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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현대미술 설명서: 당신은… 젊은 OO인가요?

Writer: 박재용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신선한 관점으로 현대미술을 바라보게 돕는 박재용 님의 현대미술 설명서, 새로운 글이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한 번씩은 생각하던 주제인데요. 대체 한국에서 ‘젊은’ 작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호칭이 풍기는 의미는 너도나도 잘 알겠는데, 실제로 파악하는 기준이 존재할까요? 만일 있다면 어디에 근거를 두는 걸까요? 더불어 특급 고령화 시대가 달려오는 지금, 젊은 작가를 바라보는 기준은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을까요? 조곤조곤 물어오는 재용 님의 질문, “당신은…젊은 OO인가요?”에 대해 다 함께 생각할 시간입니다.

1981년 «제1회 청년작가전» 개막식 기념사진. 참여 작가와 전시 관계자는 전시를 개최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앞에서 촬영에 임했다. (사진: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CC BY-NC-ND)

누군가 당신에게 ‘젊은’ 작가, ‘젊은’ 큐레이터 혹은 그 어떤 ‘젊은’ 무언가에 관해 물어볼 때 가장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검색 엔진에서 ‘~세 이하 젊은 작가’를 한번 입력해 보자. 실제 구글에서 해당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를 별다른 필터링 없이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 “젊은 아티스트들의 발칙하고 기발한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아트페어”인 ASYAF는 “국적에 상관없이 대학(원) 생 및 만 35세 이하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아시아프’와 만 36세 이상의 숨겨진 미술계 고수를 발굴하는 ‘히든 아티스트’ 부문”으로 나뉜다.
  • 겸재정선미술관은 2022년에 “작가 발굴 및 가능성을 지닌 만20세 이상~만40세 이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재료와 기법, 뛰어난 창의력을 지닌 수준 높은 작가들을 공모”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지난 2019년 “등단 5년차 미만, 만 35세 이하 젊은 작가(시인과 소설가)”들의 작품을 담은 앤솔러지를 발간했다.

‘~세 이하’와 여러 미술 기관의 이름을 조합하면 좀 더 다양한 결괏값을 얻을 수 있다.

  • 금호미술관의 ‘금호영아티스트(2004-)’는 만 35세 이하의 대한민국 국적 작가를 지원 대상으로 하는데, 2018년도 공모가 진행되지 않아 2019년 제17회 공모에 한해 지원 자격을 완화하여 만 36세 이하의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2018년까지는 만 33세 이하를 조건으로 했다.
  • 리움 미술관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격년제 전시인 «아트스펙트럼»(2001-)은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를 소개한다. 2014년을 기점으로 만 45세 이하의 작가를 선정하여 그중 한 명에게 작가상을 수여한다.
  • 국립현대미술관의 격년제 전시 «젊은 모색»(1990-2014, 2019-)은 1981년 시작한 «청년작가전»(1981-1989)을 전신으로 삼는데, 처음에는 참여 작가를 만 35세 이하로 제한했다. 이는 1959년 시작해 1985년까지 운영한 파리 비엔날레(1959-1985)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편 파리 비엔날레 참여 작가를 만 35세 이하로 제한한 결정은 프랑스 최초의 문화부 장관(1958-1969)으로 일한 소설가 겸 정치가 앙드레 말로(1901-1976)가 내렸다. 당시 국제적으로 명성이 컸던 베니스 비엔날레(1895-)와 상파울루 비엔날레(1951-)를 관람하던 말로는 젊은 세대 작가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롭게 시작하는 파리 비엔날레에 연령 조건을 걸었다.
  • 故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설립된 두산연강예술상(2010-)은 “공연·미술 부문에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는 만 40세 이하 대한민국 국적의 예술가”를 선정한다. 이 상을 운영하는 두산연강재단 산하의 두산아트센터에서는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도 진행하는데, 이 역시 “한국 현대미술계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만 40세 이하 젊은 큐레이터”를 지원한다.
  • 2000만원의 상금과 함께 개인전 개최 기회를 안겨주는 송은미술대상(2000-)은 “대한민국 국적 보유자로 만 45세 이하, 최근 3년 이내 개인전 1회 이상 개최자”를 대상으로 한다.
  • OCI 미술관의 젊은 작가 공모 프로그램인 OCI 영크리에이티브스(2010-)는 만 35세 이하 작가를 지원한다.
  • 서울문화재단은 2016년 ‘비기너스 프로젝트_최초예술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지원금을 받은 이력이 없는 만 35세 이하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공공지원금 수혜 경력이 없는 만 39세 이하 또는 데뷔 10년 이하 청년예술인과 단체”로 조건을 바꿨다.
  • 제약사 종근당이 진행하는 종근당 예술지상(2012-)은 “만 45세 이하의 회화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만약 영어로 ‘~세 이하, 아티스트(under … years of age, artist)’를 검색하면 어떨까? 레지던시 지원 조건을 설명할 때 연령을 제시하는 경우가 나오긴 하지만 딱히 연령 제한에 대한 규정이 엄격하지는 않은 듯하다.

