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 2025, 스테인레스 스틸, 폐집어등, 가변 설치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전시전경)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거울, 빛, 물처럼 익숙한 사물이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놓이는 순간, 눈앞의 풍경은 급격히 낯설어집니다. 부지현은 바로 그 낯섦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데요, 거울로 둘러싸인 방 가운데 빛나는 샹들리에와 끝없이 이어지는 빛에 시선을 던지다 보면 빛의 근원이 오징어잡이 배에서 사용하던 폐집어등임을 알 수 있죠. 그 안에 선 관람자는 끊임없이 반사되고 확장되는 빛의 장면을 저마다의 시각과 감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부지현의 작품 앞에 서면 관찰자이자 공동의 창조자로 순간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여백을 안고 갈 수 있죠. 고정된 형태에 머물지 않고 숨 쉬듯 유동하는 부지현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공간과 감각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 부지현입니다. 빛, 물, 거울 등의 재료를 활용해 관람자가 직접 체험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일상의 공간을 낯설고 새로운 감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정 장소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다가 이를 직접 구현해 보고 싶어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재료와 구조를 실험하며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설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빛과 재료의 변화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사 물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활용하기 때문에 실제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테스트를 반복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공간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감각적 경험을 미리 구성해 보는 실험 장소입니다.
자연환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바다, 빛의 변화, 물의 움직임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요소를 관찰하며 작업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반사, 그림자, 공간의 틈 같은 장면도 제게는 중요한 출발점이에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아이디어 스케치 후, 모델링을 한 다음 테스트를 거쳐 작품을 완성합니다.
‹Where is it Going›, 2022, 모터, 소금, 폐집어등, LED, 가변 설치 ⓒ GS칼텍스 예울마루
‹Where is it Going›, 2022, 모터, 소금, 폐집어등, LED, 가변 설치 ⓒ GS칼텍스 예울마루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세화미술관에서 6월 28일(일)까지 이루어지는 전시 «투명한 손, 움직이는 색»에서 선보인 작품 ‹빛의 축(Axis of Light)›을 소개하고 싶어요.
거울로 이루어진 공간 속에 매달린 샹들리에 구조는 상하와 좌우로 대칭축을 형성하며, 중심에 배치된 양면 미러는 빛과 형태를 무한히 반사해요. 이 과정에서 관람객은 고정된 조각적 오브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포함된 연속된 공간의 생성 과정을 경험하죠.
이곳에서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숨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이어지는 흐름이 됩니다. 반사되는 표면 속에서 시간은 고요히 겹쳐지고, 공간은 투명하게 길을 만들어내며, 한 점의 빛이 수많은 세계를 낳고요. 빛은 실체와 반영, 존재와 부재 사이를 왕복하며, 찰나와 영원의 간극을 은밀히 가로지릅니다.
이렇게 관람자의 몸과 시선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반복 속에서, 공간은 스스로 호흡하고 기억하며 빛은 경계 없는 축이 되어 깊이를 끝없이 펼쳐내기를 바랐습니다.
‹Axis of Light›, 2025, 스테인레스 스틸, 폐집어등, LED, 가변 설치 ⓒ 세화미술관
‹Axis of Light›, 2025, 스테인레스 스틸, 폐집어등, LED, 가변 설치 ⓒ 세화미술관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빛과 재료가 만들어 내는 ‘상태의 변화’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켜짐과 꺼짐, 흐름과 정지, 반사와 흡수처럼 서로 대비되는 두 요소가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도록 구성하고, 관람자가 그 사이에서 감각적으로 경험하도록 만드는 데 집중하는 중이에요. 이를 통해, 단순히 보는 작업이 아니라 시간과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상태를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관객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은 ‘빛과 재료의 관계가 의도한 방식으로 구현되며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이 다르게 인식되는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라는 점입니다. 특히 느리게 변화하는 빛의 흐름과 정적인 재료가 대비되면서 작업의 주제가 비교적 명확하게 전달되어 만족스러워요.
