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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현대미술 설명서: 왜 자꾸 망가뜨리려는 걸까?

Writer: 박재용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현대미술 설명서’라는 연재 글을 시작한 박재용 작가의 세 번째 글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요즘 들어 빈번하게 들리는 예술 작품 테러(?)에 대한 고찰입니다. 기후 운동 단체가 명화에 토마토수프를 끼얹고 손에 접착제를 발라 액자나 벽에 붙이고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 올해 자주 일어났어요. 이런 작품 망가뜨리기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면서 예전의 망가뜨리기와 요즘의 망가뜨리기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봐야 할지 설득력 있는 논조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꼼꼼한 정보 정리에 감탄이 나오는 이번 에세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트위터 @lukexc2002 갈무리

2022년 5월 29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c.1503~19)

“모든 예술가여, 지구를 생각해보세요. 제가 이 일을 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우리의 행성을 생각해 보자고요.”

가발과 립스틱으로 노파 변장을 한 36세 남성이 루브르 뮤지엄의 하이라이트, ‹모나리자Mona Lisa›에 케이크를 집어 던지고서 외쳤다. 1956년 볼리비아인 우고 웅하가 비예가스Hugo Unjaga Villegas가 보호 유리로 덮은 그림에 돌덩이를 던져 물감이 떨어진 후부터 강화 유리로 보호하던 ‹모나리자›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이젠 그저 강화유리가 아니라 반사율 0.7%, 투과율 98%를 자랑하는 Guardian Clarity™ 유리에 둘러 싸인 ‹모나리자›에게 케이크 공격은 스쳐 지나는 바람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박물관 경비원들이 즉시 남성을 체포했고, 그는 프랑스 경찰이 관리하는 정신과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남성이 석방되었는지, 여전히 정신과 병동에 감금 중인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2022년 6월 30일,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핀 복숭아나무›(1889)

환경 운동 단체 ‘저스트스톱오일Just Stop Oil’ 활동가들은 영국 런던과 글래스고에 있는 미술관에서 접착제를 바른 두 손을 회화 작품에 갖다 댔다. 정확히는 회화의 캔버스가 아니라 액자에 손을 붙였다. 그중 하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것으로, 1889년에 제작한 ‹꽃 핀 복숭아나무(Peach Trees in Blossom)›였다. 불과 얼마 전인 지난 11월 22일 영국 법원이 내린 판결문에 따르면, 고흐의 그림을 품고 있던 액자는 그림 그 자체보다 오래된 것으로, 접착제로 인해 원래 상태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활동가 중 한 명인 에밀리 브로클뱅크에게는 3주간 수감 조치와 재학 중인 학교에서 6개월간 정학 조치, 이후 6주 동안 전자 감시를 받는 야간 통행금지 선고가 떨어졌다.

Photo courtesy of Just Stop Oil

2022년 10월 14일,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1888)

이번에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일이 벌어졌다. 저스트스톱오일의 또 다른 활동가들이 빈센트 반 고흐의 또 다른 작품, ‹해바라기(Sunflowers)›에 깡통에 든 토마토수프를 끼얹고 접착제로 손을 벽에 고정하며 크게 외쳤다.

“급증하는 생활비 문제는 석유 가격 문제 때문입니다. 추위에 떨고 굶주린 수백만 명의 가족들에게 연료 가격은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깡통에 든 수프 하나 데울 만큼의 연료도 없단 말입니다.”

이날은 저스트스톱오일이 런던 시내 전역에서 벌인 시위의 네 번째 날로, 연좌시위 참여자 중 일부는 도로에 접착제로 자신을 고정했고, 고속 도로 통행을 저지하려 했으며, 하루 동안 5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번에도 그림은 손상되지 않았다. 반사율이 극도로 낮기 때문에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얇은 ‘뮤지엄 글라스’가 외부 오염 물질로부터 그림을 차단한 덕분이다.

“I want to scream! Stopp oljeletinga glues onto the Scream by Munch, National Museum in Oslo” on YouTube by Stopp Oljeletinga!

2022년 11월 11일,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1893)

노르웨이 오슬로에 자리 잡은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서 독일, 핀란드, 덴마크 국적의 세 활동가가 만났다. 그리고 석유 시추 중단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스토프 올리엘레팅아Stopp oljeletinga’를 대표해 뭉크의 걸작 ‹절규(The Scream)›를 향해 진격했다. 두 명의 활동가가 작품이 걸린 벽에 자신을 접착제로 고정하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이 모습을 촬영했고,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경비원이 이들을 막기 위해 달려왔다. 세 명 모두 경찰에 즉시 체포되어 구류 조치에 취해졌다. 역시나, 작품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이번에도 빛을 반사하지 않아 있는 듯 없는 듯 작품을 보호하던 ‘뮤지엄 글라스’ 덕분이었다.

