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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도 도망치는 디자인

Writer: 김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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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유나킴씨’는 김유나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그와 ‘재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요. 새로운 작업이 찾아오면 여전히 설레고, 늘 위트 가득한 이야기를 작업에 담으려 노력한답니다. “슬럼프가 찾아오다가도, 즐거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김유나 디자이너. 늘 기분 좋은 디자인을 만들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그래픽 스튜디오 ‘유나킴씨’를 운영하는 김유나입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입사해 인하우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어요. 7년 뒤인 2020년 독립해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인쇄물, 전시 그래픽, 브랜딩, 굿즈 제작 등 다양한 작업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저는 프로젝트의 주제를 해석하고, 위트를 넣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후, 많은 이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해요. 더불어 모니터에서 벗어나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소장할 수 있는 그래픽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속성을 가진 그래픽의 여러 방면을 연구하고, 실험적인 태도로 작업에 임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 음악 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미술관을 다니는 것도 좋아했고요. 예술·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교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죠. 그런데 공간을 다루는 과제를 하면서 작업을 설명하는 시각적인 부분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졸업 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디자인팀에서 인턴을 뽑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죠. 운 좋게 합격해서 인턴 생활을 거친 후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되었답니다. 공간을 전공했던 경험이 일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죠. 미술관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스케일감과 공간을 이해하면서 지면 그래픽과 공간 그래픽을 모두 다뤄야 하거든요. 전시 그래픽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그런지, 작업할 때 평면과 입체의 시각적인 상호 호환성을 고려하는 태도가 습관이 되었어요.

«투유: 당신의 방향 To You: Move Toward Where You Are», 2022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영상, 웹, 사진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작업실 위치는 을지로인데요. 인쇄 감리를 갈 때 5분도 안 걸리는 위치랍니다. 다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게 단점이에요. 저희가 6층에 있거든요. 대신 홍콩이 연상되는 뷰가 매력적이라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영화 속 미장센이나 자연 현상, 혹은 평소에 듣는 음악이나 프로젝트와 관련된 책에서 영감을 얻어요. 특히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것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누군가는 평범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제게는 디자인 언어가 되고, 형태가 되어요.

‘She is Aquarius’, 2022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이동 시간에도 항상 작업 생각을 해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단어를 작은 노트나 핸드폰에 적거나 그래픽 요소로 남기죠.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인드맵을 그려보기도 하고요. 아이디어가 정 떠오르지 않을 땐 영화를 봅니다. 예상하지 못한 포인트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아이디어를 잔뜩 그러모아서 작업을 시작할 때 펼쳐 보아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Transformertower Longings 변압타워의 모험», 2023

창성동에 위치한 팩토리2에서 열린 덴마크 아티스트 듀오 란디와 카트린(Randi & Katrine)의 전시 «Transformertower Longings 변압타워의 모험»의 그래픽 작업을 소개하고 싶어요. 란디와 카트린은 조각, 설치 미술, 공공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을 이어왔는데요. 해당 전시에서 두 사람은 덴마크의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데 중요한 임무를 맡았던 변압타워가 그 쓸모를 잃고 배회하는 모습을 그려냈어요. 저는 포스터에 등장하는 변압타워에게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죠. 그래서 변압타워의 손처럼 보이는 끊어진 선을 전시 타이틀과 이어 붙였습니다. 변압타워의 정면은 마치 슬픈 사람의 표정처럼 보일 수 있도록 그렸어요. 굿즈로 렌티큘러 엽서와 스티커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실물로 보면 엄청 귀여워요! 팩토리2에서 구입할 수 있답니다.

«Transformertower Longings 변압타워의 모험», 2023
, 사진: 김다인

«Transformertower Longings 변압타워의 모험», 2023

더현대 서울 2주년 아이덴티티, 2023

더현대 서울의 오픈 2주년 기념 그래픽 아이덴티티 작업도 기억에 남아요. 백화점 내외의 연출용 그래픽과 온라인 매체용 그래픽 아이덴티티 작업을 했는데요. 지난 2년간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 콘텐츠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래픽을 만드는 과제였어요. 엑셀 파일로 정리한 데이터를 활용해 그래픽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 저 스스로도 결과물이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증을 가지고 작업했죠. 저는 더현대 서울의 슬로건인 ‘Sound of the Future(미래를 향한 울림)’를 콘셉트로, 데이터가 쌓인 면과 도형들을 음파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더현대 서울에 입점한 힙한 브랜드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단번에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래픽을 만들려고 했어요.

더현대서울 2주년 아이덴티티, 2023, 사진: 정해민

더현대서울 2주년 아이덴티티, 2023, 사진: 정해민

더현대서울 2주년 아이덴티티, 2023, 모션: WNK

‘잔치, 함께 둥글게’ 포스터, 2022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돌고, 돌고, 돌고’의 한 단락을 갈무리하는 프로그램 ‘잔치, 함께 둥글게’의 포스터도 소개하고 싶어요.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와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있는 모습을 시각화했습니다.

«잔치, 함께 둥글게», 2022

«프로젝트 리미티드 project LIMITED», 2021

«프로젝트 리미티드project LIMITED»의 포스터 작업도 있습니다. 전시명에서 착안해, 시간이 쌓인 모습을 여러 장의 트레이싱지를 겹쳐서 표현했어요. 여기에 참여 작가인 서정화, 류종대 님의 작품 실루엣을 중첩해 포스터를 완성했습니다.

