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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과 불만족을 넘어, 계속

Writer: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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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소연은 반복이라는 가장 단순한 행위를 통해 시간과 힘, 그리고 살아 있음의 감각을 포착합니다. 선을 긋고 지워도 자국이 남듯, 그는 되풀이되는 움직임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퇴적하듯 쌓아 올려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쉬움에 매달려 수정하기보다 다시 다른 선을 긋는 선택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도 닮았습니다. 같지만 각기 다른, 그렇기에 결코 같을 수 없는 선택이 겹쳐 또 다른 깊이를 만들어내요. 맑은 날과 흐린 날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삶을 이루듯, 그의 작업 역시 단일한 의미로 귀결되기를 거부한 채 오롯이 앞에 놓입니다. 그 때문에 작업은 끝을 향해 닫히는 구조라기보다, 시간을 관통하며 이어지는 상태에 가까워요. 영겁의 시간을 건너온 퇴적물들은 작가의 손을 거치며 다시 한번 축적되고, 미묘한 빛깔과 깊이를 머금은 표면은 보는 이를 붙잡죠. 그 감동은 어쩌면 수많은 손짓으로 새겨진 삶의 흔적 때문은 아닐까요. 매 순간을 성실히 마주하며 오늘치의 실천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작가. 김소연이 펼쳐 보이는 느리고 진득한 시간의 형태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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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Moment : Rainbowcube›, 2024-2025, 트레팔지 위에 연필, 나무, 가변설치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시각예술가 김소연입니다. 반복적 행위 내재한 힘과 시간을 포착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단순한 움직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몸과 정신, 물질, 시간을 소진할 때 생성되는 현상, 흔적, 부산물들을 이용한 설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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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Mountain›, 2021-2025, 콩테, 지우개,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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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ding Ashes›, 2025, 숯가루, 밀가루 풀, 가변설치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창작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문득 왜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 이 세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었어요. 그런 질문을 곱씹다 보니, 삶에 의미가 없는 이유는 오히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는 생각에 닿게 되더라고요. 살아가며 의미는 계속 변하겠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지을 수 있을 때만큼은 분명 자유롭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세상이 한층 더 다채롭게 보이기 시작하니,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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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프로필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창 너머로 보이는 산의 풍경에 한눈에 반해 선택한 공간이에요. 기존에 사용하던 공유 작업실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며 급히 옮기게 되었는데, 아직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아 조금은 어수선한 상태입니다. 여러 개의 책상과 바닥 위에 작업을 펼쳐 두고, 영역마다 조금씩 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작업 도중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연스럽게 옆 공간으로 이동하는 식이죠.
작업하다가 이따금 테라스에 앉아 계절의 변화를 조용히 바라보면, 제 안에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겨나는 느낌이 듭니다. 그 빈 공간을 혼자 가만히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고요. 요즘은 이 작업 공간과 제 안의 빈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채워지고 또 어떻게 변해갈지 상상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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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과정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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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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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과정 디테일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세상을 관찰하다 보면 수많은 움직임이 시선을 간질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온전히 서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언제나 뭉클하게 다가와요. 우리의 작고 부단한 움직임은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자칫 놓치기 쉽지만,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오히려 ‘위대함’을 느낄 때도 있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존재들의 움직임과 희로애락은 늘 복잡한 감정과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이자 작업의 영감이 됩니다. 그렇게 삶 속에서 포착한 여러 단순한 행위들을 예술의 영역 안에서 반복해 왔습니다. 결국 크든 작든 움직인다는 것은 ‘힘’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자연스럽게 시선에 들어오는 움직임의 장면을 관찰하고, 가능하면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그때그때 드로잉을 하거나 작업 노트에 들어갈 시를 적으며, 이 움직임의 어떤 지점이 왜 감동적으로 다가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저만의 언어로 붙잡으려 합니다. 그렇게 충분히 관찰하고 기록한 뒤에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에요.

작업의 큰 틀은 단순한 행위를 반복하며 몸으로 사유하는 데서 출발해요. 동작을 거듭 반복하는 일은 지난한 시간과 지구력이 있어야 하는데요. 몰입해 반복할수록 몸은 고단해지고 피로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스러운 고양감 속에서 온몸이 열기를 띠며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감각이 또렷해집니다. 극과 극의 상태를 오가며 행위를 하는 동안 몸의 감각과 사유의 방향, 감정, 재료의 물성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반복 동작이라도 작업은 매번 동일하지 않고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요. 또 그렇게 행위를 거듭하는 동안 생겨난 부산물들 역시 과정의 일부이기에, 버리지 않고 이후 다른 작업의 재료로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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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ed Cosmos›, 2025, 숯가루, 파라핀 왁스,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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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Mountain›, 2021-2025, 콩테, 지우개, 가변설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진행한 개인전 «순공간 Purely Ongoing»에서 선보인 작업을 위주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시 제목으로 사용한 ‘순공간’은 순간과 공간, 그리고 가장 순수한 시공간을 동시에 뜻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긍정과 부정, 그 사이의 모든 스펙트럼을 끌어안고 존재하죠. 이번 전시는 그런 상태 자체가 성실하게 진실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함께 나누는 자리이길 바랐습니다.

