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한이 숨겨둔 이야기들

람한, 작품을 배경으로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

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두 번째 주인공은 디지털 페인터 람한 작가입니다. 시각적 ASMR을 추구하는 그는 감각의 끝자락을 간지럽히는 듯한 몽환적이고 이색적인 작업을 선보여요. 신기하게도 작업을 보면 시각적 팅글이 느껴진답니다. 람한 작가와 나눈 다채로운 이야기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더불어 저희와 함께 협업한 익스클루시브 굿즈인 메쉬 탑도 B(A)SHOP에서 살펴볼 수 있답니다!

아티스트 프로젝트 02: 람한

«비애티튜드»는 특정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선보인다.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람한을 선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람한에게는 어린시절부터 연필보다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한 후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이끄는 요소에 주목해 아름답게 왜곡되는 기억과 추억을 주제 삼아 시각적인 자극을 강조하는 디지털 페인팅을 선보였으며 동시대 디지털 네이티브의 환호를 기반으로 미술 신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세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본다.

Part 3 : 람한이 숨겨둔 이야기들

인스타그램 팔로우가 8만 명에 육박하는 인플루언서 람한. 하지만 공개된 인터뷰는 적고, 질문은 표면을 겉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작자로서 지닌 생각과 태도, 그리고 사소한 사연까지 람한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파고드는 질문과 조금씩 조금씩 내어놓는 속 깊은 답변을 공유해본다.

람한의 작품이 흰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다.

커머셜 작업과 개인 작업 모두 활발히 병행하고 계시는데요. 두 카테고리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을까요?

이상적으로는 각 작업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는 개인 작업을 할 때도 일단 관람객을 떠올려요. 작업이 걸릴 공간에 대해 고민하며 어떻게 보일지 구체화하죠. 그런 면에서는 커머셜 작업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점은 있죠. 제가 일관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랄까요. 근데 커머셜 작업에서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는 이제 지났다고 생각해요. 개인 작업에서 가지고 오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드래프트 스케치 등을 보여주며 설득하고, 이런 부분은 이렇게 보여주고 싶다고 의견을 내면 오히려 클라이언트 분들이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제 나름의 해석을 기대하며 일을 의뢰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것 같아요. 여기에는 함께 일하고 싶은 클라이언트에 대한 기준을 세워놓은 것도 한몫하는 느낌입니다. 

보통 1년에 평균 20개의 프로젝트를 소화한다고 하셨지요. 커머셜 작업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더 명확하게 있을 것 같은데요.

아, 20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소화한다는 건 이런 의미에 가까워요. ‘일을 쳐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예상보다 많이 했네. 내가 이렇게나 많이했단 말이야?’ 제가 일에 소모되지 않으려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단, 제가 원하는 비주얼을 주도적으로 제시할 때 이를 함께 고민해줄 수 있는 클라이언트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더불어 상대방 쪽에 이런 소통을 뒷받침해주는 아트 팀이 존재한다면 더욱 일하기가 쉽고요. 아트 팀의 특징에 따라 작업의 성격이 정말 많이 달라지거든요. 근데 제가 매번 미리 알고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제안이 들어왔을 때 시간과 일의 규모,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게 확실한지 아닌지 정도를 먼저 체크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럼 커머셜 작업을 진행할 때 정말 중요하게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결국 무엇일까요?

정리해보면 먼저 개인 작업과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작업인지가 중요해요. 그림이 너무 확 변하지 않으면 좋겠고, 만일 변하더라도 제가 동의하는 방향이나 해보고 싶던 방향으로 바뀌는 걸 선호하고요. 결국 제가 동의하지 않는 걸 원하는 클라이언트와는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죠.

클라이언트를 바라보는 기준에 도덕적인 관점도 들어간다는 의미겠죠?

네. 도덕적인 것뿐만 아니라 미적인 부분으로도 동의할 수 있느냐 여부도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여러모로 단칼에 정의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작업 제안 메일만 받고서 제가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으니까요.

ram ham,

요즘 괜찮았던 클라이언트를 꼽아본다면요?

최근에 공개된 작업인데요. ‘더보이즈THE BOYZ’라는 아이돌 그룹의 앨범 아트워크가 기억에 남아요. 그 분들이 절 자유롭게 놔주시면서 필요한 소스를 빠짐없이 챙겨주시고 원하는 방향성도 명확하게 제시해주셨어요. 그 정도 수위의 피드백이 작업하는 데 무척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잘 나온 앨범 아트 워크였다고 생각해요.

‘더보이즈’를 위한 앨범 아트워크. EXECUTIVE PRODUCER: CRE.KER ENTERTAINMENT, CREATIVE DIRECTION: HAUS OF TEAM.

‘더보이즈’를 위한 앨범 아트워크. EXECUTIVE PRODUCER: CRE.KER ENTERTAINMENT, CREATIVE DIRECTION: HAUS OF TEAM.

보통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업은 소수로 압축되는데, 람한 님 같은 경우는 어떤가요?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특별판 리커버가 제일 잘 알려진 것 같아요. 파급력이 셌어요.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오르고.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주셨어요. 책 표지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보건교사 안은영』 표지를 작업한 이유는 출판사 때문이었어요. 민음사 책은 별색이나 판형 등 디자인이 예쁘게 나올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책이 아름답게 제작되는 건 중요한 문제죠. 북디자인에 대한 제 생각을 잠깐 이야기 하자면요. 단순한 배경에 타이포그래피만으로도 아름다운 표지를 만들 수 있고, 저 또한 그런 책을 좋아하는데요. 제 작업이 아름답게 나오지 않으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제 일러스트 작업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져요. 효과가 반감되니까요.

『보건교사 안은영』 표지 풀 버전
『보건교사 안은영』 표지 풀 버전

『보건교사 안은영』 표지 풀 버전

이전에 창작자의 ‘궁핍 구간’에 대해 말한 게 무척 기억에 남는데요. 

프리랜서는 일하다가 끊기는 지점이 있고 갑자기 많이 들어오는 지점이 있는데 그 완급조절을 제대로 못 하면 분명 궁핍해지는 시기가 온다는 이야기예요. 그 궁핍 구간을 잘 넘기려면 통장에 돈을 항상 모아놔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거죠. 그리고 심리적으로 조급해져서 추후에 시간 조절을 못 할 정도로 많은 일을 수락하는 실수도 이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혹시 궁핍 구간을 슬기롭게 넘기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궁핍 구간은 정말 너무 어려워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 외에 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지금은 형편이 상대적으로 좋아졌지만, 부모님 돈 말고도 친구들에게 밥도 많이 얻어먹었고 제 동생이 월세를 대신 내준 적도 있었죠. 사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산이 되지 않거나, 일이 아예 안 들어오면 답이 없어요. 부업이라도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죠. 저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전에는 스톡 이미지 라이브러리에 컷당 3만 원 받고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부업을 했답니다. 되게 단순하면서 통장에 돈이 바로 들어올 것 같은 작업이죠. 하지만 결국 개인 작업에 대한 갈증이 폭발하게 하는 반발 심리 덕분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정말 열심히 일하자고 다짐한 계기가 되긴 했지만요.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들은 수입의 일정 부분을 꼭 통장에 모아놓는 게 필요해요. 병원 갈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난감해요.

유용한 말씀이네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창작자로서 어떨 때 기쁨을 느끼시나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실 때 너무 기뻐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기뻐하는 내적인 천성 때문인 것 같아요.

‘안다’는 것에도 편차가 있잖아요. 람한이란 ‘사람’을 아는 것부터 ‘작업’에 대한 친근함을 표시하는 것까지요.

저는 다 좋아요! 같은 창작자분들이 저를 인정해주시는 것도 무척 기쁘고, 대중들이 제 작업을 알아봐 주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이 그림 너무 좋다’까지 가지 않고, ‘ 나 이 그림 알아’ 하는 정도도 저한테는 너무나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이거 어디서 봤어’ 이렇게 인지도를 갖는 정도도 너무 힘든 게 현실이니까요. 제 그림이 뭔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여겨진다면 얼마나 뿌듯할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네요.

반대로 슬플 때는 언제일까요?

음. 더 잘하고 싶을 때 슬픈 것 같아요. 창작자들이라면 한 번쯤 ‘하… 왜 나는 여기까지밖에 안 될까’라며 좌절할 때가 있죠. 보편적인 얘기 같지만 제일 솔직하게는 이게 맞는 거 같아요. 좀 더 설명하자면, 동경하는 대상과 관련 있다고 할까요. 아득할 정도의 밀도로 가득 찬 작업이나 그걸 만든 창작에 진심인 사람을 보면 상대적으로 더 슬퍼져요. ‘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 이렇게 개인적인 한계를 느낄 때예요. 사람과 작업이 연결되어 감동이 퍼지면서 압도당하고 동시에 살짝 슬픈 그런 느낌이 있답니다. 최근 8~9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이수경 작가님의 개인전 «달빛 왕관»을 보면서 슬펐어요. 너무 좋아서요. 그분 작업을 실제 처음 봤는데, 공간에 들어가서 작업을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게 이런 거구나’란 생각과 함께 무척 좋으면서 슬퍼졌죠.

이수경 개인전 «달빛 왕관» 포스터 

이수경 개인전 «달빛 왕관» 포스터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제가 고민하던 지점과 맞닿아 있어서요. 평면에서 구조물도 활용해보고, 넓은 공간이 필요한 작업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있었거든요. 스터디도 하고, 작업실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도 되고, 여러 사람과 협업해서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데 말이죠. 이수경 작가님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작품을 엄청나게 꼼꼼히 해내는 여정이 보였어요. 거기서 진심이 느껴졌어요. 작업의 조형미도 너무도 아름다웠고요. 그런 작업을 연이어 보니까 제 스스로가 ‘너무 일러스트레이터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남몰래 생각하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어요. ‘내가 왜 이리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 충분히 더 잘해서 자신 있게, 밀도 있게 하면 되는 걸…’ 하는 생각이 제 고민을 깨주더라고요. 깊이 감동하면서, 그분이 전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고민하던 부분에서 충돌이 생기니까 슬픔도 찾아오더라고요. ‘아, 내가 왜 이렇게 못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요. 복잡하죠. (웃음)

창작자의 건강 관리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세요?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한데 그게 정말 마음대로 잘 안 되죠. 사실 제일 좋은 건 수면이라고 봐요. 자는 시간을 최대한 지키려고 합니다. 특히 심리적인 조절이 무척 중요하다고 느껴요. 마음이 확 불안해지거나 우울한 기분이 바이오리듬처럼 올라갔다가 훅 떨어지는 구간들은 반복적으로 존재하거든요. 그 부분이 항상 어려워요.