«프로젝트 리미티드 project LIMITED», 2021

«프로젝트 리미티드 project LIMITED», 2021

‘럭키서퍼클럽LUCKY SUPPER CLUB’ 포스터, 2023

‘럭키서퍼클럽’은 독일문화원에서 주최하는, 비밀스럽지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의 행사예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의 경험을 듣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의견을 주고받는 모임이죠. 저는 행사 포스터를 제작했는데요. 열쇠 구멍의 형태를 활용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훔쳐보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럭키서퍼클럽 LUCKY SUPPER CLUB’ , 2023

‘럭키서퍼클럽 LUCKY SUPPER CLUB’ , 2023

«투유: 당신의 방향 To You: Move Toward Where You Are», 2022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투유: 당신의 방향 To You: Move Toward Where You Are»는 팬데믹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동을 보여주는 전시에요. 저는 스캐니메이션scanimation 기법을 활용해 무빙포스터를 디자인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는 답답한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투유: 당신의 방향 To You: Move Toward Where You Are», 2022

«백남준을 기억하는 방법 Remember Nam June Paik», 2022 

미디어 아티스트 5인의 백남준 오마주 전시 «백남준을 기억하는 방법 Remember Nam June Paik» 포스터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백남준을 기억하는 방법 Remember Nam June Paik», 2022

«백남준을 기억하는 방법 Remember Nam June Paik», 2022

«Picked City», 2022

미디어 아티스트 얄루 작가의 개인전 «Picked City»의 포스터도 작업했습니다. 어두운 심해 속 디지털 파도가 치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Picked City», 2022

‘She Is Aquarius’ 포스터, 2022

영국의 온라인 편집숍 ‘She Is Aquarius’의 홍보 포스터 작업에서는 물의 얼고 녹는 성질을 그래픽에 적용해, 물의 다양한 흐름을 표현했어요. 

리타르단도(rit) 브랜딩

성수에 위치한 칵테일바 ‘리타르단도(rit)’의 브랜딩 작업도 있습니다. 리타르단도Ritardando는 ‘점점 느리게’라는 음악 용어인데요. 저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동작이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의 동작을 선에 대응시켜 선율이 보이는 것처럼 아이덴티티 그래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메뉴판과 명함에 업장의 메인 컬러인 그린을 사용해 공간과 통일감을 주었어요. 가벼운 그린보다는 농도가 짙은 그린 컬러를 리소그래프로 표현했죠. 칵테일을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발랄한 목 넘김을 알맞은 컬러로 표현한 것 같아서 만족해요.

리타르단도(rit) 브랜딩 작업, 사진: 정해민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많은 이야기, 많은 형태가 담긴 디자인을 선호해요. 현대미술 작품처럼, 작가의 작업 의도를 넘어 관람객이 그들만의 시선으로 해석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 작업을 보고 충분히 사유할 수 있도록 추상적인 그래픽 장치를 넣어 두려 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포스터나 브로슈어는 보통 웹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실물로 인쇄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재료와 소재가 작업의 콘셉트와 잘 맞는지 늘 고민합니다. 오히려 디자인보다, 재료와 소재를 선택하는 게 어려울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픽 언어와 가공 방식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만족스럽지 않은 작업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만족을 느끼는 때라면, 가끔 길을 걷다 제가 디자인한 에코백을 멘 분을 마주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제가 만든 디자인을 누군가 경험하는 사실이 매력적이에요.

더현대서울 2주년 아이덴티티, 2023, 사진: 정해민

«잔치, 함께 둥글게», 2022, 사진: 정해민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요즘에는 집 아니면 작업실에만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쉬는 날에는 꼭 전시나 영화를 보려 합니다. 아니면 평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은 기운을 잔뜩 충전하려고 노력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한 마디로 ‘재미있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물에는 늘 위트를 넣으려 해요.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작업도 좋지만, 관람객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작업도 좋은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저를 찾아오려다가도, 제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는 것 같아요. (웃음) 아직(?)까진 작업하는 게 재밌고, 늘 설레요. 디자인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물론 지치기도 하는데요.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작업을 펼치는 일, 그리고 좋은 협업자와 관계를 쌓는 일이 즐겁고 늘 다음이 기대돼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업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요. 작업에는 제가 설정한 디자인 방향과 전체 프로젝트의 방향, 클라이언트의 취향과 대중의 취향이 여러 갈래로 엉키기 마련이거든요. 저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와 대중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작업을 진행하며 지금 설정한 방향이 최선인지 스스로 되묻곤 합니다. 디자인을 마무리할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려 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이유가 있는 디자인을 선호해요. 물론 너무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작업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발생하겠죠. 그래도 ‘그냥!’ 보다는 ‘명확한!’ 이유로 만든 작업물이 결국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잔치, 함께 둥글게», 2022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한번 해볼까?’라는 큰마음을 먹었다면, 지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 보세요.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하다면, 멈춰 서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마음을 가져보아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기분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창작자요! ‘기분 좋은’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분위기가 녹아 있잖아요. 다양한 색과 멋을 가진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미지(그래픽)을 통해, 제가 가진 생각을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그래픽이 여러 차원에 위치했으면 좋겠어요. 때로는 입체의 형태로, 때로는 사용성을 지니는 대상으로 머무르는 거죠. 그리고 창작자 이전에 인간 ‘김유나’로서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어요. 풀 내음 가득한 곳에서 평온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Artist

김유나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인하우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2020년 독립해 그래픽 스튜디오 ‘유나킴씨’를 운영 중이다.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인쇄물, 전시 그래픽, 브랜딩, 굿즈 제작 등 다양한 작업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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