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속도에 밀려 종이 매거진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충무로 인쇄 골목 한편으로 자리를 옮긴 ‘휴간북스’는 조금 다른 속도로 시간을 기록합니다. 많은 매거진이 고유의 영향력을 잃고 사실상 이커머스나 브랜드를 위한 광고 지면으로 전락해 버린 오늘날, 휴간북스는 잡지가 지닌 본연의 가치에 다시금 주목하죠. 그렇지만 휴간북스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진열하는 아카이브에 머물진 않습니다. 치밀한 큐레이션과 진정성 있는 협업으로, 단순한 정보 전달만이 아닌 ‘태도와 취향’을 통해 동시대 문화를 새롭게 엮어냅니다. 수많은 매체가 소리 소문 없이 멸종해 가는 시대, 휴간북스는 여전히 종이 매체의 가치를 긍정하며 ‘잡지적인 것’의 힘을 증언합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잡지의 가치를 책임감 있게 지켜나가는 휴간북스의 풍경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들여다보세요.
빼곡히 들어찬 휴간북스가 취급하는 잡지들
잡지적인 것
휴간북스는 지난 2025년 12월, 매장을 성수동에서 충무로로 옮겼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세운상가 옆, 남으로 충무로, 북으로 을지로 사이의 마른내로, 흔히 ‘을지로 인쇄 골목’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성수동의 휴간북스가 실험적인 팝업에 가까웠다면, 충무로의 휴간북스는 머물 수 있는 공간이죠. 책과 잡지가 인쇄 골목의 역사와 환경에서 다시 읽히면서, 이제는 이 공간 자체가 휴간북스의 메시지라 생각해요.” 사진가이자 휴간북스의 디렉터 심재는 말한다. 휴간북스는 X의 팔로워 숫자처럼, 아직 있고 보이지만 문화적 영향력은 잃은 대상, 잡지를 취급한다.
휴간북스 내부
요즘의 소비자 경향을 일컫는 단어 가운데 ‘필코노미Feelconomy’가 있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위해 지갑을 여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잡지는 필코노미의 관점에서 흥미롭다. 과거의 잡지는 필코노미의 정확한 예였다. 사람들은 『보그Vogue』를 사고 『보그』를 안 읽었다. 『보그』를 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소비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정체성 소비의 대체재가 넘쳐나는 데다, 잡지 스스로 정체성을 버렸다.
휴간북스 내부
휴간북스 내부
콘데 나스트Condé Nast의 이커머스 매출은 최근 4년 사이 5배로 늘었지만*, 2023년 전체 인력의 5퍼센트를 감원하면서 “편집과 크리에이티브 저널리즘 작업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이 계획의 방향”**이라 밝히고, 실상 2024년 4월 기준 『지큐GQ』, 『보그』, 『배니티 페어Vanity Fair』 등의 편집, 영상, 오디언스 개발 부문 직원 94명을 대기발령 상태에 두고 아카이브 작업을 시키며 방치하고 있다.*** 이커머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편집 조직은 오히려 줄인 것이다. 편집력이 아닌 과거의 유산,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이 당장 돈이 되기 때문이다. 잡지가 잡지이기를 포기하며 살아남았다.
*「Condé Nast is defining what commerce success looks like」, 『INMA』
**「Condé Nast Laying Off 5% Of Its Workforce, Citing “Volatile” Nature Of Digital Video Marketplace, 『Deadline』
***「Condé Nast Purgatory: Dozens of Staffers Marked for Layoffs Bide Time at “Central Editorial Group”, 『The Hollywood Reporter』
휴간북스에서 배포 중인 『크랙 매거진Crack Magazine』
하지만 잡지가 기댈 곳도 필코노미다. 작은 규모와 그 편집력을 유지하는 잡지의 경우 여전히 컬트적인 지지를 얻는다. 『셀프 서비스Self Service』나 『판타스틱 맨Fantastic Man』이 대표적이고, 전문지에 가까운 촘촘한 관점으로 만드는 잡지는 여전히 매력적이어서 지금도 수없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파비언 배런Fabien Baron은 『더 토크스The Talks』와 가진 2026년 6월 인터뷰에서 균형 잡힌 관점을 말한다. “지금의 인쇄 매체는 정말 끔찍한 상태예요. 잡지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죠. 하나는 대형 미디어 잡지들로,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길을 잃었어요. 서비스도, 뉴스도 잃었어요. (중략) 다른 한편의 소규모 잡지들, 비주류 잡지들이 있는데 그들은 정반대예요. 놀랍고 예술적인 비주얼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인 패션 관점이 없어요. 흥미로운 기사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다소 난해해요. 한쪽 끝에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것, 다른 쪽 끝에는 난해한 것. 그 중간 어딘가에서, 글로, 이미지로, 개념으로, 디자인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아주 강한 관점을 가진 잡지를 찾기가 어려워요.”
휴간북스의 ‘명예의 전당’처럼 보이는 디스플레이
심재는 지금 잡지가 처한 상황에 던지는 질문 같은 말로 잡지를 설명한다. “디지털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가 같은 속도로 소비돼요. 반면 잡지는 누군가의 시선과 편집, 시대의 공기, 종이의 물성까지 함께 남죠.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태도와 취향의 기록물이라 생각해요.” 기성 잡지에게는 지금 거의 순진하게 들릴, 그러나 그 본령에 해당하는 의견이, 잡지를 겪지 못한 세대, 그럼에도 잡지를 취급하는 세대의 서점 운영자에게서 나왔다.
휴간북스에서 구매한 잡지 『멋진 문방구すごい文房具』
휴간북스는 잡지라는 과거의 유산을 다루지만, 그 방법까지 과거의 것은 아니다. 일종의 ‘매거진 바잉 트립’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데 그 과정까지 세세히 기록하고 공개한다. “어디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와 함께 발견했는지를 책의 일부”로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휴간북스에 있는 잡지는 좋게 말해 다양하고, 나쁘게 말해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기획의 부산물이라 보는 편이 합당하다. 매번 다른 기획으로 잡지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나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를 다룬 잡지를 모은 아카이브성 기획도 있었고, 90년대 『아이-디 재팬i-D Japan』이나 『더 페이스The Face』처럼 잡지를 중심으로 다루기도 했다.
휴간북스가 브랜드 살로몬과 함께 만들고 배포 중인 『살로몬 매거진 – 진도』
『살로몬 매거진 – 진도』와 마주보고 있는 스니커즈와 사진 작품
잡지는 브랜드와 분리될 수 없는 운명을 가졌지만, 휴간북스의 브랜드 협업은 광고 에이전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지금의 잡지와 다른 결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함께한 브랜드 마샬, 반스, 스톤 아일랜드, 나이키, 살로몬의 흔적이 지금도 공간을 구성한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살로몬의 경우, 『살로몬 매거진Salomon Magazine』의 첫 번째 이슈 ‘진도Jindo’를 함께 만들고 배포했다.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를 먼저 봐요. 좋은 협업은 브랜드를 주인공으로 남겨두면서도 문화적인 장면을 남기는 일이라 믿어요.” 그의 말에서, 어쩌면 지금 대부분의 잡지에 유일하게 없는 것은 책임감이 아닐까 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언론에 대한, 나아가 역사에 대한.
물론 휴간북스는 탄생한지 채 3년이 안 된 공간이고, “태도와 취향”은 한번에 쌓는 것이 아닌 오래 쌓는 것이다. 심재는 먼 미래의 계획을 밝혔다. 참으로 잡지적이었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에게 “그 시대의 감각은 휴간북스를 보면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가장 의미 있겠죠.”
휴간북스 내부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 『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