전시 공간의 거실에 설치한 ‹Falling Moment : Rainbowcube›는 다른 작업 마찬가지로 하나의 결과물로 완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온고잉 프로젝트에요. 1초에 한 번 호흡하고 한 획을 긋는 행위를 반복하는 작업으로, 초반에는 시간을 세지만 점차 카운팅을 잊고 감각에 의존해 획을 긋게 됩니다. 숫자로 인지되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시간’이 누적되며 검은 원이 서서히 드러나는 작업이에요. 이번 전시에서는 1:1로 마주 앉는 형식으로 설치해, 서로의 시간이 교차하는 퍼포먼스를 시연했어요. 물론 원하시는 관람객 누구나 자유롭게 앉아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고요. 이를 통해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인 동작,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행위를 통해 창조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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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Moment : Rainbowcube›, 2024-2025, 트레팔지 위에 연필, 나무,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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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Moment : Rainbowcube›, 2024-2025, 트레팔지 위에 연필, 나무,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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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Moment : Rainbowcube›, 2024-2025, 트레팔지 위에 연필, 나무, 가변설치

행위의 과정 자체를 계속 펼치다 보니, 물질 자체가 지닌 힘과 온도에도 자연스레 눈길이 갔는데요. ‹Grounded Cosmos›, ‹The Last Turn›은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에서, 행위의 부산물인 숯 가루와 왁스를 주요 재료로 삼아 완성한 작업이에요. 두 물질 모두 열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그 열은 살아 있는 존재가 마땅히 지닌 힘이자 체온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주 미세한 입자가 떠받치는 작은 행위의 축적이 어떻게 세계를 지탱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작업의 부산물로 나오는 가루와 왁스는 딱히 이렇다 할 형태가 없어 다루기 까다롭지만 그만큼 물성을 존중하면 나오는 우연성이 아주 매력적이기도 해요. 앞으로 계속해서 탐구하고 다뤄볼 예정이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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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ed Cosmos›, 2025, 숯가루, 파라핀 왁스,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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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ed Cosmos›, 2025, 숯가루, 파라핀 왁스,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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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Turn›, 2025, 숯가루, 파라핀 왁스, 80×80×1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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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Turn› 설치 전경, 2025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최근 전시를 함께한 기획자님과 작업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러다 완성된 제 작업 노트의 한 문장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남깁니다. ‘한 번의 숨은 순간이지만, 1억 번의 숨은 삶이 된다.’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창작 활동에서 만족과 불만족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느껴요. 좋았던 부분도 아쉬웠던 부분도 찰나일 뿐, 언제든 뒤집어지기도 하지요. 다만 모든 창작자가 그렇듯, 저 또한 작업을 늘 진심으로 대하고 그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여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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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al» 전시 전경, 갤러리 도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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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2021–, 행위의 부산물(검댕 가루, 톱밥), 가변설치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담담하게 그날그날 주어진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가는 편이에요. 주로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바라보고 그 풍경을 바탕으로 혼자만의 상상도 질문도 많이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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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Black Cloud 1›, ‹Black Cloud 2›, ‹Black Cloud 3›, 2023, 판화지 위에 아크릴, 콩테, 지우개, 각 33.5×42.5cm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바쁜 일정이 어느 정도 갈무리되면, 먼저 몸의 컨디션을 돌보고 싶습니다. 몇 달 전 발목을 크게 다쳐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아직 예전처럼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어요. 작업을 지속하려면 몸이 튼튼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아픈 곳이 유난히 거슬리게 느껴지면, 때로는 그 부위가 내 몸에 달려 있었다는 걸 새삼 인식하게 되어 낯설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어요.

몸을 조금 추스고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싶어요. 바쁜 일정 속에서 사두고 읽지 못한 책들이 제법 쌓여 있거든요. 문학을 읽으면 제 삶을 기반으로 연상되지만, 또 제 삶은 전혀 아닌 다른 세상의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렇게 환기된 시선으로 잠시 눈을 감고, 우리가 왜 움직이며 살아가는지를 그려보면 조금은 더 알게 되고, 이해가 깊어질수록 감히 더 잘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렇게 뭉근해진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낙서하거나 짤막한 글을 종종 쓰는데, 이게 아무것도 아닐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작업 노트와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역시 작업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영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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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en›, 2021–, 행위의 부산물(검댕 가루), 철사,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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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en› 디테일, 2021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아보면, 제 삶을 대하는 태도는 ‘마주하기’에 가깝습니다. 그때그때의 태도가 작업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느끼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정도와 속도를 지키며 걸어가려 해요. 그 무엇보다 심지어 예술보다 삶이 우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웃으면서 그저 주어진 삶을 직시하고 성실히 살아가려 합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아직 큰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지만, 막막함이 밀려올 때면 잠시 호흡을 고르며 물의 순환 짤을 떠올립니다. 언젠가 언젠가 웹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미지인데,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꽤 심오하게 다가왔어요. 

자연이 순환하듯 우리의 삶 역시 좋은 일이 다른 국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일이 다시 좋은 일로 돌아오기도 한다고 믿습니다. 다양한 삶의 굴곡을 마주하고 받아들인 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당장은 생뚱맞고 엉뚱한 선택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용기를 내어 조금씩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멀리서 돌아봤을 때 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은하수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이겨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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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순환 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드러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정직하게 임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은 정말이지 투명해서 저와 제 삶, 저와 연결된 것들을 은연중에 모두 드러내거든요. 그래서 작업에 임할 때마다 제 태도가 진심인지, 방향성을 잃지는 않았는지 늘 고민합니다. 

끊임없이 이것저것 시도하며 부딪히는 과정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이게 정말 최선일까?’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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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al» 전시 전경, 갤러리 도스, 2023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담백하고 순수한 작업을 하는 사람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독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사랑하기를 반복하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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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김소연(@kim_soyeon_sophie)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조소와 공간디자인을 전공했다. 반복적 행위를 통해 몸으로 사유하며, 몸과 정신, 시간, 물질을 소진할 때, 현상, 흔적, 부산물이 생성되는 순환적 시간 속에서 이미지 너머의 생동하는 힘과 시간을 가시화한다. 주요 개인전으로 «순공간 Purely Ongoing»(레인보우큐브, 2025), «Eternal»(갤러리 도스, 2023) 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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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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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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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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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허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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