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재 작가는 여러 일을 병행합니다. 일단 공간을 운영해요. 크리에이티브 신에서 유명한 신도시와 미도파 커피하우스입니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프로젝트 기획은 물론, 디자인, 인쇄물, 음반물 제작도 겸합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다채로운 홍보물이 모두 그의 손을 거치죠. 더불어 여러 음악가의 공연·앨범 아트워크 작업, 미술가 및 무용가와의 협업을 통한 사운드·음악 작업까지! 아티스트 콜렉티브로 커리어를 시작해 여러 주요 전시 공간에 초대된 점까지 생각해 보면, 그의 다재다능함에 감탄이 나옵니다.
스케치나 리서치 없이 골똘히 몇 일간 생각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이미지가 떠오르면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는 창작법도 독특하지만, 그의 가장 큰 매력은 겸손함입니다. 자신이 다루는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과 이해를 담아 최소한 그들의 음악이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정성을 담는 마음, 능력의 최선치와 최대치까지 다하는 태도는 보는 이에게 뚜렷한 감흥을 남깁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고, 후회 없이 현재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이병재 작가의 이야기를 BE(ATTITUDE)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봉제인간 : 분노의 재봉틀 (Sewing Machine of Wrath)’ 공연 포스터, 2025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이병재입니다. 현재 ‘신도시’와 ‘미도파 커피하우스’를 운영하며 여기에서 열리는 공연 및 이벤트 기획과 디자인 및 출판·음반 제작 등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종종 음악도 만들고 있고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아티스트 콜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Part-time Suite’를 결성해 활동하고, 2010년부터 2013년에는 ‘꽃땅’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공대에 들어가서 공부하다가, 저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 공업 디자인, 조형예술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아티스트 콜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에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좋은 기회에 한시적으로 3년간 꽃땅의 공간 운영을 병행했어요. 그때의 경험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일에는 아티스트로 도전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새로운 재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 콜렉티브 활동과 꽃땅 운영을 정리하고, 신도시를 기획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도시 10주년 파티 포스터, 2025, 신도시
신도시 10주년 파티 포스터, 2025, 신도시
작업 공간을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음악과 디자인 등 개인 작업은 주로 집에서 합니다. 음악은 집에 작업실이 따로 있고, 디자인은 거의 거실에서 해요. ‘신도시’ 이름으로 만드는 전시 작품, 프로젝트 프로덕션, 음반, 책, 진 등을 제작하는 일은 신도시 4층 공연장에서, 공연이 없는 주중에 작업합니다. 신도시 4층에는 다양한 조형 작업이 가능한 공구와 장비가 갖춰져 있고, 리소 프린터와 실크스크린 등 인쇄 및 제본 장비도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책 만들기나 음반 녹음 및 제작 등 필요한 것을 전문적이지는 않더라도 간단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환경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아마도 청소년 시기에서 대학 시절 정도 기간에 듣고, 보고, 경험한 만화, 영화, 음악, 게임 등이 지금까지도 가장 큰 소재의 원천 같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겠네요. 그 시절만큼 흥미로운 것을 닥치는 대로 찾아내고 흡수하던 에너지가 지금은 가질 수 없으니 이제 그것을 소화하고 사유하는 데에 집중합니다. 제가 그리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어서, 현재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쫓아가는 게 벅차기도 합니다.
‘송구영신도시 2023–2024’ 포스터, 2023, 신도시
‘音樂都市’ No.26 – 윈디시티, 2024, 신도시
‘音樂都市’ No.26 – 윈디시티, 2024, 신도시
‘音樂都市’ No.15 – 갤럭시 익스프레스, 2023, 신도시
‘音樂都市’ No.12 – 김도언, 2023, 신도시
‘音樂都市’ No.12 – 김도언, 2023, 신도시
‘音樂都市’ No.7 – Y2K92, 2023, 신도시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앞서 말한 소화와 사유는 아마 제가 경험한 머릿속 아카이브의 정보와 소스가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제시되고 연결되며 심상으로 떠오르는 ‘과정과 결과의 무언가’와 유사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포스터 디자인을 맡는다면, 저는 침대나 소파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거나 반나절 동안 반신욕을 하거나 집에서 사이클을 타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그때 바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일주일 동안 작업을 한다면, 태블릿이나 컴퓨터를 실제로 만지며 디자인하는 기간은 2일 정도 될 것 같고, 5일은 생각만 합니다. 저는 생각하는 시간에는 스케치나 리서치 등 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정말 생각만 해요. 그럴 때 머릿속에 떠오른 최종 이미지가 빠르고 정확하게 실제로 구현되는 것 같습니다.
신도시 9주년 파티 포스터, 2024
신도시 9주년 파티 포스터, 2024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요즘에는 신도시의 공연 프로젝트 ‘음악도시(音樂都市)’ 기획과 포스터 디자인, 다른 아티스트를 위한 포스터 및 앨범 아트워크 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음악도시’의 경우, 매달 5~6회 정도 진행하기 때문에 다른 일에 시간을 쓸 여유가 없는 편입니다.
