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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더 대담하고, 더 솔직하고, 더 음침하게

Writer: 연여인
header, 연여인YeonYe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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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연여인 작가의 작업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하나의 장면을 조성합니다. 작은 대머리 사람을 비롯해, 원피스 입은 소녀, 우주에서 온 토끼, 기괴한 새 마스크를 쓴 사람 등이 대표적이죠. 그들만의 현실에 존재하며 인간적인, 때로는 탈인간적인 행위를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캐릭터들은 현실의 언어로 자유롭게 표현하기 힘든 작가의 생각을 담아내고,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을 포착하는 내면세계의 내레이터 역할을 맡는답니다. 그래서인지 삶과 사람이 지닌 양가적인 모습과 어느 한 극단에 속하지 않는 다층적인 지점을 한 면에 담는 그의 작업은 언어가 소화할 수 없는 그림의 매력이 돋보여요. 솔직한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연여인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01, 연여인YeonYeoin, anxious-rabbitboy

‹anxious rabbitboy›, 2020, ink on paper, digitally colored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서울을 기반으로 시각 작업을 하는 연여인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뚜렷한 계기는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반에서 그림 잘 그린다고 소문 나는 친구가 항상 있잖아요. 제가 그런 아이였어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야’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 점차 자기표현을 위한 수단으로써 작업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02, 연여인YeonYeoin, room2

‹room 2›, 2018, ink on paper, digitally colored

03,연여인YeonYeoin, a-dance

‹a dance›, 2020, ink on paper, digitally colored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홍대 부근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단골 화방, 인쇄소, 액자 집이 모두 도보로 5~15분 거리라 편리해요. 제 작업은 주로 캔버스에 오일을 쓰는 경우, 종이에 잉크를 쓰는 경우, 그리고 디지털로 나뉘는데요. 각각의 작업을 위한 지정석을 작업실에 마련했어요. 예를 들어 젖은 재료를 위한 방에는 잉크 드로잉하는 나무 책상이 있고, 한편에는 캔버스와 이젤을 위한 공간이 존재해요. 다른 방에는 디지털 작업을 위한 흰 테이블을 들여놓았죠. 작업실이 크지는 않은데 이렇게 구분하니까 체계가 잡힌 느낌이 들어 좋더라고요. 작업 공간은 쉽게 어질러지기 때문에 재료 이외의 짐은 최대한 두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살면서 마주하는 상황과 소소한 일상 속 감정에서 영감을 얻어요. 갑자기 불쑥 떠오른 이미지와 아이디어가 작업의 시발점이 되곤 해요. 아마 그동안 축적해 둔 다양한 시각 자극에서 태어난 상상력이 일상에서 제 필터를 거쳐 등장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04, 연여인YeonYeoin, a-play

‹a play›, 2020, ink on paper, digitally colored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소재를 정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서 고민하기보단 일상을 보내며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구체화해요. 그때 바로 작업에 들어가기 곤란할 땐 핸드폰 메모 앱에 그림을 그려놓고, 나중에 캔버스나 종이에 옮겨 놓습니다. 생활에서 탄생한 아이디어에 조금씩 살을 붙이는 거죠. 마치 일기 쓰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감정을 더 진하게 인식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저 역시 내면의 모습을 작품에 담는 거죠. 이 과정에서 미처 인지하지 못한 제 모습을 직면할 때가 있는데요. 보통 사람들이 언어를 통해 감정을 인식하고 소화한다면, 저는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곱씹어보는 것 같아요.

05, 연여인YeonYeoin, Sleep

‹Sleep›, 2019, oil on canvas, 116.8 x 72.7 cm

06, 연여인YeonYeoin, The-Wait

‹The Wait›, 2019, oil on canvas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잉크 작업을 소개하고 싶어요. 검정 잉크는 학창 시절부터 제가 지속적으로 사용한 매개인데요. 종이에 잉크로 표현한 작업이 제 삶에서 차지하는 연속성과 반복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작품에 제목 대신 넘버링을 표기했어요. 총 001번부터 030번까지의 작품을 전시했기 때문에, ‘001030’이라고 전시 제목을 지었죠. 앞으로도 시리즈처럼 잉크 컬렉션으로 전시를 지속하고 싶어요. 저는 평소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하나의 장면을 조성하는 형태로 자주 작업하는데요.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책과 그래픽 노블의 영향이 아닐까 해요. 그림책에는 항상 인간을 닮은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출연해 현실적인 감정과 경험을 환상적으로 표현하곤 하잖아요. 저 또한 ‘작은 대머리 사람(Tiny Bald Human)’을 포함한 다양한 캐릭터를 그리며 제 내면세계의 내레이터로 활용하는 것 같아요. 대머리 어른아이, 원피스 입은 소녀, 우주에서 온 토끼, 기괴한 새 마스크를 쓴 사람은 우리와 닮은 듯, 닮지 않은 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하는데요. 그들만의 현실에 존재하며 인간적인, 때로는 탈인간적인 행위를 자유롭게 펼쳐 보이죠. 더 대담하고, 더 솔직하고, 더 음침하게 보이는 이런 캐릭터를 통해 현실의 언어로는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자기 모습을 담아내고,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포착할 수 있어요.

