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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애니메이션 속 여성들이 캔버스로 소환되기까지

Writer: 김민희
김민희,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캔버스,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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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민희 작가는 1980~90년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작업하는 페인터입니다. 얼마전 열린 전시에서는 음반 재킷 속 일본 애니메이션 여성 캐릭터를 캔버스로 옮겨오고, 전시도록 대신 캐릭터에 어울리는 음원을 모아 앨범으로 만들었어요.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비트는 측면에서 페인팅 작업의 매력을 느끼는 작가는 과거로부터 미래를 바라보거나, 미래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볼 때 다가오는 감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데요. 이런 퓨트로futro한 느낌을 주는 작업과 뒷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페인터 김민희입니다. 저는 1980~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에서 작업 소스를 주로 가져와 작품에 차용하는 편이에요. 과거로부터 미래를 바라보거나, 반대로 미래로부터 과거를 바라볼 때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회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작년에 열었던 개인전 «이미지 앨범Image Album»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요. 

여성 재현의 전형성을 비틀기 위해 아니메의 문법을 전유한 작업으로 두 번의 개인전을 치르고 난 후, 다른 시도를 하게 됐어요. 실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잘려 나와 웹을 떠도는 이미지에 주목했죠. 기획자 김세인 님과 함께 전시 콘셉트와 구성, 레퍼런스를 구체화하고 작법을 조정하며 기획한 전시가 바로 «이미지 앨범»이에요. 이미지 앨범은 어떤 서사물의 세계를 표현한 음반을 가리키는 용어에요. 1980~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과 관련 서사물의 파생 상품으로 정말 많이 만들었던 음반 유형의 하나인데요. 당시 그렇게 나왔던 음반의 재킷 이미지 속 여성들에 얽힌 전시를 선보였죠. 기획 단계에서의 리서치에 따라 현재와 공명하는 듯한 몇몇 캐릭터를 선별했어요. ‹메가존 23›에 등장한 VR 아이돌인 ‘토키마츠리 이브(時祭イヴ)’가 대표적이에요. 저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추출해 디지털 필터로 가공하고, 그 결과를 캔버스로 옮겨 오일 페인팅의 물성을 부여했어요. 각 캔버스 표면은 현재적인 존재로서 저를 찾아온 캐릭터와 제가 접촉한 기록인 동시에, 가상의 ‘원곡’에 대한 앨범 아트 워크이기도 해요. 그 원곡이란 다름 아닌 캔버스에 소환된 캐릭터 본인이죠. 앨범 아트가 음반의 내용물을 표상하지만, 내용물 그 자체와 같을 수 없듯이, 우리도 그 캐릭터를 표면적인 서사 바깥의 영역까지 ‘전부’ 접하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런 공백 또는 간극 같은 게 «이미지 앨범»의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감상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채워나가길 바라며 전시가 설정해놓은 일종의 틈이라고 할 수 있죠. 작가인 저 자신도 «이미지 앨범»의 관객이었고, 전자음악가 최영Yeong Die 님을 전시에 섭외해 그런 부분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어요. 1980년대 일본에서는 ‘디지털 트립Digital Trip’이라는 음반 시리즈가 유행했어요. 기존의 사운드트랙이나 이미지 앨범의 음악을 당시 새롭게 각광받던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재구성한 음반이죠. 저와 김세인 님은 «이미지 앨범»을 위한 음악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곡에 대한 신시사이저 어레인지처럼 기능하길 바랐어요. 가상의 ‘원곡’을 에워싸고 제 그림과 최영 님의 음악이 공전하듯 전시를 연출하려고 했던 건데요. 최영 님과 미팅을 가질 때 디지털 트립 시리즈에 관해 말씀드렸더니, 그렇지 않아도 마침 적절한 신시사이저를 샀다며 웃으시곤 단기간에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주셨답니다. 

김민희,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캔버스,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붓을 통해 회화로 재탄생시킨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익숙하게 봐왔던 납작한 2D 캐릭터를 회화의 물성으로 두껍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스크린 속 과거의 이야기에 갇힌 캐릭터가 제 캔버스로 넘어와 새로운 내러티브를 위해 부활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아이폰이나 맥북처럼 작은 스크린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때가 많았는데, 이런 경험을 캔버스의 큰 화면으로 옮겨낼 때 따라오는 희열도 커요.

디스플레이 속 캐릭터에 컬러나 질감 등 이미지적인 요소를 추가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이미지 앨범»은 각 캐릭터의 원본성이 치환된 가상의 원곡과 실제로는 없는 그 원곡의 어레인지에 상응하는 음악 사이의 어떤 공간에서 유희하는 작품들의 전시였어요. 그때는 특정한 앨범 아트 기법을 참조한 필터링 과정에서 이미지와 제가 서로 닿고 있다는 감각에 주로 집중했던 것 같아요. 필터링은 크롭한 이미지 전체에 이루어지는 것에 가까웠는데, 화면 속 캐릭터의 외형을 의식적으로 건드리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과거에서 상상한 미래인 동시에, 미래로서의 현재에서 과거이기도 한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저 자신이 더 개입한 이미지를 시도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1980~1990년대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크롬이나 메탈, 유리, 플라스틱을 연상시키는 질감을 캐릭터 신체에 입혀보기도 하고, 원본 캐릭터에 없던 요소를 직접 그려 넣기도 해요. ‹KARA›가 대표적인 경우인데요. 이 작품의 캐릭터는 원래 중세풍 판타지인 ‹로도스도 전기›에서 가져온 인물이지만, ‹KARA›에서는 기계적 보철물 같은 마스크를 쓰고 캔버스에 나타난답니다.

