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원 작가는 영상과 사진 작업을 합니다. 그는 ‘당연한 게 과연 당연할까?’ 의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익숙한 동시대 시각 관성을 뒤집고, 해체하려고 노력해요. 이때 자주 사용하는 요소가 신체입니다. 신체를 지우거나 드러내는 방식으로 관성에 질문을 던지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달까요. 그에게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중요합니다. 실험과 실습, 논리와 지식의 균형,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 편향성 사이에서의 균형 말이죠. 거리두기를 통해 시야의 균형감을 잡기도 하고요. 핸드폰 케이스에 껴놓은 ‘If you’re happy, you’re successful’이라는 문구를 주문 삼아 정신이 산만해질 때마다 본질로 회귀하는 유도원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만나 보세요.
‹다중 인조 꽃›, 2024, «flat flat flat; 납작들», OCI미술관, 2024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는 유도원입니다. 이미지, 디지털 공간이 지닌 편향성과 매체 기반 접근을 바탕 삼아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재밌어 보이던 것을 어느 정도 치밀하게 쫓다 보니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원래는 광고를 하고 싶어서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기획이 아닌 제작에 끌려서 영상 디자인으로 과를 옮겼어요. 이후 스크린의 평평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미디어 파사드에 관심 두게 되었죠. 근데 이 분야로도 평평함을 극복하기 힘들어서 개념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체 중심으로 작업하게 되었네요.
‹PIM MAP›, 2024, «쌓아 보기», 소원, 2024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아버지가 오랜 세월 쓰시던 제기동 사무실을 작업실로 빌리고 있습니다. 이미지를 주로 다루다 보니 촬영과 샘플 출력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에 맞춰 실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장비들을 하나씩 갖춰보려고 합니다. 공간을 같이 사용할 분이 생겨서 조만간 구조를 손보려 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당연한 게 정말 당연한지 질문하는 행위에서 모든 게 시작돼요. 당연했던 것 중 대부분은 구조화된 것이었고, 이런 구조는 역사, 문화, 지리적 요소에서 비롯되더라고요. 제가 쓰는 도구, 뉴스에서 접하는 사건, 전문 지식까지 일상적이거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서 지시성(指示性)을 발견하는 순간이 작업의 주된 시작점으로 기능합니다. 더불어 글에서 단서들을 발견하거나, 글을 읽으며 시각 작업과 멀어지는 순간이 좋은 자극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다만, 글 읽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요. (웃음)
‹네개의 면을 가진 PIR MAP #2›, 2024, «flat flat flat; 납작들», OCI미술관, 2024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머리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최대한 이런 걸 줄이려고 노력해요. 개인적으로 실험과 실습으로 발견하는 표현 방법과 물질성을 여러 측면에서 보는 계기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윤곽이 잡히면 최대한 실행하려고 해요, 즉, 직관과 실습, 논리와 지식을 쌓고, 이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러 거리에서 마주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덜어냅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디지털과 물리적 공간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탐구를 계속해 오던 중, 역설적이게도 둘 사이의 강한 결속을 발견했어요. 본래 디지털이 비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문화, 사회, 역사에서 비롯한 요소들이 디지털 공간과 도구의 기저에 깔려 있더군요, 이런 지리적 편향을 발견하게 되면서 해당 결속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PIR MAP›(2023-4)은 3D 소프트웨어에서 사용하는 텍스처 맵 중 하나인 ‘RIP MAP’에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가까이 있는 대상을 더 크고 선명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고안된 텍스처 맵인데요. 주체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전통 동양화에서 주로 쓰이는 객체 중심적 사고를 이에 적용해 정반대로 뒤집었습니다. 즉, 신체에서 가까울수록 작은 이미지를, 멀어질수록 큰 이미지를 위치시켰어요.
