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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有印良品 유인양품-고요의 서비스

Writer: 정우영
[essay]유인양품1_1_오프닝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정우영 에디터가 보낸 한 통의 메일에서 이 시리즈가 시작됐어요. 메일에서 ‘유인양품’을 읽는 순간, 브랜드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필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했죠. 무인양품(無印良品)이 ‘상표 없는 좋은 물건’이라면, 유인양품(有印良品)은 ‘상표가 찍힌 좋은 무언가’를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예요. 여기서 말하는 ‘양품’은 상품으로서 물건에만 한정되지 않아요. 창작자가 만든 음반, 미술관의 굿즈, 한잔의 커피처럼 작은 경험, 어떤 공간이 제공하는 독특한 서비스까지 모두 포함해요. 어떤 날은 리뷰가 되고, 어떤 날은 인터뷰나 기행문이 될 수도 있죠. 핵심은 하나.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창작자·기획자의 고유한 의도와 감각을 읽어내는 것, 그들이 찍어낸 인장[印]을 따라가며 그 너머의 세계관과 태도까지 탐색하는 기획이 바로 <유인양품>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고요’를 하나의 서비스로 제안하는 공간에 관한 기록이에요. 한 사람의 완벽한 순간으로도 충분히 존재하는 그곳을 정우영 에디터가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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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Deck’구역

번역하면 Branded Quality Goods입니다. 노 브랜드가 브랜드가 되는 시대, 이 연재는 브랜드의 어원이자 그 첫 번째 의미, ‘인장’으로 돌아갑니다. 브랜드의 상품성을 두 번째로 둔다는 뜻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것은 팔려야 하는 숙명을 갖지만,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무용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상품성이 첫 번째가 아니므로 예술작품일 수도, 어쩌면 무형의 서비스일 수도 있는, 고유한 ‘양품’을 소개합니다. 

고요의 서비스 

여기에서 당신은 카페의 첫 손님 혹은 바의 마지막 손님이다. 카페의 첫 손님은 버, 그룹헤드, 포터필터를 세척하고 내리는 첫 잔, 아마도 그날 마실 커피 중 가장 깨끗한 한 잔을 마신다. 막 닦은 테이블 위에 남은 레몬 세정제 냄새, 방금 청소를 끝낸 화장실에서 풍기는 락스 냄새도 그리 기분 나쁘지 않다. 다만 당연해서 무심코 지나친다. 당신은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바의 마지막 손님은 벌써 몇 번째 마지막 잔을 시켰는지 모른다. 하지만 밤이 가장 어두운 골짜기에 도달했고, 신호 대 잡음비가 최대치를 찍었다. 음악이 가장 가까운 친구가 술잔을 사이에 두고 꺼내는 고백처럼 들린다. 몸만 잘 가누고 집에 돌아간다면, 오늘의 비밀이 새어나갈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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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디스코 바

물론 소음은 절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 카페에 함께 앉은 직장 동료의 유독 큰 웃음소리는 소음이 아니고, 지하철 옆 사람의 헤드폰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블랙 핑크의 음악은 소음이다. 그래서 주간 집회 소음은 최대 90데시벨, 주간 층간 소음은 5분간의 등가소음 기준 45데시벨 이상처럼 객관적인 지표가 있지만, 소음을 둘러싼 갈등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소음의 절대성과 주관성을 인정하는 서비스를 하는 곳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서비스는 상품 자체를 제외한 모든 유무형의 요소를 가리키는데, 지금까지 미처 그 범주라 상상하지 못한 ‘고요’가 그들의 서비스다.

키에리는 케이크 카페다. 코코넛 에스프레스 치즈케이크, 블루베리 티라미슈, 애플 크럼블 케이크처럼 건강하고 창의적인 메뉴 못지 않게 다른 면의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절대적으로 조용히 해야 한다. 입장부터 절차가 있다. 출입문 밖 벨을 누르고 기다리면 직원이 나온다. “조용히, 소곤소곤 대화 하는 곳입니다” 라는 문장이 가장 큰 글씨로 써진 안내문을 준다.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곳을 이용하는 분들 모두가 공평하게 조용한 카페 공간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라고 부연한다. 자리에 앉으면 작은 안내문이 하나 더 보인다.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화는 작게 나눠주세요.” 도요타는 1994년 부품 추적 시스템으로 개발한 QR 코드가 훗날 모바일 혁명의 한 축을 담당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키에리는 케이크 카페일 뿐만 아니라 ‘조용한 공용 공간’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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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리의 유기농 커피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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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리의 유기농 커피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키에리의 이용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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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리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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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리의 디스플레이 카운터

조용한 상태를 가리키는 미묘하게 다른 다양한 한국어가 있다. 적요, 정적, 적막, 고적, 침묵, 잠잠, 고요 등등. 그중에서도 키에리에 어울리는 단어는 고요다. 고요에는 ‘적막’ 같은 긴장감이 없다. ‘침묵’처럼 말을 안 하는 상태도 아니다. ‘정숙’처럼 규칙이라기보다 제안, 권유처럼 더 부드러운 형식이기도 하다. 고요에는 평화가 있다. 타이거디스코 바 역시 고요를 추구하는 곳이다. 평화를 위해서.