추천할 만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업할 때 너무 파고들면서 생각을 하면 힘들어져요. 막연하면서 피상적이면서 이상한 느낌이 올 때가 있거든요. 예컨대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해?’ ‘내가 하는 작업이 소모적인 건 아닐까?’ ‘내가 지금 누구한테 이용당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바보가 된 건 아닐까?’ 등등.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최대한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행위적인 질문을 던져요. 결국 답이 없는 고민이긴 한데 반복적으로 환기를 시켜주는 게 필요해요.

람한 님은 인스타그램을 전시장처럼 쓰시는데요. 사실 인스타그램이 창작자에게는 계륵 같은 플랫폼일 때가 왕왕 있잖아요. 특히 소비된다는 지점에서요. 인스타그램은 람한 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플랫폼이 생긴 초반에는 남들도 다 하니까 아이디를 만들었죠. 사진과 낙서를 올리다가 작업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인스타그램에 대한 애증이 생겼고요. 인스타그램이 필요 없는 작가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에겐 인스타그램이 계륵이겠지만, 저는 인스타그램이 제 작업을 알리는 시작이었기 때문에 고민할 여지가 적었어요. 여기서 작업 연재를 시작했죠. 동생이랑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때 동생이 하루에 한 개씩 그림을 그려서 올려보라는 말을 했거든요. 사실 동생이 저보다 그림을 더 잘 그려요. 애니메이션 감독이거든요. 팔로우 수도 저보다 훨씬 많았어요. 심지어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올려보라는데 너무 힘들어서 못 하는 거예요. 근데 당시 동생은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동생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제 작업을 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도에 대해서는 아예 몰랐어요. 맨땅에서 시작했고, 작업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인스타그램 이외에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플랫폼이 된 거죠. 더구나 되게 즉각적인 반응이 오니까 이를 통해 제가 성장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시각적인 ASMR’을 추구하는 것도 소셜 미디어가 무한정으로 쏟아내는 이미지의 자극에 자연스레 노출된 상태가 아니었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거고요. 지금도 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상호 간의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예요.

ramhan, instagram

람한의 인스타그램

람한의 인스타그램

작업에 임하기 전에 ‘재밌겠다’라고 시작 주문을 외우면 더 몰두할 수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창작자 입장에서 재미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믿으시나요?

네.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가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사람들이 재밌다고 느끼는 부분들은 조금씩 다른데, 저는 재미있는 지점을 잘 찾아야 일을 재미있게 잘 끝낼 수 있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어, 예전에 전시 제안이 들어왔는데 빨간 카펫이 있는 공간에서 작업을 전시한다는 거예요. 그게 저는 무척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빨간 카펫이 있는 공간에서 전시한다니! 그 장면을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전시가 바로 ‘타이포 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중 ‘밈의 정원’입니다. 문화역서울 284 건물 내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 자리라고 해요. 상상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순수한 재미로서도 중요하지만 어떤 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내가 좋아하는 지점이 뭔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서 재미는 무척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그 재미가 배신할 때는 없나요? 

많죠. (웃음) 재미라는 게 결국 기대와 연관되는데, 재밌겠다는 기대감이 있어도 결과적으로 재미가 없는 경우가 있죠. 그래도 작업을 여러 번 해보니까 재밌겠다 싶은 부분은 재미있더라고요.

ramhan, 작업실
람한 작업 클로즈업한 사진, 분홍 초록

이제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렀어요. 연속 질문을 던져볼게요. 먼저 계속 창작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삶의 위안이 되는 건 무엇일까요?

근본적인 질문이네요. 위안은 사실 되게 작은 즐거움에서 오는 듯해요. 그때그때 숨통을 트게 해주는 것들이요. 산책 갔다 오고, 요가 갔다 오고, 중간중간 좋아하는 게임하고, 고양이 챙겨주고, 남편이랑 놀고. 회복을 짧게 짧게 자주 해주는 게 좋아요. 크게 고생한 다음 크게 회복하면 걷잡을 수 없이 느려지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회복의 폭을 좁히려고 해요. 최대한 짧고 얇고 자주. 앞으로 지속할 수 있는 창작을 위해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리고 그토록 힘든 걸 감수하면서까지 창작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항상 하고 싶었던 상태였기 때문이죠. 저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게임을 하면 게임을 만들고 싶고, 뜨개질을 보면 뜨개질을 하고 싶었죠. 게임을 하더라도 ‘마인크래프트’처럼 뭔가를 만드는 게임을 좋아해요. 만드는 행위 자체를 사랑합니다.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만들기가 그림이었기 때문에 평생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 되었죠.

그러면 무엇이 창작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나요?

제가 앞으로 기대하는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걸 계속 보고 싶어서 하고 있어요. 이번 작업을 하면 다음 작업에 어떤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쉬운 점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럼 그걸 보완하고 싶고, 어떤 걸 더 해보고 싶고 이런 마음이 드니까 계속 다음 창작으로 이어지죠.

와.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하시네요!

어휴, 아니에요. 마음은 이렇지만, 엄청 놀고 싶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창작자로서 가져야 하는 애티튜드가 궁금해요.

저는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어떤 자극을 받을 때 좋은 걸 먼저 보려고 노력해요. 좋은 것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하고, ‘이게 왜 좋을까?’ 고민하고, 싫은 게 있다면 ‘이건 왜 싫을까? 내가 왜 하기 싫을까?’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두 번씩 하다 보면 좀 더 솔직한 작업을 하게 돼요. 솔직한 작업이라고 해서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남들에게 공감도 받고 이해도 얻을 수 있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인터뷰 3부작, 대단원이 끝났네요. 어떠셨나요?

이렇게 꼼꼼히 질문해주셔서 놀랍고 기대돼요. 글이 어떻게 정리되어 나올지… 정제된 언어로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지는 않았던 편이거든요.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 방면으로 말하고 설명할 수 있어서 혹시 제게 궁금한 점이 있었다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Artist

람한(한지혜)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페인터다. 디지털 페인팅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며 현재와 과거의 팝·서브 컬처와 미디어에 주입된 체험적 판타지를 그린다. 대중매체 안에서 복제되고 열화되어 진위가 모호한 유사 기억을 잘라 붙여 왜곡된 제3의 장면을 소환하고, 그것을 수용자의 체험으로 치환시키는 행위에 흥미를 느낀다. 국내외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협업해 아트워크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작가로 전시에 참여하는 걸 병행 중이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디뮤지엄, 시청각, 우정국, 갤러리 휘슬, 스티브 터너 갤러리, 리처드 헬러 갤러리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고 2020 부산비엔날레의 초대 작가였다. 2022년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WWD 코리아»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람한과 기억 그리고 소리(ft. 노동요)

람한, ramhan, 방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람한, Ramhan staring somewhere in her room.

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두 번째 주인공은 디지털 페인터 람한 작가입니다. 시각적 ASMR을 추구하는 그는 감각의 끝자락을 간지럽히는 듯한 몽환적이고 이색적인 작업을 선보여요. 신기하게도 작업을 보면 시각적 팅글이 느껴진답니다. 람한 작가와 나눈 다채로운 이야기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더불어 저희와 함께 협업한 익스클루시브 굿즈인 메쉬 탑도 B(A)SHOP에서 살펴볼 수 있답니다!

아티스트 프로젝트 02: 람한

«비애티튜드»는 특정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선보인다.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람한을 선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람한에게는 어린시절부터 연필보다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한 후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이끄는 요소에 주목해 아름답게 왜곡되는 기억과 추억을 주제 삼아 시각적인 자극을 강조하는 디지털 페인팅을 선보였으며 동시대 디지털 네이티브의 환호를 기반으로 미술 신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세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본다.

Part 2: 람한과 기억 그리고 소리(feat. 노동요)

디지털 페인터 람한은 «비애티튜드» Issue. 1의 테마인 ‘소닉 노스탤지어’와 결이 잘 어울린다. 그림의 소재로 기억과 추억을 활용하고, 파일 형태로 작업을 보관하는 행위가 소리의 소멸성과 엮이는 점에서 말이다. 기억과 소리에 대한 람한의 이야기와 그가 작업할 때 적극적으로 즐긴다는 ‘금단의 음악’을 소개한다.

람한의 작업물, ramhan's artwork, 람한의 작품이 바닥에 놓여져있다

이제 파트2 인터뷰를 시작할게요. «비애티튜드»의 이번 테마는 ‘소닉 노스탤지어Sonic Nostalgia’입니다. 람한 님은 ‘소닉 노스탤지어’라는 테마를 접하고 어떤 게 떠오르셨나요?

저는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요. 일단 추억의 캐릭터를 빼놓을 수 없죠. 바람돌이 소닉! 그리고 밴드인 ‘소닉 유스Sonic Youth’도 생각났어요.

소닉 노스탤지어

바람돌이 소닉 © SuperMarioT / 밴드소닉 유스Sonic Youth’ 여섯 번째 앨범 ‘Goo’ 앨범 커버

앗. 소닉 유스는 저번에 박민희 작가님도 꼽았는데.

음악이 참 좋죠.

작가님도 혹시 펑크록 마니아인가요?

펑크록은 아니지만 록도 좋아했고, 사실 고등학교 때 제 음악 친구는 메탈이었죠. 하하.

와. 상상도 못 했어요. 작가님은 시각 작업에 집중하고 계시는데, 디지털 페인팅의 특성상, 움직임을 가미할 수 있잖아요. 애니메이션화가 진행되면 소리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아요. 더불어 기억을 환기하는 데 청각만큼 효과가 탁월한 것도 드물죠. 혹시 하이브리드 작업을 하고자 생각한 적은 없으신가요?

당연히 있죠.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 마음도 늘 가지고 있고요. 사실 음악가 분들과 협업하는 걸 굉장히 원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앨범 아트워크 같은 경우에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하려고 노력해요. 애니메이션이나 무빙 이미지의 형태로 풀리는 하이브리드 작업에 대한 생각도 계속 지니고 있어요.

그럼 협업하고 싶은 뮤지션분들이 있나요?

네. 하하. ‘씨피카CIFIKA’라고 미래적인 EDM 사운드와 무척 아름다운 보컬로 음악을 만드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되게 멋있고 제가 동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서로 작업 얘기를 좀 더 하면서 협업을 진행할 거 같아요. 아직 ‘해보자~ 하자~’ 외치는 수준의 단계라서 말씀드릴 만한 게 없어서 아쉽네요. 아, 그리고 이 분이랑 뮤지션 신해경 님이 같이 만든 앨범 아트워크를 한 적도 있어요.

씨피카, 신해경, CIFIKA, Shin Hae Gyeong, 가수 씨피카와 신해경의 ‘모두 너야’ 앨범 커버, album cover of ‘modu you’ made by ramhan

씨피카 & 신해경의 ‘모두 너야’

씨피카 & 신해경의 ‘모두 너야’

생각해보니 ‘해파리’와 관련한 아트워크도 하셨잖아요.

네. 해파리도 엄청나게 멋있죠. 민희님 덕분에 «비애티튜드»도 알게 됐고.

