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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설명서: 미술 리얼리티쇼는 대체 왜 하는걸까

Writer: 박재용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언제나 현대미술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박재용 작가의 현대미술 설명서, 그 새로운 연재 글이 도착했습니다. 이번에 재용 님의 레이더에 걸린 대상은 바로 현대미술 리얼리티쇼입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주제 상의를 하면서 한탄을 금치 못한 공중파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꼭 쓰고야 말리라, 의지를 다지는 재용 님을 보며 어떤 글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세상에. 주요 미술 리얼리티쇼의 역사를 싹 정리해 주셨습니다. 이건 거의 논문 수준 아닌가요? 이번에도 1만자에 도달한 재용 님의 글쓰기 능력에 찬탄을 보내며, 그런데도 술술 익히는 글솜씨에 감탄하며, 자! 자세한 이야기는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시죠.

‹노 머니 노 아트›, 2023 © KBS

예술이 돈이 되는 걸 보여주겠다!

지금으로부터 약 석 달 전이었다. KBS에서 방영 예정인 새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월 23일부터 5월 25일까지 매주 목요일 밤 9시 50분에 방영한 ‘신개념 아트 버라이어티쇼’ ‹노 머니 노 아트›는 ‘예술이 돈이 되는 걸 보여주겠다’는 모토와 함께 촬영 현장에서 진행하는 즉석 경매에 참여할 ‘컬렉터’를 함께 모집했다. 팬데믹 기간에 확대된 유동성과 (지금은 좀 사그라든) NFT 열풍, 지난가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국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등으로 높아진 미술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든 방송으로 풀어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풍기는 기획이었지만, 5분 이상 시청하기 힘들 것 같다는 본능적 예감에 휩싸였다. 

이후 두 달 동안 총 10편의 에피소드를 힘들게 완주하면서 오늘날의 ‘TV용 미술’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로 인해, 한 번쯤은 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굳이 다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노 머니 노 아트›와 ‘TV용 미술’이란 주제를 엮어 이번 현대미술 설명서 원고를 쓰겠다는 계획까지 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굳이 ‹노 머니 노 아트›에 대해서 혹은 ‘TV용 미술’에 관해 글쓰기를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역사가 유구한(?) 현대미술 리얼리티쇼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하는 일이 나와 독자 모두에게 더욱더 유용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노 머니 노 아트› 덕분에 글을 쓰게 되었으니, 끝자락에서는 이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할 예정이다. 우선, 우리의 시계를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6년으로 되돌려 보자.

마치 ‘젊은 작가 육성하기’ 시뮬레이션 게임 혹은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Artstar›. 재생 시점 1분 전후로 ‘창작에 있어 약간의 압박은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던지는 제프리 다이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Artstar›(2006) – 첫 번째 현대미술 리얼리티쇼

2006년 5월 12일, 뉴욕 뮤지엄 오브 무빙 이미지에서는 특별한 상영회가 열렸다. 바로 역사상 최초의 현대미술 리얼리티쇼 ‹Artstar›의 론칭을 알리는 프리미어 상영회였다. 쇼의 공동 제작자이자 주요 등장인물로 행사에 참여한 갤러리스트 제프리 다이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미술계에 처음 발을 들였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자존심 있는 예술가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은 우스꽝스럽게 취급했죠.”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쇼의 촬영 시작을 앞둔 2월 초, 로어 맨해튼의 갤러리 ‘다이치 프로젝트Deitch Projects’ 앞에는 살이 에이는 겨울 추위를 뚫고 400여 명의 지원자가 오디션을 위해 줄 섰다. 제작자들은 이들 가운데 여덟 명을 선발했고, 약 4주 동안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이 쇼는 특이하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대신, 작가에게 거대한 웨어하우스를 공동 작업실로 제공하고 각자 독립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작가들은 다이치 프로젝트가 주최하는 ‘아트 퍼레이드’에도 참여했고, 프로그램 촬영이 끝나갈 즈음엔 갤러리에서 열린 그룹 전시회에 참여할 기회 또한 주어졌다. 4주간의 촬영분은 이후 8개의 에피소드로 편집한 후 2006년 6~7월에 방영되었다.

