아무 상관 없는 별도의 아름다움을 쌓는다. 셀린과 에디 슬리먼은 상관이 없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아직 살아 있지만 프라다 브랜드를 라프 시몬스가 총괄하는 것도 이제 당연해 보인다. MMM을 사사한 MM 역시 존 갈리아노의 지휘 아래 아직 순항 중이다.

메종 마르지엘라(MM)에서 최근 공개한 메종 마르지엘라 쇼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정말 특별한 경우였을까. 조건부로, 그렇다고 본다. 초기 마르지엘라는 분명 남달랐으나 그가 했던 건 시대의 필연이었으니 누군가는 했을 일이었다. 힙합이 그렇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방법론을 개척한 사람들은 있지만 지금의 힙합은 초창기 개척가가 만들었던 그 장르보다 훨씬 커져버렸다. 마르지엘라도 그렇다. 그는 21세기 패션 브랜딩의 방법론을 얼떨결에 제안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패션 산업은 마르지엘라 시대의 단위를 훌쩍 뛰어넘었고, 지금은 칸예 웨스트처럼 지금의 방식대로 세상의 실루엣을 만들어가는 천재들이 있다.

마르지엘라는 스타트업으로 치면 엑시트 전략에 성공했다. 자기 브랜드를 자기 손으로 떠난 후에도 여전히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까. 그러니 개인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유럽 하이 패션계의 김소희라고 볼 수도 있겠다. 김소희는 스타일난다를 창립하고 엑시트에 성공한 희대의 사업가다. 엑시트 타이밍이야말로 동물적인 감각의 영역이니, 인간 마르지엘라의 감각만은 의심할 수 없다. 브랜드 마르지엘라 역시 살아남아 있으니, 어찌 보면 이게 서로에게 최고의 해피엔딩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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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parcchanyong) «에스콰이어» 등의 잡지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요즘 브랜드』 『첫 집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매거진를 몇 권 만들었다. 한국 대기업의 브랜딩 작업에 참여했다. 신문과 잡지에 원고를 낸다. 뉴스레터요기레터앤초비 북 클럽을 발행한다. 『요즘 브랜드 2』와 제목 미정의 역사책을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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