‹몸짓들›(2024)과 ‹몸짓 지도›(2024)는 영상을 찍고 있는 신체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작업이에요. ‘영상에도 아우라와 물성이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고, 핸드헬드hand-held 기법으로 찍은 영상에서 몸짓을 발견합니다. 두 작업에서 제가 사용한 푸티지footage는 SpaceX에 대한 기록인데요, Space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Starlink가 디지털 환경과 경험의 일률화를 좇으며, 우리를 새로운 보편성 아래에 가두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에 대한 각종 기록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되며 실제 일어난 일보다 더욱더 큰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런 기록에서 사건을 고정하고 몸짓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건을 고요하게 만들고, 왜곡을 최대한 줄였는데요. 직사각형 프레임에서 벗어난 대안적 재현 방식에 대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몸짓들›, 2024, «flat flat flat; 납작들», OCI미술관, 2024
‹다중-사물› 연작(2024), ‹격자 맞추기›(2022)는 동시대 시각 관성을 만드는 사물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신체를 드러내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찍고, 밑에 깔린 그리드에 맞춰 이미지를 펼치는데요, 이를 통해 탄생하는 비정형 사각형은 사진을 찍은 신체의 위치를 담아냅니다. 특히 그리드의 기준을 서양의 ‘cm’가 아니라, 동양의 ‘치’(약 3.03cm)에 두어서 동아시아의 규격감을 적용했어요.
시각 관성과 신체, 장소 특수성이랄까요. 앞서 말한 대로 저는 동시대 시각 관성을 발견하고 뒤집어요. 신체는 이런 관성에서 벗어날 때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죠. 예컨대, 신체는 이런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례로 일점투시(一點透視) 원근법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을 꽤 잘 묘사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요. ‹Fair Play›(2021), ‹FlatLand I›(2021), ‹FlatLand II›(2023)에서 눈을 지워냄으로써 역(逆)원근, 비(非)원근으로 대상을 표현하며 렌즈에 기반을 둔 재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반대로 ‹김동원의 몸짓›(2020)에서는 몸짓을 드러내어 직사각형 프레임이 만드는 폐쇄성을 해체하려 했고요. 이렇게 신체를 지우거나 드러내는 방식이 현재까지 이어져 여러 갈래의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FairPlay›, 2021, ‘New Space(s)’, CIT, 2022
‹FairPlay›, 2021
지난 8월 서울 망원동의 전시 공간 ‘소원so,one’에서 개인전을 열었어요. 동교초등학교 정문 앞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은 마치 공공 미술처럼 보였습니다. 설치하는 와중에 아이들이 들어와 보기도 하고, 다음 전시를 기대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화이트큐브 공간에서 선보였던 영상 작업 ‹몸짓들›(2024)을 재해석한 ‹몸짓 지도›(2024)라는 사진 작업을 전시했어요. 스치듯 지나가며 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의 특징이 영상을 사진으로 치환하는 계기가 됐어요. 움직이는 이미지와 멈춘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각 프레임을 일일이 손으로 붙이다 보니 영상 작업과 비교해 위치와 형태가 달라졌는데요, 이런 차이가 도구-신체-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세밀히 들여다보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쌓아 보기», 소원, 2024
‹몸짓 지도 #1›, 2024, «쌓아 보기», 소원, 2024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영상을 주로 다루지만, 시간 내러티브를 사용하지 않아요. 지난여름 OCI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도 시간 대신 공간 내러티브를 사용하려고 했죠. 이를 위해 공간을 세 가지로 분리하고 순서를 부여했습니다. 동선상으로는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공간 내러티브를 온전히 경험한 관객들의 반응이 제 예상과 어느 정도 일치했답니다. 제 작업에서 공간 내러티브가 유의미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앞으로도 계속 실험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다만, 작업과 구성이 관람객에게 어느 정도로 친절해야 하는지 확인하려면 시행착오와 실험이 필요하다는 점은 앞으로의 숙제입니다.
‹몸짓들›, 2024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요즘 작업 외의 일들이 조금 밀려서 눈앞의 것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때엔 샤잠Shazam 앱으로 음악을 훔치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쌓아둔 채 전시 보러 돌아 다닙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지속가능성.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이 많아요. 체력, 흥미, 집중력부터 경제적 측면까지 포괄적으로 보게 되는데요. 생산, 유통, 홍보, 재무까지 오롯이 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치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런 측면이 언젠가는 흥미와 집중을 떨어뜨릴까봐 걱정되기도 하고요.
‹FlatLand I›, 2021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이에 대한 노력이 결국 작업의 기본 틀이 되어 주었고요. 그러다 보니 자체적인 맥락과 편향성을 지닌 파운드 푸티지를 많이 쓰게 되었고, 그 안에 내재한 치우침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시하는 이야기 또한 치우칠 수 있기 때문에 어조를 다소 뭉툭하게 사용하게 되네요.
