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첫 번째 주인공은 공연예술가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박민희 작가입니다. 한국 전통 성악을 전공한 그는 〈가곡실격〉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가곡의 핵심인 형식미를 파괴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평단의 중심에 선 지 벌써 10년째랍니다. 최근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음악축제인 SXSW에 초대되는 등 대중음악 신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고 있어요. 박민희 작가와 나눈 다채로운 이야기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1: 박민희
«비애티튜드»는 특정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선보인다.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공연예술가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민희를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 전통 성악인 가곡을 공부해온 박민희는, 자신이 몸담아온 전통 음악계와 가곡에 대한 회의감과 애정을 드러내는 ‹가곡실격›을 시작으로 공연과 퍼포먼스 아트를 전개해왔으며, 현재는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로 대중음악 산업에 진입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중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세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우리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 본다.
Part 3: 박민희라는 창작자의 애티튜드
공연연출과 현대미술 그리고 대중음악까지 박민희는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렇게까지 작업을 계속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창작을 지속시킬 근원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던져봤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 명의 창작자로서, 박민희가 살아남기 위해 길러야만 했던 능력과 애티튜드는 무엇일지 귀 기울여보자.
“사는 동안 항상 바랐던 건 여자 아닌 사람으로 사는 것, 국악인 아닌 음악인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죠. 무척 기억에 남았는데, 어떤 의미인지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문장 그대로, 기본값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회에서는 아직도 여자가 무언가 할 때 대상화되는 경우가 잦아요. 공연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때로 어떤 분들은 그걸 여성의 코드로 읽곤 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하죠. 국악도 마찬가지로, ‘왜 다 같은 음악인데 음악이 아니라 국악이라는 카테고리로 엮는 걸까?’ 의문이 들죠. 결국 약자성, 소수성과 관련이 있는데요. 물론 그렇게 하다 보면 다른 분야보다 일이 많아져서 전통음악 성악가의 삶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해요. 대중이 원하지 않아도 세금으로 국악 관련 사업을 계속 만드니까요. 하지만 길게 봤을 때 이게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인가, 반문해보면 결코 아니에요. 지금 당장 지원 사업을 만드는 것보다 언젠가는 전통음악가도 편견 없이 음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게 더 중요하죠. K-팝에 첼로가 세션으로 들어간다고 ‘유럽 전통 악기 짱이네~’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전통 음악을 순전히 음악으로 여겨줬으면 하는 인간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혹시 일할 때 여성으로서의 본인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사실 되게 많죠. 많은 여성 동료분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그렇게 ‘무시’를 해요. 하하. 어디 가서 공연하거나 연출을 할 때면 계속 사람들이 저 말고 연출자를 찾고 작가를 찾아대니까요. 이런 게 누적되어 피해 의식이 생기니까 습관처럼 날을 세우게 되는 때가 있어요. 날을 세우는 게 참 못난 일인데, 이렇게 예민을 떨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으니까 ‘예민한 사람으로 연기를 하자’ 마음먹곤 하는데요.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성격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좋게 좋게 시원시원하게 일하고 싶다’ 생각할 때가 있어요.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정체성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 문장으로 적어두고 그랬는데 요즘은 유연해지고 싶어요. 여기에 대해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는지라 질문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답변하는 걸 지양하려고 해요. 지금은 자신을 정체화하는 일이 별로 중요치 않은가 봐요.
왜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지금까지는 조바심을 냈던 것 같아요. 커리어에 있어서 즐거움보다는 잘하는 게 중요했어요. 작업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싶었는데, 지금 와서는 크게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아요. 그냥 사회를 더 잘 관찰하고, 자신을 더 잘 관찰하며 계속 생각하는 힘을 잃지 않고 싶어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그래서 정체성을 규정하는 건 지금의 제겐 별 재미가 없는 일이랍니다.
hyewon minhee ©Lim Hyojin
작가님이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도 될까요?