2022년 5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채 6개월이 되지 않는 사이, 파리, 빈, 바르셀로나, 밴쿠버, 오슬로, 로마, 베를린, 헤이그, 포츠담, 런던, 멜버른, 드레스덴, 바티칸, 밀라노, 피렌체, 글래스고, 맨체스터에서 이렇게 공격당한 작품의 수는 무려 22점에 달한다. 위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작품 자체를 치명적으로 파손한 경우는 사실상 없다. 널리 알려진 예술 작품은 대부분 특수한 재질의 유리로 보호하거나, 애초에 삼엄한 경비와 감시를 받기 때문이다.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수프를 끼얹은 활동가는 이렇게 묻는다.

“예술과 삶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걸까요? 여러분은 그림을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이 있나요, 아니면 지구와 인류를 지키는 데 더 관심이 있나요?”

뭉크의 걸작 ‹절규(The Scream)›를 향해 진격한 두 활동가

작품을 보호하는 ‘뮤지엄 글라스’

예술 작품, 이렇게 망가뜨립니다

사실, ‘예술 작품 망가뜨리기’에는 유구한 역사가 존재한다. 뮤지엄이 예술품과 유물을 안전하고 영구적으로 보관하는 장소로 자리 잡은 이래, 오랜 역사를 지닌 기념물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래, 인류는 언제나 금지된 것에 대한 위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해왔다. 예컨대 20세기 최고(?)의 예술품 훼손꾼(vandal)으로 알려진 한스요아힘 볼만Hans-Joachim Bohlmann(1937~2009)에겐 기후 위기 활동가가 벌이는 행동은 새 발의 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한스 요아힘 볼만

어릴 적부터 인격 장애를 앓고 다양한 치료를 받아 오다 40세부터 본격적으로 예술품 훼손질을 시작한 볼만은 1977년부터 2006년까지 총 50점이 넘는 작품을 망가뜨렸고, 망가진 작품의 가치는 당시 기준으로만 따져도 1억 3800만 유로에 달한다. 공공 기물 파손과 사유 재산 파손죄로 감옥에 수감되었고, 여러 차례 정신 병원에 강제 입소했으나 탈출에 성공해 작품 훼손꾼의 명성을 이어간 그가 가장 즐겼던 방식은 바로 ‘염산 끼얹기’였다. 16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볼만은 2005년 1월 석방되었고, 이듬해인 2006년 6월 25일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미술관인 라익스 뮤지엄에서 마지막 활동을 펼쳤다.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기념하는 단체 초상화인 ‹뮌스터 평화를 기념하는 암스테르담 시민 경비대 연회(Banquet of the Amsterdam Civic Guard in Celebration of the Peace of Münster)›(1648)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지른 것이다. 비록 ‹모나리자›처럼 막강한 방탄 기능을 탑재한 보호 유리가 둘러싸진 않았지만 두꺼운 바니시로 외면을 처리한 덕분에 작품은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 볼만은 다시 3년 형을 선고받았고,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예술 작품 망가뜨리기의 역사를 돌아보면, 볼만의 방법은 여러 가지 전형적인 수법의 하나에 불과하다. 주로 회화 작품을 타깃한 망가뜨리기 시도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산(酸)이나 물감 끼얹기
  • 칼이나 날카로운 물체로 찢기
  • 망치나 둔기로 부수기
  • 립스틱이나 마커 등으로 선 긋기
  • 총포류를 발포하기
  • 손가락으로 옹졸하게 구멍 뚫기
  • 기타 방법 (전원 뽑아서 물속으로 던지기, 동상 목 자르기 등)

잊을 만하면 망가지는 예술품들

걸핏하면 작품 망가뜨리기의 대상이 되는 단골 작품도 존재한다. 1956년 한 해 동안 무려 두 번이나 공격당한 ‹모나리자›가 대표적이다. 한 번은 면도날에 공격당했고, 또 한 번은 관람객이 ‘그냥’ 던진 돌멩이에 맞았다. 이런 빈번한 공격에 대해 살바도르 달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모나리자›는 모든 미술사에 있어 독특한 힘을 지닌 터라 가장 폭력적이고 다양한 공격성을 끌어낸다” ‹모나리자›는 이후에도 도쿄국립박물관 전시에 참여했다가 스프레이 페인트 공격을 받거나(1974), 루브르 뮤지엄 기념품숍에서 산 머그잔으로 두들겨 맞았고(2009), 올해에는 케이크 공격을 받았다. ‘그냥’, ‘영국 시민권을 거부당한 서러움’,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 향상’까지, 공격 이유는 다양했다.