거리두기. 개인적으로 거리두기는 작업을 진행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작업과 너무 가까이 있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거든요, 이를 위해 몸 자체를 멀어지게 하거나, 다른 장르 혹은 분야를 접하며 거리를 벌리려고 노력해요. 아, 한 가지 더 있는데요. ‘시작하기’입니다.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켜는 순간, ‘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도 시작만 한다면 윤곽이 많이 잡히기도 하고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 욕심부리며 벌린 일이 많아지면서 머리가 앞서는 경우가 꽤 생깁니다. 앞서 말했듯, 제 작업은 실험과 실습이 중요한데요. 이를 수반하기 위해서는 꽤 큰 정성이 필요해요. 그래서 인풋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FlatLand II›, 2023, «RISD Grad Show 2023», Amica Mutual Pavilion, 2023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핸드폰 케이스에 껴놓고 다니는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If you’re happy, you’re successful.’ 포춘 쿠키에서 나온 문장인데요, 성공이라 부르는 여러 제도적 단계와 과정에서 벗어나 주관적 성공을 생각하게 해줘서 꽤 마음에 듭니다. 더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여기에 수반되는 조건문인데요. 성공의 조건이 행복이기 때문에 항상 제가 작업을 볼 때 행복해하거나 즐거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상기하게 도와줘요. 거창할 필요도 없고요,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므로 여러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본질로 돌아가게 해주는 일종의 주문입니다.
여러 방면에서 작업을 고민해야겠지만, 너무 전략적이어도 혹은 너무 낭만적이어도 쉽지 않은 시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제가 재미있어했던 것을 놓치지 않고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에 대한 영역은 제가 가장 잘 아는 만큼,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밀어붙인다면 무언가 결과물이 나올 테니까요. 물론 그만큼 실천들도 중요하겠죠. 당연한 얘기는 차치하고, 시작점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재밌어서 시작했던 거니까요.
«RISD Grad Show 2023», Amica Mutual Pavilion,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저는 여러 가지 업을 하고 있어요. 개인 작업, 상업 작업, 교육까지. 모두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있지만, 나름의 전략도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한 가지만 오롯이 집중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집중을 분산하는 게 잘 맞아요. 세 가지가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고요,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 각 요소가 멀어지는 데 필요한 좋은 핑계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것으로 유지하기 위한 제 나름의 노력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재밌다’라는 말이 나오는 작업을 하는 사람. 계속 작업하다 보면 결과물이 어려워지기도 혹은 단순해지기도 하는데요. 저는 논리와 직관 사이에 계속 위치하고 싶습니다. 제 기준에서 재미있는 작업은 그랬기 때문이죠. 선 위에서 종종 그런 즐거움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실험과 실행을 하는 양을 유지하면서 현재에 맞춰 필요한 질문을 찾고 작업해 나가는 사람. 작업자로서 당연한 얘기이지만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이를 지속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방향과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혔다는 것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러 일로 바빠질 테니까요. 그런 와중에 질문과 실습을 해 나가는 건 쉽지 않을 테지요, 그렇기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물에 기대가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계속 작업하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유도원(@yooodowon)은 매체 기반 작가이자 디자이너이다. 국민대학교에서 영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에서 디지털+미디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크린, 이미지의 평평함에서 신체 감각과 저자성을 탐구해 오다, 최근에는 디지털 공간에 표상된 서구 편향, 식민화 요소를 해체하고 재조합하고 있다. 개인전으로 «쌓아 보기»(소원, 2024), «flat flat flat; 납작들»(OCI미술관, 2024)을 열었고, Single Channel VT Video Festival(Snake House VT, 벌링턴, 미국, 2024), «Transitory Void»(Boston Cyberarts Gallery, 보스턴, 미국, 2022), Demo Festival 2022(DEMO, 네덜란드, 2022)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서울시, 인천공항, 국방부, 현대자동차, 현대백화점, 경기문화재단 등의 공공 미디어 프로젝트에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디자인과에서 강의하며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학술 출판 이사를 맡고 있다. dowony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