하고자 하는 게 있을 때는 그걸 설명할 수 있는 해당 씬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를테면 제가 퍼포먼스 작업에 끌렸을 때처럼 말이죠. 사실 퍼포먼스 작업은 어디서든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전통 음악계에서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퍼포먼스를 고민하는 그 작은 씬으로 들어가 정면으로 마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치사하게 굴지 말고. 그러면 해당 씬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제 작업을 적합한 맥락과 의도로 읽는 시선 아래 활동할 수 있게 되죠. 저만 해도 좋은 퍼포먼스 작업을 보면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설령 제가 아무리 멋지게 하더라도 그 맥락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관객 앞에서 계속 활동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바라보는 관점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맥락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존재하는 씬에 가서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은 거죠. 음악 산업에서 꼴찌가 되더라도 그 씬 내부에서 놀고 싶다는 것도 마찬가지의 태도에요. 해파리도 얼트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며 일렉트로닉 장르 안에서 평범하고 당당하게 있고 싶다, 그런 거죠.
자신이 바라보는 그 씬 안으로 들어가는 게 당당함의 기준이 되는 거군요.
만약 제 사유의 출발점이 전통 음악이고, 퍼포먼스 작업에 전통 악기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전통 음악계에서 활동했으면 좀 비겁한 일이라고 느꼈을 거예요. 만약 그렇게 활동했다면 국악계에 전례 없는 유형의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런 행동은 비겁하다 못해 치사해요. 유일무이한 국악인이 되는 것보다 꾸준히 작업하는 평범한 공연예술가인 제가 훨씬 자랑스러워요. 자신이 있을 곳, 원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에 대한 욕망이 좀 강해요.
치사하다는 표현이 혹시 수치스럽다는 걸까요?
맞아요.(웃음) 그게 더 강렬하고 적합한 표현입니다. 하하
한국에서 창작자로 활동할 때 느끼는 행복과 슬픔은 어떤가요?
아… 이건 정말 모르겠네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사실, 거의 슬프고 힘든 것 같아요. 대부분의 시간이 자기 파괴적인 순간의 연속이거든요. 작업을 한다는 건 자신의 내면을 끝까지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니까요. 사유와 성찰을 핑계로 제 자신의 못난 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이 너무 많아서 작업자들이 다들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죠.
근데 파괴해도 너무 파괴해요. 그런데 그런 삶에도 아주 찰나의 행복한 순간이 있어요. 작업을 바라봐주는 사람들과 연관된 거 같은데요. 그들이 제 작업 덕분에 뭔가 다른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게 됐다는 느낌이 들거나, 함께 작업하는 분들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내 안의 세계가 확장할 때는 정말 큰 행복감을 느끼죠. 제 생각이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보다 ‘아…나는 쓰레기야…’라는 생각의 힘이 너무 세요.
혹시 자학이 작가님의 기본값 아닐까요.
맞아요. 하하. 계속 빠져나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그러네요. 그래도 자각을 하게 되는 때가 있어요. 자학하다가도 ‘이건 못난 짓이야!’ 이성적인 생각을 하며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는데, 그냥 그 두 가지 중에 누가 더 힘이 세냐에 달린 것 같아요. 두 마음은 항상 제 안에 존재하고, 작업할 때 이상한 지점을 발생시키기도 하니까, 계속 삶에 안고 가는 거죠, 뭐. 그래도 다행인 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세상에 대한 순수한 의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제가 누군지 잊고 몰두한답니다.
한국에서 창작자로 활동하며 겪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합니다.
