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손아용 작가는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이미지 메이커, 개발자 등 여러 역할을 함께 끌어가는 다재다능한 인물입니다. 익숙함에서 고정관념을 제거하며 새로움을 발견하는 그의 방법론은 무척 흥미로운 시각물을 쌓아간답니다. 작업에 열중할 때 챙기지 못하는 개인과 타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도 듬뿍 느껴집니다. 불행을 겪어야 행복을 느끼듯 슬럼프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인상적이고요. 할머니가 되어도 닮고 싶은 작업자,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작업자를 꿈꾸는 손아용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이미지 메이커, 개발자로 활동하는 손아용입니다. 주로 브랜드, 웹, 인쇄물 등 그래픽 디자인 전반에 걸쳐 작업하며, 개인 시각 예술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주저하지 않고 시작하다 보니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어느새 디자이너가 됐어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에서 만난 선생님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대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법에서의 고정관념을 달리하고, 현재의 가치관을 지닌 창작자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Background›, 2019, Website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작업실은 양재동에 있습니다. 공간은 전산 시스템(JEONSAN SYSTEM)에서 작업했고, 가구는 포스트 스탠다즈(Post Standards)에서 제작해 주셨어요. 흰 벽, 초록 카펫 바닥,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다리의 연회색 상판 가구가 모여 사무적이면서 개성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어요. 제가 만든 포스터와 핫토리 카즈나리(Kazunari Hattori)의 포스터가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찾는 편입니다. 다시 말해, 익숙한 이미지 속 고정관념을 하나씩 제거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발견해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했을 때, 처음 만드는 이미지는 설명적이고 낯설지 않은 이미지일 때가 많습니다. 그 이미지에 있는 요소들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보고 바꾸거나 제거해나가면, 익숙한 하나의 이미지가 어느새 낯선 이미지로 파생하며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추상적인 소재를 시각화하는 것보다 누구나 다 아는 익숙한 소재를 낯설게 표현하는 일에 흥미를 느껴요. 그래서 제가 시각화하는 대부분의 소재는 익숙한 개체입니다. 추상적인 소재를 시각화할 때도 있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정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가 잘 생기지 않죠. 익숙한 소재를 낯설게 표현해도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Background›, 2019, Website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최근 ‘플라츠Platz 2’의 2~3층에 위치한 전시 공간 ‘커런트Current’에서 첫 번째 개인전 «Yellowish Red Fruits»를 진행했어요. 나무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마주치는 두 개 층에는 저의 지난 7년 세월이 함축돼 있습니다. 이 작업은 과일로 추정되는 추상 형태에서 보이는 최소한의 단서만 가지고 과일의 품종을 알아맞히는 탐정 놀이에서 비롯했는데요. 제 이미지 작업의 시초이자, 지금까지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지금의 저를 만든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개인전 «Yellowish Red Fruits» 전경, 2022
‹Food/Sylvain›는 ‘푸드/실방(Food/Sylvain)‘이라는 프랑스 요리 전문 레스토랑 인테리어를 위해 작업한 포스터 시리즈입니다. ‘플랏엠Flat m’이 진행한 인테리어를 고려해 색을 사용했어요. 타이포그래피에 운동감을 주어 레스토랑이 실험적이고 대담하게 느껴지도록 표현했습니다. Food와 Sylvain 포스터는 가게 이름을 알리고, 식당 공용 화장실을 나타내는 Toilet 포스터는 중립성을 표현합니다. Bread 포스터는 식당의 셀프 빵 카운터를 보여주고, Restaurant 포스터는 공간의 정체성이 식당임을 알려줍니다.
‹Food/Sylvain› poster series, 2021, Poster
‹Food/Sylvain› poster series, 2021, Poster
SAA(Screen Art Agency)의 웹사이트는 랜딩 페이지에서 감광액을 바른 샤를 연상하도록 작업했어요. 문자를 드래그했을 때는 감광액을 바르는 모습을 재현하려고 했죠. 메인 페이지에서는 각각의 색을 별도로 인쇄하는 실크스크린의 분판 시스템을 강조했습니다. 수성으로 묽게 인쇄했을 때 색이 겹치는 방식과 아크릴로 두껍게 색을 쌓는 방식 모두 구현할 수 있어요. 웹사이트에 있는 큰 사이즈의 문구는 자간의 폭을 좁히고 거칠게 조정해 실제 종이에 인쇄했을 때처럼 매끄럽지 않은 글자의 질감을 나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SAA(Screen Art Agency) 웹사이트, 2021, https://screenartagency.com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작업실은 양재동에 있습니다. 공간은 전산 시스템(JEONSAN SYSTEM)에서 작업했고, 가구는 포스트 스탠다즈(Post Standards)에서 제작해 주셨어요. 흰 벽, 초록 카펫 바닥,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다리의 연회색 상판 가구가 모여 사무적이면서 개성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어요. 제가 만든 포스터와 핫토리 카즈나리(Kazunari Hattori)의 포스터가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에서 불만족하는 부분은 저의 경험 부족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은데요. 다른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서툴러요. 주변에 물어보면 금방 해결되는 일도 혼자서 해결하려다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먼저 도움의 손길을 주고, 제가 모르는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서 불만족스러운 결과도 만족스러운 결과에 가까워지는 듯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정신을 깨운 뒤, 사과와 클렌즈 주스, 영양제를 챙겨 먹습니다. 속눈썹 영양제를 바르고, 30분간 어깨, 목, 등, 다리 스트레칭을 합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달리기를 통해 정신을 깨우는 편입니다. 가능하면 하루 세끼를 챙겨 먹으려 하고, 밀가루와 유제품, 육류, 설탕 섭취를 줄이고 있어요. 특히 밀가루를 먹지 않으면 먹을 수 있는 맛난 음식이 거의 없어서 샤부샤부나 솥밥을 자주 해 먹습니다. 저녁에는 복근과 엉덩이 운동을 합니다. 여유가 있으면 림프 마사지를 하고, 머리를 감을 땐 트리트먼트를 해주고, 샤워 후에는 두피에 좋은 스프레이와 헤어 에센스를 바릅니다. 자기 전에는 가습기를 틀고, 잠은 7시간 정도 자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일이 많으면 앞서 이야기한 모든 것을 안 합니다. (웃음)