‹Artstar›, 2006

‹Artstar›는 최초의 현대미술 리얼리티쇼로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위성 TV로 송출한 탓에 방송을 실제로 볼 수 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술계 역시 갤러리스트인 다이치가 ‘아트 스타’들의 멘토 격으로 등장하는 리얼리티쇼에 대해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백 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발한’ 여덟 작가 중 여럿이 이미 다이치 프로젝트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로 인해 쇼에 참여한 젊은 작가와 현대미술을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취지 또한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물론, ‹Artstar›가 방영된 2006년에는 그 누구도 제프리 다이치가 몇 년 뒤인 2010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의 관장으로 취임할 줄 몰랐다. 여러 불미스러운 논란 탓에 3년 만에 관장직을 내려놓을 것까지도)

IMDB 평점 2.8/10을 기록하며 실패한 리얼리티쇼로 남은 ‹Artstar›는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2010~2014)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America’s Next Top Model›(2003~2018)처럼 특정한 분야를 다루는 리얼리티 TV쇼의 인기에 올라타려는 얄팍한 시도였을까? 다행히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덟 명의 작가 중 대부분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미술 작가 혹은 인접 분야의 창작자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Artstar› 방영 후 찾아온 글로벌 금융 위기(2008~2009)로 폭삭 망할 것 같았던 현대미술 시장에는 은행이나 주식 같은 전통적 투자처에서 탈출한 돈이 몰려들었다. 그 결과, 전 지구적인 경기 침체와 상관 없이 현대미술 시장에는 호황이 이어졌다. (가라앉을 듯 가라앉지 않는 이 호황은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다.)

‹School of Saatchi› 인트로 영상. 약 45초 지점을 전후로 유명한 현대미술가들을 짧게 소개하는 부분에 주목해 보자.

‹School of Saatchi›(2009)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뚫고 또 다른 현대미술 다큐-리얼리티쇼가 전파를 탔다. 이번에는 한국의 KBS 격인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슈퍼 컬렉터 찰스 사치의 이름을 빌렸다. 사치가 대중 앞에 직접 나서는 걸 꺼린 탓에 네 편의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치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우승자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은 그에게 주어졌다. 영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작가가 지원서를 보냈고, 사치가 고른 심사위원들이 그중 여섯 명을 선발해 석 달 동안 작업 과정과 그 결과물을 함께 살펴보았다. 최종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무엇이었을까? 찰스 사치의 간택과 더불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뮤지엄에서 전시를 열 기회가 주어졌다.

‹School of Saatchi›에서 찰스 사치의 존재감은 ‹Artstar›의 제프리 다이치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그려진다. 그에게는 ‘킹메이커’라는 호칭이 붙고, “작가의 커리어를 초음속의 스타덤으로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작가 트레이시 에민, 큐레이터 케이트 부시, 비평가 매튜 콜링스, 컬렉터 프랭크 코헨이 심사위원을 맡아 사치의 눈과 귀―때로는 입까지―가 되어 주었는데, 각자 자신의 활동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이들은 에피소드 전반에 걸쳐 “이 작품이 왜 현대미술인가요?”라는 질문을 주문처럼 외우며 나름 ‘현대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앞날이 반짝이는 젊은 작가들이 왜 컬렉터 한 명에게 선택받기 위해 경쟁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제공하지 않았다. 실제 프로그램 후반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현실 자각 타임’이 온 일부 출연자들이 서로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School of Saatchi›는 2009년 11월부터 12월까지 두 달 동안 방영되었다. 이듬해인 2010년, 사치는 자신의 컬렉션 200여 점과 사치 갤러리를 영국 정부에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미술계로부터 거리를 두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Work of Art: The Next Great Artist› 시즌1 에피소드1. 카메라가 등장인물을 어떤 식으로 묘사하는지 주목해 보자.

‹Work of Art: The Next Great Artist›(2010~2011) : 불황을 이긴 현대미술

글로벌 침체에도 화려함을 잃지 않은 현대미술 시장이 리얼리티쇼 프로듀서들을 사로잡았던 걸까? 2010년에는 미국의 제작사 브라보Bravo에서 ‹Work of Art: The Next Great Artist›(2010~2011)를 공개했다. 참고로 브라보는 (이제 거의 20주년을 앞둔) ‹프로젝트 런웨이›(2004-현재) 등 여러 인기 리얼리티쇼를 만든 주인공이다. 탈락자를 뽑지 않았던, 그래서 극적인 재미를 보장하지 않았던 ‹Artstar›와 달리, 이 새로운 현대미술 리얼리티쇼는 본격적인 경쟁 시스템과 더불어 우승자에 대한 큰 보상을 약속했다. 미국 전역에서 온 14명의 작가 가운데 우승자에게는 10만 달러의 현금과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열리는 개인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전업 작가부터 미술관 큐레이터, 건축학과 교수, 무직, 웨이트리스 등 다양한 직업과 작업 활동을 병행하는 참여 작가들의 평균 연령은 32.6세였다.

