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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세상에 없는 형태를 소환하는 법

Writer: 수린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수린은 디지털 기반으로 작업하며 3D 프린팅, UV 프린팅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작가입니다. 컨버스, 디키즈와 같은 패션 브랜드부터 바밍타이거, 카모 등 다채로운 뮤지션과 협업을 이어왔는데요.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대상은 바로 석탑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갔을 때 석탑 주위를 돌며 무언가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죠. 에너지를 가진 형태를 만들고 싶은 계기가 되었죠. 최근 개인전에서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석탑을 선보였답니다. 에너지 넘치고, 굳건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수린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Family›, UV Print on Canvas, 68.00 x 91.00 cm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형태를 현실로 꺼내오는 작가 수린입니다. 반갑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유년 시절부터 미술에 대한 집착이 강했어요. 평생 그림 그리는 일을 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해보자 마음먹은 때는 제품 디자인을 배우던 대학 시절이었어요. 불현듯 ‘지금 내가 배우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바쁜 대학 생활에서 시간을 쪼개 나만의 작업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 수린 인스타그램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구가 별로 없어요. 대신 컴퓨터 한 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오브제와 그림이 집안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영감을 특별한 어딘가에서 얻진 않아요. 저 자신을 깊이 파고들 때 파생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하죠. 끊임없이 내부로 들어가서 마주치는 심상이 작업의 구심점이 됩니다. 그래서 마치 수련하듯 매일 스케치해요. 내면의 끝부분까지 산책하듯 걸어가며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서요.

‹ANDY›, UV Print on Canvas, 60.00 x 84.00cm

‹Receiving›, UV Print on Canvas, 72.20 x 91.00 cm

‹ANDY›, UV Print on Canvas, 60.00 x 84.00cm

‹Receiving›, UV Print on Canvas, 72.20 x 91.00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스케치를 많이 하다 보면 저절로 심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요즘 내가 표현하고 싶은 에너지가 뭘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작업 노트를 작성하기도 하죠. 창작에서 제일 중요한 건 ‘습관 들이기’ 같아요. 창작할 때 자기만의 구상 방법을 반복하고 체화하면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창작자가 됩니다.

좌측 상단부터 첫 번째 줄 ‹기억속에서›, ‹payphone›, ‹blue volcano›, 두 번째 줄 ‹lungs›, ‹shell›, ‹untitled›, 세 번째 줄 ‹Belle(Orange)›, ‹Aurora›, ‹goldie›,

‹12 Mediums›, UV Print on Canvas, 282.00 x 192.90 cm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대형 조각 작품 중 ‹Joyful Korea›를 소개하고 싶어요. 제 시그니처로 활용하는 형태와 다보탑 및 석가탑을 결합한 작품입니다. 저에게 석탑이란 부모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어린 시절 향수의 뿌리를 상징해요. 부모님과 함께 경남 지방의 석탑을 보고 자라서 석탑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있거든요. 제가 문화적 소양을 쌓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영향이 무척 커요.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석탑 형태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석탑에 얽힌 추억을 재해석했어요. 어릴 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간 적이 있는데요. 석탑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기도하는 사람들과 기물 앞에 서서 석탑을 향해 무언가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거든요. 그때부터 에너지를 가진 형태나 기물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세상에는 존재 자체만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형태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형태를 만들면서 제 방식대로 재해석한 현대적인 석탑을 구상하고 싶어요. 제가 만든 석탑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

‹Joyful Korea›, 3D Printing, 115.00(W) x 123.00(L) x 169.00(H) cm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사람 사이의 감각적인 에너지는 인간끼리 주고받는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물체를 통해서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컴퓨터는 모델링 과정에서 파일을 ‘무게가 없는 덩어리’라고 인식하지만, 이를 통해 상상은 실제 사물이 되어요. 흙이 쌓여가듯 플라스틱을 점층하면서 물질성이 탄생하죠. 3D 프린팅에서 켜켜이 쌓인 결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FDM 방식을 사용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과정입니다. 작품이 태어나는 과정 자체를 강조하고 싶거든요. 또 가상과 실재로의 여행이 뜨거운 관심사로 자리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제 작업을 통해 ‘신문물’의 특성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우리 삶에 어떤 이야기를 던져줄 수 있는지, 그 의미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devile›, 3D Printing, 30.00(W) x 25.00(L) x 22.50(H) cm