Haepaary의 ‘Deep Sea Creatures’를 위한 비디오. 글로리홀 라이트 세일즈의 박혜인 작가의 유리를 본떠 만든 3D 모델링 작업(.pic 노상호 전현수)을 음악에 맞게 비디오로 합성했다. 고스트샷건(박혜인, 람한)의 팀 활동이다. 람한은 여기서 2D 애니메이션, 영상 합성, 최종 영상 아트워크를 맡았다.

그래서 저희가 박민희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답니다. 람한 님을 뚫어서!

뚫다니…(웃음)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하하.

장시간 인터뷰에 지칠 만도 한데 지치는 구석이 없으신 것 같아요. 성공한 창작자의 끈기일까요?

어쩌면 창작자의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네요. 고립되어 무언가를 만들고 있으면 워낙 말을 할 사람이 적어지거든요. 제 작업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분이 계시면 엄청 좋아요.

람한, ramhan, 나시를 입고 서있는 람한, Raman standing in a sleeveless T-shirt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소닉 노스탤지어를 안겨주는 대상이나 상황이 있을까요?

지금 듣자마자 바로 떠오른 건 게임 배경 음악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자주 하던 게임 중에 ‘일랜시아’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혹시 아시는지 궁금해요.

작년에 다큐멘터리 영화의 소재로 쓰인 그 게임인가요?

네네. 감독님이 아마 저랑 같은 세대인 듯해요. 게임을 플레이할 때 마을에 도착하면 들리던 음악이 생각나요. 모험을 끝내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안정감을 주는 편안한 사운드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게임 속 마을에서 들리는 음악은 비슷한 특징을 가지는데, 그 마을의 배경 음악이 떠올라요. 자주 듣던 음악이라기보다는, 추억에 관련된 소리라는 질문에 알맞은 안정된 음악 같아요.

일랜시아 BGM

일랜시아, Elancia, 예지, Yaeji, 뮤지션 예지가 일랜시아를 주제로 뉴욕에서 열었던 핼러윈 파티의 포스터. 람한은 일러스트로 참여했다, The poster of the Halloween party held in New York under the theme of Elancia by musician Yeji, Ramhan participated in the illustration.

2019년 뮤지션 Yaeji가 일랜시아를 주제로 뉴욕에서 열었던 핼러윈 파티의 포스터. 람한은 일러스트로 참여했다. 좋아하던 게임의 팬아트를 그리듯 작업할 수 있어 뜻깊었고,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과 같은 세대의 비슷한 추억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어렸을 때 되게 자주 하셨나 봐요.

그 게임의 그래픽이 지금도 무척 추억을 자극하는 비주얼을 가지고 있어요. 음악도 마치 8비트적인 소리라고 해야 하나, 되게 저음질의 어떤 것이거든요. 최근에 그 게임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깔아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거든요? 제가 처음에 상상하던 거와는 너무 다르게 음질이 떨어져서 무척 신기했어요.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옛날 게임인데 다시 깔아보니까 정말 너무 심하게 저화질이더라고요. 그때는 윈도우 95에도 깔았으니까요.

완전히 동감합니다.

기억과 추억은 람한 님의 작업 세계에서도 무척 중요한데요. 작가님에게 노스탤지어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비단 저뿐만 아니라 작업하시는 많은 분이 자신의 작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뭔가 하고 싶은데 왜 하고 싶은지 이유를 모를 때, 노스탤지어 때문인가 생각해보면 상당히 맞아떨어질 때가 많거든요. 자기도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으니 지금도 좋아했던 감흥이 남아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볼 때가 많답니다.

다른 창작자의 작업을 보다 보면 논리적으로 명확히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던데요. 이런 게 예술적 감흥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능력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노스탤지어에 기반을 둔 감정이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거네요.

동감해요. 저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람한, ramhan, 오른쪽을 보고 있는 여자, The woman looking to the right.

노스탤지어가 작업을 넘어 작가님의 삶 전반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니 제가 추억에 꽤 집착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억을 자극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서 어떤 행동의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예컨대, 여행지를 고른다거나 누구와 해봤던 걸 다시 시도해보는 상황이 생기잖아요. 그럴 때 예전에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걸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한 상황으로 다가와요. 만일 제가 하던 게임의 버전이 새로 나왔으면 전 꼭 해봐야 직성이 풀려요. 옛날의 추억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저를 설레게 하는 포인트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정말 순수하게요.

여행 얘기를 하셨는데 새로운 여행지와 다녀와서 좋았던 여행지 중 어떤 곳이 더 끌리세요. 참고로 저는 가본 데 또 가는 건 별로예요.

저랑 완전 달라서 정말 재밌네요. 흐흐. 저는 좋아하는 사람을 데리고 추억의 여행지로 떠나서 ‘나는 여기가 이래서 좋았어’라며 알려주는 타입이랍니다.

자, 그럼 다음 질문으로. (웃음) 디지털 페인터로 활동하시니까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전에 말씀하셨듯이 작업의 원본이란 게 물성이 없는 디지털 파일의 형태이자 세이브를 눌렀을 때의 특정 순간이라면, 작업 원본을 어떻게 보관하실까 무척 궁금해요. 컴퓨터 드라이브에 오류가 생겨 공들여 작업한 파일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까 말이죠.

일단 완성이 되면 그 디지털 파일을 최대한 안전한 곳에 보관하려고 노력하죠. 정확히 말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컴퓨터 폴더로 이동시킨 후 더 이상 어떤 조작도 가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생각하는 편이에요. 근데 만일 파일에 문제가 생겨서 날아간다고 해도 공포를 느끼진 않는 것 같아요. 유동적인 디지털 파일을 다루기 때문에 없어질 수 있는 건 결국 없어진다는 사실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없어질 수 있는 게 디지털 파일만의 특성도 아니고요. 유화 같은 경우도 풍화 현상에 의해 안료가 떨어져 나가고 변화가 찾아오니까요. 결국, 제 손을 떠난 작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언제나 ‘다 내 것이야! 하나도 잃어버릴 수 없어!’라고 생각할 순 없는 노릇이죠.

람한, ramhan,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는 여자, The woman pointing to the right

그럼 작업 파일이 정말 컴퓨터 본체 드라이브에만 있는 건가요?

음. 그렇지는 않아요. 오히려 산발적으로 퍼져 있다고 할 수 있죠. 커머셜 작업의 경우, 클라이언트 쪽에 작업이 가 있고요. JPEG 파일은 사본도 굉장히 많고… PSD 파일의 경우, 파이널 파일이 한두 개 존재하고, 미완성 상태의 파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존재하죠. 완성본이 하나 있으면 그 전 단계 버전들이 몇 개 따로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파이널 파일이 생성되니까요.

제가 보기엔 JPEG도 원본이나 마찬가지인데 정말 PSD와 차이를 현격히 두시는 것 같아요.

제게는 JPEG가 산출물에 가까워서요. JPEG가 거의 무손실이긴 하지만 압축을 조금은 한다고 들었어요. 혹여나 무손실 형태로 이미지를 뽑을 수 있다고 해도 저는 PSD를 원본으로 봐요. 왜냐하면 제가 직관적으로 완성이란 행위를 펼치는 무대가 PSD 파일이니까요.

저는 글을 쓰는 입장이라 그런지 발행이 되면 원본에 대한 구분이 없어지는 느낌이에요. 남에게 보이면 끝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요즘 원고를 모두 구글 도큐먼트로 저장해요.

제게도 약간 통용되는 말 같네요. 저도 누군가에게 작업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사라지는 상황 자체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것 같아요. PSD보다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미지로 뽑아낸 작업을 사람들과 공유해서 제가 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공감을 얻고, 반응을 얻으면 그림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공포감이 덜해요. 그쪽에 의미를 두는 편인 것 같아요. 게다가 전시를 하니까 필연적으로 물질화시키는 것도 한몫하죠. 그런 식으로 세상에 남게 되거나, 누군가가 가지고 있게 되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디지털 파일이 아예 소멸하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 그 끔찍함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 끔찍함을…(웃음)

람한, ramhan, 케이스 연작, Case, 작업실에 서있는 람한, Ramhan standing in the studio

작가님의 작업을 청각적으로 풀어낸다면 어떤 특징을 가질까 하는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 시각적 ASMR이란 표현이 무척 강렬히 다가왔거든요.

제가 청각 작업을 정말 못해서 말하기가 애매한데… 아마도 시각적으로 상상이 되는 사운드, 혹은 폴리 사운드 같은 걸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폴리 사운드는 영화에서 쓰는 음향인데요. 사실적이고 실제로 낼 법한 사운드를 후시로 녹음해서 영화에 입힐 때 사용하죠. 예컨대 뺨 때리는 소리, 뽀뽀하는 소리, 괴물 소리 등등 실제 촬영할 때 나기 힘든 리얼한 소리를 오렌지 같은 걸 이용해서 만들죠. 그런 걸 할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지금 하고 있고, 좋아하고, 앞으로 해나갈 작업이 그런 식으로 자극을 유발하려는 방향성을 갖다 보니 바로 떠오르는 사운드로 꼽게 되었어요. 또 그런 사운드를 들을 때 제가 즐겁기도 하고요.

혹시 작업할 때 듣는 노동요로 폴리 사운드를 선택하시는 건 아니죠?(웃음)

노동요는 일단 음악이죠. 하하. 근데 노동요는 진짜 아무거나 들어요. 노동요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텐데 세계관에 빠져서 몰입하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이 있을 테고, 정해진 시간 안에 무언가를 쳐내야 할 때 생각을 덜 하기 위해 듣는 음악이 있겠죠. 저 같은 경우, 전자로는 앰비언트처럼 가사가 없는 걸 선호하고요. ‹사이버펑크 2077›이란 게임이 있는데 그 게임 OST도 작업할 때 자주 들었어요. 좀 더 도취하고 싶을 때는 어두운 신디 사운드 이런 것도 좋아하고, 조금 우울하고 인스트루멘탈한 음악도 듣고요. 근데 정말 뭔가 빨리 해치워야 하는 상황이나, 진짜 그림 그리기 싫은데 어떻게든 해내야 할 때는 팝을 들어요. 하하하.

Cyberpunk 2077 (OST) Full

Cyberpunk 2077 (OST)

Doja Cat – Streets

왜요?

신나잖아요. K-팝도 듣고, 최근에는 ‘빌보드 TOP 100’ 이런 것도 들어요. 이전에는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요즘에는 되게 작업할 때 듣기 좋다고 생각해요. 정말 작업하기 싫을 때는 한 곡을 선택해서 무한재생해요. 반복적인 리듬을 타면서 그림이 자동으로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혹시 생각나는 곡 있으세요?

