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제가 되는 인터넷 밈 중에 이걸 빼놓을 수는 없을 거예요. 바로 ‘원영적 사고’입니다. K팝 아티스트 IVE의 멤버로 인기를 구가하는 장원영의 초긍정적 멘털에 대해 놀라움과 존경을 담아 세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원영적 사고는 마음가짐에 대한 챌린지 성격을 띠며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각종 유명인의 어록에 기인한 ‘A적 사고’도 함께 증식 중입니다. 요즘은 펠리컨까지 가세했어요. 재미있는 게임처럼 사고 과정을 다르게 바꿔보는 A적 사고의 인기에서 «비애티튜드»에 ‘밈 원정대’를 연재하는 우리의 밈 전문가, 김경수 님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롤모델의 변화를 포착합니다. 성공한 기성세대가 롤모델 리스트에서 증발하고 우리 삶에 맞는 새로운 롤모델, 냉소와 이익 관계에서 벗어난 롤모델의 부상을 응원하는 건데요. 원영적 사고와 롤모델이라니, 이 엄청난 이야기가 어떻게 엮일 수 있을까요? 이번 아티클에서 꼭 확인해 보세요.
설렜다. 인터넷 밈에 심장이 마구 쿵쾅거리는 기분은 오랜만이다. 별 5개짜리 만점 영화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최근 소셜 미디어를 강타한, (여러분도 너무나도 잘 아는) ‘원영적 사고’의 인기가 심상찮다. 뉴스는 물론 광고와 예능, 신문, 칼럼에 이르기까지 온갖 곳에 출몰 중이다. 인기가 시들 법도 한데, ‘희진적 사고’, ‘동원적 사고’, ‘우희적 사고’, ‘펠리컨적 사고’ 등 ‘~적 사고’라는 표현으로 진화해 2차 유행이 시작되는 중이다. 이 에세이가 발행될 즈음이면 원영적 사고는 국민 인터넷 밈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원영적 사고를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원영적 사고는 어떠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초긍정적 사고(Super Positive Thinking)를 뜻한다. K팝 아티스트 IVE의 멤버, 장원영이 스페인의 한 빵집에 들른 모습을 찍은 영상에 뿌리를 둔다. 그는 먹으려던 빵이 눈앞에서 동났는데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면 가게를 나갔을 상황인데도 오히려 빵이 품절된 덕에 갓 구운 빵을 먹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말한다.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해당 영상은 소셜 미디어 채널에 공유되며 소소하게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알아두어야 할 사실 하나.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돌 팬 사이에서 장원영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유명했다. 딸기를 두 손에 쥐고 먹는 모습을 포함한 다수의 영상에 상상 이상의 악플이 달렸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나는 나고, 너는 너고” 하는 식인데, 솔직히 존경스럽다.
단언컨대 장원영은 천상 아이돌이다. 이 영상 하나만 보더라도 그 이유를 몸소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어디를 가든지 산뜻한 분위기를 만들며 주위를 사랑스러움으로 물들인다. 인공적으로 제작된 사랑스러움이 아니다. 그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서 생기는 힘이다.
장원영에게 쏟아지는 악플이 심하다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악플로 인한 소중한 아이돌의 죽음을 여러 번 본 적 있기에 걱정되었다. 장원영은 다행히 잘 대처하고 있는 듯하다. 쇼펜하우어는 타인에게 화내는 것은 돌에다 대고 화내는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나고, 너는 너야”라는 태도가 그 느낌이 아닐까.