‹Work of Art: The Next Great Artist›, 2010~2011

‹Artstar›에 갤러리스트 제프리 다이치가 있었다면, ‹Work of Art›에는 옥셔니어 시몬 드퓨리가 있었다. 옥션하우스 필립 드퓨리의 대표였던 드퓨리는 다이치의 대본을 복사했나 싶은 대사와 함께 쇼에 등장했다.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동안 여러분을 위해 있을게요. 도움을 주고, 조언하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지지하겠습니다.” ‘충격적인 작품 만들기’부터 ‘공공 미술 만들기’, (쇼의 후원사인) ‘아우디 익스피리언스로 작품 만들기’ 등을 도전 과제로 삼아 총 10편의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동안 탈락자와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여러 큐레이터, 비평가, 갤러리스트가 등장했고, 드퓨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사위원이자 멘토로 출연했다. 심지어 최종 우승자를 뽑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미국 곳곳에 있는 최종 후보 세 사람의 집과 작업실을 방문하며 작업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까지 연출했니, ‹Work of Art›의 진짜 주인공은 참여 작가가 아닌 드퓨리였을지도 모른다.

‹Work of Art› 방영 이후 현대미술 시장에는 다시 한번 호황을 약속하는 업데이트가 일어났다. 2013~2014년 무렵 느닷없는 ‘좀비 포멀리즘’ 논쟁과 함께, (‹Artstar›나 ‹Work of Art›에 출연할 법한) 젊은 작가들이 그린 추상 회화 작업이 폭발적인 판매를 일으키며 새로운 유통 대상으로 각광받았다. 잠깐의 유행으로 그치나 했지만, 개별 작가들의 흥망성쇠와는 별개로 2010년대 전반을 거쳐 (197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일컫는) 초현대미술(ultra-contemporary art)이 현대미술 시장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리얼리티쇼가 항상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것처럼, 시장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원하는 투자자의 수요에 맞춰 굴러가기 마련이다. 2014년 MoMA에서 열린 «The Forever Now: Contemporary Painting in an Atemporal World»는 이런 흐름에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준 전시로 기억되기도 한다.

 ‹Gallery Girls› 방영을 알리는 30초 길이의 프로모션 영상.

‹Gallery Girls›(2012) : 작가만 주인공은 아니니까?

작가들을 우승 후보로 놓고 두 시즌을 진행했던 ‹Work of Art› 이후, 리얼리티쇼 제작사 브라보는 ‘치열한 뉴욕에서 고군분투하며 꿈의 직업을 찾아가는 일곱 명의 야심 찬 젊은 여성’에게 눈을 돌렸다. 2012년 8월 13일 첫 에피소드를 방영한 ‹Gallery Girls›는 뉴욕 미술계에서 갤러리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리얼리티쇼로, 미션을 던지거나 탈락자를 가리는 대신 각기 다른 위치에서 갤러리스트의 꿈을 향해 돌진하는 일곱 여성이 겪는 갖가지 어려움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Gallery Girls›의 일곱 여성은 브루클린, 로어 맨해튼, 어퍼 이스트 등 출신이나 활동 지역에 따라 만나는 사람과 활동의 폭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실감 나게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쇼가 묘사하는 (뉴욕) 미술계는 근본적으로 하나다. 화려한 삶, 하지만 모든 게 쉽지 않은 삶, 사람 믿었다가 큰코다칠 수도 있는 무서운 곳, 하룻밤 사이 스타가 될 수 있는 곳, 하룻밤 사이 잊힌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곳. 이곳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 이성 관계, 패션, 예술에 대한 취향은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야기다. 출연자끼리 경쟁을 붙이지 않은 탓인지 IMDB 평점 3.9/10으로 끝난 ‹Gallery Girls›는 시즌2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아트스타 코리아› 첫 에피소드. 그리 길지 않은 5분가량의 영상이니 전부 시청하기를 추천한다. 최고의 민망함을 맛보고 싶다면? 마르셀 뒤샹을 댄스로 표현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2분 37초로 이동하시길.