최근까지는 에스파의 ‘Next Level’ 을 들었어요. 그리고 진짜 너무 힘들 때는 클래식을 들어요. 19세기 여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클라라 슈만을 좋아하는데요. 곡 하나를 꼽는 건 힘들어요. 그냥 플레이리스트로 ‘베스트 오브 클라라 슈만’ 이런 걸 듣거나, 흘러가는 알고리즘에 맡기거든요.

애스파aespa – Next Level

애스파aespa – Next Level

Clara Schumann – Soirées musicales, Op. 6

저도 집중할 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나 첼로곡을 들어요. 요즘은 사람이 바뀌는지 지겨움을 좀 느껴서 유튜브 알고리즘에 맡기곤 하죠. 그러다 보니 제가 작업할 때 사랑 노래를 듣는다니까요. 전에는 상상도 못 했어요.

혹시 스스로가 AI 같으신 거 아세요? (웃음) 사랑 노래를 듣는 게 신기하다니요.

엣헴. 이제 파트2도 끝났습니다. 즐거운 대화였어요!

와. 시간이 엄청 빠르게 가네요.

람한 작가가 요즘 자주 듣고 있는 곡들!

Nicolas Jaar – Fight

Klaus Schulze – My Ty She

예지, 오혁 – Year to Year

아티스트 프로젝트 02: 람한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디지털 페인터, 그 이름은 람한›↗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람한과 기억 그리고 소리(ft. 노동요)›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람한이 숨겨둔 이야기들›↗

람한, ramhan, 람한이 작품 앞에 서있다, ramhan stands in front of her artwork

Artist

람한(한지혜)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페인터다. 디지털 페인팅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며 현재와 과거의 팝·서브 컬처와 미디어에 주입된 체험적 판타지를 그린다. 대중매체 안에서 복제되고 열화되어 진위가 모호한 유사 기억을 잘라 붙여 왜곡된 제3의 장면을 소환하고, 그것을 수용자의 체험으로 치환시키는 행위에 흥미를 느낀다. 국내외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협업해 아트워크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작가로 전시에 참여하는 걸 병행 중이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디뮤지엄, 시청각, 우정국, 갤러리 휘슬, 스티브 터너 갤러리, 리처드 헬러 갤러리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고 2020 부산비엔날레의 초대 작가였다. 2022년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WWD 코리아»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페인터, 그 이름은 람한

람한 ramhan,

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두 번째 주인공은 디지털 페인터 람한 작가입니다. 시각적 ASMR을 추구하는 그는 감각의 끝자락을 간지럽히는 듯한 몽환적이고 이색적인 작업을 선보여요. 신기하게도 작업을 보면 시각적 팅글이 느껴진답니다. 람한 작가와 나눈 다채로운 이야기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더불어 저희와 함께 협업한 익스클루시브 굿즈인 메쉬 탑도 B(A)SHOP에서 살펴볼 수 있답니다!

아티스트 프로젝트 02: 람한

«비애티튜드»는 특정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선보인다.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람한을 선택했다. 한예종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람한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연필보다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 후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이끄는 요소에 주목해 아름답게 왜곡되는 기억과 추억을 주제 삼아 시각적인 자극을 강조하는 디지털 페인팅을 선보였으며 동시대 디지털 네이티브의 환호를 기반으로 미술 신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세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본다.

Part 1: 디지털 페인터, 그 이름은 람한

디지털 기기에서 탄생한 람한의 그림은 무한한 노동과 집중력의 산물이다. 픽셀 하나에도 민감한 그의 섬세함이 투영된 작업은 사람의 감각을 자극하고 즉각적으로 마음을 훔치며 ‘시각적 ASMR’로 기능한다. 커머셜 작업과 개인 작업을 균형 있게 병행하는 람한이 늘 관심을 보이는 대상은 사람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반응하는 여러 감각 요소를 파악해 한 장의 그림에 압축시킨다. 기억과 추억의 왜곡에서 비롯되는 공감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그의 다채로운 작업 세계를 살펴보자.

람한 ramhan

작가님을 소개할 때 ‘디지털 페인팅’이라는 단어가 함께 붙더군요.

요즘은 ‘그리기’라는 행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세상 같아요. 하지만 저는 디지털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시각적인 표현, 처음 접했을 때 흥미로움을 부르는 이미지가 작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기 때문에, 그리는 행위를 통해 원하는 비주얼을 표현하는 과정이 무척 중요해요. 특히 제 작업은 물성 없는 파일 형태로 시작해 컴퓨터 혹은 주변 디바이스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에 기술적이고 표면적인 의미에서도 ‘디지털 페인팅’이라는 단어가 유효하죠.   

보통 ‘디지털’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첨단 기술로 실험하는 게 생각나곤 해요.

디지털 페인팅을 두고 짧은 시간에, 손쉽고, 편리하게 작업을 완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제 작업은 그런 편견과 거리가 멀어요. 예를 들어, 저는 전시에 초대를 받으면 전시장에 찾아가 작업이 걸릴 벽면에 어울리는 화폭을 상정한 후 포토샵으로 실제 크기를 잡고 해상도는 크기와 대비해 최대의 해상도로 설정해요. 그것에 맞게 표현의 밀도와 디테일을 추구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답니다. 디지털 페인팅의 세계에서는 우연의 효과가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현실에서는 연필로 드로잉하고 수채화나 유화로 채색하면 의도하지 않은 멋진 텍스쳐가 큰 활약을 하잖아요. 살짝 삐져나오면 그만의 멋이 있죠. 근데 디지털 세계는 굉장히 엄격해요. 1픽셀이라도 삐져나오면 눈에 거슬리는 흠으로 다가와요. 게다가 저는 브러시가 정직하게 구축하는 비주얼을 선호하는 편이라 종이나 물감의 질감을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디지털 효과는 지양하는 편입니다. 드로잉 툴이나 프로그램이 전달하는 특유의 차갑고 날것의 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디지털에 늘 기술의 축복이 따르는 건 아니네요! 픽셀 하나하나까지 챙기는 게 힘겹진 않으세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해서 그런지 모든 작업을 드로잉으로 시작하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디지털 작업에서는 사진에 리터칭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동안 드로잉으로 쌓은 조형 감각이 깨질까 봐 러프 드로잉부터 일일이 그리는 편이에요. 디지털 페인팅을 위한 프로그램이 꽤 다양하지만 제가 포토샵을 선호하는 이유도 가장 스터디를 많이 한 프로그램이면서, 그 성격이 중립적이고 다방면적이기 때문인데요. 브러시, 보정 레이어, 필터 등을 직접 만들 수 있어서 자유도가 무척 높아요. 포토샵에는 작업을 편리하게 돕는 여러 기술이 존재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할 때만 생기는 ‘맛’을 놓칠 수 없어요. 프로젝트마다 그에 어울리는 최적의 브러시를 제작해서 맨바닥부터 시작하는 이유랍니다.

“연필보다 드로잉 패드가 더 익숙하지만, 완성된 파일은 만질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디지털 페인팅에서 작업의 완성을 결정짓는 척도는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작업을 완성했다고 느끼는 시점은 명확해요. ‘아, 이제 끝이다. 완성했음!’이라고 생각하면서 포토샵의 ‘세이브save’를 누르는 상황이죠. 제가 생각하는 완성의 유일한 조건은 스스로가 부여하는 인위적인 승인이고, 승인은 그저 하나의 시점일 뿐이에요. 여기서부터 애매한 문제가 생겨요. 작업은 분명 완성됐는데, 이걸 사람들과 완벽하게 공유할 방법이 없어요. 출력하면 일단 다운그레이드가 되죠. 디스플레이로 보는 게 완성작의 환경과 그나마 흡사한데요. 제 작업은 보통의 모니터 디스플레이 크기를 넘어가거든요. 실제 스케일을 전달할 수가 없어요. 그나마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업 소식을 전하지만, 이건 아주 작은 크기의 섬네일이죠. 그래서 항상 고민해요. “어떻게 하면 원본에 가깝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인쇄는 늘 아카이벌 프린트를 고집하고, 더 나아가 디스플레이 뒤에서 빛을 비추는 모니터 환경과 기능적으로 유사한 라이트패널을 이용하려고 하죠. 물론 어떻게 하더라도 제가 저장한 ‘완성’ 파일을 똑같이 구현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그래서 전시장에 걸리는 라이트 패널 작업조차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생산한 복제품이 아닌가 생각을 하곤 해요.

창작자도 세이브 버튼을 누를 때 작업을 한눈에 조망하지 못하잖아요. 결국 완성 혹은 원본은 세상에 존재한다기보다 작가님만 의식할 수 있는 특정한 순간에 가깝겠어요.

무척 동감하는 바에요. 제 작업의 원본은 항상 어딘가의 중간에 존재한답니다. 제가 만날 수도, 온전히 볼 수도 없고, 거기에 가깝게 만들 뿐이죠. 근데 그 애매모호한 상태가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고집스럽게 작업을 진행하는 원동력도 그런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 같고요. 아무도 완성을 알 수 없고, 오직 제 머릿속에 저만 아는 지점으로 있는 상황 말이죠.

2018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유령팔»에서 ‘람한-디지털 시대의 기억의 사유화’라고 작가님을 소개했는데요. 추억과 기억을 작업의 주된 주제로 삼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친구끼리 모여 추억을 얘기할 때가 있잖아요. 옛날에 봤던 애니메이션을 화제로 삼으면 각자 떠올리는 장면이 모두 다르고, 좋았던 장면이나 무서워서 트라우마로 남은 장면이 동일하지 않아요. 어른이 돼서 해당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면 옛날의 ‘그’ 느낌은 존재하지 않고요. 같은 걸 보아도 기억은 다르게 남고, 마음에 남은 어떤 인상은 왜곡을 겪으며 완전히 새로운 기억으로 자리 잡곤 해요. 기억이 시간을 지나 풍화되며 전혀 다르게 남은 걸 활용해 저만의 표현과 질감으로 작업을 만드는 걸 보고 당시 담당 큐레이터님이 기억을 사유화한다고 표현하셨던 것 같아요. 더불어 이런 것도 있죠. 여행을 갔다 오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여행에 대한 환상과 즐거움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머리에 남은 아름다운 장면들이 사실은 자기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기억은 부풀린 환상이 빚은 필터링된 이미지에 가깝다는 거죠.