07, 연여인YeonYeoin

‹001›, 2022, ink on paper, 29.7 x 29.7 cm

08, 연여인YeonYeoin

‹021›, 2023, ink on paper, 29.7 x 29.7 cm

09, 연여인YeonYeoin

‹011›, 2023, ink on paper, 29.7 x 29.7 cm

10, 연여인YeonYeoin

«001030»(DOOR, 2023) 전시 전경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불완전한 저의 세상,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제 작업을 보고 무서움을 느끼거나 주제가 어둡다고 추측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사실 전 낯설고 두려운 환경 속에서 담대하게 견디는 작은 존재를 자주 그린답니다. 첫인상 너머에 다채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약속이 없는 날에는 거의 내부에서 작업해요. 저만의 공간을 사랑하고 혼자 있는 걸 즐겨서 며칠씩 문밖에 나가지 않기도 한답니다. 루틴을 정해둔 채 일하거나 쉬지 않는 편이라, 잠에 들고 깨어나고 일에 몰두하는 스케줄이 항상 불규칙해요. 앞으로도 오래 활동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건강한 생활의 중요성을 공감하는데, 10년 가까이 지속한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네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삶과 사람이 지닌 양가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껴요. 그런 모습을 직접 마주할 때의 불편함도 흥미롭게 여기고요. 그래서 그런지 작업에도 이런 면모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그린 ‘평온’에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어둠’도 함께 등장합니다. 반대로 ‘고난’에는 ‘견디는 힘’도 함께 등장하죠. 세상에는 언어로 단번에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어요. 어느 한 극단에 속하지 않아서 정의하기 어려운 지점을 비롯해 그런 삶의 다층적인 모습을 한 면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11, 연여인YeonYeoin, feather
12, 연여인YeonYeoin, mammal

‹feathers›, 2019, oil on canvas, 145.5 x 89.4 cm (좌)

‹Mammal›, 2019, oil on canvas, 86.5 x 143 cm, (우)

‹feathers›, 2019, oil on canvas, 145.5 x 89.4 cm (상)

‹Mammal›, 2019, oil on canvas, 86.5 x 143 cm, (하)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강하지 않으면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 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잘되지 않더라도 그냥 앉아서 작업하고 뭐라도 만드는 편입니다. 슬럼프 느낌이 더 강해지면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몸을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해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생활을 불규칙적으로 하니까 건강이 안 좋아졌어요. 옛날에는 몇 시간이고 앉아서 작업해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확실히 에너지의 고갈을 느낍니다. 이제라도 조금씩 운동하려고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솔직함이 중요해요. 그래야 제가 만드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제 작업과 일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3, 연여인YeonYeoin, A-man

‹A man›, 2019, oil on canvas, 65.1 x 53.0 cm

14, 연여인YeonYeoin, Whisper

‹Whisper›, 2019, oil on canvas, 116.8 x 91.0 cm

15, 연여인YeonYeoin, Nap

‹Nap›, 2019, oil on canvas, 92 x 148 cm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잘 조성하는 일이 꼭 필요해요. 창작에 몰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챙기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힘들잖아요.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해 본인의 상황을 잘 인지하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작의 영역이 감정과 많이 얽히면 작가와 작업 간의 경계가 흐릿해지곤 해서 다른 직종보다 냉정해지는 게 힘든데요. 저도 계속 노력하는 중이랍니다.

16, 연여인YeonYeoin, 기억흔적, Engram

«기억흔적; Engram»(SeMA 벙커, 2019) 전시 전경

17, 연여인YeonYeoin, 기억흔적, Engram

«기억흔적; Engram»(SeMA 벙커, 2019) 전시 전경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마음 흔들리지 않고 본인의 창작을 지속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멋있다고 생각한 아티스트들이 바로 그랬으니까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뭐, 건강하게 오래 작업하는 거죠. 삶의 우선순위 중 작업이 더 이상 1순위가 아닌 시기가 오더라도, 작업을 부여잡고 계속하는 열정이 남아 있길 바랍니다.

Artist

연여인은 인식되지 않은 본연의 감정에 관심을 두고, 정의하기 힘든 삶의 순간을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담아낸다. 개인전으로 «001030»(DOOR, 2023), «기억흔적; Engram»(SeMA 벙커, 2019) 등을 열었고, «3650 storage – interview»(서울미술관, 2022), «생일잔치»(기지재단, 2022), «거울 속의 거울»(서울 미술관, 2021), «Goods is Good»(D 프로젝트 스페이스, 2019) 등의 단체전 및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여러 브랜드 및 뮤지션과 협업하며 회화와 영상 미디어 등 다양한 매개를 넘나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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