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작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제 작업은 타인의 낯선 신체에서 발견하는 감정과 그에 따른 반응으로 마주하는 낯선 자아의 순수함에서 시작합니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 개념인 집단 무의식 속 자기(self)를 찾은, 혹은 무의식의 그림자를 팽창해 기형적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이들의 피상적 현실성을 제거하며 관람자가 자신을 이입할 수 있게 의도합니다. 그림 속 인물을 통해 자기 삶에 확신과 사람을 가진 삶을 살고 싶은 제 의지를 드러내며 그 자체를 연구합니다. 그림 주제인 정물과 인물은 자기만의 시간의 흐름에서 노화 혹은 침식하며 시시각각 본질이 바뀌는데, 그들의 시간을 정지해 캔버스 프레임에 고착 시켜 반복적인 단일 상태를 부여합니다. 자신만의 서사에서 탈피한 존재의 순수성을 연구하고 독립적인 단일 이미지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 확인하며 회화의 현대성을 모색합니다.
작업에 나타나는 강렬한 덩어리 형태에 궁금증이 듭니다.
제가 보았던 대상과 이미지의 현상인데요. 그것은 반사된 빛이며, 공기 중의 먼지이고, 핏자국입니다. 현상의 피상적 묘사를 단순화하고 왜곡해 이성으로 해석하기 전에 이세계적인 시각 경험을 주려 합니다. 이런 형태는 디지털 자료로 보관할 때 생기는 노이즈를 회화로 옮겼을 때의 효과이기도 합니다. 그것들 또한 제가 본 이미지의 생명 유지를 위한 일종의 장치이기 때문에 대상의 현상으로 간주합니다.
‹집착의 잔혹성에 관한 연구 3-1› © 강준홍
‹‹다리미가 있는 풍경› © 강준홍
‹집착의 잔혹성에 관한 연구 3-1› © 강준홍
‹다리미가 있는 풍경› © 강준홍
‹집착의 잔혹성에 관한 연구3-1›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페인팅 노블의 첫 장면으로서, 꽃으로 인물을 찔러 피가 튀는 장면입니다. 꽃이 집착의 산물로 변했을 때의 잔혹함을 보여주고 싶었죠. 역설적으로 그것마저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걸 밝히고 싶었습니다. 다른 작업인 ‹다리미가 있는 풍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다리미가 있는 풍경」을 읽고 텍스트에 나오는 상황과 모닥불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구글링해 조합한 그림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쥰코가 모닥불을 보며 자신을 죽음의 경계에 두는 순간 그녀의 시각을 재연해보고 싶었습니다.
매력적인 색과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있을까요?
최선의 형태와 색이 나올 때까지 말리고 덧칠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작업은 항상 몇 번씩 색이 바뀌고 안료가 덧입혀지는데요. 예전에 앙리 마티스에 관한 책에서 그가 그림에서 현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번 덧칠했다는 글을 읽고 비슷한 작업 습관을 지니기 시작한 것 같아요.
피사체를 캔버스로 옮길 때 대상 선정 기준이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항상 존재에 관해 고민합니다. 저 자신뿐 아니라 살면서 마주하는 오브제들, 심지어 온라인상의 이미지까지 무엇을 대상의 온전한 속성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애착과 자유의지로 이끌어가는 진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그리고 매 순간 변화하는 제 감정과 생각, 신체를 두고 어떤 것을 본질이라 할 수 있는지 정의할 수 없었습니다. 온전한 진짜 삶을 살아보기 위해 그것을 탐구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그 기록을 그림으로 남기고 있는데요.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타임라인에서 항상 가변적인 상태라, 본질적이라고 정의할만한 시간대에서 독자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대상의 순간을 캔버스에 담습니다.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그림 속 인물은 피상적인 현실성을 제거당한 채 만화적 데포르망에 접목됩니다. 관람자는 그림 속 인물에 자아를 대입하며 그들의 인상에서 자신을 볼 수 있죠. 그렇게 작품을 관람하는 다른 이들과 하나의 보편성을 기반으로 유대를 형성합니다. 작품 관람 시 이런 경험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창작자로서 지니는 태도나 관점이 궁금합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럼으로써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저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저는 질투라는 감정을 이용합니다. 좋아서 그림을 그리지만, 그 행위 자체가 항상 좋을 수는 없죠. 좋아하는 만큼 집착도 생겨서 원하는 방향으로 그림이 풀리지 않을 때는 화도 나고 자책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요즘 작가들의 작업을 보며 질투를 한답니다. 제게 꽤 좋은 자극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느낌은 없습니다. ‘저런 좋은 작품을 만들다니 꽤 멋있잖아? 속으로 백 번 정도 외치며 전시장을 나오면 얼른 그림을 다시 그리러 가고 싶어지죠. 하루빨리 저만의 멋있는 작품과 함께 나타나고 싶어서요. 창작물을 향유하며 창작할 수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Artist
강준홍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회화 작가다. 사물과 사람의 존재에 관해 연구하며 유화와 오일 파스텔을 사용해 단순한 형태와 평면적인 색으로 표현한다. 중앙대학교 공간연출과를 전공하고 비디오 아트 및 설치 미술 등 다방면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