  • 암스테르담에 자리한 유서 깊은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라익스 아카데미Rijksakademie’는 만 25-35세 작가의 지원을 독려한다. (그러나 그보다 젊거나 나이 든 작가의 지원도 환영한다고 밝힌다.)
  • 암스테르담에서 2년 단위로 진행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더 아틀리에De Ateliers’는 “만 28세 이하 작가를 선호(preferably under 28 years of age)”하지만 연령을 제한하지 않는다. 
  • 2019-2021년 팬데믹 기간 중 3배 이상 시장 규모가 커진 ‘초현대미술(ultra-contemporary)’ 시장은 1974년 이후에 태어난 (대략 만 50세 이하) 작가를 다룬다.

그런데 혹시 ‘~세 이하’에 대한 한국어 검색 결과에서 모종의 패턴이나 흐름을 느꼈는지? 대략 만 35세 기준을 주류로 삼던 ‘젊은 작가’의 연령이 어느샌가 스리슬쩍 만 40세를 넘어 만 45세를 향하고 있다. 이는 ‘젊음’에 대한 연령 규정의 사회적 합의가 변화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령화하는 전 세계 인구 변화에 맞춰 다음과 같이 연령 분류를 재규정했다. ‘젊은이(young age)’는 25-44세, ‘중년(middle age)’은 44-60세, ‘장년(elderly age)’은 60-75세, ‘노인(senile)’은 76세부터. ‘청소년(youth)’은 15-24세다. “만 45세 이하”를 연령 조건으로 삼는 다양한 작가 지원이나 수상 제도는 WHO가 제시한 ‘젊음’의 기준을 꽤나 충실하게 따르는 셈이랄까.

Art는 3월호 특집으로 ‹New Wave in Contemporary Art›를 야심 차게 내놓는다. 동시대미술의 전시 키워드’를 중심으로 2020년대 한국 컨템퍼러리아트의 지형도를 그린다. 여기에 35인의 영 큐레이터가 추천 위원으로 가담했다. 출처: 미술 월간지 «아트인컬처» 웹사이트

‘~세 이하’ 검색 결과를 살펴보며 나이를 세고 있자니 몇 달 전 일이 떠올랐다. 미술 월간지 «아트인컬처»가 2023년 3월호 특집으로 마련한 “New Wave in Contemporary Art”에 ‘영 큐레이터’로 참여했던 것인데, ‘네오-버내큘러’, ‘행동주의’, ‘콜렉티비즘’, ‘하이프’, ‘비관계적 미학’을 키워드로 제안하며 무척 즐겁게 참여한 프로젝트였으나 이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로 내 나이 39세. 마흔이 코앞인 내가 ‘영 큐레이터’라니! 대체 ‘영 큐레이터’는 다들 몇 살이나 먹고 어디서 무얼 하는 사람들인가?’ «아트인컬처» 편집부에 문의해 보니 해당 특집에 참여한 큐레이터 중 연령이 가장 낮은 사람은 32세, 가장 높은 이는 50세, 평균 연령은 39세였다고 한다. 앞서 말한 ‘늙어가는 젊음’의 스펙트럼과 꽤 일치율이 높은 연령 범위다.