영상 원본이 인터넷 밈으로 가공되기 시작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K팝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에서 운영하는 실시간 채팅 서비스 ‘프라이빗 메시지’에서 어떤 일이 생기든 긍정적인 결과에 집중하는 장원영의 멘털 넘치는 대화를 두고, 한 X(舊 트위터) 유저가 이를 유쾌하게 정리한 게시물이 트리거 역할을 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를 쓴 다음, 이 둘을 넘어서는 원영적 사고를 적어 내려갔다. 만약 물 반 컵이 남았다고 가정하자. 긍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물이 반 컵이나 남았다고 생각하고, 부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물이 반 컵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원영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다 먹기엔 너무 많고 덜 먹기엔 너무 적고 그래서 딱 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완전 행운이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전설의 원영적 사고 원본이다. 본문에 밝히지 않았지만, 원영적 사고가 유행하기 전 비슷한 밈이 유행한 적 있다. 침착맨의 ‘오히려 좋아’다. 어떤 상황에 닥치든 ‘오히려 좋아’라는 마음으로 뒤집어 생각하면 잘 살아진다는 것이다. 침착맨의 밈이 고도로 발달한 것이 원영적 사고라 생각한다. 침착맨의 ‘오히려 좋아’는 긍정적, 부정적 사고라는 대비되는 사고를 이야기하지 않은 탓에 금방 잊혔다. X(트위터) 발 인터넷 밈이 그러하듯 이러한 구술적인 밈은 텍스트로 새겨져야 더욱 파급력이 생긴다.
여기서 인터넷 밈은 일종의 놀이라는 사실을 되새겨보자. 원영적 사고 짤방을 만든 익명의 유저 덕분에 우리에게는 A라는 특정 상황을 긍정적 사고, 부정적 사고, 원영적 사고라는 틀에 따라 가공할 수 있는 규칙이 생겼다. 문장 마지막에 유저가 더한 ‘럭키비키잔앙’는 후렴구 역할을 하며 중독성을 더한다. 이 놀라울 만큼 단순한 규칙은 원영적 사고에서 가장 감탄스러운 점이다. 규칙을 공유하는 사람 누구라도 특정 상황을 원영적 사고로 가공할 수 있다. 단점이나 문제를 장점으로 승화하는 발상의 전환만으로 충분하다. 원영적 사고를 쓰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행하더라도 부담 없이 놀이로 승화시킨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습관이라도 되면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어쩌면 원영적 사고 밈이 초긍정적 사고를 기르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기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영적 사고에 대해 정신 승리라고 비아냥거리는 반응은 솔직히 동의하기 힘들다. 최악의 상황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그마저 긍정하자는 태도가 원영적 사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인터넷 밈은 어른이 쓸 때 어색해진다. 인터넷 밈의 룰이 복잡해서다. 어른이 인터넷 밈을 따라잡으려면 “세상엔 저런 것도 있구나”하는 개방된 태도와 세련된 감각이 필수다. 원영적 사고는 그 장벽마저 무너뜨린다. 원영적 사고는 교수가 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쉬운 인터넷 밈이다.
우리는 무한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중이다. 뒤처지는 순간 낙오자가 된다는 개인의 불안감을 동력 삼아 사회가 굴러간다. 자기 계발은 그 불안감을 파고든다. 업무 외 휴식 시간까지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나아가 시간뿐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손해와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하며 관리 대상으로 삼는다. 원영적 사고는 손해와 이익의 관점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모든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즉, 손해와 이익, 슬픔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사고를 연습하는 기회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원영적 사고와 비교할 만한 명언이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아포리즘aphorism이다. 장원영이 니체 같은 위대한 철학자와 동격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장도연이 진행하는 ‹살롱드립 2›에서 그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와 『논어』를 읽는 등 독서를 즐긴다고 말한 바 있다. 장원영의 마음가짐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적 사유에 우연히 다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이번 에세이를 쓰는 동안 즐거웠다. 장원영이라는 인간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다. 장원영과 나 사이의 접점을 하나씩 발견할수록 언젠가 그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장원영이 인용한 구절도 내가 사랑하는 구절 중 하나다. 냉소와 걱정, 근심에 사로잡히느니 그마저 긍정하자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이라 더욱 그러하다. 살아갈수록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중이다.