김민희,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캔버스,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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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무수한 장면 중 ‘이 장면을 그려야겠다’ 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저는 여성 캐릭터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장면을 선택하곤 하는데, 주로 눈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제 주변 여성에게 많이 보았던 표정과 눈빛이라고 느껴지면 주저 없이 고르죠.

캔버스 측면에 작가님의 사인이 아니라 캐릭터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표기한 것도 독특하고 재미있었어요. 이런 시그너처 작업에 대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이미지 앨범»의 기획 단계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입니다. 평소 캔버스를 비가시적인 내용물이 담긴 ‘박스’처럼 여기며 작업하는 제 생각에 대한 김세인 님의 응답이었어요. 일체의 캡션이나 플로어 맵을 전시에서 배제하는 대신 마치 음반 라벨링처럼 모든 캔버스 측면에 캐릭터의 이름을 일률적으로 새겨놓자는 생각에 저도 동의했죠.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서명’ 개념을 재해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린 사람의 서명이 아니라 그려진 대상의 서명이라 해야 할까요. «이미지 앨범»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참여한 오가영 님이 디자인한 레터링을 제가 캔버스 측면에 옮겨 그렸습니다. 멋진 레터링 덕분에 저도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어요. 다만 해당 전시 다음에 발표한 작품은 음악적 문맥을 강조하지 않는 터라 옆면을 타이포그래피로 처리하지 않고 있어요.

김민희,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캔버스, 애니메이션

전시에 공개한 작업 중 작가님의 최애 작업 혹은 캐릭터를 꼽아볼 수 있을까요?

«이미지 앨범»에는 두 명의 ‘아스카ASUKA’가 존재하는데요. 저는 파란 아스카를 가장 좋아해요. 이 캐릭터는 일본 여성 작가인 타카구치 사토스미의 ‹꽃의 아스카 조직› 속 주인공을 참조했어요. 아스카는 폭주족이 지배하는 미래 세계의 정의로운 ‘스케반(スケバン)입니다. 저는 이 캐릭터가 무언가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의 표정을 좋아해요. 의지 넘치면서도, 알 수 없는 공허나 슬픔이 느껴지는데, ‹꽃의 아스카 조직› OVA 오프닝 송인 ‘14세의 바이올런스(14才のバイオレンス)에 담긴 감정을 미묘하게 머금은 듯한 얼굴이에요. «이미지 앨범»을 계기로 좋아하게 된 캐릭터와 노래인데, 며칠 전에도 들었답니다!

작업을 다채롭게 바라보기 위한 포인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이미지 앨범»을 전후로 지금까지 원본 캐릭터를 두고 계속 작업하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해당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접한 후 그림을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해드려요. 다만 원본 캐릭터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캐릭터와 제 그림 사이의 간극을 각자의 상상을 통해 가득 메워보시면 어떨까요. «이미지 앨범»에 출품한 작업은 최영 님의 앨범 ‹Parallel Cosmo›와 함께 감상하시면 좋답니다. 전시장에 틀어두었던 열 개 트랙의 음악을 담은 앨범인데요. «이미지 앨범»의 전시 도록을 대체해서 발매했어요.

김민희,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캔버스,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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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신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생활 속 스테레오타입이 있으신가요?

‘아침형 인간’이나 ‘저녁형 인간’이요. 하루의 작업 루틴을 꼭 지키고 싶어요. 어떤 방식이든 규칙적으로 살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걸 점점 크게 느끼거든요. 작업적으로든, 작업 외적인 일상으로든요. 하루에 충당할 수 있는 작업량을 정하고 해내는 게 목표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작업이 기대고 있는 이 시대의 스테레오타입, 작가님의 작업을 유효하게 만드는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유행하고 있는 단어지만, 저는 ‘퓨트로futro’라는 말을 좋아해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구분을 초월한 표현이기도 하죠. 저는 ‘레트로retro’가 아닌 미래future를 중시하는데요.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곤 하는 이미지의 원본으로부터, 미래적이되 현실적인 어떤 힘을 끌어내는 게 작업을 하면서 지향하는 바입니다.

김민희,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캔버스,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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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준비하시면서 어려운 점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해요.

그림에서 완성이라 간주할 타이밍을 자꾸 놓친 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어요. 사실 완성은 이미 되어있었는데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작가와 그림 간의 거리 두기가 참 중요하다고 느꼈던 시기였어요. 그림을 너무 안 봐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계속 붙들고 있는 것도 안 되겠더라고요. 적당한 시간 조율과 눈의 리프레시가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각자만의 ‘버티는 힘’이 존재할 거예요. 성과에서 오는 성취감, 다른 작업자와 이루는 다양한 형태의 교류, 긍정적인 피드백 등 말이죠. 제게도 동일하게 버티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미술에만 몰입하면 결국 버티기 힘들어지더군요. 뇌의 몇 퍼센트를 꼭 여유롭게 설정한 후 눈을 돌릴 수 있는 다른 지점을 모색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버티고 있다고 믿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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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김민희는 회화, 만화, 애니메이션에 걸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내러티브가 탈각한 이미지를 가져와, 정지된 화상 혹은 영원히 반복되는 프레임으로서의 ‘회화’에 어떻게 반입할 수 있는지 실험 중이다. «이미지 앨범»(2021), «고스트 비키니»(2020), «오키나와 판타지»(2018) 등 개인전을 세 차례 열었고, «Flowers»(2021), «매킨토시 킨트»(2021) 등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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