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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그래픽 디자이너는 작가일까요?

Writer: 유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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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유현선 디자이너는 ‘그래픽 디자이너 = 작가’라는 수식에 고개를 조금 갸웃거립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업무가 주어질 때 비로소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영감을 떠올리는 것 대신 문제를 파악하는 일을 자기 작업의 첫걸음으로 꼽는 이유이기도 해요. 디자이너가 어떤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지 작업에 드러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유현선 디자이너. 그래서 로고를 만들 땐 브랜드의 직관적인 감각을 시각화하고, 전시를 구성할 땐 기획 의도를 명확히 드려내려고 한답니다. 작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뾰족한 작업을 하고 싶은 유현선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워크룸과 파일드의 그래픽 디자이너 유현선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패션 디자이너 혹은 건축가를 꿈꿨는데요. 결국 그래픽 디자이너로 마음을 굳혔죠. 선화예술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했고, 그렇게 자연스레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워크룸이 자리한 건물은 0층에 더북소사이어티, 1층에 워크룸과 양장점, 2층에는 워크룸, 그리고 3층에 워크룸프레스와 슬기와민이 입주해 있습니다. 저희끼리는 ‘디자인 타운 같다’고 말하는데요. (웃음) 저는 주로 2층에서 시간을 보내요. 이전 사무실과는 다르게 편안히 쉴 수 있는 소파를 마련한 라운지 공간이 생겨서 좋아요. 하루 생활 패턴을 크게 바꾼 요인 중 하나입니다. 라운지 공간의 책장 구성은 저와 워크룸의 김형진 실장님이 번갈아 가며 큐레이션하고 있어요.

작업실유령 건물 2층의 워크룸 사무실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영감’이라는 단어는 뭐랄까요… 좀 어색해요. 영감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아이디어의 시작점’인 것 같아요. 예술가와 작가는 자기가 전개하는 작업에 대한 동기를 가지고 있겠죠? 반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업무가 주어지면 그때 작업을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문제 파악이 작업의 첫걸음이에요. 해당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파악하고, 어떤 태도로 풀어나갈지 결정합니다. 저는 태도가 없는 디자인을 가장 경계해요. 작업마다 제가 어떤 걸 시도하려 했는지 분명하게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업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우선 ‘노플라스틱선데이NoPlasticSunday’의 리브랜딩 작업을 소개하고 싶어요. 노플라스틱선데이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소재나 물건으로 만드는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노플라스틱선데이가 사용하는 소재인 플라스틱은 ‘모양을 만들거나 성형할 수 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πλαστικός)’에서 유래했더군요. 저는 변형이 쉬운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에서 배리어블 폰트를 떠올렸습니다. 서체 디자이너 윤민구 님과 함께 명확하고 건조한 형태의 미디움(100) 웨이트부터 강하고 개성 있는 형태의 헤비(1000) 웨이트까지 변하는 폰트를 개발하고 로고와 그래픽 전반에 적용했어요. 로고는 긴 이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단어 사이를 띄지 않았고, 단어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구분했습니다.

노플라스틱선데이 로고와 배리어블 폰트

노플라스틱선데이 로고와 배리어블 폰트

노플라스틱선데이 로고와 배리어블 폰트

요가복 브랜드 ‘무브웜movewarm’의 리브랜딩 작업도 기억에 남아요. 브랜드 이름에서 느껴지는 직관적인 감각을 시각화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M’과 ‘W’ 글자 본연의 형태가 가진 역동성을 살려 로고를 제작했습니다. 글자의 속을 비우고 가장자리 선만 남겨 역동성을 더욱더 강조했어요. 심볼의 ‘W’를 행택(hang tag)의 형태로 풀어내 리듬감 있게 글자를 배치했습니다.

무브웜 행택, 라벨, 옷에 적용된 자수

무브웜 행택, 라벨, 옷에 적용된 자수

무브웜 행택, 라벨, 옷에 적용된 자수

2022년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을 꼽자면 보고타국제도서전과 서울국제도서전을 위해 진행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 기획과 디자인이 아닐까 해요.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매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공모전을 개최해 총 10권의 책을 선정하는데요. 지난 3년간 선정한 책 30권으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책을 ‘읽는다’가 아니라 ‘전시한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사실 책은 대량 생산 상품이잖아요. 적게는 수십 권부터 많게는 수천 권이 서점에 놓여 있죠. 책을 전시의 형태로 보여주는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가 무척 중요한 지점으로 떠올랐어요. 저는 책 각각의 장점을 드러내기 위해 ‘확대’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선정된 책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아름답다’고 인정받은 책이잖아요. 그래서 책을 약 3m 크기로 확대해 촬영하고 광고 전광판처럼 만들었어요. 작은 사물을 확대해서 디테일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촬영은 김경태 작가님과 함께했고,  사진을 공간에 배치하는 방법은 포스트 스탠다즈의 김민수 실장님과 구체화했습니다. 커다란 책 사이로 걸어 다니는 관객이 직관적으로 책 디자인을 살펴보는 장면이 전시장에서 연출되는 걸 바라보며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서울국제도서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 전경, 2022