소위 기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어려움은 관객의 부재인 것 같아요. 머릿수가 중요하다기보단, 정말로 읽어봐주는 눈이 없다는 거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어떤 이야기일까 살펴보려는 의지도 빈약하고요. 그래서 작품을 읽어내는 눈을 가지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 알고, 작품의 재미가 사회와 어떻게 연관되며 어떤 지점에서 이 아티스트의 존재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는지 말해주는 비평가가 절실해지죠. 사회와 아티스트, 관객이 서로 건강하게 굴러가는 환경은 비평가가 시선을 제안해줄 때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비평은 아티스트에게 도움이 되고 더 좋은 작품, 건강한 작품, 다른 세계로 뻗어 나가는 씨앗이 되는데, 그런 게 많이 부족해서 비평가를 돕거나 키워내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도에 종종 요청하고 있어요. 한국 그리고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점은 속도가 정말 빠르고 너무나 다이내믹해서 질문 거리와 생각거리가 다른 곳에 비해 정말로 많은 것 같아요. 급변하는 상황에서 놓치는 것도 많지만, 변화를 쭉 따라가기만 해도 많은 질문을 계속 생각할 수 있어서 세계 어느 도시보다 예술가가 할 거리가 많은 도시 아닐까 종종 생각한답니다.
박민희라는 아티스트가 사회에 남기고 싶은 잔향이 궁금합니다.
너무 견고하고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이 사회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싶어요. 자본주의 같은 거대한 시스템에 어떤 작은 틈을 내어서 가지고 놀고 싶고요.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상식이나 가치를 전복시키는 것까지는 너무 어려울 것 같고, 그 단서라도 찾아내 정말 바늘 같은 균열이더라도 계속 찌르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요?
그냥 그러고 싶다는 욕망이 저절로 들어요. 자본주의처럼 세상을 일원화하는 엄청난 힘을 보면 못마땅해요. 자본주의만 해도 시작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늙은 이데올로기가 되어 세상의 모든 작은 것까지 개입해 망가뜨리고 있는데, 우리는 자본주의의 관성을 거스를 수 없다고 믿고 있잖아요. 근데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어디선가 굉장히 이상한 혁명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 그 거대한 것에 대항하는 혁명이나 저항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방식이 아닌, 아무도 상상한 적 없던 방식으로 모두의 삶을 전환할 것 같은 느낌. 그런 혁명이 꼭 일어날 것만 같아요. 뭔지 모르는 그런 희망이 눈앞에 선명해질 때까지 이상한 짓을 계속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편하게 부탁드립니다.
저는 모든 작업에서 결과를 떠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라 <비애티튜드>라는 이름을 가진 매거진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어떤 관점을 제시해줄 것인지 앞으로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제가 인터뷰를 해본 결과, 굉장히 꼼꼼한 분들이구나 싶어서 앞으로 특정 부분을 치밀하게 파고들어 가는 성향을 지닌 독자분들이 볼만한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같이 해봅니다.
마치 고생 좀 더 해보라는 말씀 같아서 덕담 아닌 덕담 느낌인데요. 혹시 더 하실 말이라도?
어휴. 오늘은 충분히 말한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인터뷰 끝! 만세!
와~~~~~ (일동 환호와 박수, 그리고 눈물…)
아티스트 프로젝트 01: 박민희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가곡의 박민희, 박민희의 가곡›↗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박민희가 말하는 소리와 기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박민희라는 창작자의 애티튜드›
Artist
박민희는 공연예술가이자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 멤버다. 가곡·가사·시조를 노래하는 성악가로서 한국의 사회적 지형에서 전통음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의미와 방법론을 찾아가는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음악의 구조 및 사회적 의미 등 실질적이고 미학적인 문제들을 작품의 구성 조건으로 적용해 노래하는 행위와 듣는 행위의 장치적 맥락을 재편성한다. 대표작으로 ‹가곡실격› 시리즈와 ‹처사가› ‹춘면곡› ‹마음 닿지 않는 곳에› ‹패스, 퍼레이드, 대취타› 등이 있고 KBS 국악대상 가악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체인지업 상을 수상했다. 해파리는 올봄 세계 최대 음악 마켓 SXSW 쇼케이스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했으며 ‘타이니 데스크Tiny Desk’로 유명한 NPR의 프로그램 ‘올 송스 컨시더드All Songs Considered’가 선정한 2021년 SXSW 기대주 11팀에 포함됐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WWD 코리아»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