원영적 사고는 변주 방식마저 흥미롭다. 희진적 사고와 동원적 사고가 대표적이다. 희진적 사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악착같이 살자는 마음이다.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말한 “아니, 죽긴 내가 왜 죽어? 억울해서 누구 좋으라고 죽어?”라는 발언을 모티브로 삼는다. 부당함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인상적이다. 동원적 사고는 배우 강동원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20~30대 때는 ‘이게 왜 안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40대가 되니까 여유가 생겨서 ‘그치 원래 안 되는 거지, 내가 좀 더 열심히 해볼까?’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을 가공했다. 원영적 사고가 활기 넘치는 느낌의 초긍정적 사고라면, 동원적 사고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책임과 여유를 지닌 긍정적 사고다. 비슷한 예로 우희적 사고도 있다. 배우 천우희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어우, 나는 나중에 얼마나 잘되려고 이럴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에서 기인한다. 최근 유행하는 A적 사고의 주인공은 펠리컨이다. 대상이 뭐가 됐든 간에 일단 부리부터 쫙 벌리고 카피바라부터 기린까지 온갖 것을 삼키려 하는 펠리컨 사진에 ‘펠리컨적 사고: 일단 시도함’이라고 적어둔 것이다. A적 사고는 이제 원영적 사고를 벗어나 그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중이다.
완벽주의 성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깜냥이 안 되는 일까지 억지로 하다가 혹 실패라도 하면 나를 책망했다. 이제는 안다. 세상엔 내 깜냥으로 안 되는 것이 한가득하다. 강동원처럼 잘 생겨지는 것이 그중 하나다.
옛날에 우희적 사고로 살던 지인과 대화한 적 있다. 내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나는 그 말이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까 씁쓸하다. 그 말을 조금이라도 일찍 마음에 새길 걸 후회가 밀려온다.
펠리컨적 사고는 진짜 유쾌하다. 이 밈이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것이 인상 깊다. 한국의 청소년은 입시지옥에서 자유롭지 않은 존재니까. 미디어 속 청소년은 문해력이 부족한 스마트폰 중독자로 그려진다. 유행하는 인터넷 밈 속의 청소년은 정반대다. 그 어떤 세대보다 자유분방하다. 부딪히고 실패하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라면 나는 그들이 잘 성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A적 사고가 유행할 때마다 A가 네티즌의 롤모델로 부상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A적 사고의 주인공은 보통 연예인이거나 동물이다. 기업가, 정치인, 작가, 교수 등 고전적인 롤모델은 철저히 외면받는다. 나는 민희진의 ‘개저씨’ 발언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호응과 A적 사고 밈의 유행이 결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개저씨라는 표현은 이해관계와 조직을 빙자해 본인의 사적 욕망에 충실한 기성세대 남성 전반에 날리는 일침이다. A적 사고는 이보다 더 급진적이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라는 말이 있지 않나. 개저씨가 비난이라면, A적 사고는 기성세대에 대한 무시에 가깝다. A적 사고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롤모델로 간주할 만한 참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아이돌과 배우, 동물을 롤모델 삼아 거기서 삶의 좌우명을 발견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돌과 배우를 롤모델로 삼는 경우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펠리컨 등의 동물까지 롤모델의 범위에 들어오는 건 차원이 다르다. ‘나무늘보적 사고’ 등 예상치 못한 온갖 A적 사고가 쏟아져 나올수록, 고전적 롤모델의 위상은 현저히 떨어진다. 펠리컨과 나무늘보보다 본받을 점이 없는 존재라는 뜻이니까. 결국 A적 사고는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더욱더 은밀하고 강력한 저항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A적 사고의 유행은 희망적이다. 우리 삶에 더욱 가까이 있고,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롤모델을 물색하려는 동경심의 발호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진심 어린 동경이야말로 분노와 냉소로 가득한 요즘 사회에 해독제로 기여할 수 있다. 최근 주기적으로 거론되는 자기계발서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분노로 가득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000억 원대 자산가라고 알려진 익명의 작가 세이노는 자신의 글을 모은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분노를 추진력으로 삼아 세상에 ‘Say No!’