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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엽편소설 ‹화면대혁명›

Writer: 곽재식
창문을 여는 손

곽재식 작가는 입담으로 시청자들과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SF 소설가입니다. 이번에 세 페이지 남짓의 엽편소설 「화면대혁명」을 비애티튜드에 소개해주셨는데요. 혁명적인 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해 실장을 중심으로 여러 직원들이 회의실에서 벌이는 이야기, 뭔가 진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일이지 않나요?

오늘도 시립화면기술개발원의 회의실에서는 농담하는 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들 이야기…… 3위는 축구 이야기, 2위 군대 이야기, 1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알지. 그런데 이제 그 이야기가 옛날 농담으로 누구에게나 다 퍼져 있어서 그 이야기 자체를 남자건 여자건 지긋지긋해 하고 싫어하는 거 알아? 회식자리 같은 데 갔을 때 부장님께서 재치 있는 이야기랍시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웃긴 이야기라고 말하면 부하 직원들은 그 이야기가 웃기다고 막 웃어줘야 되고 그렇거든.”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때 기획실장이 회의실에 나타났다. 다들 농담을 멈추고 일어나 기획실장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실장이 말했다.

“이번에 우리 원에서 제안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전자 화면을 이용하는 혁명적인 기술의 활용 사례야. 정말 혁명적인 기술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뭐든지 개성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고. 이를테면, 화면이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같은 데만 붙어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지.”

“화면이 스마트폰에 안 붙어 있다면?”

“아예 집의 베란다 창문을 통째로 다 화면으로 바꾼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TV를 둘 공간이 그만큼 절약되잖아.”

“정말 그렇네요!”

“이야, 정말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정말 의외의 발상입니다.”

직원들의 맞장구가 좀 더 이어졌다. 실장이 말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올 때, 잠에서 깨면 그 창문이 화면 역할을 해서 창문에 오늘의 할 일하고 날씨 같은 게 착착착 출력되는 거야. 얼마나 편리하겠어. 삶을 스마트하게 해주잖아. 여러분은 굳이 내가 말한 거에 휘둘리지 말고, 여러분 각자가 완전히 자유로운 관점에서 화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서 연출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화면은 어떤 것이다’라는 기존 발상에서 벗어나서 혁명적인 생각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보여달라는 거야.”

그 후 실장은 혁신과 혁명, 아이디어와 발상의 가치에 대해 지난 번 회의와 그보다 한 번 더 지난 번 회의에서도 했던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서야 물러났다.

직원들의 회의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화면을 혁명적으로 바꾼다고? 뭘 만들어야 되는 거지?”

“저는 요즘 애들이 맨날 스마트폰 너무 들여다보고 있는 게 걱정이거든요. 게임 한다고 공부 안 하고 그런 거는 이미 벌써 포기했고요. 애들 눈 나빠지는 게 걱정이에요. 눈 안 나빠지는 화면, 그런 거 없을까요? 그런 게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확실히 그런 제품이 있다면 값이 좀 더 비싸도 살 것 같고.”

“그런데 그게 실장님이 원하시는 방향은 아닌 것 같잖아.”

“실장님 말씀은 반영이 된 게 없지.”

“통과되려면 실장님 마음에 드는 걸 어떻게든 상상해서 만들어야 되는데.”

“말씀하신 대로 유리창에 날씨랑 일정 표시해주는 거 만들어보면 어때요?”

“실장님께서 자기 생각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해 보라고 했잖아요. 딱 실장님 말씀대로 만들면 분명히 싫어하시면서 짜증내실 거라고요.”

“실장님 마음에 쏙 들면서 실장님 자기가 말해준 것은 아닌, 그런 게 필요한데.”

“그런데 수백만 원, 수천만 원짜리 화면을 창문에 달아 놓으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가 창문에 나온다고 해서 더 스마트해지고 삶이 막 즐거워질까?”

2차 회의는 3주 후에 열렸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직원들은 새 아이디어를 표현한 모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장이 회의실에 들어오자, 이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모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투명한 화면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기술의 혁명적인 응용 분야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화면이 달린 기계가 투명하다면 창문 대신에 화면을 달 수 있겠죠.”

“그렇지. 화면이 창문으로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신선하네.”

실장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희는 보통 때는 창문이지만 필요하면 창문이 있는 자리에 휴양지나 관광지 풍경이 커다랗게 출력되는 장치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반지하 방이나 매연이 가득한 공장 지대에 있는 집에 이걸 달면 창문에 제주도 바닷가 풍경이 화면으로 나오는 거죠. 가뜩이나 요즘 청년 빈곤 문제, 청년 주거 문제가 심각한데, 그걸 해결할 수 있다는 사회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청년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다들 행복해 하겠죠.”