가을이라는 계절감에 맞게 재즈가 많이 나오는 타이거디스코 바의 화요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여행스케치의 동요집은 바이닐로 처음 들었다. (매우 희귀한 음반 중 하나다.)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로 시작하는 그 익숙한 동요가 여행스케치 특유의 하모니와 낭만적인 편곡 속에서 새롭고 아늑했다.

여행스케치 – 가을

타이거디스코 바는 올해 5주년을 맞았다. 타이거디스코 바 역시 입장과 동시에 안내문이 제시된다. “3인 이상은 절대 이용 불가”하고, “반드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눠야 하며, “노트북과 아이패드 같은 전자기기 사용”도 허용하지 않고, “만취 및 음식 냄새와 체취를 동반하는 분들”도 받지 않는다. 복장 규정이 있는 스피크 이지 바나 클럽을 포함해도 높은 문턱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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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디스코 바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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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디스코 바의 기본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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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디스코 바의 기본 안주

타이거디스코 바의 하이볼

개업 초기 한국 대중음악 또 디스코, AOR 분야의 디제잉으로 명성이 있는 타이거디스코는 바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주의 깊은 음악 감상 공간을 만들겠다는 그의 의도는 차츰 부서져간다. 정중하게 제안하는 정도로는 손님들의 소음을 줄일 수 없었다. 하나 하나 안내 사항을 늘려갔다. “안 되는 게 이렇게 많은데, 이게 무슨 술집이고 서비스업이냐”는 식으로 여론도 좋지 않게 흘렀다. 하지만 타이거디스코는 굴하지 않았다. 처음엔 단지 소음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들이었다가 차라리 좀 더 나아갔다. 모든 고객의 평등이었다. 평화와 같은 평평할 평 자를 쓴다. 고르고 조화로운 평화고, 고른 등급의 평등이다. 그는 말한다. “음식 냄새, 체취를 가진 분들까지 제한하는 건 단지 불쾌해서가 아니에요. 타이거디스코 바는 다양한 위스키를 팔죠. 위스키는 향이 중요한 술이고요. 음식과 체취 냄새를 참고 위스키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다른 손님들이 받아 마땅한 서비스를 해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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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디스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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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디스코 바

키에리가 있고 타이거디스코 바가 있었어서, 틸트가 가능했다. 한 사회의 문화적 성숙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고, 타이거디스코는 이제 겨우 손님들이 그 높은 문턱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말한다.

틸트는 음악 감상실이다. 클래식 음악 감상실은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엄숙한 분위기에 저절로 손님이 입 다무는 곳들이다. 하지만 대중 음악을 틀면서 ‘음악 감상실’이라 이름 붙였어도 그랬을까? 틸트는 클래식의 권위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 스스로 탁월해지면서 평등해지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평등은 돌출된 것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만 달성되지는 않는다. 

틸트는 대중음악을 다룬다. 요일 별 프로그램으로, 재즈, 블루스, MPB, 클래식 록, 인디 록, 올디즈, 한국 음악,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등 웬만한 대중음악을 아우른다. 플레이리스트에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3개의 구역으로 나뉜, 3개의 사운드 시스템의 소리는 압도적이다. 

첫 번째 ‘Phonic Deck’ 구역은 고성능 스테레오 사운드 시스템으로 레퍼런스급 음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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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Deck’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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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Hall’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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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입구

두 번째 ‘Phonic Tunnel’은 촉각적인 경험의 영역이다. 바닥으로 전달되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Phonic Hall’은 최상급 음향, 공간 설계의 결정판이다. 7개의 메인 스피커, LFE 서브우퍼, 4개의 천장 스피커로 좌우, 앞뒤, 상하의 입체 음향을 들려준다. 입체 음향의 대명사, 돌비 아트모스까지 적용한 결과다. 독일 브랜드 Geithain과 스페인 브랜드 Triple Onda의 제품을 사용하고, 그들에게 엔지니어링까지 맡겼다. 보통 소리가 잘 조율된 공간은 구석이든 중앙이든 편차가 크지 않게, 평등하게 들린다. ‘Phonic Hall’은 그 최대치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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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Hall’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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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Tunnel’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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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트의 ‘Phonic Tunnel’ 구역

틸트를 방문한 월요일은 클래식/재즈/블루스의 날이었다. 혹시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느냐 물으셔서 스피리추얼 재즈로 어떤 곡이든 좋다 말씀드렸더니 이 곡을 트셨다. 

‘The Creator Has A Master Plan’은 압도적인 힘에서 나오는 각성이 맛이다. 하지만 Phonic Hall에서는 쉐이커, 귀로 같은 작은 손악기 소리들도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이 곡을 더 상상적으로 만들었다. 

Pharoah Sanders – The Creator Has A Master Plan

그들은 ‘착한 커피’가 아니다. 평등을 지상 가치로 내세운 적이 없다. 차라리 일반명사 손님이 아닌 고유명사 손님이다. 한 명의 손님이 참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명의 손님이 카페의 첫 손님, 바의 마지막 손님과 같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운영자가 이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설득하고 싶은 전망이 그 한 명에게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명의 손님이 수많은 손님들 틈에서 혼자 충만해질 때, 문득 고요해진다.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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