볼리비아인 우고 웅하가 비예가스가 ‹모나리자›에 돌덩이를 던졌다는 1956년 12월 31일 «뉴욕타임스» 기사.

100년이 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받는 작품이 또 있다. 바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명물인 ‹인어공주› 동상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동명의 동화 속 주인공을 기리는 이 동상은 1913년 코펜하겐 부둣가에 설치한 이래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공격을 받아왔다. 정치적이거나 예술적인 의도를 품은 공격도 많았지만, 술에 잔뜩 취한 코펜하겐 주민의 무용담 소재가 되기 위해 팔이 뜯겨 나가거나 목이 잘린 적 또한 결코 적지 않았다는 점이 ‹인어공주› 훼손을 둘러싼 정설이다.

‹인어공주› 동상의 목이 잘린 것은 1913년부터 지금까지 두 번. 1964년 4월 24일에 갑자기 사라진 목의 행방은 영원히 모르게 됐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예술가 집단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회원들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동상 머리는 복원했는데 1998년 1월 6일 갑자기 다시 사라졌다. 다행히 동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배송된 머리는 약 한 달 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단단히 붙게 됐다. 2003년 폭발물로 인해 동상이 날라가버렸지만, 수색 끝에 인근 바닷가에서 발견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2006년에는 누군가 동상에 녹색 페인트를 끼얹은 뒤 동상의 손에 남자 성기 모양의 딜도를 붙여 두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잠잠하던 ‹인어공주›는 전 세계가 전쟁과 갈등을 겪은 격변의 시기였던 올해, 홍콩 민주화와 인종 차별 문제를 담은 그라피티 메시지로 다시 한번 공격 대상(혹은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2022년 1월, ‘홍콩을 자유롭게 하라’ 그라피티 세례를 받은 ‹인어공주›

2022년 7월, ‘인종차별주의자 물고기’ 그라피티 세례를 받은 ‹인어공주›

작품 망가뜨리기에도 이유가 있다

이처럼 예술 작품 망가뜨리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1845년에는 영국박물관에 전시 중이던 로마 시대의 포틀랜드 항아리가 한 취객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기도 했다. 파손 즉시 도자기 조각을 그러모아 복원했지만,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상태가 된 것은 여러 차례의 시도를 거쳐 100년도 더 지난 1987년이었다. 술에 취해 항아리를 망가뜨렸다고 알려진 윌리엄 로이드는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되었으나, 익명의 후원자가 보석금을 납부해 풀려났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로이드의 본명은 윌리엄 멀캐히로, 당시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대학을 다니다 ‘실종 상태’로 사라진 인물이었다. 정확한 사연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았지만, 마치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 학생이 신분을 숨기고 도쿄로 건너가 박물관의 소중한 유물을 망가뜨린 것과 유사하다.

그런가 하면, 총열을 짧게 잘라낸 엽총을 코트에 숨겨 작품에 총을 쏜 사람도 있다. 1987년 7월, 로버트 케임브리지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 안나와 성 모자(The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 and St John the Baptist)›(c.1499~1500)에 발포했다. 다행히 보호용 유리가 깨질 때 충격을 흡수하면서 작품이 구멍 나지는 않았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엽총과 함께 체포된 그는 작품에 총을 쏜 이유에 대해 ‘영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에 불만이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고, 이후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다.