‹Be Happy, Be Rich›, 3D Printing, 18.50(W) x 16.00(L) x 28.00(H) cm

‹새로운 시작›, 3D Printing, 31.00(W) x 12.00(L) x 28.50(H) cm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불만족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아직 많달까요. (웃음) 다음 조각 작업은 초대형으로 만들거나, 금속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작업 일정에 일상을 맞추다 보니, 루틴을 정해서 일상을 보내기 어려워요. 작업에 모든 에너지와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점은 좋지만 대신 일상이 피폐해지더군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엔 의식적으로라도 성실하게 자신을 돌보려 해요. 밥도 제대로 먹고, 잠도 꼬박꼬박 챙기면서요. 아직 부족하지만 ‘잘 지내기’에 관한 정보를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뭘까 고민하고 있어요. 틱톡이나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저는 보통 무언가를 만드는 데서 희열을 주는 취미가 좋아요. 그래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답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편애가 심해요. 외골수처럼 유독 하나에 집중하는 성격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내내 오타쿠였어요. 무언가에 빠지면 끝까지 파고들었죠. 집착하는 모습이 작업에 많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POWER OBJ: SURIN SOLO EXHIBITION», 2023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우선 푹 자려해요. 아니면 미술관에 가거나 뻥 뚫린 광활한 곳, 자연을 찾아가기도 하죠. 갤러리와 자연의 공통점은 제게 오랜 시간 편안함을 준다는 거예요. 저만의 세상에 갇힌 저를 잠시 꺼내서 생각을 환기하도록 도와줍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곧 강남에 새로운 작업실이 생겨요. 그래서 집도 강남 근처로 옮겨야 할지 고민입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없는 걸 있는 척하는 게 제일 멋없고,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도 불필요한 일이죠. 또 성실함과 요행을 바라지 않는 태도를 추구합니다. 창작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Little Birds›, Lenticular Print on Canvas (Framed), 84.50 x 119.90 cm

«POWER OBJ: SURIN SOLO EXHIBITION»,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제가 만든 창작물에 얼마나 큰 사랑을 품는지 여부가 중요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쉽게 불행해지고 작가 생활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뻔하디뻔한 작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사랑을 궁리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고, 멋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자신의 개성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해야 하죠. 저는 어릴 때 소위 ‘오타쿠’였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로봇 만화나 레슬링 만화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친구들이 별로 없었어요. 아주 옛날엔 남들과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 시절이 있었기에 창작에 대한 고독함에 익숙해졌죠. 제가 만드는 작품, 그리고 제 취향은 스스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지속하는 꾸준함을 통해 시대를 거스를 역작이 분명히 탄생한다고 믿어요.

‹여자›, 3D Printing, 192.00(W) x 327.00(L) x 113.00(H) cm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창작자 이전에 에너지 넘치고, 굳건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어요.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는 석탑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달까요. 또 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석탑이 많잖아요. 석탑의 나라답게 석탑 같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혐오에 대한 단어 사용이 늘어난 요즘입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식이 쏟아져나와요. 가까운 미래에는 슴슴하더라도 영양가 있는 정보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에 대한 단어가 더 많아지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Artist

수린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아트워크를 그리면서 이를 3D 프린터로 인쇄해 현실에 구현한다. 컨버스, 디키즈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를 비롯해 바밍타이거, 카모 등 다양한 뮤지션과 협업했다. 단체전 «Circuit Seoul #2 Omnipresent»(루프스테이션 익선, 2022), «압점시각»(의외의조합, 2022)에 참여했다. 최근 개인전 «POWER OBJ»(리얼레이션 스페이스, 2023)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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