반면 아쉬웠던 점은 공간의 제약과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일부 디테일이나 스케일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앞으로는 구조적 안정성과 빛의 제어 방식을 더 발전시켜, 지금보다 밀도 높은 공간 경험을 만들고자 합니다.
‹The Home›, 2024, 스테인레스 스틸, 폐집어등, LED, 프리즘, 광학 필터, 가변 설치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전경)
‹Net-Being›, 2022, LED, 폐집어등, 미러, 가변 설치 ⓒ GS칼텍스 예울마루
‹Net-Being›, 2022, LED, 폐집어등, 미러, 가변 설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전경)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일상과 작업이 크게 분리되지 않은 시간을 보냅니다. 주변 환경을 관찰하거나 빛과 공간의 변화를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동 중에 마주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작업의 출발점이 되곤 합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빛의 물리적인 성질과 그것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확장되고 변형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반사, 굴절, 확산 같은 현상이 감각적으로 어떻게 경험되는지 실험을 이어가는 중이에요.
‹Ultimate Space›, 2022, LED, 레이저, 포그머신, 폐집어등, 모터, 가변 설치 (아리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전시전경)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일상에서 느끼는 미묘한 변화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작업에도 이어져요.
극적인 장면보다는 조용하지만, 지속적으로 변하는 상태에 주목하며 이를 공간 안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합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억지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작업과 잠시 거리를 두어요. 전시를 보거나 다른 환경에 머물면서 감각을 환기하면서 하고 있던 작업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작은 실험이나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흐름을 다시 만들어 가기도 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1910~1920년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초기 영화 형태인 ‘연쇄극’을 연구하고 있어요. 무대 위 배우의 연기와 스크린 속 영상이 교차하는, 연극과 영화의 하이브리드 양식이죠. 영상 설치를 다루는 제 입장에서 ‘신체의 현존’과 ‘이미지의 가상성’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Where is it Going›, 2022, 모터, 소금, 폐집어등, LED, 가변 설치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작업을 통해 특정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보다 관람자가 스스로 감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빛과 공간, 재료가 만들어 내는 미묘한 변화를 통해 익숙한 환경을 낯설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거든요.
덧붙여, 과정에서의 실험과 반복을 통해 작업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방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업이 잘 풀리지 않는 시기에도 작은 실험이나 시도를 계속 이어가는 일이 결국 다음 작업으로 연결되거든요. 그렇기에 완성도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작업을 멈추지 않고 흐름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olid Sea›, 2025, 폐집어등, 소금, LED ⓒ 포도뮤지엄
‹Solid Sea›, 2025, 폐집어등, 소금, LED ⓒ 포도뮤지엄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특정한 형식이나 이미지로 규정되기보다 ‘공간과 감각에 대한 경험을 꾸준히 만들어 가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작업을 통해 누군가에게 짧지만, 인상적인 감각의 순간을 남길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앞으로도 다양한 공간에서 작업을 확장하며 재료와 빛의 관계를 깊이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특정한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 작업을 계속 변화시키며 더욱 밀도 있는 공간 경험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에요!
‹The Home›, 2024, 스테인레스 스틸, 폐집어등, LED, 프리즘, 광학 필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전경)
Artist
부지현은 바다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공간 설치 작업으로 구현하여 관람자에게 몰입적이고 몽환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명이 다한 폐집어등과 연기, 물, 빛, 거울 등을 재료 삼아 미적인 공간을 창출하는 부지현의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 신비한 공간을 맞닥뜨리게 한다. 2026년 5월 현재 «ВМЕСТЕ»(스콜코보 이노베이션 센터, 모스크바, 러시아, 2026)에 참여하고 있으며, 2022년 조명박물관(양주, 한국), 2021년 연천 아트하우스(연천, 한국), 환기미술관(서울, 한국), 2018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파리, 프랑스), 아리리오뮤지엄(서울, 한국)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광주, 한국, 2022)과 GS칼텍스 예울마루(여수, 한국, 2022)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2025년 일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공식 초청 작가, 2020년 타이베이 당다이에 인스톨레이션즈 섹터(Installations Sector)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