‹아트스타 코리아›(2014)

‘최초의 현대미술 리얼리티쇼’였던 ‹Artstar›의 제목을 한글로 바꾼 뒤 ‘코리아’를 붙인, 그러나 제프리 다이치나 ‹Artstar›의 프로덕션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아트스타 코리아›는 “대한민국 최초의 아트 서바이벌”을 표방하며 2014년 3월 그 모습을 공개했다. CJ ENM 계열인 ‘스토리온’ 채널에서 제작한 이 프로그램은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배우 정려원을 프로그램의 호스트로 삼았고, 상금 1억원과 갤러리 개인전 기회를 상품으로 매단 채 15명의 작가가 총 12편의 에피소드에 걸쳐 경쟁을 벌였다. 흥미롭게도, ‘결정권자’의 힘을 발휘하는 갤러리스트나 옥셔니어는 프로그램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미술계에서 좀 더 ‘공적인 성격을 지닌’ 분야에 속하는 전문가들이 심사위원과 멘토로 참여했다. 큐레이터이자 현재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인 김선정, 비평가 반이정이 멘토를 맡았고, 큐레이터 유진상, 비평가 홍경한, 미술사학자 우정아가 심사위원을 맡았다. 이와 더불어 에피소드 마다 미술가 권오상, 배우 임수정, BMW 디자이너 강원규(그는 현재 기아에서 선행디자인을 총괄 중이다) 등 미술 작가와 프로그램 후원사 관계자 등이 초청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아트스타 코리아›는 어떻다가 시작한 걸까? 큰 상금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라는 형식만 놓고 보면 ‹Work of Art›를 본뜬 모습이다. 하지만 (좋든 싫든) 작가들의 상업적 성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업계의 이해 관계자인 갤러리나 옥션, 다시 말해 ‘돈’과 관계된 인물들을 쏙 빼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Work of Art›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지점을 지닌 프로그램이었다. 결국, 참여 작가들에게 주어진 건 출연료 없는 방송 출연과 그로 인한 유명세였고, 최종 우승 후보 3인을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은 서바이벌 탈락 후 방송에 출연하기 전과 똑같이 각자 알아서 해나가는 것 말고는 작업을 이어갈 방법이 없었다. (물론 이 부분은 앞서 소개한 모든 리얼리티쇼 출연자가 매한가지로 겪는 공통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종 우승 후보 3인에게는 공공 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전시할 기회가 주어졌다. 작가들은 각자 제작비 500만원과 3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약 두 달 동안 열린 전시 «은밀하게 위대하게»(2014.6.10~8.3)에 작업을 선보일 기회를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트 스타가 됐을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리얼리티쇼의 우승과 성공은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어떤 분야, 어떤 주제를 다루든 리얼리티쇼는 결국 시청자의 즐거움을 핵심 목표로 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서바이벌 리얼리티 형식을 통해 출연자들을 경쟁시키고 탈락자를 솎아내지 않더라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앞서 간략하게 소개한 다섯 개의 프로그램 또한 마찬가지다. “다음번 아트 스타는 누구?”라는 질문은 오히려 일종의 속임수나 다름없다. 리얼리티쇼 제작자는 누가 다음번 아트 스타가 되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더 많은 화제와 논란을 유발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트래픽’을 생산하는 것이 리얼리티쇼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Artstar›부터 ‹아트스타 코리아›까지 프로그램에 출연한 작가 중 지금까지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사람은 프로그램의 최종 우승자로 선발된 그 누구도 아닌, 탈락자 리스트에 속해있다. ‹Work of Art› 시즌 1, 에피소드 1의 과제 ‘동료 작가의 초상 그리기’ 미션에서 심사위원 제리 살츠에게 “이건 당신에게나 초상화지 잘 해봐야 디자인이나 풍경 그림에 불과해요”라고 악평을 받으며 출연과 동시에 하차했던 어맨다 윌리엄스는 작년 필즈상을 받아 화제가 된 한국계 미국인 수학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상자 리스트에 오르며 한국에도 알려진 일명 ‘천재들의 상’, 맥아더상(MacArthur Fellowship)을 수상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총 5년간 노벨상 상금에 버금가는 80만 달러를 수상자에게 지급하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훌륭한 잠재력을 지닌 참가자를 1회부터 탈락시킨 ‹Work of Art› 심사위원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그저 에피소드마다 탈락자를 뽑아야 하고, 에피소드마다 빠르게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프로그램의 구조와 윌리엄스의 작품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배우 차이나 초우가 매번 탈락자에게 하는 대사가 이를 증명한다. “당신의 작품은 우리와는 맞지 않았어요. 이제 떠날 시간입니다.” (윌리엄스의 작품 심사 장면은 위에 임베드한 영상의 35분 40초경에 등장한다. 탈락 장면은 41분 50초경을 참고하길) ‹아트스타 코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최종 후보 3인으로 선정되었던 신제현, 구혜영, 유병서 세 작가의 활동에 프로그램 경력이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들은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미술계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The Exhibit: Finding The Next Great Artist›, 2023

