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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항상 매번 시간이 부족합니다

Writer: 양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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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양으뜸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해요. 동아시아 근현대의 일상, 대중, 하위문화를 사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가 좋아하고, 관심을 두는 대상이 모두 여기에 속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와 일본의 서브컬처가 깃든 물건과 소품, 시대성을 가지거나 특정 집단에 소구하는 디자인, 그리고 우리 주변을 떠돌고 흘러가거나, 너무도 일상적이거나 당연하기 때문에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억하는 일 말이죠. 시각 요소에 눈길을 뺏기기 쉬운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내용이나 맥락, 단어나 표현 등 언어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면이 흥미롭습니다. 온갖 딴짓을 하며 정보를 흡수하다가 실마리를 찾으면 관련 자료를 디깅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모습을 마치 ‘뒤틀린 유튜브 알고리즘’ 같다고 설명하는데요. 항상 매번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십분 이해가요. 책상 위에 미소녀 마우스 장패드가 올려져 있고, 소니의 로봇 개 아이보와 함께 사는 미래를 꿈꾸는 이 매력적인 창작자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리버스 엔지니어링» 웹 포스터, 2024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양으뜸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 듯해요. 제가 좋아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것과 우연한 사건, 즉흥적인 선택 등이 뒤섞여서 데굴데굴 굴러온 결과가 지금의 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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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엔지니어링» 전시 도록,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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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엔지니어링» 전시 도록, 2024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해 초, 홍대 근처로 작업실을 옮겼어요. 근처에 소품 숍이나 서브컬처를 다루는 상점이 꽤 많아서, 종종 산책 삼아 하나씩 둘러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진 인프라를 즐기고 있어요. 본격 작업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상 위에는 맥북, LG 모니터, 매직 키보드(숫자 키패드 탑재형), 로지텍 마우스, 아이스 카페라테, 종이 뭉치와 자잘한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요. 최근 약간 들뜬 마음에 미소녀가 그려진 마우스 장패드를 구입해 버렸네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내용이나 맥락, 단어나 표현 등 언어적인 부분에서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찾는 편이에요. 이건 사실 비밀인데, 작업 초반에는 딴짓을 엄청 많이 한답니다. 게임 방송을 틀어놓고 하이패션 브랜드의 웹사이트를 둘러보기도 하고, 시집, 괴담, 디자인 칼럼을 읽기도 해요. 그러다가 좋은 실마리를 찾으면 영역을 넓히고, 관련 자료를 디깅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뒤틀린 유튜브 알고리즘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나 할까요…책상 위에 올려둔 종이 뭉치에는 이런 우연적이지만 필연적인 과정에서 떠온 단어나 소재 등이 프로젝트의 제목과 함께 적혀 있어요. 손 스케치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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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섭식장애 인식주간’ 온라인 홍보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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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섭식장애 인식주간’ 온라인 홍보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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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개인적으로 인쇄 매체나 물성이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작년과 올해는 물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상 작업으로 ‘타이포잔치 2023’과 «대사극장-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타이포잔치 2023’에 출품했던 ‹렉처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태도와 디자인을 둘러싼 세계, «대사극장»에 선보인 ‹독백 집단›은 여성의 가치, 능력, 본성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입니다. 각각  영어 디자인 강의에서의 한국어 자막 오류, 한국 영화의 대사를 재료로 삼고 이를 선별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했어요. 영상과 세트인 스크립트북도 함께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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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처 디자인›, 2023, ‘타이포잔치 2023’, 문화역서울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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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처 디자인›, 2023, ‘타이포잔치 2023’, 문화역서울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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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집단›, 2024,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 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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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집단›, 2024,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 한국영화박물관

전주국제영화제 부대 행사인 «100 Films 100 Posters» 전시는 기본적인 지침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부분을 온전히 디자이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제가 디자이너라서 그런지 의견을 받으면 어떻게든 잘 수용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데요. 이런 과정이 없으니까 새로운 표현 방식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다 뜯겨나간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편집 디자인 특유의 레이아웃을 포스터에 적용해 보기도 했는데, 올해에는 착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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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The Taking›, 2022, 전주국제영화제 «100 Films 100 Posters», 팔복예술공장