실장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데, 혁명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해. 어떤 제품을 개발한다는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거 말고 화면에 대한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해보라고. 정말 자유롭게.”

실장은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그렇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아직 시간은 있어. 정말 틀에서 벗어나서 생각해 보라고”라는 말을 남기고 실장은 물러났다.

“너무 실망하지 말자고. 어차피 실장님이 한 번에 뭘 통과시켜 주지는 않잖아. 이 정도면 욕도 안 먹었고 괜찮아.”

“그런데 뭘 만들죠? 새로운 화면 기술로?”

“저는 이런 거 생각해봤어요. 차세대 자동화 초고속 증착 리소그래피 공정이 실용화되면 저가형 화면은 정말 싸게 생산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CPU 싼 거 달고 화면 싼 거 달아서 대당 3만원짜리 태블릿PC를 매년 이백만 대 쯤 만들어서, 전국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학교에서 나눠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부유한 학생이건 가난한 학생이건 다들 그냥 학교에 오면 태블릿PC 하나씩은 가질 수 있게 해주고, 교과서 대신 그거만 들고 다니라고 하고, 그걸로 숙제도 하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 교육 현장을 바꿀 수 있고, 교육 내용도 바꿀 수 있고, 학생들을 바꿀 수 있고, 미래 세대의 정신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세상의 미래를 바꾸는 거 아닐까요? 학생들이 전부 학교에서 지급한 태블릿PC를 갖고 있고 항상 사용한다고 치면, 그걸로 학생들을 추적하거나 빅데이터 분석을 돌려서 학생들 사이에 학교폭력이라든가 가정학대라든가 하는 문제가 일어나는지 추적하는 식의 응용도 가능할 것이고요.”

김 대리, 이 대리, 박 과장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공정 기술이 개선되어서 비용이 어떻게 절약된다, 그런 건 멋진 신제품 느낌이 아니잖아. 실장님이나 원장님도 와닿지가 않으니 재미 없어 하실 거라고. 그리고 방금 말한 거는 교육부나 교육청 쪽하고 연결되어야 할 수 있는 일 아냐? 우리는 시청 소속 기관인데 다른 기관으로 공이 돌아가는 아이디어를 내 놓으면 무조건 욕 먹어.”

“거기다가 실장님이 처음 말했던 아이디어도 안 담겨 있잖아.”

“실장님은 화면이 유리창이 된다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그 비슷한 거 뭐 없을까?”

일주일 후, 3차 회의에는 직원들이 모두 대단히 피곤한 모습이었다. 서둘러 모형을 완성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실장이 들어오자 다들 웃는 표정을 지었다.

“화면 기술에 대한 저희의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바로 화장실에 있는 거울 대신에 그 자리에 커다란 화면을 설치한다는 겁니다. 카메라로 내 모습을 찍어서 화면에 표시해주면 거울처럼 쓸 수 있지요. 멀티카메라 영상 재구축 알고리듬을 이용하면 진짜 거울하고 느낌이 거의 같아지고요.”

“좋아. 좋아. 일상 속에서 흔히 보는 거울 대신에 화면을 쓴다니, 일상에서 잡아낸 아이디어구만. 좋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게 사람의 삶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지?”

“아침에 세수를 하거나 양치를 할 때, 화면 한쪽에 그날의 날씨나 그날의 일정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창문에 자기 개인 일정이 표시된다면 사생활 때문에 약간 꺼려질 수도 있는데, 화장실 거울에 자기가 서 있을 때 일정이 표시되면 그런 점에서도 자유롭죠.”

회의는 부드럽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다들 지쳐 있었지만, 점차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실장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잠깐만. 여기에 어떤 새로운 기술이 들어가 있지? 기술적인 혁명성이 없는 것 아닌가?”

다들 겁에 질렸다. 설마, 또 처음부터 새로 일을 해야 할까? 다행히 박 과장의 멋진 대답으로 회의는 깨끗하게 마무리되었다.

“화장실 거울이지 않습니까? 화면을 방수처리하는 기술을 사용할 겁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하얀 공간에 빛이 들어오는 창문

Artist

곽재식은 공학 박사이자 작가다.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 공학 학사 학위와 화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화학업계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과학 소설, 과학 교양서 등 과학과 관련된 다채로운 책을 썼다. 2006년에 쓴 단편 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에서 단막극으로 영상화된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유머러스하면서도 반전이 있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서 많은 독자의 찬사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상 최대의 내기』 『신라 공주 해적전』 『가장 무서운 예언 사건』 『ㅁㅇㅇㅅ』 등의 소설과, 『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법』 『괴물 과학 안내서』 『곽재식의 미래를 파는 상점』 등의 과학 교양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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