실제 체험한 여행인데도 그렇게 기억한다면, ‘기억은 결국 추억이 된다’는 관점과 유사한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예 남의 기억을 자기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요. 마치 누군가가 여행 간 사진을 볼 때 이미 그 감각이 느껴지는 것처럼요. 이런 현상은 요즘 굉장히 흔해졌어요. 영화 ‹화양연화›에서 감각적인 조명 아래 톡톡 튀는 색감의 아름다운 장면을 봤다고 가정할게요. 실제로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죠. 영화적인 장치로 구축한 가상의 세계니까요. 그런데 제 머리는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영화의 한 장면이 영화로 남는 게 아니라 제 기억의 일부로 편입되는 거죠. 직접 홍콩을 가지 않아도 홍콩에 대한 영화를 보고 영화 속 장면을 훔쳐서 홍콩에 대한 기억으로 삼는달까요. 지금처럼 사람들이 이미지를 통해 많은 것을 공유하고, 특히 SNS에서 습득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작업한 결과물들을 보면 한마디로 내것네것의 경계가 없는 상황이 온 것 같아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다른 이와 공유하는 것처럼요. 미국인이 감독을 맡고 미국 문화권을 배경으로 찍은 미국 영화를 한국에 사는 7살 아이가 보고서, 그 영화에 대한 추억이 미국에 대한 추억으로 바뀌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세상이에요. 미디어가 도처에 퍼지면서 이제 사람들이 직접 느낀 것과 가상으로 느낀 것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정확한 지적이라고 봐요. 2000년대 초반 홍대 문화를 실제로 겪지 않은 사람이 그것에 대해 ‘그립다’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이런 기억과 추억의 왜곡은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저는 한눈에 봤을 때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럼 이런 질문이 생기겠죠. ‘그림으로 표현하고싶은 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건 뭘까?’ 제게는 그 기준이 추억에 가 있어요. 사람들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죠. 저 또한 그런 미감에 동의하는 편이고요. 그런 면에서 추억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도 드물다고 봐요. 저는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더 선호하는 걸 빠르게 캐치하는 것도 제 작업의 일부라 생각해요. 다수가 공감하는 주제와 그림이 필요하다면 감각적인 면에서 추억을 부르며 아름답다고 공감을 일으키는 작업을 구현하고 싶어요. 제가 포착한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의 동의를 받는 건 꽤 중요하게 다가와요. 그들의 반응에서 자극을 받아 다음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는 원동력으로 기능하거든요. 다른 작가분들에 비해 좀 더 대중적인 이미지를 추구하고, 커머셜 작업도 병행할 수 있는 건 이런 특징에 기반을 둔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닌 전달력을 확인받으며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지털 페인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림만 그리면서 먹고사는 게 일생일대의 꿈인지라, 저는 지금도 절박함을 강하게 느낀답니다. (웃음)

2016년부터 시작한 작업이 2018년 «유령팔» 전시를 기점으로 크게 전환했다고 들었어요. 

전시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가지고 있던 분노가 엄청나게 컸어요.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판타지적인 느낌과 여성의 몸에 대한 묘사도 자주 했었죠. 하위문화에 편입되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커머셜 작업에 지치기도 했고, 좋은 모임에 나가서 창작 활동을 병행할 때는 제가 알지 못하던 반항심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하하. 그런 상황에서 제 작업에 대해 많은 분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불안감도 많이 해소됐죠. ‹Cracked›의 경우, «It’s Nice That»에서 선정한 ‘2017년 Top 25 Illustration’에 뽑히며 제 그림이 남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는 확신도 강해지고 자신감이 붙었고요. 반면 빠르게 확산하고 쉽게 읽히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에 대한 회의와 불안감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게 된 면도 있었어요.

람한, 여자, 소파, 분홍색, ramhan

«PRISMOF» 매거진 05호에서 다룬 영화 ‹아가씨›를 주제로 한 아트워크

람한, ramhan, 분홍색 소파, 여자

‹Cracked›

그러다 전시를 기획하시는 큐레이터분이 메일을 보내시니까 여러 가지 기분이 들었어요. ‘미술관에서 왜 내게 전시 제의를 하지?’ 생각이 들면서 완전 새로운 세계에 초대된 것에 대한 긴장과 더불어 동경과 욕심도 함께 들더라고요. 그래서 전시에 참여하면서 엄청 크게 그리고 싶다는 말을 드렸어요. 그리고 그에 걸맞은 작업을 계속 고민했죠. 일단 사람은 그만 그리자, 생각하고 지금 표현하고 싶은 게 뭘까 계속 생각해보니 임시 공간이 떠올랐어요. 당시 공간에 대한 간절함이 절실해서 객실이나 호텔 방처럼 임시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좁은 자취방이 있었지만, 월세를 내야 하니 결국 제 공간이 아니었고, 언제든지 캐리어를 옆에 두고 짐을 싸서 본가와 지금의 남편인 남자친구 집을 오갔거든요. 혹시 다툼이 일어나면 다시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옮기며 떠돌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객실에 대한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그려보자, 마음먹고 시작한 게 첫 번째 연작인 ‹룸타입Room type›이었죠. 이때 처음으로 라이트 패널을 작업에 도입하게 되었어요.

‹Room type 01›, ‹Room type 02›

‹룸타입›에서 러브호텔을 환상적인 객실로 표현했는데요. 왜 그런 공간을 소재로 삼으셨나요? 

지금도 마찬가지긴 한데, 약간 싸구려 감성에서 느끼는 어떤 동질감이 있어요. 요즘 럭셔리한 공간을 떠올리면 되게 미니멀하고 아무것도 없는 분위기인데, 제가 좋아하는 건 그런 게 아니거든요. 게다가 추억과 연관된 것이라면 약간 촌스럽지만 그만큼 공감을 부르고, 묘하게 못생겼지만 그게 더 마음에 들어서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대상을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냥 예쁘고 고급스러운 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가난했고, 절실했던 시점이었기에 그런 것에 더 끌리고 이야기를 더 많이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함께 전시한 작업 중 ‹외톨이Object›가 있던데요. 이건 무엇인가요?

‹외톨이›는 커다란 그림에서 따로 떨어져나온 기물이에요. ‹룸타입›은 가로세로 3m의 거대한 정사각형 크기였는데요. 이 작업에서 소외받는 물건들을 조망하고 서사를 부여해, 마치 칸 만화에서 무언가 클로즈업 샷으로 대상에게 감정, 감각적인 몰입을 유도하듯 가로세로 90cm 크기의 작업으로 꺼낸 거죠. 당시 제가 인스타그램에 작업을 올릴 때 부분부분을 크롭해 따로 올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균형을 흥미롭게 실험하던 행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외톨이› 연작

«유령팔» 전시 이후 미술 신에서 계속 호출을 받게 됐어요. 그러면서 연작 개념의 신작도 계속 발표하게 됐고요. ‹수베니어Souvenir›와 ‹케이스Case› 등이 대표적이죠. 

제가 어떤 걸 하고 싶은지에 대한 방향성이 좁혀진 면이 큰 성과였어요. 무조건 유명해지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소개되고, 보여지면 좋겠다는 지점이 생겨났죠. 상업적인 일러스트레이션에만 너무 몰두하고 싶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졌죠. 미술 신에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흥미로움과 불안감이 공존했는데요. 생각을 계속해보니 제가 그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거더라고요. 그래서 떠오르는 주제 중 한 장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지속하고 싶은 건 연작으로 이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수베니어›와 ‹케이스› 등으로 확장된 거죠.

람한, 룸타입, ramhan

‹Room type 03›

‹Souvenir_01_01_F›, ‹Souvenir_01_04_F›, ‹Souvenir_01_02_F›

‹Souvenir_01_01_F›, ‹Souvenir_01_04_F›

‹수베니어›의 경우, 사실 ‹룸타입›과 세계관이 연계돼있어요. 좀 더 줌인한 형태의 ‹룸타입›이랄까요. 여행지에서 느끼는 환상과 거짓 기억, 왜곡된 판타지에서 느낀 흥미를 기념품의 형태로 표현한 건데요. 그 대상은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접시와 티컵이에요. 여행지에 가면 늘 만나는 진부한 것들인데 이걸 모으며 느끼는 허무함과 부질없음, 그런데도 갖고 싶은 마음의 이중성을 내포하는 이미지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입체적인 공산품이 평면 이미지에 무심히 박혀있는 상태도 흥미로웠죠. ‹케이스›는 작년 ‘부산비엔날레’를 위한 신작이었어요. 외국 소설가의 추리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했는데, 저는 이야기 속에서 존재감 없이 죽는 여자를 주인공처럼 대하기도 하고, 복어 독으로 사람을 죽이는 소설 속 장치를 표현하기 위해 유튜브에서 실제 복어 내장을 손질하는 끔찍한 광경을 변형해 화면에 그려놓았죠.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강박적인 부분에 훨씬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Case_01_01›, ‹Case_01_02›, ‹Case_01_03›. ‘2020 부산비엔날레’를 위한 커미션 작업 

‹수베니어›부터 작업이 확 변한 게 느껴져요. 매트하고 리소그래픽적인 표현이 매끈하고 밝은 빛과 함께 강한 하이라이트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서브컬처적 기이한 상황을 묘사를 통해 표현하던 경향이 몽환적이고 유기적인 분위기를 통해 시선을 바로 끌어당겨 자극을 고조시키는 쪽으로 바뀌었달까요.

일단 라이트 패널에 대한 고려가 크게 반영됐어요. 원작을 더욱더 온전히 구현하는 매체로 라이트 패널을 고르고 나니 더는 프린트가 1순위가 되지 않으면서 작업 방식도 CMYK가 아니라 RGB로 바뀌었어요. 그러니 색감 면에서도 확 튀게 되었죠. 심적인 이유도 있어요. 더 효과적으로 빛이 풍부하게 맺히는 질감을 좇다 보니 작화도 바뀐 거죠.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표현법을 추구하며 CG만의 매력에 빠졌고, 좀 더 매끈한 질감과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광택이 존재하는 표현법을 연구하고 그런 이미지를 추구하게 됐어요. 이런 변화의 근저에는 감정의 공감에서 감각의 공감으로 이전하는 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죠. 감정에 국한한 작업만 고집하면 외로움과 우울을 얘기하다 끝날 것 같았거든요. 서사 없이 순수히 감각적으로만 대해도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튜브에 떠도는 ASMR 영상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감각의 말초까지 자극하면서도 공감을 끌어내는 감각적인 비주얼을 통해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죠.

그런 경향을 ‘시각적 ASMR’이라고 표현한 게 흥미로웠어요. 

하하. 시각적 ASMR은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장치와 방법을 한 화면에 집약하는 걸로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 같아요. 효과가 검증된 걸 모으고, 더 집요하게 보여주는 거죠. 질감을 표현할 때도 1차로 회색 하이라이트 표현을 한 다음 2차로 그 위에 하얀 점을 덧칠해 평평한 레이어에 볼록 튀어나온 듯한 착시를 준다거나, 집요하게 한 부분을 파고들어서 디테일의 끝판왕까지 가면서 나머지 부분은 흐릿하게 처리해서 집중 효과를 높이는 것 등이에요. 