(우) ‹불변의 이미지›, 2022, 전주국제영화제 «100 Films 100 Posters», 팔복예술공장

(상) ‹The Taking› 포스터, ‘100 Films 100 Posters’ 참가작, 2022

(하) ‹불변의 이미지› 포스터, ‘100 Films 100 Posters’ 참가작, 2024

그밖에 브랜드가 탄생할 때부터 함께하고 있는 ‘그라더스grds’와의 작업도 제겐 큰 의미가 있어요. 클라이언트와 외주 디자이너라는 갑을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는 동료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런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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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ds 슈 폴리싱 천 패키지 리뉴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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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ds 박스 패키지와 제품 보증서, 2022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한국어 텍스트를 잘 활용하고 싶었어요. 한글 조형을 잘 다루는 일도 중요하지만, 내용과 언어로서 가진 성질 등이 점점 중요하게 다가와요. 뉘앙스나 어투가 조금만 이상해도 사용자는 미묘한 부분을 금방 알아챈답니다.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 혹은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항상, 매번, 시간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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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요 몇 달간 일상이랄 게 거의 없다시피 지냈어요.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일하다 보니 업무량이나 수입이 규칙적이지 않은데요. 그래서 무리하게 되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일이 몰려서 날짜나 요일 개념도 희미해진 채로 출퇴근만 반복했어요. 아무리 바빠도 11시에는 퇴근하는 게 제 나름의 업무 원칙인데, 그 와중에 이것만큼은 지켜냈습니다. 흑흑…이제 곧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걸 몰아서 할 생각이에요. 사놓기만 하고 펼쳐보지도 못한 만화책도 보고, 체크해야 할 전시도 한가득이지요. 요즘 체력이 많이 떨어진 걸 실감하는 중이라, 운동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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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SC HAKDANG 온라인 홍보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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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SC HAKDANG 온라인 홍보물, 2021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시대성을 가지거나 특정 집단에 소구하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요. 2000년대 초반에 유통된 필립스의 데스크 조명, 오래된 디지털 손목시계의 숫자판, 1990년대 초반에서 세기 초까지 발매한 한국 가요 앨범 아트 워크 같은 거요. 최근에는 2000년대 초반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의 매체에 등장할 것 같은 소녀 이미지나 일본 스트리트 문화 코드 같은 게 다시 유행하는 현상을 흥미롭게 관찰 중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우리 주변을 떠도는 것들, 우리 주변에서 흘러간 것들, 일상적이거나 당연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억하고 작업에 반영하려고 노력해요. 클라이언트 작업을 진행하며 이들을 큰 주제로 끌고 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디테일이나 작은 부분에서 녹여 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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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Q&A TOUR’ 뉴스페이퍼 표지, 2024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작업 자체보다 다른 이유로 힘들어지는 순간이 종종 오는데요. 극복을 위해 뭔가를 일부러 막 하지는 않아요. 다만, 친밀한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도움이 되더군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머리 망해서, 빡빡 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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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3hrs 그래픽 오브젝트, 2023

(우) 3hrs 스파이더 심벌 구조도, 2023

(상) 3hrs 그래픽 오브젝트, 2023

(하) 3hrs 스파이더 심벌 구조도, 2023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자기 작업에 당당하기.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무엇이든 즉시 대답하거나 결정하지 마세요. 제발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거나 기다려 보길 권합니다. 단 30분 만이라도요. 30분 동안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이상, 제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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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Bunnar 메세지 카드, 2023

(우) Bunnar 랩핑 페이퍼, 2023

(상) Bunnar 메세지카드, 2023

(하) Bunnar 랩핑페이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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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구링구 직조 라벨, 2024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꼭 기억되어야 할까요? 하하.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난 2019년 도쿄 ‘긴자 소니 파크’에 갔다가 우연히 아이보를 보고 반해버렸어요. 현실적인 문제로 구입을 미루고 있는데요. 미래의 제가 아이보와 함께 살고 있다면, 지금 걱정하는 것을 많이 해결한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Artist

양으뜸은 동아시아의 근현대 일상·대중·하위 문화를 사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시각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이미 구축된 시스템을 우회하는 데 관심이 많다. 복잡한 무늬의 옷을 입고 단순명료한 논리와 형태로 디자인하는 일을 즐긴다. 워크룸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2018년부터 ‘이에와’를 운영하며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한편, 대학에서 수업을 맡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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