10년 만에 다시 등장한 현대미술 리얼리티쇼

역사는 반복된다. 혹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검토하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운 역사라고 생각하며 과거를 반복한다. 그도 아니면 ‘이번에는 정말 다를 거다’라고 생각하며 일을 추진하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미국 워싱턴의 허쉬혼 박물관 및 조각 정원과 MTV가 손을 잡고 ‹The Exhibit: Finding The Next Great Artist›(2023)을 제작했다. 상금은 ‹Work of Art: The Next Great Artist›(2010~2011)과 동일하게 10만 달러.(꽤 긴 시간이 흘렀고 인플레이션까지 일어났건만, 왜 상금 액수는 올라가지 않는 걸까?) 그리고 우승자에게는 미국의 국립 미술관 중 하나인 허쉬혼 박물관 및 조각 정원에서의 개인전 기회가 주어졌다. 앞서 방영한 여러 현대미술 리얼리티쇼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아마도 더 젊은 MTV 시청자에게 현대미술을 노출해 잠재적인 관객층을 확대해 보겠다는 미술관 측의 바람을 반영한 기획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The Exhibit›을 방영한 2023년 3월, 한국의 공영방송 KBS에서는 “예술이 돈이 되는 걸 보여주겠다”는 모토를 내세운 현대미술 예능 프로그램 ‹노 머니 노 아트›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미술이 과연 ‘현대미술’인지는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노 머니 노 아트›는 여러모로 기괴한 혼종이었다. 방송인 전현무가 호스트를 맡고, 배우 봉태규, 뮤지션 개코, 희극인 김민경, 댄서 모니카가 ‘큐레이터’를 맡았다. 멘토는? 존재하지 않았다. 심사위원은? 에피소드마다 일종의 ‘방청객 심사위원단’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20분 정도 진행한 ‘라이브 드로잉 쇼’의 결과물을 두고 경매에 참여했다. 말하자면 각 에피소드의 우승은 경매에서 최고가를 획득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컬렉터’라는 명칭이 붙었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적하기조차 어려운 이 총체적 난국은 결국 0.9%라는 저조한 시청률을 결과로 남겼다.

‹노 머니 노 아트›, 2023 © KBS

노 머니 노 아트

‹노 머니 노 아트›는 그래서 과연 예술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준 걸까? 이 프로그램은 무대 위 라이브 드로잉 쇼의 결과물에 대해 그게 무엇이든 돈 쓸 준비가 된 방청객을 앞에 두고 찍는 방송에서라면 잠깐이나마 예술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미술 혹은 현대미술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생각할 거리를 조금이라도 던져준 걸까? 그런 점을 참작한다면 프로그램의 제목에서 ‘노 머니’를 빼고 그저 ‹노 아트›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럼 혹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에게는 도움이 되었을까? 출연의 목적이 어떤 식으로든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다면 얼마간은 도움이 되었을 테고, 좀 더 진지하게 미술계에서의 입지를 다지고자 했다면 마이너스 효과를 발휘했을 테다. 그런데 애초에 예술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할 이유는 또 뭔가? 마르셀 뒤샹의 ‹변기›를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 아래에 놓인 무대에 선 사회자 전현무나 네 명의 ‘큐레이터’ 패널 가운데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술 혹은 현대미술로 무언가를 만들어 방송으로 내보낼 때, 조금이라도 더 유용한 질문과 대답에 전파를 할애할 수 없을까?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국문 제목으로 유명한 책 『Ways of Seeing』은 사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1972년 4부작으로 방영한 동명의 프로그램 내용을 활자로 바꾼 것이다. 우리의 전기요금과 함께 납부되는 TV 수신료로 제작한 ‹노 머니 노 아트›를 방영한 때가 2023년이며 ‹Ways of Seeing›을 방영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이라는 점이 얄궂기만 하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 녹화 버전으로 유튜브에 올라 온 ‹Ways of Seeing› 제1부. 자동 번역 자막을 켜고 잠시 시청하기를 권한다.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의 장서광이자, 뉴오피스(@new0ffice)에서 일한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연구자, 교육자이며, 허영균과 함께 NHRB(@NHRB.space)의 공동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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