‘音樂都市’ No.49 – I.M.F/ 쾅프로그램/ THSS, 2025, 신도시
‘音樂都市’ No.49 – I.M.F/ 쾅프로그램/ THSS, 2025, 신도시
‘音樂都市’ No.45 – HWI 황휘, 2024, 신도시
‘音樂都市’ No.18 – 이민휘, 2023, 신도시
‘봉제인간 : 분노의 재봉틀 (Sewing Machine of Wrath)’ 공연 포스터, 2025
신도시와 외부 디자인 일을 합치면 매달 디자인하는 양이 많은 편이라 콘셉트를 일부러 만들지는 않지만, 정해진 시간과 환경 아래 정성을 최대한 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주된 디자인 작업이 아티스트를 빛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 그들에 대한 존경과 이해를 담고 싶어요. 최소한 그들의 음악이나 작업에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툴을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다룰 수 있는 툴을 활용해 최대한 한땀 한땀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태블릿을 이용해 펜으로 그리는 노동집약적 방식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제 능력의 최선치와 최대치까지 다하자는 태도로 임해서인지, 지나간 작업에 대해 불만을 느끼지 않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작업과 이보다 덜한 작업이 존재하겠지만요. 만약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는 제 태도에 맞지 않는 과정을 통해 나온 작업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공간 운영과 공연 기획 일을 디자인 작업과 병행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제가 만든 작업을 스스로 평가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갖기 어렵습니다.
‘音樂都市’ No.38 – Slant/ Chasm/ DJ yesyes, 2024, 신도시
‘音樂都市’ No.23 – 밤섬해적단, 2023, 신도시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주로 두 가지 패턴이 있어요. 해야 할 일이 많으면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는 다른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만들지 않습니다.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집에서 운동하고, 수영장에 가고,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반신욕을 합니다.
아, 제가 식물을 많이 키우는데요. 식물을 가꾸는 시간은 (바쁘거나 덜 바쁘거나) 기본 옵션입니다. 시간이 많다면 새로 심기도 하고 분갈이도 하고 잡초도 뽑아주며 더 관심을 줍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일을 좀 줄이고 제 개인적인 발전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자’입니다. 오는 연말쯤 개인적으로 전시 비슷한 것을 준비 중이라, 그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신도시책(seendosiBOOK)›, 2023, 혼합 재료, 타이포잔치 202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 문화역서울284, 2023
‹신도시책(seendosiBOOK)›, 2023, 혼합 재료, 타이포잔치 202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 문화역서울284, 2023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태도로 임해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반신욕을 길게 하고, 식물과 시간을 보내며 관심과 사랑을 줍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신체의 생물학적 노화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업 태도에서 체력과 에너지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상황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영화 ‹에스퍼의 빛› 공식 포스터, 2024
관악 사운드 팩토리 ‘월간관악’ 포스터, 2024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의 태도와 철학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수준이라, 제가 ‘창작자’라는 불특정 다수의 태도와 철학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각 창작자가 자신에게 어울리고 만족할 만한 방법을 찾고, 이를 체득해 본인만의 언어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휼륭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를 지속하기 위해 창작자는 분명 스스로 방법을 찾을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창작자가 스스로 찾는 그 방법과 과정이 아티스트에게 중요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일이라고 봅니다. 남에게 듣는 노하우나 팁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맨땅의 헤딩’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에서는 무모함이 아니라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시기에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 준비보다 정신적 준비가 되었을 때,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더 나은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핵가족› 포스터, 2022, «100 Films 100 Posters»,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2022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것에 개인적으로 큰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대중적인 기억은 실제와 거리가 멀고, 시대가 원할 때 이에 맞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봐요. 저와 주변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부끄럽지 않고, 후회 없이 현재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삶.
Artist
이병재(@qudwoqudwo)는 공간 운영자이자 미술가·디자이너다. 2009년 아티스트 콜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를 결성해 2013년까지 활동했고, 2010년~2013년 ‘꽃땅’을 운영했다. 2015년부터 신도시(@seendosi)와 미도파 커피하우스(@midopacoffeehouse)에서 디렉션과 프로젝트 기획, 디자인, 인쇄물 및 음반물 제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간 운영 이외에 신도시와 파트타임스위트로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문화역서울284,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샤르자 비엔날레Sharjah Biennial, 피크라 그래픽 디자인 비엔날레Fikra Graphic Design Biennial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외 봉제인간, 세이수미Say Sue Me, 텐거TENGGER, 쾅프로그램Kuang Program 등 음악가의 공연·앨범 아트워크 작업과 홍승혜, 남화연, 박광수, 염지혜, 심래정, 예효승 등 미술가 및 무용가와의 협업을 통한 사운드·음악 작업을 병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