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은 작가는 우리 마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감정을 사진에 담아냅니다.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는 몸의 공간을 포착해 인간의 고독함을 비추거나, 행복한 생일에 가려진 이면의 쓸쓸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죠.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보며 다른 이들이 쉬이 포착하지 못하는 주제를 꺼내 드는 장성은 작가. 멋진 말보다는 멋진 작품으로 관객 앞에 서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지금 확인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공간과 인간으로부터 비롯한 감정을 사진으로 묘사하는 장성은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예술가를 꿈꿨어요. 그러다 대학 마지막 학년에 본격적으로 각성하며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운 좋게 개인전을 열게 되었는데요. 그때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이른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깨달은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리듬 C›, 2019, Archival Pigment Print, 93.7 × 125 cm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늘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고, 지금의 나에게 질문을 던져요. 많은 예술가들이 ‘어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이는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예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분야나 주제에 대해 오래 경험하고 골몰하다 보면 우연히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요. 그 우연의 가치를 알아보는 게 영감입니다. 그래서 영감은 예기치 못한 순간이나 엉뚱한 곳에서 발견하곤 하죠. 1%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와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TV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에서, 무심코 펼친 책에서 발견한 문장에서, 어떤 학자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갖추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주제 선택 혹은 마음이 쓰이는 단어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일상을 지속하면서 느끼는 특별한 장면, 대화 혹은 책을 읽을 때 다가오는 단어들, 경험 또는 정보를 활용해 머무르는 감정을 채집하고 저만의 ‘생각 주머니’에 담아둬요. 생각 주머니에는 앞서 나열한 대상들과 거절당한 계획서의 아이디어, 실패한 작업의 모티브가 함께 담겨 있는데요. 한 시리즈를 완료하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풀어내고 싶은 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애정과 시간을 투자해 해당 주제의 윤곽을 정리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바로 작업에 뛰어들지는 않고요.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요.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를 때까지 고민하죠. 머릿속에서 장면이 실제 사진처럼 구체적으로 떠오르면, 이를 기반으로 촬영의 세부 계획을 세우고 준비합니다. 모든 작업방식이 동일하지 않지만, 대부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아요.
«마음현상:나와 마주하기»,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전경, 2019
‹Bubble›, 2016, Archival Pigment Print, 170 × 127.5 cm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2019년의 개인전 «정지는 아무도 보지 못한 거친 짐승이다»을 통해서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고독’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고독을 느끼는 이유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대신, 고독의 형(形)을 찾아내 보고 느낄 수 있는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고독은 애초에 형(形)이 없으니, 그 쓸쓸한 아름다움에 질감과 색을 얹어 명확한 행위로 묘사하려고 했어요.
2019년의 또 다른 개인전 «근사한 머리운동»은 ‘인간의 고독한 신체 부분과 제스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초상사진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정수리부터 등의 위쪽 부분은 스스로 볼 수 없는, 다시 말해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는 몸의 공간이죠. 이 공간을 고독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작업했어요. 인간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기에 고독하고, 늘 외로움을 느끼며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소중한 의미를 사진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또한 고독 자체는 해롭지 않으며, 되려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고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전시에서 다루려고 했어요.
‹근사한 머리운동›, 2019, Archival Pigment Print, 135 × 180 cm
‹Wounded cake›는 2022년의 개인전 시리즈 «to my birthday»의 대표 작품으로, 생일을 맞은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행복한’ 생일에 가려진 서글픔, 민망함, 당혹감 등 복잡다단한 이면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생일날의 감정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섬세해지고 예민해지며, 요동치기보다는 어떠한 감정에 쉽게 휩쓸리곤 하잖아요. 그 이유를 따져보니,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Wounded cake›는 누군가로부터 축하받기보다, 스스로 하루를 생각하는 방식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피력하는 작품입니다.
‹Wounded cake›, 2022, Archival Pigment Print, 60 × 45 cm
2016년의 개인전 «WRITING PLAY»의 전시명에는 ‘연극play’이라는 단어를 넣어두었는데요. 저는
연극의 사전적인 의미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예의나 예절’, 즉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본적인 조건에 의미를 뒀어요. 예를 들어 ‹Witching hour›(2016)의 경우 키를 키우거나 어깨를 넓어 보이게 하는 패드, 일명 ‘깔창’이 사진에 등장하는데요. 이러한 부속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속임수를 쓰려는 나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긍정적인 태도, 즉 연극적 태도를 가진 거라고 생각했죠. 이런 점은 겉으로 무수하게 드러나는 대상과 이들의 복합적인 관계에서 풍기는 말투, 자세, 표정, 화장, 헤어스타일의 뉘앙스에서도 잘 드러나요. 그래서 어쩌면 인간은 나와 나의 관계, 그리고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항상 연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인간은 평생 연극하며 살아가고, 각자의 연기를 현실이라 믿고 살아간달까요. 그래서 인간에게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행위 역시 ‘연극’적이고, 또 다른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방식이라 생각했습니다.
