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Visual Portfolio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법

Writer: 박시영
header_박시영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박시영 디자이너는 영화 포스터로 일가견을 이룬 디자인 스튜디오 ‘빛나는’을 이끈 지 19년째 되는 베테랑입니다. 동시에 전라남도 고흥에 집과 스튜디오를 짓고, 배와 바다를 배우고 있는 3년 차 초보 선장이기도 해요. 바로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대표작이 많지만, 올해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작업은 영화 ‹베테랑2› 포스터입니다. 그는 예전에 많은 것을 강조하고 의도했는데요. 지금은 되려 심플해지고 있어요. 포스터의 본질인 눈에 띄기, 곧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거든요. 이미지 과잉 시대에 변별점을 가지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애쓴답니다. 어릴 때는 슬럼프가 극복의 대상처럼 다가왔지만, 지금은 평상시 상태가 슬럼프이고, 그보다 더 나빠지는 건 쉬라는 신호로 여겨요. 마치 컨디션 같은 거죠. 자기 기만, 자기 연민, 자기 변명이 프로젝트에 조금만 끼어들도록 노력하고, 좋아하는 것에 모든 것을 내주지 않을 때 역설적으로 좋아하는 걸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그의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스튜디오 창립 20주년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느라 즐거운 고민에 빠진 박시영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지옥만세

‹지옥만세›, 2023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빛나는’을 운영하는 디자이너 박시영입니다. 현재 전라남도 고흥에서 베테랑 선장이 되기 위해 열심히 배와 바다를 배우고 있는 ‘애기 선장’이기도 합니다. 올해로 마흔일곱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경상북도 구미의 유흥가에서 태어나 그곳을 벗어나려고 어릴 적부터 애쓴 결과, 1994년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째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때 인덕원과 사당동 근처에서 가스 배달을 했는데요. 우연히 ‘문화학교 서울’이라는 시네마테크에 가스 배달을 가게 됐어요. 겁나 개성 있는 형, 누나들이 괴상한 영화를 보는 모습에 마음을 홀랑 빼앗겨 그곳을 자주 드나들면서 저도 저기에 끼고 싶은 마음에 뭔가 할 일을 찾다가 ‘한글97’로 상영회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특이하다고 난생처음으로 ‘칭찬’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칭찬이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 후로 쭉 포스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다호

‹아이다호› 재개봉, 2024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고흥으로 이사 온 지 3년 차가 됐는데요. 지금 집을 짓고 있어요. 완공이 드디어 눈앞이네요. 스튜디오도 함께 지었습니다. 남쪽 가장 끝 연륙교를 설치한 섬의 사람 없는 해변 앞에 자리 잡았어요. 황홀한 풍경과 바람, 파도 소리를 언제나 만끽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번 돈을 다 쏟아부어 만들어서 엄청 좋습니다. 집과 스튜디오가 완공되길 기다리며 지금 당장은 캠핑장에 놓은 탁자와 캠핑 의자에 쭈그려 앉아서 맥과 아이패드로 작업 중이에요. 모기, 고라니와 함께 일하고 있는데, 이런 임시 작업실도 꽤 괜찮습니다.

사랑도통역이되나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재개봉, 2024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외부에서 영감을 얻기보다, 먼저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지지하는 근거 혹은 반박하는 근거를 찾아보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음악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다른 차원의, 보다 감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 줍니다. 다른 사람의 작업을 접할 기회는 이제 너무 흔해져서, 예전만큼 큰 영감을 주지는 않아요. 산책하거나, 흥미로운 시를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영감에 많이 기대는 편은 아닙니다. 제 나름의 질서에 따라 진행하는 리서치를 보다 신뢰합니다.