얄궂게도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젊은 작가’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2023.04.27~2023.09.10)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격년제로 열던 해당 전시는 아까 언급했듯 그 시작이 198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꽤 긴 역사를 자랑한다. 처음에는 만 35세 이하 작가를 소개하다가 한동안 연령 기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1998년 전시 인쇄물에서 “만 39세 미만의 젊고 역량있는 신예작가”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1998년 «젊은 모색» 전시 인쇄물. 국문 제목은 젊은 모색 을 꾸준히 지켜왔지만, 영문 제목은 1992년까지 (좀 더 젊은 느낌의) Groping Youth 를 쓰다가 1994년 New Ventures Korean Young Artists’로 바뀌었다. 현재는 Korean Young Artists 를 쓰고 있다.

지난 2014년을 기점으로 «젊은 모색»은 더 이상 작가 선정 기준에 연령을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중위 연령이 만 40세를 돌파한 해라는 점은 아마 우연일 테다.) 참여 작가의 나이는 여전히 3-40대를 맴돌고 있지만, 나이만으로 ‘젊음’을 규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젊은 모색»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전시가 ‘젋음’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와는 별개로, 전시 자체의 나이부터 어느덧 마흔을 넘긴 상황에서 초고속으로 고령화하는 전체 인구 집단에서 채 한 줌이 되지 않는 미술 종사자를 대상으로 어떻게든 ‘젊은’과 ‘모색’이란 키워드에 맞는 이들을 찾아 뭔가 쇄신해 보려 고군분투하는 큐레이터의 노력에 (동종업계 종사자인) 내가 지나치게 이입하는 것일까?

2019년 «젊은 모색»에 참여한 작가 안성석은 작품의 엔딩 크레딧에 QR코드를 하나 삽입했다.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끝까지 관람한 후 엔딩 크레딧과 함께 등장한 QR 코드를 스캔한 관객의 휴대 전화에는 위 이미지가 출력되었다. 다음 링크에서 작가가 유튜브에 직접 올려 둔 약 12분 길이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 (링크)

앞서 살짝 밝혔듯이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이미 고령화사회(Ageing Society)는 2000년에 진입했고, 2018년 고령사회(Aged Society)가 되었다. 그리고 내후년인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 진입을 예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중위 연령과 각종 미술 지원 제도에서 규정하는 ‘~세 이하 젊은 작가’의 연령을 겹쳐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중위 연령은 모든 사람을 인구 집단 전체를 한 줄로 세웠을 때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의 나이를 뜻하는 수치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만 35세 언저리였던 중위 연령은 2023년 현재 만 45세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뒤인 2041년에는 중위 연령이 만 55세에 도달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중위 연령이 점점 빠른 속도로 높아지는 절망적 추세를 막을 방법은 요원하다. 노인정에 간 60대 노인이 80대 노인에게 서열이 밀려 자리다툼을 했다는 뉴스 보도에서 헛웃음이 아니라 공포심이 드는 게 현실이다. 결국 지금의 고령화 추세라면 마흔은 물론 쉰 살이 되어도 계속 ‘젊은’ 작가로 활동하는 미래가 충분히 도래할 수 있다. 