연극 시리즈의 대표작을 꼽자면 ‹Pompom›이 아닐까 싶어요. 이 작품은 감정의 초상화입니다. 비록 신체는 보이지 않지만 되려 어떤 정서가 더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더불어 신체를 둘러싼 물질이 감정처럼 가벼워 보이는데 아이러니하게 신체는 더 무거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사실 이 작품은 나무이면서도, 동시에 크리스마스트리입니다. 사진 속 이상한 녹색 덩어리는 ‘기쁨’의 존재예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녹색을 띤 이 존재는 온몸을 빛내며 기쁨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어딘가 무거워 보이는 이유는 신체를 뒤덮은 물질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물리적 무게의 문제라기보다 정서적인 면모, 즉 무거운 마음 같은 것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업은 예전에 읽었던 시집의 한 글귀에서 출발했는데요. ‘크리스마스트리와의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라는 문장이었어요. 이 문장을 곱씹어 보며 느낀 기분을 최대한 작품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여러 기념일 중에서 특히 크리스마스는 행복을 강요하는 날이란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런 정서를 담아 ‘감정의 초상화’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하면서도 자신을 응원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것 같아요.
‹Pompom›, 2016, Archival Pigment Print, 170 × 127.5 cm
최근 작가님이 작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하나의 주제에 몰입할 때, 실제와 상상이 중첩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합니다. 중첩된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질 때 마치 눈으로 실제 목격한 장면처럼 잔상이 남죠. 이렇게 허상이 쓰인 실제 이미지는 작품에 대한 생각의 범위를 확장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의도를 드러내게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의 작품이나 전시를 본 누군가가 제게 동감, 혹은 동질감의 눈빛을 보낼 때 정말 행복해요.
‹Replacement›, 2016, Archival Pigment Print, 143 × 107 cm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돌발 상황을 무척 꺼려서 미리 계획을 세워두고 스케줄대로 생활합니다. 작업 진행 순서나 계획을 미리 정하고,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히 해 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작업에 집중하려면 되도록 일상 리듬을 깨뜨리지 않고 평균치의 능률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옛 기술과 신기술이요. 두 기술은 시각적 경험에서 그 차이가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옛 기술 중 흑백 프린트에 관심을 두고 소소하게 촬영도 하며, 프린트 노하우도 함께 배우고 있어요. 신기술에 대한 부분은 꼬집어 말씀드릴 부분이 없네요. 기술의 발전은 당연히 배우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항상 관심을 놓지 않고 공부합니다.
‹Wild fluctuation›, 2022, Archival Pigment Print, 170 × 127.5 cm
‹Nude apple›, 2022, Archival Pigment Print, 60 × 45 cm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대단하고 경이로운 무언가를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누구나 경험하고 생각해 봄 직한 삶의 굴레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성에 관심이 가요. 그렇게 눈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마음은 놓이지만 남들이 말하기 꺼려 하거나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주제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아마 이런 대상을 바라보며 그 상황을 작품으로 연출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잠을 잘 자기
생각하지 않기 (멍때리기)
책으로 도망가기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체력 아닐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게 건강이잖아요. 저는 체력이 좋지 않아 나름 운동도 하고, 커피도 줄이려 노력합니다. 마음 상태도 잊지 않고 체크하려고 노력해요.
‹불가능한 풍경2›, 2019, Archival Pigment Print, 32 × 48 cm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멋진 말보다는 멋진 작품으로 관객 앞에 서고 싶어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내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꿈을 버리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죠. 꿈에 다가가기 위해 나 자신을 충전하는 법도 터득해야 하고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는 것에 앞서,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게 꿈이에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진정한 어른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어떠한 창작자로도 기억되지 않을까요?
Artist
장성은은 사람이 만들어 낸 공간과 인체를 주제로 사진을 주 매체로 작업한다. 공간과 인체의 관계성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며, 다양한 방식의 시선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to my birthday»(2022, 스페이스윌링앤딜링, 서울), «정지는 아무도 보지 못한 거친 짐승이다»(2019, 스페이스윌링앤딜링, 서울), «나는 묘사를 삼킨다»(2018, BMW Photo Space, 부산), «Writing Play»(2016, 아마도예술공간, 서울) 외 다수가 있으며, «시적소장품»(2022,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매니폴드: 사용법»(2020,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서울), «낙관주의자들»(2020, 예술의 시간, 서울), «관객의재료»(2020, 블루메미술관, 파주), «마음현상:나와 마주하기»(2019, 부산현대미술관, 부산)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