‹kiss›

‹Case_01_04(기억정렬)›. ‘2020 부산비엔날레’를 위한 커미션 작업 

이런 표현적인 효과를 모아 감각적인 감각을 극대화하는 거죠. 저는 그게 시각적인 ‘팅글’이라고 생각해요. ASMR 영상을 보면 질감적으로 자극이 되는 소리로 청각적인 쾌감을 유도하잖아요. 시각물에도 유사한 쾌락이 존재하는 거죠. 눈이 간질간질하고, 기분이 좋아지고, 흥미로워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의미에서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게 됐어요. 시각적으로 자잘한 디테일이 보이고, 즉각적으로 어필이 되고, 추상적이지만 뭔가 감각적인 운동성이 보이는 제 작업에는 이런 의도가 중첩돼있어요. 작년 작업에 자주 등장한 형광 초록도 색에 대한 스터디의 결과 중 하나랍니다.

올해 작업을 보면 또 다른 변화의 기운이 포착되던데요.

아, 이렇게 변화를 느끼는 분이 계실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기쁨) 변하고 있는 거 맞아요. 그렇다고 뭔가 딱딱 경계를 정하고 움직이는 건 아니고, 표현 가능한 스펙트럼에서 계속 실험하고 있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조합을 바꿔도 보고, 중요도도 옮기면서 결과물이 어떻게 바뀌는지 체크하는 중이죠. 

작가 활동뿐 아니라 커머셜 작업도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발히 하고 계신데요. 혹시 기억에 남는 클라이언트를 꼽을 수 있을까요?

커머셜 작업과 개인 작업의 병행이 제 밸런스를 잡아준다고 생각을 하는지라, 커머셜 작업 또한 중시하는데요. 특히 클라이언트의 다양한 피드백이 표현의 폭을 넓혀준다고 믿기 때문에 수정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그래도 수정 없이 쭉쭉 진행한 프로젝트가 결과 면에서도 좋더라고요. 대표적인 예가 패션 브랜드 ‘오프닝 세레모니’에요. 여기 디렉터인 케롤 림과 움베르토 레온은 저와 작업을 같이 한 경험이 있었어요. 신뢰가 쌓여서인지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도 제 작업에 대한 수정 요청을 하지 않은 케이스죠. 서로 너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는데, 특히 옷으로 구현됐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요. 여러 작업 중 영화 ‹화양연화›를 모티브로 그린 작업이 제일 좋아요. 

패션 브랜드 ‘오프닝 세레모니’를 위한 아트워크

양조위와 장만옥이 택시 뒷좌석에 앉은 장면과 양조위가 영화 말미에 동남아 사원의 나무 구멍에 자기 비밀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섞었어요. 특히 후자는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이 아파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인데, 그래서 양조위 얼굴을 지운 후 구멍을 내버렸죠. 하하. 다른 클라이언트로는 애플이 떠올라요.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위한 작업으로 ‹in my room›이 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이후 애플 본사와 애플 코리아와도 계속 인연을 맺게 됐어요.

‹in my room›.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위한 아트워크

애플은 피드백을 주고받는 소통 방식이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잘 정돈된 케이스에요. 스트레스는 적고 결과물의 질은 높아지도록 시스템을 굉장히 잘 구축한 사례로 꼽고 싶네요. 그리고 작업을 진행하며 엄청난 시련과 함께 강한 만족감을 동시에 선사한 ‘오클루Oklou’의 애니메이션 MV도 기억에 아주 강하게 남습니다. (웃음)

오클루의 ‹I didn’t give up on you›를 위한 애니메이션 MV

공교롭게 모두 국외 클라이언트네요.

앗. 정말 그러네요. 외국 클라이언트와 국내 클라이언트는 정말 다른 것 같아요. 특히 피드백 면에서요. 외국 분들은 칭찬을 정말 적극적으로 엄청나게 해주세요. 진짜 장난 아니에요. 문화적 차이인가 싶을 정도로요.

Oh. It is interesting, but…

아니에요! but도 안 해요.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데 혹시 내가 틀렸다면 말해줄래?” 이 정도로 피드백이 와요. 이런 피드백 앞에 긍정적인 말을 엄청나게 하는 게 외국 클라이언트의 특징이라면, 국내분들은 정말 피드백이 없어요. 외국은 ‘힘내!Cheer Up!’하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외국 클라이언트와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워요. 아, «뉴요커The New Yorker»와 했던 작업도 기억나네요.

«뉴요커» 매거진을 위한 아트워크

이처럼 메트로폴리탄적으로 해외 클라이언트의 사랑을 받는 비법이 뭘까요?

저도 유추할 뿐이지만, 외국 분들은 눈에 바로 들어오는 캐치한 성향에 민감한 것 같아요. 음악에서도 멜로디나 벌스가 한 번에 딱 들리고 따라부르기 쉬운 노래가 유행하는 것처럼 제 작업도 그런 성격이 크게 작용한다고 봐요. 한 눈에 봐도 궁금하고, 신기하고, 호기심을 부르는 비주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기본 세팅을 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흥미를 유발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일러스트레이터가 가진 기본적인 직업 정신과도 연결된 특권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미지가 텍스트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시대에 제 작업이 요즘 세대에게 공감을 주는 뭔가로 존재하고, 저 또한 그런 것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으니 기쁠 따름이죠.

드디어 첫 번째 파트 질문이 끝났습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뻐요. 하하.

Artist

람한(한지혜)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페인터다. 디지털 페인팅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며 현재와 과거의 팝·서브 컬처와 미디어에 주입된 체험적 판타지를 그린다. 대중매체 안에서 복제되고 열화되어 진위가 모호한 유사 기억을 잘라 붙여 왜곡된 제3의 장면을 소환하고, 그것을 수용자의 체험으로 치환시키는 행위에 흥미를 느낀다. 국내외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협업해 아트워크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작가로 전시에 참여하는 걸 병행 중이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디뮤지엄, 시청각, 우정국, 갤러리 휘슬, 스티브 터너 갤러리, 리처드 헬러 갤러리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고 2020 부산비엔날레의 초대 작가였다. 2022년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WWD 코리아»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박민희가 부르는 ‹춘면곡Hanging Bed› Live

아티스트 박민희가 비애티튜드를 위해 ‘십이가사’ 중 하나인 ‘춘면곡’을 부른다. 음악감독 장영규의 사운드 디자인으로 보다 더 신비롭게 들리는 박민희의 목소리. 마치 가을의 낮잠과 같은 그 음색에 마음 놓고 푹 잠기어보자.

Artist

박민희는 공연예술가이자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 멤버다. 가곡·가사·시조를 노래하는 성악가로서 한국의 사회적 지형에서 전통음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의미와 방법론을 찾아가는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음악의 구조 및 사회적 의미 등 실질적이고 미학적인 문제들을 작품의 구성 조건으로 적용해 노래하는 행위와 듣는 행위의 장치적 맥락을 재편성한다. 대표작으로 ‹가곡실격 시리즈와 처사가› ‹춘면곡› ‹마음 닿지 않는 곳에›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등이 있고 KBS 국악대상 가악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체인지업 상을 수상했다. 해파리는 올봄 세계 최대 음악 마켓 SXSW 쇼케이스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했으며 ‘타이니 데스크Tiny Desk’로 유명한 NPR의 프로그램 ‘올 송스 컨시더드All Songs Considered’가 선정한 2021년 SXSW 기대주 11팀에 포함됐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WWD 코리아»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박민희라는 창작자의 애티튜드

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첫 번째 주인공은 공연예술가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박민희 작가입니다. 한국 전통 성악을 전공한 그는 〈가곡실격〉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가곡의 핵심인 형식미를 파괴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평단의 중심에 선 지 벌써 10년째랍니다. 최근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음악축제인 SXSW에 초대되는 등 대중음악 신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고 있어요. 박민희 작가와 나눈 다채로운 이야기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1: 박민희 

«비애티튜드»는 특정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선보인다.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공연예술가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민희를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 전통 성악인 가곡을 공부해온 박민희는, 자신이 몸담아온 전통 음악계와 가곡에 대한 회의감과 애정을 드러내는 ‹가곡실격›을 시작으로 공연과 퍼포먼스 아트를 전개해왔으며, 현재는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로 대중음악 산업에 진입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중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세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우리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 본다.

Part 3: 박민희라는 창작자의 애티튜드

공연연출과 현대미술 그리고 대중음악까지 박민희는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렇게까지 작업을 계속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창작을 지속시킬 근원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던져봤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 명의 창작자로서, 박민희가 살아남기 위해 길러야만 했던 능력과 애티튜드는 무엇일지 귀 기울여보자. 

“사는 동안 항상 바랐던 건 여자 아닌 사람으로 사는 것, 국악인 아닌 음악인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죠. 무척 기억에 남았는데, 어떤 의미인지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문장 그대로, 기본값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회에서는 아직도 여자가 무언가 할 때 대상화되는 경우가 잦아요. 공연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때로 어떤 분들은 그걸 여성의 코드로 읽곤 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하죠. 국악도 마찬가지로, ‘왜 다 같은 음악인데 음악이 아니라 국악이라는 카테고리로 엮는 걸까?’ 의문이 들죠. 결국 약자성, 소수성과 관련이 있는데요. 물론 그렇게 하다 보면 다른 분야보다 일이 많아져서 전통음악 성악가의 삶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해요. 대중이 원하지 않아도 세금으로 국악 관련 사업을 계속 만드니까요. 하지만 길게 봤을 때 이게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인가, 반문해보면 결코 아니에요. 지금 당장 지원 사업을 만드는 것보다 언젠가는 전통음악가도 편견 없이 음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게 더 중요하죠. K-팝에 첼로가 세션으로 들어간다고 ‘유럽 전통 악기 짱이네~’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전통 음악을 순전히 음악으로 여겨줬으면 하는 인간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혹시 일할 때 여성으로서의 본인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사실 되게 많죠. 많은 여성 동료분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그렇게 ‘무시’를 해요. 하하. 어디 가서 공연하거나 연출을 할 때면 계속 사람들이 저 말고 연출자를 찾고 작가를 찾아대니까요. 이런 게 누적되어 피해 의식이 생기니까 습관처럼 날을 세우게 되는 때가 있어요. 날을 세우는 게 참 못난 일인데, 이렇게 예민을 떨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으니까 ‘예민한 사람으로 연기를 하자’ 마음먹곤 하는데요.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성격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좋게 좋게 시원시원하게 일하고 싶다’ 생각할 때가 있어요.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정체성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문장으로 적어두고 그랬는데 요즘은 유연해지고 싶어요. 여기에 대해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는지라 질문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답변하는 걸 지양하려고 해요. 지금은 자신을 정체화하는 일이 별로 중요치 않은가 봐요.

왜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지금까지는 조바심을 냈던 것 같아요. 커리어에 있어서 즐거움보다는 잘하는 게 중요했어요. 작업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싶었는데, 지금 와서는 크게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아요. 그냥 사회를 더 잘 관찰하고, 자신을 더 잘 관찰하며 계속 생각하는 힘을 잃지 않고 싶어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그래서 정체성을 규정하는 건 지금의 제겐 별 재미가 없는 일이랍니다.

hyewon minhee ©Lim Hyojin

작가님이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도 될까요?