‹A Winter Watermelon›, 2019, Poster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건강한 삶에 관심이 많아요. 밀가루·설탕·육류 줄이기, 차 마시기, 달리기 등이죠. 특별한 질환을 앓고 있진 않지만, 지금까지의 청춘을 작업에만 바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를 가꾸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건강을 위해 시간을 따로 내기보다는, 나쁜 습관을 고치는 일에 열중합니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과 생각도 건강해지고, 하루를 긍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작업에 열중할수록 제 삶을 잘 가꾸지 못합니다. 작업뿐 아니라 자기 삶을 챙기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단체생활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나는데요. 여럿이 함께하는 일에서도 좋은 작업을 위해서 개개인을 혹사할 수밖에 없어요. 이때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 또한 동시에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물과 작업 과정 사이에서 늘 딜레마를 느껴요. 멋진 디자이너, 멋진 작업을 소망하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을 해치고 스트레스 때문에 불행해진다면 작업 결과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물론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힘들었던 만큼 성취감이 있지만, 대단한 성과가 행복한 삶을 만들 때 어느 정도로 기여할지 고민이 들죠. 훌륭한 아트 디렉터나 디자이너가 모두의 건강한 삶을 챙겨주는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두 기로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네요.
‹Pyeongyang Neangmyeon›, 2022, Poster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내는 불나방 스타일이라서 금방 에너지를 소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 욕망의 그릇이 커서 쉽게 만족하지 못해요. 계속해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다 보니 남들보다 슬럼프가 자주 오는 편이고요. 열과 성을 다해 많은 것을 성취하는 동시에, 이뤄낸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허망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것에 에너지가 있듯, 부정적인 것에도 에너지가 있다고 해요.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상태를 슬럼프로 여기지만, 슬럼프는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불행을 겪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듯이 슬럼프도 자기가 만족하는 삶을 얻기 위해 거치는 당연한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감정의 굴곡이 반복되는 것처럼, 슬럼프도 당연히 찾아올 수 있고, 여러 번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울할 때 친구의 공감과 위로를 받으면 기분이 나아지듯이, 슬럼프가 왔을 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따뜻한 글을 읽으면 극복하는 데 도움이 돼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나 자신 또는 내 작업이 존중받지 못할 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교묘해서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렵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고의가 아닐 테니 괜찮다’고 타협하면서 그 순간을 넘기곤 했어요. 어느 날 이런 상황을 평소처럼 아무 일 없듯 넘기려고 했을 때 가까운 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작업이 불쌍하다. 네 작업이 자식이면, 너는 자식을 버린 거야.” 약간은 과장해 말한 감이 있지만, 저와 제 작업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말이라 울컥했습니다. 저는 괜찮은데, 저와 함께 있는 것의 가치까지 하찮게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왔을 때 당당하게 말하고, 자신을 지키는 힘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빠르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긴가민가하는 상황을 그대로 넘기게 되면 마지막에는 항상 후회가 남는 듯해요. 돌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여기고 묵묵히 해나가면, 성취 후에 찾아오는 뿌듯함은 두 배가 되어 찾아온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저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추진력이 좋아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시도하는 타입인데요. 대신 무슨 일이든 쉽게 질려하는 성향이라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지속하며 마무리 짓기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짧은 작업 주기를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고, 하고 싶은 일 목록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다시 꺼내어 시작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Food/Sylvain› poster series, 2021, Poster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할머니가 되어도 닮고 싶은 작업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꾸준히 작업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쌓인 작업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롭게 지내고 있길 소망합니다.
Artist
손아용은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이미지 메이커, 개발자다. 주로 브랜드, 웹, 인쇄물 등 그래픽 디자인 전반에 걸친 작업과 개인 시각 예술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다. 2022년 플라츠2에서 개인전 «Yellowish Red Fruits»를 열었고, «2019 타이포잔치 : 타이포그래피와 사물»(2019, 문화역서울284), «ORGD 2019: 모란과 게»(2019, 원앤제이 갤러리)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디자인 개발 스튜디오 1-2-3-4-5의 창립자이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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