일민미술관에서 진행한 «언커머셜: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의 그래픽 디자인 작업도 재밌게 했어요. 전시는 ‘1980년대 이후 한국 상업사진의 스타일과 변화를 돌아보는 것’이 주제였는데요. 평소 패션 사진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미지 프로젝트 그룹 파일드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많이 가던 전시였죠. «언커머셜: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는 상업사진을 미술관으로 가져와 예술성을 살피는 게 전시 목적 중 하나였는데요. 저는 상업사진의 상업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어요. 영문 제목 ‘UNCOMMERCIAL’의 C와 O, 그리고 C와 I를 변형해 합자로 만들어 저작권 기호 혹은 등록 상표 기호처럼 보이도록 만든 이유입니다. 그리고 합자를 폭이 좁은 장체와 조합해, 이런 지점이 더욱 두드러지도록 설계했습니다.

«언커머셜: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 아이덴티티 디자인, 2022

«언커머셜: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 아이덴티티 디자인, 2022

책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의 도록은 책 표지에 그의 신작 ‹야성적 충동›의 스틸컷을 사용했어요. 단순히 표지 작업에만 그치지 않고, 책 배면에도 표지 이미지가 연결되도록 인쇄했죠. 국내에는 측면 인쇄를 작업하는 인쇄소가 거의 없어서 제작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또 안규철 작가의 책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개정판도 작업했어요. 2014년 초판 이후 8년간의 작업과 글, 평론을 더해 개정판을 출간했는데요. 개정판 디자인 기획은 초판과의 연속성에서 시작했습니다. 초판의 뒤표지에는 안규철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 흑백으로 실려있는데요. 개정판에는 반대로 강경희 포토그래퍼가 촬영한 안규철 작가의 컬러 사진을 실었어요. 앞표지는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한 감상을 점으로 이루어진 폰트와 타공으로 시각화했습니다. 타공의 크기가 톰슨 가공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작아서 레이저 커팅을 활용했던 기억이 나요. 이외에도 «미스테리아»와 월간지 «출판문화»의 디자인 작업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표지, 2022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초판과 개정판 표지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초판과 개정판 표지

«미스테리아» 표지

«미스테리아» 표지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취미를 묻는 질문에는 항상 ‘검색’이라고 답해요. 검색은 근무 중에도, 퇴근 후에도, 이동 중에도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검색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웃음) 캐나다 건축 센터에서 2022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전시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를 진행했는데, 전시 구성을 살펴보니 정말 흥미롭더라고요. 전시는 소비가 도시의 형태를 어떻게 형성하고 바꾸는지 살펴볼 수 있는 세 파트로 나뉘는데요. 마지막 파트에서는 온라인 편집숍 SSENSE와 함께 에필로그 영상을 제작했어요. 저는 SSENSE를 전시의 일부로 끌어온 덕분에 훨씬 살아있는 전시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소비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패션인데 그 중심에 서 있는 브랜드가 SSENSE에 대거 입점해 있으니까요.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동료.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워크룸과 파일드의 구성원은 제게 가장 이상적인 동료예요.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지점을 채워주거든요. 파일드는 대학생 때 만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만든 그룹인데요. 그래서인지 처음엔 좋은 동료와 함께한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랐어요. 워크룸에 합류하면서, 잘 맞는 동료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처절하게 깨달았죠. (웃음)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산책하듯 여유로운 태도로 살아가려 해요. 조급한 태도를 갖거나, 어떤 일에 너무 몰두하면 놓치는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도 마찬가지예요. 빠른 달리기보다 여유로운 걸음에 가까웠으면 좋겠어요. 제 태도가 작업을 통해 비춰지기를 바랍니다.

국립한글박물관 «근대 한글 연구소» 참여작 ‹ME뉴板›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태도를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창작자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분명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인플루언서도 창작자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인플루언서의 취향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팔로우 버튼을 누르니까요. 그래픽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예요. 그래픽 디자이너의 취향과 결정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일을 의뢰하는 거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모호한 태도는 자신의 취향을 무디게 만들고, 더 나아가 뾰족한 작업을 할 수 없게 저해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저도 항상 지키지 못하는 점이긴 한데요. (웃음) 창작을 지속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사소한 듯 보이는 일상을 잘 챙기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기반이 돼요. 규칙적으로 식사를 챙기고, 쾌적한 수면 환경을 만들고,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잘 맞는 향수를 사용하고, 원하는 영화를 보러 가고, 깨끗한 공간을 위해 청소하는 행위죠. 결국 그래픽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일상과 관련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자기 생활을 잘 챙기는 사람이 작업에 더 깊은 이해도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전주국제영화제 «100 Films 100 Posters» 참여작 ‹미국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예쁜 것’을 만들고 싶을 때 생각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Artist

유현선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스튜디오 에프엔티(fnt), 에이에이비비(AABB)를 거쳐 2020년부터 워크룸(Workroom)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포토그래퍼 네 명과 함께 이미지 프로젝트 그룹 파일드(Filed)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책, 영화, 노래에서 읽거나 들은 문장에 해석을 더한 사물을 제안하는 브랜드 카우프만(Kaufman)을 공동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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