하고자 하는 게 있을 때는 그걸 설명할 수 있는 해당 씬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를테면 제가 퍼포먼스 작업에 끌렸을 때처럼 말이죠. 사실 퍼포먼스 작업은 어디서든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전통 음악계에서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퍼포먼스를 고민하는 그 작은 씬으로 들어가 정면으로 마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치사하게 굴지 말고. 그러면 해당 씬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제 작업을 적합한 맥락과 의도로 읽는 시선 아래 활동할 수 있게 되죠. 저만 해도 좋은 퍼포먼스 작업을 보면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설령 제가 아무리 멋지게 하더라도 그 맥락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관객 앞에서 계속 활동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바라보는 관점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맥락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존재하는 씬에 가서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은 거죠. 음악 산업에서 꼴찌가 되더라도 그 씬 내부에서 놀고 싶다는 것도 마찬가지의 태도에요. 해파리도 얼트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며 일렉트로닉 장르 안에서 평범하고 당당하게 있고 싶다, 그런 거죠.

자신이 바라보는 그 씬 안으로 들어가는 게 당당함의 기준이 되는 거군요.

만약 제 사유의 출발점이 전통 음악이고, 퍼포먼스 작업에 전통 악기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전통 음악계에서 활동했으면 좀 비겁한 일이라고 느꼈을 거예요. 만약 그렇게 활동했다면 국악계에 전례 없는 유형의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런 행동은 비겁하다 못해 치사해요. 유일무이한 국악인이 되는 것보다 꾸준히 작업하는 평범한 공연예술가인 제가 훨씬 자랑스러워요. 자신이 있을 곳, 원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에 대한 욕망이 좀 강해요.

치사하다는 표현이 혹시 수치스럽다는 걸까요?

맞아요.(웃음) 그게 더 강렬하고 적합한 표현입니다. 하하

한국에서 창작자로 활동할 때 느끼는 행복과 슬픔은 어떤가요?

아… 이건 정말 모르겠네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사실, 거의 슬프고 힘든 것 같아요. 대부분의 시간이 자기 파괴적인 순간의 연속이거든요. 작업을 한다는 건 자신의 내면을 끝까지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니까요. 사유와 성찰을 핑계로 제 자신의 못난 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이 너무 많아서 작업자들이 다들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죠.

근데 파괴해도 너무 파괴해요. 그런데 그런 삶에도 아주 찰나의 행복한 순간이 있어요. 작업을 바라봐주는 사람들과 연관된 거 같은데요. 그들이 제 작업 덕분에 뭔가 다른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게 됐다는 느낌이 들거나, 함께 작업하는 분들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내 안의 세계가 확장할 때는 정말 큰 행복감을 느끼죠. 제 생각이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보다 ‘아…나는 쓰레기야…’라는 생각의 힘이 너무 세요.

혹시 자학이 작가님의 기본값 아닐까요.

맞아요. 하하. 계속 빠져나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그러네요. 그래도 자각을 하게 되는 때가 있어요. 자학하다가도 ‘이건 못난 짓이야!’ 이성적인 생각을 하며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는데, 그냥 그 두 가지 중에 누가 더 힘이 세냐에 달린 것 같아요. 두 마음은 항상 제 안에 존재하고, 작업할 때 이상한 지점을 발생시키기도 하니까, 계속 삶에 안고 가는 거죠, 뭐. 그래도 다행인 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세상에 대한 순수한 의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제가 누군지 잊고 몰두한답니다.

한국에서 창작자로 활동하며 겪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합니다.

소위 기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어려움은 관객의 부재인 것 같아요. 머릿수가 중요하다기보단, 정말로 읽어봐주는 눈이 없다는 거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어떤 이야기일까 살펴보려는 의지도 빈약하고요. 그래서 작품을 읽어내는 눈을 가지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 알고, 작품의 재미가 사회와 어떻게 연관되며 어떤 지점에서 이 아티스트의 존재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는지 말해주는 비평가가 절실해지죠. 사회와 아티스트, 관객이 서로 건강하게 굴러가는 환경은 비평가가 시선을 제안해줄 때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비평은 아티스트에게 도움이 되고 더 좋은 작품, 건강한 작품, 다른 세계로 뻗어 나가는 씨앗이 되는데, 그런 게 많이 부족해서 비평가를 돕거나 키워내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도에 종종 요청하고 있어요. 한국 그리고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점은 속도가 정말 빠르고 너무나 다이내믹해서 질문 거리와 생각거리가 다른 곳에 비해 정말로 많은 것 같아요. 급변하는 상황에서 놓치는 것도 많지만, 변화를 쭉 따라가기만 해도 많은 질문을 계속 생각할 수 있어서 세계 어느 도시보다 예술가가 할 거리가 많은 도시 아닐까 종종 생각한답니다.

박민희라는 아티스트가 사회에 남기고 싶은 잔향이 궁금합니다.

너무 견고하고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이 사회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싶어요. 자본주의 같은 거대한 시스템에 어떤 작은 틈을 내어서 가지고 놀고 싶고요.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상식이나 가치를 전복시키는 것까지는 너무 어려울 것 같고, 그 단서라도 찾아내 정말 바늘 같은 균열이더라도 계속 찌르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요?

그냥 그러고 싶다는 욕망이 저절로 들어요. 자본주의처럼 세상을 일원화하는 엄청난 힘을 보면 못마땅해요. 자본주의만 해도 시작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늙은 이데올로기가 되어 세상의 모든 작은 것까지 개입해 망가뜨리고 있는데, 우리는 자본주의의 관성을 거스를 수 없다고 믿고 있잖아요. 근데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어디선가 굉장히 이상한 혁명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 그 거대한 것에 대항하는 혁명이나 저항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방식이 아닌, 아무도 상상한 적 없던 방식으로 모두의 삶을 전환할 것 같은 느낌. 그런 혁명이 꼭 일어날 것만 같아요. 뭔지 모르는 그런 희망이 눈앞에 선명해질 때까지 이상한 짓을 계속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편하게 부탁드립니다.

저는 모든 작업에서 결과를 떠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라 ‹비애티튜드›라는 이름을 가진 매거진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어떤 관점을 제시해줄 것인지 앞으로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제가 인터뷰를 해본 결과, 굉장히 꼼꼼한 분들이구나 싶어서 앞으로 특정 부분을 치밀하게 파고들어 가는 성향을 지닌 독자분들이 볼만한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같이 해봅니다.

마치 고생 좀 더 해보라는 말씀 같아서 덕담 아닌 덕담 느낌인데요. 혹시 더 하실 말이라도?

어휴. 오늘은 충분히 말한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인터뷰 끝! 만세!

와~~~~~ (일동 환호와 박수, 그리고 눈물…)

Artist

박민희는 공연예술가이자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 멤버다. 가곡·가사·시조를 노래하는 성악가로서 한국의 사회적 지형에서 전통음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의미와 방법론을 찾아가는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음악의 구조 및 사회적 의미 등 실질적이고 미학적인 문제들을 작품의 구성 조건으로 적용해 노래하는 행위와 듣는 행위의 장치적 맥락을 재편성한다. 대표작으로 ‹가곡실격 시리즈와 처사가› ‹춘면곡› ‹마음 닿지 않는 곳에›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등이 있고 KBS 국악대상 가악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체인지업 상을 수상했다. 해파리는 올봄 세계 최대 음악 마켓 SXSW 쇼케이스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했으며 ‘타이니 데스크Tiny Desk’로 유명한 NPR의 프로그램 ‘올 송스 컨시더드All Songs Considered’가 선정한 2021년 SXSW 기대주 11팀에 포함됐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WWD 코리아»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박민희가 말하는 소리와 기억

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첫 번째 주인공은 공연예술가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박민희 작가입니다. 한국 전통 성악을 전공한 그는 〈가곡실격〉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가곡의 핵심인 형식미를 파괴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평단의 중심에 선 지 벌써 10년째랍니다. 최근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음악축제인 SXSW에 초대되는 등 대중음악 신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고 있어요. 박민희 작가와 나눈 다채로운 이야기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1: 박민희

«비애티튜드»는 특정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선보인다.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공연예술가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민희를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 전통 성악인 가곡을 공부해온 박민희는, 자신이 몸담아온 전통 음악계와 가곡에 대한 회의감과 애정을 드러내는 ‹가곡실격›을 시작으로 공연과 퍼포먼스 아트를 전개해왔으며, 현재는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로 대중음악 산업에 진입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중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세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우리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 본다.

Part 2: 박민희가 말하는 소리와 기억

박민희는 자신의 작업을 전개하는 매개로 공연과 음악을 활용해왔다. 두 매체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특성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각별하게 다가가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과 음악에도 물성이 있기에 조형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박민희. 그는 자신이 다루는 재료들의 어떤 점을 신뢰하는 것일까. «비애티튜드» Issue.1의 테마는 ‘소닉 노스탤지어’. 그가 바라보는 소리와 시간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번 ‹비애티튜드› 첫 이슈의 테마는 ‘소닉 노스탤지어Sonic Nostalgia’입니다. 가장 먼저 어떤 게 떠오르나요?

‘소닉 유스Sonic Youth’라는 밴드, 그리고 ‘파나소닉Panasonic’입니다. 하하. 그 ‘소닉’이라는 단어를 먼저 쟁취했던 예들이죠.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내게 소닉 노스탤지어 하면 역시 펑크록이지’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펑크록이 나오니 어안이 벙벙한데요. 왜 펑크록이죠?

제가 청소년기에 가장 좋아했고, 빠져들었던 대상이니까요. 제 치기 어린 시기를 떠올려보면, 10대 말에 음악 들으면서 놀고 공연 가면서 ‘나 꼭 펑크록 밴드를 할 거야!’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인생의 언젠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기로 가서 다시 놀아보고 싶어요. 하하.

그럼 작가님이 애정하는 뮤지션은 누구일까요?

펑크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제게 펑크록 음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더 머프스The Muffs’, ‘비키니킬Bikini Kill’, ‘더 슬리츠The Slits’ 등의 밴드 이야기를 할 건데요. 정말 솔직히, 솔직히, 솔직히 말하자면 어릴 때 진심으로 좋아했던 밴드는 한국의 ‘노브레인’이에요. 차승우가 멤버로 있었던,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1990년대의 노브레인은 정말 제 유년기를 흥분시켰죠. 영국, 미국의 펑크록 같은 경우는 여성 보컬들을 좋아했어요. 남성 목소리로 할 때와 여성 목소리로 펑크록을 할 때 느낌이 다른데 여성 보컬들이 펑크록 장르를 잘 구사할 때 느끼는 쾌감이 있었죠. 나는 못 하겠는데 ‘저 언니, 너무 멋있다.’ 이런 생각 있잖아요. 그리고 보통 여성 보컬리스트가 활동하는 밴드는 저도 공감하는 여성으로서의 저항 코드를 지녀서 마음이 더 가는 것 같아요.