벌새
우리들

(좌) ‹벌새›, 2019

(우) ‹우리들›, 2016

(상) ‹벌새›, 2019

(하) ‹우리들›, 2016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먼저 50% 정도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파악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해당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 중 체로 거르듯 부가적인 것을 쳐내고 좀 더 핵심적인 키워드를 뽑습니다. 이제 키워드와 다양한 스타일을 매칭하며 10가지 정도의 각각 다른 방향성의 톤을 가진 이미지를 프로젝트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프로젝트의 핵심 가치와 정보를 더 얻기 전에 직관적으로 마련해 놓은 10개의 이미지를 기반 삼아 시각적으로 보다 흥미로운 방향으로 첫 시안을 만듭니다. 그 이후 영화가 가진 여러 가지 특성을 녹이면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첫 시안을 좀 더 보완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합니다. 나머지 50%는 이쪽 일을 오래 하며 습득한 직관에 따라 떠오르는 머릿속 이미지를 포착해 구현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메기

‹메기›, 2019

Shop_horizon_web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장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다양성 영화 ‹희생› 포스터, 상업 영화 ‹베테랑2› 포스터입니다.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양한 분야의 포스터를 동 시기에 진행했습니다.

28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메인포스터
28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24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24

희생

‹희생›, 2024

베테랑2

‹베테랑2›, 2024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예전에는 많은 것을 강조하고 의도했는데, 요즘은 되려 심플해집니다. 포스터 디자인의 본질로 돌아가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싶어요. 요즘처럼 이미지 과잉 시대에 변별점을 가지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애씁니다. 포스터는 일단 눈에 띄어야 하니까요. 제가 만드는 포스터가 대중에게 익숙한 포스터류와 확연하게 구별되는지 여부를 가장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선의삶

‹최선의 삶›, 2021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만족하는 부분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 아쉬운 부분은 식상함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과 마지막 마무리가 완성도를 저해한 것, 보다 기발하게 이미지를 도출하지 못한 것 등이 있습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위로공단

(좌)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2017

(우) ‹위로공단›, 2015

(상)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2017

(하) ‹위로공단›, 2015

Shop_horizon_web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개들과 산책을 하거나 바다에 나가거나 아니면 동네 사람들과 놀거나 합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곧 다가오는 스튜디오 창립 20주년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어떻게 구상하고 진행할까.

문라이트

‹문라이트›, 2017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좋아하는 취향, 그로 인해 형성되는 제 스타일에는 삶에 대한 태도가 묻어날 거예요. 그러나 프로젝트는 각 프로젝트 나름의 법칙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사실 잘 묻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미드90

‹미드 90›, 2019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어릴 때는 슬럼프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는데, 삼십 대 중반을 지나자 ‘슬럼프는 가끔 오는 거 아닌가? 어째 하루하루가 슬럼프 같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그냥 평상시 상태가 슬럼프고, 그보다 더 나빠지는 건 쉬라는 신호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결국 컨디션 정도로 생각합니다. 컨디션이 나쁘면 뭐 잘 먹고 잘 쉬면 좋아지겠지, 합니다.

사냥의시간

‹사냥의 시간›, 2020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집을 지으며 진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하나. 당분간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영화 시장은 더욱더 침체할 것 같은데, 스튜디오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자기 기만, 자기 연민, 자기 변명이 프로젝트에 조금만 끼어들도록 노력하는 것. 내가 들인 노력이나 수고가 아까워서 고집을 피우거나, 좋지 않은 상황에 불만을 가지면, 그 프로젝트는 항상 망하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기보다, 일상을 지속하기.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모든 것을 내주지 않는 게 제 노하우입니다. 말 그대로 좋아하는 게 절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면 지속이 불가능하잖아요. 힘드니까요. 게다가 제가 하고 싶으니까 무리하게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몰아붙여서 금방 지치기도 하고요. 저도 여러 번 때려치울지 고민했는데요. 돌이켜 보면, 좋아하는 것에 너무 목매지 않을 때가 역설적으로 좋아하는 걸 제대로 즐기는 순간이더라고요.

한여름의판타지아

‹한여름의 판타지아›, 2015

윤희에게

‹윤희에게›, 2019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솔직히 기억되고 싶은 생각이 그리 크게 들지 않아요.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냥 제 나름의 비전을 실현하려고 애쓴 사람 중 한 명 정도?

동경의황혼_재개봉_2024

‹동경의 황혼› 재개봉, 2024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거짓말하지 않고, 변명도 좀 덜 하고,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사람들을 포용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저의 이상적인 미래입니다.

재팬무비페스티벌_2024

‘재팬무비페스티벌’ , 2024

Artist

박시영(@parksiiyoung)은 영화 포스터를 주로 작업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빛나는’을 19년째 운영 중이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전라남도 고흥에서 바닷일을 보는 어부이기도 하다.

Shop_web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