총과 총알이 없다면 그 대신 작품에 구토를 할 수도 있다. 1996년 캐나다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유발 브라운은 온타리오에서 전시 중인 피터르 몬드리안Pieter Cornelis Mondriaan의 ‘데 스테일De Stijl’ 풍 작품에서 원색 부분만 골라 그 위에 토사물을 갈겼다. 혹시나 전기로 구동되는 작품이라면 전원을 뽑아버리거나 물에 빠뜨릴 수도 있다. 2004년 주스웨덴 이스라엘대사 즈비 마젤은 이스라엘계 스웨덴 아티스트 드로르 페일러의 설치 작품 ‹백설공주와 진실의 광기(Snow White and the Madness of Truth)›의 일부인 조명기 전원을 뽑아 수조에 집어넣었다. 페일러의 작품이 묘사하는 인물이 팔레스타인 자살 폭탄 테러범이라는 점에 격분했던 것으로, 작품이 “자살 폭탄범을 미화”하고 “이스라엘인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Snow White and the Madness of Truth – The attack” on YouTube by Dror Feiler

Snovit och sanningens vansinne

돈에 눈이 멀어 작품을 망가뜨리는 건 어떨까? 2022년 7월, 멕시코 출신의 사업가이자 컬렉터인 마르틴 모바라크는 추정가 1000만 달러에 이르는 프리다 칼로의 드로잉을 불태우는 행사를 연 뒤, 해당 작품을 1만 개의 NFT로 ‘민팅Minting’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해당 NFT는 1만 개 중 4개가 판매되었고, 달러로 환산한 판매 총액은 1만 1000달러에 불과하다. 멕시코 검찰 당국은 중요 국가 문화재를 파괴한 죄를 물어 모바라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Burning of a $10M Frida Kahlo Painting” on YouTube by FridaNFT

망가뜨리는 척만 한 거라면?

다시, 약 6개월 동안 여러 나라에서 반복되는 작품 망가뜨리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망가뜨리는 척만 하는) 활동을 생각해보자. 작품에 불을 지르거나, 목을 자르거나, 총을 쏘고, 폭파하고, 직접 토를 끼얹고, 전원을 뽑는 식의 망가뜨리기 활동과 기후 활동가들의 작품 망가뜨리기(하는 척) 활동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저스트스톱오일의 한 활동가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행동이 미술 작품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문가에게 확인했고, 손상이 일어나더라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미리 상담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같은 단체가 불과 며칠 전 런던에서 화석 연료 럭셔리 자동차 매장을 습격한 모습을 보면, 미술관에 걸린 작품에 토마토수프나 으깬 감자를 끼얹은 건 그야말로 하나의 ‘제스처’였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트위터 @JustStop_Oil 갈무리

사실, 국내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할 때는 더 큰 맥락을 완전히 삭제한 채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최근 자주 들려오는 작품 망가뜨리기 시위에서도 이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로 우리는 유리가 보호하는 작품에 무언가를 뿌린 활동가들이 체포되기 전에 어떤 메시지를 던졌는지 알 길이 없다. 한국어로 소식을 전하는 매체는 미술관에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질 때 미술관 밖에서도 도로 점거와 고속도로 차단, 국회의사당이나 화석 연료 자동차 매장에 대한 페인트 투척, 도로에 접착제로 몸을 붙이는 연좌시위 등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쏙 빼놓고 활동가들이 유명한 예술 작품을 망가뜨리려 했다는 소식만 전하곤 한다.

지난 20세기만 하더라도 예술 작품을 망가뜨리려 했던, (그리고 실제로 망가뜨린) 많은 이들은 대체로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다. 21세기가 된 지금, 우리는 더 큰 시민 운동의 일부로 작품을 망가뜨리는 척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종종 우리 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하는 파업이나 시위를 마주할 때, 그런 일이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지 살펴보면 항상 비슷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좋은 말로 설득도 해보고, 감정적인 호소도 해보고,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봤지만 결국 제대로 된 답을 주어야 할 그 누구도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았기에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입장에서 이를 무조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상대방 입장을 놓고 보면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7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Primavera)›(c.1477~82)에 손을 접착제로 붙인 ‘마지막 세대(Ultima Generazione)’ 활동가들은 성명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예술의 유산을 방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와 공유하는 이 행성을 보살피고 보호해야 합니다.” 잠깐의 불편함을 일으키는 것에 불과하다면, 심지어 작품을 정말로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면, 게다가 총알도 뚫지 못하는 저반사 강화 유리가 작품을 단단히 보호하고 있다면, 인상파 회화나 르네상스 거장의 작품에 토마토수프 깡통 하나쯤 끼얹는 건 어쩌면 위기에 놓인 인류의 일원인 우리가 막막한 미래에 대해 단 1분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갖게 만드는 가장 빠르고 급진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대체 왜 자꾸 망가뜨리려 하는 건지 질문을 던지며 미술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할 수 있으니까.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의 장서광이자, 뉴오피스(@new0ffice)에서 일한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연구자, 교육자이며, 허영균과 함께 NHRB(@NHRB.space)의 공동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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