Bikini Kill – Double Dare Ya

Bikini Kill – Double Dare Ya

노브레인 (NoBrain) – 청춘98

펑크록과 노브레인. 허를 찌르는 답변이네요. (웃음). 이젠 소닉이라는 단어에 집중해 볼게요. 작가님의 작업 근저에 자리 잡은 핵심은 청각적인 면일 것 같은데요. 소닉, 즉 음향이나 소리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음향이나 소리는 음악의 중요한 요건이죠. 음악을 감상할 때도 역시나 무척 중요하다고 봐요. 음악을 조형적으로 만들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거든요. 특히 공간에서는 더욱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에도 물론 그 안에서의 공간 배치가 중요하겠지만 이건 음원에서의 음향 이야기이고, 공간에서의 음향을 이야기할 때 음악과 감상자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 즉 가까이서 듣느냐, 멀리서 듣느냐에 따라서도 음악의 내용이 달라지고, 또 다른 서사도 생길 수 있다고 봐요. 원래 아무런 이야기가 없던 음악이라도 그 배치에 따라 다르게 들을 수 있고, 감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거든요.

음악을 조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로운데, 좀 더 부연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저는 시간도 조형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면서 공연을 만들어요. 퍼포먼스 작업의 경우, 시각을 조각하듯 잘 조형할 때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생긴다고 믿거든요. 위치나 거리, 방향을 통해 소리가 물성을 가지고 조형이 되는 순간에 시간의 조형과 딱 맞아떨어지면 흥미로운 순간이 자주 발생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물리적으로 느껴지면 감상자가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터뜨릴 수 있죠. 그래서 더욱더 재미있어요. 사실 많은 사람이 시각에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하잖아요. 청각은 상대적으로 무딘 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음향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퍼포먼스 작업은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지, 멀리서 들리는지 훨씬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작년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했던 퍼포먼스의 경우, 연주자들이 총 3개 층의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진행을 했어요. 그래서 감상자가 한 공간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리가 모든 공간을 스캐닝하는 경험을 줄 수 있었죠. 그 공연이 끝나고 ‘공간이 다 느껴져서 재밌었다’, ‘소리가 퍼레이드처럼 움직이는 게 흥미로웠다’는 피드백이 왔는데, 계획한 걸 어느 정도 구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소리가 실제 공간에서 조형성을 가지고 떠다니는 걸 경험할 때, 각자 느끼는 재미는 다를지언정 일반적인 음악 청취와는 다른 감상과 상상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창작자 입장에선 그런 게 매력이죠.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2020)

많은 사람이 음악을 들으며 성장하고, 그 음악을 다시 들었을 때 과거를 반추하곤 하죠. 이런 소리의 독특한 특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주로 공연을 하잖아요. 전시회를 가면 사진을 찰칵 찍을 수 있는데, 소리를 다루는 공연은 못 찍게 하죠. 그래서 발생한 일은 휘발되고 기억만 남아요. 결국 감상자 본인의 경험이나 생각이 스스로에게 남는 거죠. 그게 소리의 좋은 점 같아요. 모두 사라지고, 그걸 경험한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게… 공연은 이미 끝났으니 제 할 일을 다 한 거고, 기억이 원본과 얼마나 가까운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고 봐요. 사람들이 가지고 가는 게 중요하죠. 저 또한 제가 가진 질문을 관객과 공유한다고 생각하며 공연을 해요. ‘이 작가는 이걸 왜 하는 거지?’라고 궁금해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만큼이나 관객이 저마다의 질문을 떠올리는 것도 무척 중요하죠. 제가 심어둔 질문을 파악하지 못하고 각자 생각하는 대로 보더라도 괜찮은 이유예요.

그래도 관객들에게 감상할 포인트를 제공하기 위해 창작자로서 정교하게 계획하는 게 있을 텐데요.

작품에 대한 설명글을 쓸 때 저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적기보다는 큰 주제 의식을 밝히는 편이에요. 세부적인 질문이나 구체적인 주제를 직접 제시하는 걸 지양합니다. 그래야 감상자가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공연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비록 이런 태도 때문에 공연이 난해하게 다가간다고 하더라도, 이런 난해함은 제가 해결해야 하는 범주가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난해하게 느끼는 관객들에게 재미라도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면서 공연을 꾸린답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작업을 대할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주는 건 현대 예술이 갖는 보편적인 태도일 수도 있겠네요.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2020) 사진: 박해욱 제공: 아트선재센터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2020) 사진: 박해욱 제공: 아트선재센터

12 LAND 중 ‹길군악› (2016) 사진: Jaebum Kim

그럼 소리의 힘을 강하게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정말 직관적이라고 느낄 경우죠. 해석도 불가능하고, 맥락도 없고, 정보가 존재하지 않아도 소리 그 자체가 사람을 건드릴 때요. 그래서인지 관객에게 굉장히 밀착해 노래할 때 간혹 눈물을 흘리는 분이 계세요. 한국은 많이 경직된 사회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교육이 미비하기도 해서 충분히 즐기는 법을 모르는 관객이 많은데, 그들조차 ‘뭔지 모르겠지만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았고 흥미로웠다’는 반응이 오면 소리를 통해 한국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최대치까지 가본 게 아닌가 생각을 해요. 예술 교육이 체계적으로 되어 있는 서유럽 같은 경우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예술을 감상하고 즐기는 사람이 확실히 많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은 곳에 가면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공연에 굉장히 쉽게 빠져들고, 우는 분들이 꼭 보입니다. 왜 울었는지 물어보면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좋았다’라고 답변하기도 하고요. 사실 현대 예술에서 그 내용을 면밀히 읽어내는 건 무척 어렵잖아요, 그래서 콘셉트를 이해하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감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리의 경우 그 직관성이 커다란 힘 같아요. 시각 예술보다 공연 예술을 접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쉬운 이유도 파고드는 힘의 차이라고 봐요. 어떤 음악을 들을 때 그런 힘을 느낄 때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조월의 ‘평서문’을 좋아하는데 그 곡을 들을 때면 타인의 그리움까지 어느새 제 것이 되는 걸 느끼곤 해요.

이전 질문에서 소리는 기억으로 남는다는 답변을 하셨는데요. 그럼 그렇게 기억이 돼버린 소리가 무의식에 깔리고, 이와 비슷한 소리를 들었을 때 과거의 기억과 정서가 소환되는 원리일까요?

언젠가 노래 연습을 할 때 ‘이 노래가 뭘까? 대체 이 노래가 뭘까…’ 고민을 하다가 ‘이 노래는 남에게 들려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결국 내게 돌아오는 거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내 안으로 쑥 들어오기도 하다가, 내 안에서 존재하며 나를 흔들고 나를 만들어주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종류의 음악이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그럼 이 음악은 오늘날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거지?’ 질문이 생겼죠. 이 음악을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은 감상자가 직접 수행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수동적이더라도 최대한 수행할 수 있게끔 도와줄 수 있을까, 하며 만든 결과물이 바로 〈가곡실격 : 방 5〉였죠. 그런 감상 조건에서라면 노래가 감상자의 몸에 쑥 들어가서 그 사람을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진행한 기억이 나네요.

이번엔노스탤지어라는 단어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공연을 했는데, 그중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리운 순간이 없어요. (웃음)

이런 예상치 못한 답변, 너무 좋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성격이라 그런 것 같아요. 과거를 곱씹기도 하지만 그리움 때문은 아니고, 아 그때 재미있었지, 같은 회상에 가깝거든요. 앞으로 그런 순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더 고민하죠.

왜 그렇게 미래지향적일까요?

저는 궁금한 것만 계속 궁금해하는데, 과거는 결론이 다 나버렸고 더 궁금해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요. 그래서 살았던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궁금한, 과거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증이 남지 않는 게 원래 저라는 사람의 특성이라고 봐요. 오히려 노스탤지어를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있는데요. 제가 실제로 살지 못했던 삶, 예를 들어 펑크록 같은 걸 제가 해봤다면 어땠을까, 같은 건 생각해봐요. 얼마 전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더 린다린다스The Linda Lindas’라는 10대 여성 펑크록 밴드를 알게 됐어요. 더 머프스의 곡들을 커버했던데, 제가 무척이나 살고 싶었던 이상향을 그들이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추억이 조작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그 기분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 게 아닐까…사실 이제 어른이 돼버려서 즐기지 못하는 것들도 많거든요. 어릴 때는 상대적으로 도덕적인 가치관이 자유로워서 마음 놓고 즐겼던 게 있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죠. 암튼 펑크록 같은 경우도 어릴 적 실현하지 못한 꿈이라 이상한 노스탤지어로 남아버린 것 같아요.

The Linda Lindas Perform REBEL GIRL (2021)

박민희라는 사람에게소닉 노스탤지어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아무래도 전통 음악이겠죠. 20년 넘는 세월 동안 함께 했으니까요. 근데잊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처럼 우리 사회는 전통음악을 그리움의 대상, 보존의 대상으로 다루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통 음악으로 무언가 새롭게 만드는 건 마치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요. 더는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적어 내린 시요. 지금은 소수만이 사용하는 제주도 방언을 가지고 시를 써서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는 기분이랄까요. 독자들은 ‘저 단어 왠지 귀여워, 발음이 특이하네, 되게 좋다’라고 말하면서 그 뜻과 내용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고, 그런데도 시인은 그 안에 절절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출판사도 그 가치를 정확히 모르지만 가치가 있다는 건 알기에 출판은 또 하게 되는…가치를 아는 사람 따로, 그 표피를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사람 따로, 그러나 그 시인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그런 구조와 비슷해 보여요. 한국에서 전통 음악을 한다는 건…

아티스트 프로젝트 01: 박민희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가곡의 박민희, 박민희의 가곡›↗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박민희가 말하는 소리와 기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박민희라는 창작자의 애티튜드›↗

Artist

박민희는 공연예술가이자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 멤버다. 가곡·가사·시조를 노래하는 성악가로서 한국의 사회적 지형에서 전통음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의미와 방법론을 찾아가는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음악의 구조 및 사회적 의미 등 실질적이고 미학적인 문제들을 작품의 구성 조건으로 적용해 노래하는 행위와 듣는 행위의 장치적 맥락을 재편성한다. 대표작으로 ‹가곡실격› 시리즈와 ‹처사가› ‹춘면곡› ‹마음 닿지 않는 곳에›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등이 있고 KBS 국악대상 가악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체인지업 상을 수상했다. 해파리는 올봄 세계 최대 음악 마켓 SXSW 쇼케이스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했으며 ‘타이니 데스크Tiny Desk’로 유명한 NPR의 프로그램 ‘올 송스 컨시더드All Songs Considered’가 선정한 2021년 SXSW 기대주 11팀에 포함됐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WWD 코리아»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