KOSIS 국가통계포털에서 열람할 수 있는 대한민국 인구상황판. 과거-현재-미래의 중위 연령을 비롯해 다양한 인구 통계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음 웹사이트를 확인하라. (KOSIS 인구로 보는 대한민국)

지방 소멸과 인구 고령화를 다룬 신문 기사에서 한 연구원은 이런 말을 한다. “40대는 지방 작은 마을에서 거의 막내 수준이라 보기 쉽지 않다… 아이가 없고 20~30대 젊은 층이 없는 지역은 40~50대가 청년 역할을 한다. 지역 이탈을 막기 위해선 청년으로 불리는 연령에 지원하는 것이 옳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지방 작은 마을’ 정도에 해당할지도 모르는 (현대) 미술계의 미래와 겹쳐보면, 머지않아 30대는 ‘막내 작가’, 40~50대는 ‘청년 작가’로 활동하는 모습이 일상적인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작가의 ‘젊음’이 만 45세 이하, 심지어 만 55세 이하를 기준으로 재편되는 건 예정된 수순일지도? 대체 언제까지 ‘젊은 작가’여야 하냐고 묻는다면, ‘한국의 중위 연령이 기적적으로 다시 35세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영원히’라고 대답해야만 하는지도… 그런데 이게 꼭 미술계에 국한된 것일까? 결국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은 앞으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젊은 OO’이라고 규정되는 상황을 공통적으로 맞이하는 운명 공동체 아닐는지.

1999년 10월 창간한 «아트인컬처»의 2000년 1월 뉴 밀레니엄 특집 에 실린 한국 미술의 새 얼굴 14인. 1970년대 초중반 생으로, 당시를 기준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작가들이다. 왼쪽으로부터 임정규, 강소영, 함진, 김현수, 강은수, 윤석만… (사진: 필자)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만 40세가 될 날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있다. 제도가 규정하는 연령 기준으로만 따지자면 (그리고 중위 연령을 기준 삼자면) 내게도 아직은 ‘젊은 OO’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의 혜택을 받을 기회가 남았다. (예컨대 “만 40세 이하 젊은 큐레이터”를 대상으로 하는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은 매년 초 지원자를 모집한다. 그러니, 내겐 내년 초가 마지막 기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도록이나 전시 크레딧에 이름이 실리는 식으로 미술이라는 ‘일’을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 자신을 (더불어 타인을) ‘젊은 OO’으로 묶는 건 항상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하지만 ‘젊음’의 기준이 다양하더라도 온갖 제도는 결국 나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이런 기준은 당분간 (어쩌면 앞으로도 쭉) 커트라인이 되는 나이를 조금씩 올리는 식으로 변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뵌다.

물론, 50대 중반의 나이마저 ‘젊은 OO’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때쯤이면 꽤 오랫동안 기준으로 삼아왔던 연령이 더 이상 고려 사항이 되지 않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굳이 나이를 따질 필요도 없고, 굳이 ‘참신한’ 무언가를 찾지도 않고, 굳이 무언가를 ‘모색’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 글쎄, 노인정에서 60대 노인이 80대 노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은 더욱더 일상화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현대) 미술의 영역에서는 ‘젊은 OO’이라는 표현 자체가 하나의 사어(死語)가 되기를 꿈꿔본다. 거창하게 교차성(intersectionality)까지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지나치게 중요한 기준으로 역할 하며 인터넷으로 검색 가능한 온갖 문서에 ‘~세 이하’로 흔적을 남기는 나이가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젊은 OO’이라는 간편한 기준의 달콤함을 즐겨왔던 이가 있다면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미리 전해야 하겠지만.

일러두기

2023년 6월 28일부로 윤석열 정부의 13번째 국정과제인 ‘만 나이 통일’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한국식 나이’와 ‘만 나이’ 구분이 없어졌다. 이번 글에 언급한 많은 자료는 모두 ‘만 나이 통일법’ 시행 이전에 작성된 것이다. 최대한 혼동을 막기 위해 애썼지만 오류가 있다면 언제든 «비애티튜드» 편집부와 필자에게 연락을 취해주었으면 한다.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의 장서광이자, 뉴오피스(@new0ffice)에서 일한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연구자, 교육자이며, 허영균과 함께 NHRB(@NHRB.space)의 공동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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