라고 말하라고 가르친다. 매일 알약 14개를 먹는 정신질환자이자 월 3500만 원을 번다는 30대 자산가 손수현이 쓴 『악인전』은 자신의 모자란 처지에 분노하는 분노 일지를 쓰라고 권유한다. 분노와 열등감이야말로 성장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냉소 또한 보편적인 정서가 되고 있다. 자기계발서 작가 박세니가 미는 광고 카피 ‘가난은 정신병입니다’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휘젓고 다녔다. 차라리 이 광고는 솔직하기라도 하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다정한 척하는 냉소다. 인스타그램에서 바이럴되는 책 광고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하는 사람은 걸러라’, ‘~하는 남자를 만나라’ 따위의 문장이 그러하다. 가난하거나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등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는 등 ‘갓반인’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에 대해서 인간관계에서 제거할 대상으로 삼고 손절을 권하기도 한다. 이때의 손절은 ‘손해를 끊는다’라는 뜻이다. 사람을 이해관계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타인을 존중하며 무언가를 배우려는 태도가 결여돼 있다.
인스타그램 책 바이럴 광고의 전형적인 문구다. 분명 다른 책을 광고하는데 카드 뉴스 내용은 전부 거기서 거기다. 잘 배운 사람은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으며 인간관계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등 그럴듯한 말로 가득하다. 솔직히 사람이 모두 그리 깔끔하게 살지는 않는다. 가끔은 자의식 과잉에 사로잡히기도 해서 흑역사를 만들고, 소중한 사람을 보려고 비행기에 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손해와 이익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자아와 정체성이 복잡한 만큼 둘 혹은 그 이상이 만나는 인간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피해와 가해, 사랑과 증오가 오가며 생기는 정(情)이 사라져가고 있는 세상에 일조하는 요소가 저런 입에 발린 말이라 생각한다.
호구라는 단어를 더는 쓰지 않는다. 호구는 인간관계를 손해와 이익이자 교환 관계로 보는 단어 중 가장 부정적이다. 호구라는 단어에는 진심으로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손해와 이익으로나마 그 불안을 수치화하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예찬』에서 사랑의 개성 가운데 하나를 공산주의라 보았다. 사랑하는 이가 모두 좌파로 전향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랑에 진입한다는 말이다. 사랑은 거리를 걷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이 애정하는 캐릭터 인형을 급작스레 사고 싶은 사소한 마음으로 유지된다. 무조건 손해인 짓이다. 호구는 사랑의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A적 사고는 다르다. 타인은 물론, 펠리컨 같은 대상으로부터까지 삶의 태도를 발견하고 배우려 한다. 더불어 이해관계에 충실한 기성세대의 삶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만의 삶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A적 사고에 담긴 겸손함과 긍정적인 사고에 더 나은 나로 살아가려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자기 계발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이유다. 긍정적인 생각을 할수록 뇌에서 나오는 주파수가 긍정적인 물질을 끌어온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적 자기 계발이 아니라, 한층 더 성숙한 나를 위해서 인생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을 수련하는 자기 계발 말이다. 세상이 고통과 무의미로 가득 찼다고 말하는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세상을 초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원영적 사고가 동시에 유행하는 혼란스러운 시대. 이런 방황이 더 나은 롤모델을 물색하는 과정이라면 오히려 괜찮을 듯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쨌든 각자의 현재를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A적 사고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다양하게 쏟아지기를 바란다. 그만큼 우리에게 성장의 기회가 더욱더 활짝 열릴 테니까.
덧. 김경수 님의 단행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김경수 지음, 필로소픽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지난 6월 17일 동명의 단행본으로 발행됐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